2011년이었다. 난데없이 그가 나는 가수다에 나타났다. 김건모의 탈락소동을 겪고 한달후에 다시 재시작된 나는 가수다에 그가 나타났다.
대중들은 임재범이라는 이름은 다들 들어봤지만 tv에서 노래부르는 모습을 거의 본적이 없었다.
그는 그정도로 가요계에서 최고실력파 보컬이지만 대중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은둔고수의 이미지였다. 동시에 괴팍한 이미지도 함께.
'너를 위해' 를 부른날이었는지 첫경연이 시작된 '빈잔'(빈잔의 피쳐링으로 참여한 사람이 뮤지컬배우 차지연인데 임재범 아내의 뮤지컬 후배다) 을 부른날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 안난다.
그는 약간 우울하고 힘없는 표정으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었다.
"...아내가 그렇게 된게(암에 걸린게) 저 때문에 그런걸수도 있어요..."
임재범은 자신의 아내가 암에 걸린게 자신이 속썩여서 그런것이라고 생각하는듯했다.
겨울에 난방비를 아끼려고 보일러도 맘대로 틀지못했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린 그의 인터뷰내용을 듣고 짐작컨데 임재범은 결혼생활중에도 방황과 우울증이 심했던거 같다. 그 히스테리를 아내에게 부리고.. 아내는 그걸 또 다 받고.. 그러다 후회하고 다시 반복하고.. 아마 그랬던듯 싶다.
그래서 아내가 자신때문에 병들었다고 생각하는듯 했다.
그런 속죄의 마음에서 였을까? 모두가 기대를 했지만 설마 나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 등장했던 것이다.
그는 절실해 보였다. 아내를 위해.. 사랑하는 딸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이젠 방황을 끝내고 대중앞에 나서기로 마음먹은듯 했다.
(글을 써 놓고 검색을 해보니 아내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나는 가수다에 출연결심을 했었다는군요ㅠㅠ)
그는 1986년 시나위1집 보컬로 데뷰했고(한국최초의 헤비메탈 앨범이다) 시작과 동시에 찬사를 받았지만 음악생활은 방황과 잠적의 연속이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거쳐온 밴드마다 단발성으로 끝나고 오래지속하지 못했던 밴드활동은 그렇다쳐도(그는 시나위, 외인부대, 프로젝트앨범 락인코리아, 아시아나 모두 1집에만 참여했었다) 솔로로 데뷰하고도 활동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앨범을 내놓고 홍보도 하기전에 툭하면 잠적하기 일쑤였다.
후배를 때리기도 했다는 말도 있었고 방송사와 마찰을 빗기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는 가요계에서 그런 이미지였다.
왜그랬을까?
락음악을 하기엔 척박한 한국의 토대? 음악보다는 상업주의와 스타에만 의존하는 가요계? 자신이 진정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할 수없는 열악한 가요계 시스템?
이것만은 아닐것이다. 팬들은 짐작만 할뿐 사실 임재범의 정확한 속내는 모를것이다.
다만 불우했던 어린시절이 원인이라는건 신빙성이 있는 말인것같다(그는 어릴때 고아원에서 자랐다. 서울고 동창생이었던 신대철보다 4~5살 많은건 이런 원인이 있었던듯 하다)
거기다 타고난 기질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는 나는 가수다 이후로 방황을 끝내고 마음잡은듯 보였다. 나가수를 통틀어서 최고의 화제에 오른 가수가 되었고
실제로 나가수 이후로 방송출연도 많이했고 콘서트도 대성황이었으며 아내의 건강도 좋아졌고 모든것이 잘 풀리는듯 싶었다. 심지어는 몇년내에 그래미상을 받겠다라는 포부도 밝혔다. 물론 나중에 그래미상을 받는게 생각보다 오래 걸릴것같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겠다 라는 말로 한 발 뒤로 물러섰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아내가 떠났다. 투병한지 약 6년만에 떠났다. 임재범과 나이차이가 있는 아내는 아직 젊은나이였고 임재범도 사별하기엔 아직은 어색한 나이다.
과거에 두사람의 결혼식 소식을 연예정보프로를 통해서 보았다. 임재범은 스님처럼 머리를 밀었고 흰양복을 입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신부는 단아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두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이모습을 본 지 얼마 안지난것 같은데...
신은 왜 그를 행복한 일상을 영위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것일까? 지금까지의 방황과 시련도 충분하지 않았단 말인가?
신은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물론 나는 모른다. 임재범도 모르고 그의 팬들도 모를것이다. 만약 임재범이 ~을 하도록 하기위해 라고 누군가 섣부르게 얘기한다면 그것은 해서는 안될 말이다. 그런말을 할 권리따위는 사람에겐 없다고 생각한다.
글 제목을 방랑자 임재범 이라고 붙인건 좀 잔인한 말 같지만 혹시 방랑이 임재범의 숙명이 아닌가 싶어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거나 한 곳에 마음정하지 못하고 오랜시간 방랑하는건 얼마나 고달픈 일인가?
불우했던 어린시절,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유명했지만 방황과 잠적의 연속이었던 음악생활.. 일찍 찾아온 아내와의 사별..
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함과 동시에 하고픈 말은 더이상의 방황은 없기를 바란다는거다. 물론 이젠 연륜이 쌓인만큼 예전처럼 그러진 않을거라는걸 믿기때문에 하는말이다.
먼저 떠난 아내도 그러길 바랄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외인부대 - 방랑자(1988)
임재범의 보컬은 모든 앨범을 통틀어 이때가 최고인것 같다. 많은사람들이 하는말이고 나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리스너의 취향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보컬의 능력면에서는 그렇다. 시나위이후 두번째 앨범에서 최고의 보컬을 들려주다니..ㅎㄷㄷ
이때의 임재범의 활화산같은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가슴이 시려온다.
라인업
임재범(보컬)
손무현(기타)
이지웅(기타)
박문일(베이스)
손경호(드럼)
방랑자
어느 하늘아래 어느 대륙위에 내가 서 있나
어느 하늘아래 어느 대륙위에 내가 서 있나
오늘 나는 어디로 떠나가는가
그 어디로 그 어디로 가
나의 모든 인생을 걸머지고서
그 어디로 그 어디로 가
어느 하늘 아래 어느 대륙 위에 내가 서있나
오늘 나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무엇을 갈망하는가
나의 모든 어둠을 접어두고서 내일로 향해간다
살며 사랑했던 모든것을 빈 가슴에 남아
모르는 사람들과 부딛쳐 살면서~
임재범인데 한곡만 올리기엔 섭하다.
나가수에 나왔던 그해였을것이다. 2011년 방송 '바람에 실려' 중에서 미국의 대학교 UC버클리 라이브다.
그가 이곳에 와서 했던 멘트중에 기억에 남는 말. "...저는 대학을 다니지 못했는데.. 이곳에 와보니 그냥 여기 다니고 싶어요."
이글스의 커버곡 Desperado(무법자여)
워낙 유명한 곡인데 가사자막을 보니 완전 임재범 얘기네요ㅎㄷㄷ
그리고 가사가 정말 좋네요.
역시 UC버클리 라이브중에서 딥 퍼플의 커버곡 Soldier Of Fortune
이곡도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한 곡인데 이곡도 역시 가사가 임재범의 마음을 담고 있네요ㅎㄷㄷ
원곡을 부른 딥 퍼플의 보컬 데이빗 커버데일은 임재범이 가장 좋아하고 영항받은 보컬중 한명임.
두곡 다 원곡보다 낫다라고 얘기한다면 욕먹을 일일까요? 그럼 원곡에 못지않다 정도로 하겠습니다^^ 뭐라 말로 표현할수가 없고요.. 새삼스런 말이지만 임재범은 그냥 타고난 보컬이네요.
새벽에 술한잔 걸치고 쓴 글이라 좀 감상적인 글이 된 것 같습니다. 이해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