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이론의 진실 구조론은 다른 관점에서 본다. 광속이 일정한 게 아니라 의사결정속도가 일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입자가 A에서 B로 갈 때 B에서 A로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A와 B 사이에 장이 성립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수상대성 이론은 말하자면 심장은 일정한 속도로 뛴다는 말이다. 사실은 흥분하면 심장이 빨리 뛰지만 일정한 속도로 뛴다고 치자. 서울에서든 부산에서든 심장은 일정한 속도로 뛴다는 게 특수상대성 이론이다. 너무 쉽잖아. 당연한 이야기다. 그럼 부산에서는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광주에서는 심장박동이 느려진다는 말인가? 일반상대성 이론은 자전거를 타면 느리게 가고 자동차를 타면 빨리 간다는 말이다. 역시 당연한 말이다. 자전거는 느리고 자동차는 빠르니까 속도차이가 난다. 이렇듯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데 왜 이해가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해가 안되는 게 더 이상하다. 예컨대 말이다. 라디오가 있는데 그 속에 부품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면 그 말이 믿어지나? 그게 더 이상한 거다. 당연히 뭔가 얄궂은 것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 라디오가 있는데 부품이 하나도 없다면? 귀신이 들어있다는 말인가? 그게 더 무섭잖아. 세상의 근본원리는 복잡해야 안심이 된다. 내가 우주의 질서를 알아냈는데 그게 1+1=2처럼 단순하다면 실망이다. 우주의 원리는 복잡해야 제맛이다.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복잡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다. 하느님이 세상을 맹글되 중국집 주방장이 짜장면을 볶는 방법으로 대강 밀가루를 주물러서 만들었다면 그게 믿음이 가나? 뭔가 조금 더 세련된 방법으로 만들었어야 근사하다고 할 것이다. 그냥 ‘빛이 있으라!’ 하니까 빛이 생겼다? 이건 바보같다. ‘수리수리 마수리’라도 해줘야 한다. ‘아브라카다브라’ 하고 주문이라도 외어주는 게 맞다. 무엇인가? 상대성이론에서 우리가 충격받아야 하는 사실은 시간이 어쨌다니 공간이 어쨌다니 이런 것이 아니다. 이런건 뭐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래봤자 물리학자들이나 골때리지 비전공자인 우리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진짜는 따로 있다. 그것은 우리가 제 3자를 관측하고 있었다는 거다. 정동영이 아니라 아나운서를 보고 있었다는 거다. 우리는 정동영을 본다. 정동영을 보고 잘 생겼네 하고 믿음이 갔다. 사실은 인간 정동영을 본 게 아니고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보고 PD를 보고 방송국을 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안철수를 본 것이 아니라 그의 학벌과 그의 신화와 그의 날조된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철수를 관측한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엉뚱한 것을 관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상대성이다. 상대성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작가다. 춘향과 몽룡이 만나야 이야기가 진행된다. 둘을 만나게 하려면 당신은 다섯 가지를 정해줘야 한다. 당신은 춘향을 레즈비언으로 설정하고 몽룡을 게이로 설정했다. 레즈와 게이가 단오날에 광한루에서 만났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앗, 이건 설정오류다. 이래가지고는 소설이 안 된다. 우리는 보통 약속을 잡을 때 두 가지를 신경쓴다. 첫째, 약속 장소, 둘째, 약속 시간이다. 실패한다. 장소와 시간만 가지고 애인이 생기겠냐 멍청아! 생각 좀 하고 살자. 당신은 먼저 그럴듯한 동호회라도 가입해야 한다. 절대 장가 못 갈 것 같던 웹툰 윌유메리미의 마인드C 친형도 맛집탐방으로 확률을 높이더니 기어코 장가를 들더라. 사건의 일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3일치의 법칙을 떠올려도 좋다. 하나의 극은 하나의 사건, 하나의 장소, 하나의 시간에 엮여야 한다. 여기서 공간과 시간에 사건이 더 추가된 점을 명심하자. 우리는 공간과 시간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들지만, 이는 터무니없고 사건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다섯 가지다. 첫째, A에 B가 일치해야 한다. 몽룡이 춘향의 눈에 들어야 한다. 둘째, B에 A가 일치해야 한다. 춘향도 몽룡의 눈에 들어야 한다. 셋째, 둘이 하나의 사건으로 엮여야 한다. 암행어사 출도 사건이 적당하다. 넷째, 하나의 장소라야 한다. 다섯째, 하나의 시간대라야 한다. 5일치를 도출해야 비로소 게임은 시작된다. 우리는 그 다섯 중에서 겨우 공간과 시간만 아는 것이다. 공간이 휘고 시간이 느려지고는 그냥 표현이다. 아인슈타인이 말을 그렇게 했다. 이공계 출신이 원래 어휘를 적당히 쓴다. 실제로는 시간도 공간도 변동이 없다. 변동은 사건이다. 문제는 5일치에 있다. 관성계가 다른 거다. 한 사람은 미국게 있고 한 사람은 한국에 있으면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기가 어렵다. 5일치가 안 되는 거다. 불일치되기가 다반사다. 시공개념은 일치를 위한 것이며 일치는 사건을 격발하려는 것이며 관성계가 같아야 일치가 되는 것이다. 예컨대 부산에서 KTX 타고 올라오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너와 나 사이의 딱 중간에서 만나자고 하면 만나질까? 이게 대전에서 만나자는 말인지 김천에서 만나자는 말인지 알기 어렵다. 이건 당연한 거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항상 일치를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항상 답은 외부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일치가 안 된다. 정동영을 보지 않고 아나운서를 보니까. 안철수를 보지 않고 스펙을 보니까. 박근혜를 바라보지 않고 박정희의 환상을 쫓고 있으니까. 우리는 항상 제 3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상대성이론에서 깨우쳐야 할 충격적인 진실이다. 여자는 남자를 보지 않고 학벌을 본다. 남자는 여자를 보지 않고 성형외과 광고전단을 본다. 다른 데를 보고 있다. 5일치에서 어긋난다. 불일치다. 상대성이론은 단순히 엉뚱한데 보지 말고 그 관측대상 자체를 보라는 말이다. 공간이 휘고 시간이 느려질 리 없다. 문제는 엉뚱한 데를 관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성계가 다르면 객관적 관측은 불가능하다. 공간이 굽었다는 것은 외부의 사정이고 빛 자신은 직진했다. 시간이 느려졌다는 말은 외부의 입장이다. 외부에서의 관측은 진실을 알아내는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 관측은 사건이 일어나는 장의 외부를 관측하기 때문이다. 시차가 있어도 각자 시계는 일정하다. 미국인과 한국인이 시차에 따라 다른 시간대에 속해 있지만 시계가 느려진 것은 아니다. 시계는 정상인데 우리는 태양을 관측하고 있었던 거다. 시계는 태양에 맞추어져 있다. 완벽하게 맞추는 방법은? 없다. 안드로메다 은하에 있는 사람과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완벽한 약속은 불가능하다. 전혀 불가능한 것은 또 아니다. 새로 관성계를 조직하면 된다. 안드로메다 지도와 우리은하의 지도가 다르므로 양쪽 다 각자 지도와 시계를 버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새로 시계와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시공간이라는 것은 없으며 있는 것은 사건이며 사건의 격발을 위해서는 일치가 필요하며 일치해야할 것은 다섯이며 관성계가 다르면 일치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공계들이 말을 이상하게 하는 게 문제다. 시간이 느려졌다는 말은 이상하다. 시계가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우리의 시계는 태양인데 태양이 시계가 된다는 주장은 황당한 거다. 외계인 중에 태양시계를 인정하는 외계인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 세슘원자시계? 그딴거 안 쳐준다. 우주에 객관적으로 들어맞는 시계는 없으며 각자의 시계가 있는 것이며 각자의 시계는 각자 관성계를 따라가는 거다. 우리가 어떤 사건에 속해 있으며 그 사건이 하나의 관성계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가 정동영을 판단하지 않고 아나운서를 판단하듯이 안철수를 관측하지 않고 스펙을 관측하듯이 대상을 관측하지 않고 관성계를 관측하는 것이며 다른 관성계를 관측하면 당연히 맞지 않다. 약속은 불가능하다. 만나려면 사건과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하는데 그것을 정할 수 없다. 시간이 느려지고 공간이 휜다는 말은 표현이 그런 것이고 그런거 없다. 시공간이 없다. 있는 것은 사건이다. 사건은 일치를 요구한다. 5일치가 필요하다. 보통은 3일치를 미리 확보해놓고 시간과 장소만 정한다. 다만, 당신이 소설 작가라면 다섯을 다 정해야 한다. 일치는 정하는 것이며 우리는 당사자가 아닌 배경과 일치를 추구한다. 그게 쉽기 때문이다. 고도의 정확성이 요구되는 물리학에서 이런 식으로 대강 때려잡으면 안철수를 찍고 후회한 사람처럼 오류가 나는 것이다. 정확하게 사슴을 맞추지 않고 대략 산에 맞추면 산불이 나서 사슴이 잡힐 수도 있다. 100미터 사격을 할 때는 앞을 맞추면 총알이 튕겨서 맞기도 한다. 정확하게 관측자와 관측대상 둘 만의 관성계를 새로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시간과 공간은 원래 없으며 있는 것은 다섯의 일치이며 그중에서 방향과 순서의 일치를 공간과 시간이라 명명한다. 방향과 순서의 일치는 사건을 조직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요건 중에 두 가지일 뿐이다. 그 외에도 더 많은 일치가 있어야 한다. 일치하려면 사건 내부에서 맞추어야 하고 그것은 관성계를 새로 조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파트너를 찾되 집안을 보고 학벌을 보고 직업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외부를 보는 것이며 이건 대강 때려맞추는 것이라서 정확하지 않은 것이며 당사자를 직접 만나서 둘 만의 약속과 암호를 정해야 한다. 두 사람이 장을 조직하고 장 내부의 논리를 따라가야 하며 이것이 결따라 가는 거다. 새로 내부질서를 도출하는데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간이 어쩌고 시간이 어쩌고 다 뻘소리입니다. 그딴건 잊어버리세요. 이공계 애들이 원래 말을 좀 이상하게 합니다. 말이 이상한 거지 사실이 이상한게 아니라구요.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항상 엉뚱한 데를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관성계 바깥을 보면 죄다 틀리게 됩니다. 일치하지 않는다니깐요. 다섯 가지 일치를 조직해내지 못하면 당신은 어떤 계획도 성공시키지 못합니다.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될 듯하다가 불이 꺼져 버립니다. 인간은 각자 자기만의 시계와 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두 사람이 다른 사건에 속해 있을 때 그 시계와 지도가 맞을 리는 절대로 없으며 외부요인을 모두 배제하고 하나의 관성계 곧 하나의 사건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중학생만 되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명쾌한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