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자대결이냐 양자대결이냐? 문안 양자대결로 갈 이유는 절대 없다. 노인방 김종인, 정운찬, 홍석현의 회동은 이미 깨졌다. 국민에 의한 단일화를 주장하는 안철수의 희망사항은 코미디일 뿐이다. 국민은 단일화에 관심이 없다. 왜? 이 모든 현상은 국민의 권력의지라는 원인에 의해 춤을 추는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자신이 판을 컨트롤하려 하며 그러려면 의사결정의 핵이 있어야 한다. 핵으로 문재인을 놓고 대항마로 안철수와 홍준표의 2위대결에서 예상 외로 홍준표가 조기에 몰락하고 안철수 쏠림을 낳고 있는게 작금의 지지율이다. 문 대 비문의 구도가 아니라 문을 축으로 놓고 파트너를 고르려는게 국민의 진짜 의사다. 즉 양자대결이 아닌 것이다. 문재인의 당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당선이후 정계개편에서 누가 주도권을 쥘 지를 국민은 판단하고 있다. 여기서 안철수를 밀어 문재인을 견제하려는 경상도 비문과 안철수를 중심으로 정계개편을 꾀하는 호남보수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안철수가 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계개편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게 되며 그때 경상도 비문은 다시 홍준표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문 55 안 25 홍 15 기타 5로 수렴되게 된다. 안철수의 안희정 따라하기 안철수 지지의 증가는 대선이후 정계개편을 위한 주도권 게임 안빠 - 일단 안철수를 밀어 대선후 주도권을 잡는다. 바른빠 - 바른당과 안철수의 단일화로 활로를 열어간다. 박빠 1 - 어떻든 홍준표로 최대한 버텨본다. 박빠 2 - 안철수를 밀어 문재인을 눌러놓고 홍준표로 안철수를 잡는다. 홍준표에 실망한 박빠들의 안철수 지지는 잠정적인 것이며 문재인 견제라는 1차목표를 달성하면 다시 안철수 제거에 들어간다. 왜 이렇게 되는가 하면 박빠들이 홍준표를 밀어봤자 정계개편 주도권 못잡는게 뻔하니 국민의당 몰락> 국민의당 더민주당에 흡수소멸.. 이걸 막자는 거. 대선후 소멸될 가능성 있는 국민의당을 일단 살려놓고 바른당+국민의당엽합 혹은 바른+국민+한국 3자연합을 시도하려는 거. 그 경우 쪽수가 많은 한국당이 국민당을 잡아먹을 수 있는 거. 2) 안희정, 이재명에게 실망했다. 김대중, 노무현, 오바마급 정치인은 10년에 한 명 뜬다. 안철수는 목소리 바꾸고 단일화 제안에도 안 넘어가고 열심히 하는데 안희정은 소풍나온듯이 했다. 이재명도 지 꼴리는대로 왜 말로 '곤조'만 부렸다. 안희정은 안경부터 바꾸어야 한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NO만 가능하고 YES는 불가능이다. 스스로 YES 하면 안 되고 상대가 YES할때 NO로 뒤통수쳐서 뜨는 방법만 있다. 무슨 제안이든 제안은 심판이 관중에게 레드카드를 넘겨주는 행위다. 관중은 심판을 퇴장시키는 방법으로 시험한다. 그냥 해본다. 절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관객이나 상대방에게 넘기면 안 된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경솔한 짓이다. 타짜는 자신의 실력으로 이기는게 아니라 히로뽕 먹고 새벽 5시까지 잠 안자고 버티다가 상대방의 실수를 응징해서 뜬다. 2등이 자력으로 올라가는 방법은 없고 확률을 믿고 1등이 실수하기를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려면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에고를 버려야 한다. 오직 상대의 실수를 뚫어져라 감시해야 한다. 문재인이 대통령 다된줄알고 오만한짓 할대까지 기다리거나 외곽에서 흔들어 보거나일 뿐 스스로 자가발전 올라가는 길은 절대로 없다. 인물이 잘 없으니 패권세력의 교통정리 외에 답이 없다. 손석희와 김홍걸이 등판을 노리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3) 한겨레의 변명 지식의 지배를 꾀하는 한겨레의 권력의지
한겨레는 늘 최악이었다. 탄생 당시부터 그랬다. 신문사 이름부터 그랬다. 제호를 왜 그 따위 폰트로 썼는지부터 그랬다. 백두산그림을 대문꼭지에 박아놓을때부터 그랬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언론권력을 추구했을 뿐이다. 자본이 돈을 추구하며 대중들에게 아부할 때, 그들은 개인의 명성을 추구하며 대중을 엿먹이는 먹물의 모습을 보였다. “돈 보다 언론권력이 낫다.” <- 본심 한겨레의 모토.
4) 박그네, 구치소생활 즐겁냐? 면회거부권 즐기며 황제깜방살이 할만하다던데. 원래 독방은 아니고 3평짜리 6인실을 특별히 독방으로 개조하고 샤워시설까지 갖춰준듯. 이 정도면 독방이 아니라 원룸이잖어.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데 이게 뭐야? 서향희, 박근령 면회권력 파훼, 박근혜 면회거부권으로 황제놀이, 교도소장이 서열 1위로 등극. 박빠들은 3보1배 하면서 기다려, 그러나 면회 안해. 친척면회 허용하면 면회권 장사할 넘이 서향희, 박근령. 박근혜는 면회희망자 애태우는 재미가 쏠쏠. 5) 행복이 아니라 에너지다. 환경 속에서 사건을 찾는게 인간의 마음 |
인 - 소통능력에서 얻는 에너지
지 - 의사결정능력에서 얻는 에너지
의 - 우위에 설 때 얻는 에너지
신 - 지속함으로써 얻는 에너지
예 - 완결함으로써 얻은 에너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호르몬, 호르몬을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과 심리성격, 무의식은 집단의 마음을 읽고 스트레스에 의해 마음이 조종되어 그 집단의 사건에 가담하는 것이며 심리성격은 일관된 행동을 함으로써 의사결정비용을 줄이는 태도. 어느 쪽이든 인간의 마음은 전체를 바라보게 되어 있음. 집단전체를 위해 희생, 환경전체와 조화, 인생전체의 일관성을 추구. 행복의 비결은 환경에 대해 우위에 서는 것. 그러면서 긴밀하게 소통하는 것. 소통방법은 인지의신예. 6) 드론소동은 사기 드론배송보다 로봇배송이 낫다. 외신은 미국의 IT 벤처기업 ‘스타쉽 테크놀로지스’의 택배로봇 ‘스타쉽’(Starship)이 올해 여름부터 도미노 피자 배달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스타쉽’은 6바퀴로 굴러가는 자율 로봇(autonomous robot)으로 5-30분 거리 내에 지역을 중심으로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제작됐다. 스타쉽의 속도는 시속 6km 정도로 오토바이 배달에 비하면 매우 느린 편. 그러나 이동 중 스스로 장애물을 피할 수 있으며 자체에 카메라가 설치돼 관리자가 배달 과정을 지켜보거나 누군가에게 말을 걸 수도 있다. 또한 주문자는 스마트폰으로 전송된 코드로 잠겨있는 스타쉽을 열어 피자를 꺼낼 수 있다. 드론배송은 IT기업의 광고장난에 현혹된 거다. 현실성 없다. 과거 일본 혼다가 만든 걷는 로봇 '아시모꿍'과 같은 속임수. 중국에서는 농부도 로봇 만들고 잠수함 만드는데 물론 가짜. 구조론을 모르면 RC멀티콥터를 드론으로 착각하는 거. 옛날에는 비행선 띄워서 광고하다 망했고, 그 다음은 일본이 로봇만들어 광고하다 망했고, 로봇강아지 '아이보' 만들어 팔다가 조용히 사라졌고, 이런 눈속임 많은데 진짜가 아니다. 조잡한 중국제 RC멀티콥터를 드론이라고 우기는데 그게 무슨 드론이냐? 북한이 날려보내서 청와대 사진 찍고 돌아간게 드론이지. 어린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참. 중국제 RC멀티콥터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초딩 장난감일 뿐. 거기다 짐벌과 고프로를 달아야 그나마 쓸모가 있는데 싸구려 중국제로는 곤란. 전봇줄에 걸리고 감나무에 걸려서 쓸데가 없어. 드론은 옛날부터 있었고 최근에 피자배달설로 웃겼지만 그건 외국 IT기업 홍보술에 한국 바보들이 놀아난 거. 근데 사기치기 좋아하는 신문들이 그런데 자발적으로 낚여드려. 이명박의 로봇물고기 수법. 7) 보수는 지지자가 문제, 진보는 지도자가 문제 보수 지지층은 같은 사이트만 계속 방문한다고. "하버드대 연구팀, '가짜 뉴스' 원인 분석 '좋아하는 뉴스만 보여주는' SNS 때문 가짜뉴스 활개친다는 기존 분석 반박 진보층은 다양한 매체 오가며 읽지만 보수층 <브라이트바트> 주변서 고립 공격적 행태가 '비대칭적 양극화' 초래." 1) 진보가 망하는 이유 - 진보는 먹물들이 교조적인 이론을 내놓고 노선을 바꾸지 않는다. - 멸망.. 아직도 마르크스타령, 주사파 품성론 들먹이는 바보가 많음. 2) 진보가 흥하는 이유 - 가끔 노무현과 같은 현장경험 있는 젊은 세력들이 치고올라와서 한겨레 경향 오마이들의 바보들을 물먹이고 패권세력을 형성하면 중산층이 대거 가세한다. 3) 보수가 망하는 이유 - 보수는 지지자들이 의사결정을 회피하는 심리에 의해 정해놓은 패턴을 바꾸지 않는다. 아직도 625시절 피난민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본다. 4) 보수가 흥하는 이유 - 보수는 이념이나 노선이 없으므로 트럼프처럼 필요한 대로 막 가져다 쓴다. 경쟁자도 없으므로 종횡무진으로 누빈다. 레이건이나 부시나 트럼프와 같은 얼간이도 활약한다. 결론.. 진보는 지도부가 띨빵해서 안 되고 보수는 지지자가 띨빵해서 안 된다. 진보는 지지자가 똑똑해서 살아나고 보수는 지지자가 멍청해서 죽을 쑨다.
8) 웨어러블은 안 된다. 마이너스는 되고 플러스는 안 된다. 웨어러블이라는게 조잡한 악세서리 장사에 불과한 거다. VR, 드론, 웨어러블, 아이패드 다 안 된다. 일회적 관심으로 묻어가는 건데 언플이 심했다. 박원순도 반짝, 이재명도 반짝, 반기문도 반짝, 황교안도 반짝, 안희정도 반짝, 안철수도 반짝, 홍준표는 반의반짝. 반짝 한 철 장사는 되겠지만 의사결정의 관점에서 열려있는 시장이다. 닫혀 있어야 돈이 된다. 어떤 frame에 가두어야 한다는 거. 내가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는데 상대방이 집전화로 받을 수는 없잖아. 그게 가두는 장치.. 그런 가두기가 없으면 안 된다. 이런건 직관적으로 1초만에 알 수 있는 거. 9) 위암 낮추기는 일본을 복제 한국은 좋겠네 우리거 베끼면 되니깐. 일본의사 푸념. 일본 따라하기로 커온 한국이지만 중국이 따라오니 싫지? 원래 우주의 질서는 복제다. 이 말하면 또 컨닝하라는 말로 알아듣는 분 꼭 있음. 제대로 복제하기는 진짜 어려운 것이다. 진리를 복제하고 자연을 복제하기는 아인슈타인급 천재만 할 수 있다. 남의 것 훔치는건 도둑질이다. 어쨌든 소련은 특허를 폐지하고 무한복제로 일시적 성공을 거둔 것이 맞다. 그리고 우리가 구소련의 방법에서 빼먹을 것이 있는 거. 사회주의 특유의 보편주의 철학에 쓸만한게 상당히 있다. 학교교육도 공산주의식 무한복제다. 인터넷도 공산당식 무한복제 시스템이다. 복제를 잘 하는 나라가 성공한다. 유교권이 복제에 익숙한건 사실이다. 복제가 그냥되는게 아니고 선후배문화 같은 내적 질서가 있어야 된다. 한국이 성공하려면 특이한 창의에 매몰되지 말고 보편적이고 난이도 낮은 것을 선점하여 세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레드오션에 진정한 블루오션이 있다는 말씀. 특이한걸 독점하는 발상으로는 반짝 하다가 마는 거다. VR, 3DTV, 드론(멀티콥터), 웨어러블 이런건 대부분 안 된다. 기발하고 독특한것 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더럽게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롭고 짜증나서 안하는 것을 포드시스템으로 돌려서 단번에 해치워버리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10) 기본의 기본은 무엇인가? 에너지의 방향성으로 모두 설명한다. 우리는 말을 배웠지만 단어를 익혔을 뿐 문법을 학습하지 않았다. 더욱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다. 문법은 배우지 않아도 그냥 안다. 생각하는 방법 역시 배우지 않고 그냥 안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들 생각하는 방법을 맞게 쓰고 있는가? 다들 어떤 도구를 쓰는 거지? 그런데 왜 나와 생각하는게 다르지? 위爲하여는 뭔가 위태롭고 의依하여는 뭔가 의지가 된다. 그것은 느낌이다. 상하좌우, 고저장단처럼 ‘의위依爲’는 짝지어져 대칭된다. of, by, for는 그냥 안다. of가 깔고 앉은 의자라면 by는 코앞의 모니터이고 for는 출입문쯤 된다. 거리가 다르다. 그래서 ‘국민의’가 앞이다. 감각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 감각도 복제된다. 최초의 근거를 찾는게 중요하다. 최초의 근거를 생각해본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다. 탈레스도 있다. 탈레스는 성급하게 완성된 모형을 제시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조금 더 파고들어가서 논리적 근거를 찾았다. 탈레스는 그냥 직관적으로 찍은 거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접근이 구조론적이다. 그 성과가 3일치법이다. 여기에 근대성의 싹이 있다. 서유기나 수호지는 에피소드가 옴니버스로 이어져서 이야기가 끝도 없이 늘어진다. 복카치오의 데카메론이나 아라비안 나이트도 그렇다. 뭔가 허술하다. 집을 짓되 대문도 없고 마당도 없이 방만 계속 만들어내는 식이다. 제자리서 뱅뱅 돌게 된다. 발전이 없다.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건의 완결성이라는 어떤 본질을 찾아냈다. 그러나 더 발전시키지 못했다. 중요한 힌트를 던져주었을 뿐 꽃을 피우지 못했다. 4원소설은 턱도 없는 이야기다. 자체 완결성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3일치법에서 하나의 사건을 주장했지만 4원소설은 이미 물, 불, 흙, 공기로 4개의 사건이다. 8개나 16개는 안 된다는 근거가 없다. 구조론이 밝히는 우주의 절대근거는 오직 하나이니 그것은 에너지의 방향성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 물, 불, 흙, 공기의 고유한 속성이 우주의 근거다. ◎ 데카르트 = 운동과 그 운동을 내포한 관성이 근거다. ◎ 뉴턴 = 운동을 연출하는 절대시공이 근거다. ◎ 아인슈타인 = 관측자와의 관계가 근거다. ◎ 구조론 = 에너지의 방향성이 근거다. 존재가 사유의 근거다. 그것이 존재하므로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가 뭐지? 존재는 인간이 지목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관측자의 관점이다. 관측자가 개입하면 오류다. 존재의 이면에 사건이 있다. 사건이 근거다.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에너지다. 에너지가 최종근거다.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다. 에너지의 방향성이 근거다. 더 이상은 없다. 왜? 근거를 찾는다는 것은 통제가능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통제된 것은 질서, 통제되지 않는 것은 무질서다. 무질서이나 질서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이 에너지다. 에너지의 방향성을 통제하여 무질서를 질서로 전환한다. 어떤 둘이 엮여 있으면 모순이므로 방향성이 생긴다. 곧 사건이 격발된다. 관성계가 만들어지면 곧 존재다. 거기서 관측자와의 관계가 생긴다. 시공간은 관측자와의 관계를 객관화 한다. 탈레스는 물을 말했다. 사실은 에너지를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에너지의 성질을 물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이지 탈레스는 물의 성질로 비유하여 표현될 수 있는 어떤 미지의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이 한 방향으로 흐르듯이 에너지는 일정한 조건에서 방향을 만들어낸다. 물의 수압이 일정하게 걸리듯이 계를 만들어낸다. 공간은 크기가 있고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방향이 있다. 최종근거는 시공간보다 더 먼저여야 한다. 방향이 정해지면 안 되고 방향을 만들어내는 그것이어야 한다. TPO(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라는 것이 있다. 면접을 보든 데이트를 하든 이 세 가지를 고려하여 거기에 맞는 옷을 입고 나가야 한다. 일본에서 많이 쓰는 말인 듯 하다. “TPO란 원래 경찰이 사용하는 보고서 작성요령으로, 사건기록의 중요한 3요소인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꽤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단어다.[검색]” 시간과 장소는 원래 있고 거기에 존재가 아파트분양권을 얻어서 입주해 있는게 아니라 사건이 발생하려면 에너지가 작동해야 하고 에너지 작동의 결과로 공간과 시간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다. 존재가 그냥 우두커니 있는 것은 인간의 관측이고 사실은 각운동량을 보존하고 있다. 내부에서 활발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 구조론 이해의 첫걸음은 객관화 하는 것이다. 관측자를 배제해야 한다. 달고 쓰고 맵고 짜고 이런건 관측자가 개입한 바 가짜다. 존재라는 것도 역시 관측자에 대해 존재하는 것이다. 관측자와 관측대상 둘이 계를 형성한다는건 아인슈타인의 갈파다. ‘나를 비워라. 나를 내려놓아라.’ 이런건 스님들이 노상 하는 말이지만 실천하기가 어렵다. 나를 배제하면 주어가 실종되어 말을 하기가 어렵다. 그때는 미지수 X를 도입하면 되는데 그게 훈련되어 있지 않다. 계系 혹은 장場이라고 해도 되는데 한국말은 두 글자가 보통이라 익숙하지 않다. 인간의 맞은 편에 존재가 있다. 존재는 갖추어져 있다. 갖추어져 있는 것은 그대로 있다. 우리가 노려야 하는 것은 변화다. 농성하는 적군을 요격하려면 성 밖으로 유인하여 끌어내야 한다. 존재 속에 숨은 물질의 내적 질서를 끌어내는 방법은 사건에 올려태우는 것이다. 관측자의 개입이다. 관측자를 배제하고 온전히 존재 내부에서 어떤 질서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질서가 아니면 무질서다. 무질서는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무질서에서 질서로 바뀌는 순간을 노려야 한다. 척력에서 인력으로 전환되는 지점이 길목이다. 거기에 포착해야 할 에너지의 방향성이 있다. 양자역학 역시 에너지의 방향성으로 설명한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구조론이 그러니깐. 필자가 양자역학을 연구해서 알아낸게 아니다. 방향을 만들려면 최소 두 개의 지점을 설정해야 한다. 점을 한 개 찍으면 방향이 없다.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왼쪽도 없고 오른쪽도 없다. 그래서 둘이다. 움직이는 두 개의 방향 →←이 엮여 互자 모양을 이룬 것이 구조론의 모형이다. 우리는 운동을 →로 이해하지만 이런 운동은 없다는게 필자가 17살 때 알아채서 스스로 깨달음을 선언한 근거다. 우주 안에 A에서 B로 가는건 없다. 모든 운동은 →←며 互에 가깝다. 위치가 없다는 말이다. 위치가 생기면 크기가 생기고 크기가 생기면 무한대가 생겨서 골치아파진다. 무한대는 플러스인데 구조론은 마이너스이므로 일단 배제한다. 즉 통제가능성이다. 광속이 무한하다면 질량도 무한대가 되어서 곤란해진다. 발산하는 것이다. 통제가 안 된다는 말이다. 통제된다는 전제를 깐다. 왜? 어쨌든 우리가 눈으로 보는 우주는 존재하고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거기에 얌전히 있다는 말이다. 즉 통제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에너지는 통제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즉 ←→이면 안 되는 거다. 우주는 ←→일까 아니면 →←일까? 둘 중에서 결론을 내려야 했다. →←다. 우리는 입자에 기대를 건다. 어떤 위치가 있다는 거다. 존재는 특정한 시공간적 위치에 있다. 그러면 곤란해진다. 무한대의 압박을 피할 수 없다. 전자는 공간적 위치를 찾을 수 없다. 그게 있으면 안 된다. 우주는 입자의 집합이 아니다. 애초에 집합이 아니다. 구조론은 복제가 집합을 대신한다. 우주는 →←이며 정확히는 무질서 ←→에서 사건이 격발되면 질서 →←로 바뀐다. ←→는 통제되지 않는 상태이며 무질서 ←→에서 질서 →←로 바꿀 수 있는 상태가 에너지다. 가솔린을 태우면 가스들은 실린더 안에서 ←→로 존재한다. 피스톤을 밀어내면서 →←로 바뀌어야 운동에너지다. 자연계를 구성하는 16가지 소립자들은 모두 →←로 봐야하며 관측하는 순간에 ←→에서 →←로 바뀐다. 어쨌든 초끈이론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양자역학의 성과들이 구조론의 기본설정과 유사하다는 점을 여러분은 쉽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어려울게 없다. 구조론은 원체 간단하니까. 데카르트와 뉴턴은 운동으로 죄다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운동으로 설명하려니 절대시공이 필요해졌다. 그걸 있다고 치고 계산해보니 맞다. 절대시공이 있다고 선언되었다. 근데 빛의 성질이 입자와 파동 두 가지를 겸하니 곤란해졌다. 아인슈타인이 관측자의 개입을 들이대서 이를 파훼했다. 구조론은 원래부터 관측자를 배제하고 시작한다. 그건 당연히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위하여니깐. 빨간 것을 보고 빨갛다고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건 파란 것과 비교된 거니깐. 비교해서 말하면 안 된다. 상대어는 곤란하고 절대어로 말해야 한다. 빨간색을 연출하는 내적 질서는? 가시광선의 파장이 있다. 뭐든 내부에 자체질서가 있다. 물리학자들이 전자를 입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부질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자를 붙잡아서 망치로 깨뜨리면 뭔가 부스러기라도 나온다는 식이다. 우주에는 오직 에너지의 방향성이 있을 뿐이다. 확신방향이냐 수렴방향이냐다. 이런거 꼬맹이때 당연히 생각해봤어야 한다. 구조론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런 것을 소싯적에 생각해보지 않은 거다. '선과 악이라는 것은 도대체 뭘 근거로 그따위 수작을 하는 거지?' 집단의 방향성이 근거가 된다. 근데 집단의 방향성이 있는거 맞어? 내가 집단의 일원인게 맞어? 만약 집단의 방향성이 있는게 맞다면 진보해야 한다는 이야긴데 과연 세상이 진보하는게 맞어? 이런 생각을 해봤냐다. 그런거 없이 그냥 착한게 선이고 나쁜게 악이라는 식이면 곤란하다. 착한건 뭐고 나쁜건 뭔데? 결국 자기 감정을 근거로 자기소개 하는 거다. 감옥에 있는 폭력배들은 대부분 '맞을 짓을 했다'고 상대방 탓을 한다. 왜? 나를 화나게 했으니깐. 진짜로 내가 화가 났다니깐. 화라는 감정이 근거다. 그런건 인정되지 않습니다. 누가 화내랬냐고. 화를 내면 안 된다. 집단이 존재하고 그 집단은 진보하는 집단이며 내가 그 집단의 일원이고 집단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할 때 관성의 법칙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 집단의 방향성을 따라가는 것이 선이고 역주행은 악이다.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이 걸려있다. 그냥 선이다 악이다 하는건 말도 안 되는 수작이다. ### 질문 및 제안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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