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의 특수성 구조론연구소는 특별하다. 독자에게 아부하는 여느 사이트처럼 여기면 안 된다. 이런 지식 가르쳐 주는데 없다. 여기 뿐이다. 사실이지 이런 지식이 필요없는 사람이 99퍼센트다. 소수지만 필요하고 또 본인이 도움받았다고 말씀해주시는 분이 있으니까 계속 가는 거다. 이 사이트의 방문자는 두 부류다. 하나는 구조론을 진지하게 배우겠다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지나가는 길에 한 번씩 들러서 여기는 또 어쩌고 있는지 지켜보겠다는 사람이다. 전자는 소수고 후자가 절대 다수다. 서로 입장이 달라 코드가 맞지 않으니 어색함이 있다. 충돌하면 누가 나가야 하나? 후자가 나가야 한다. 그래서 ‘연구소’라고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다. 연구하는 분위기 깨지말라는 말이다. 목에 힘주는 ‘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여놓았으면 ‘아 뜨내기는 나라가는 말이구나.’ 하고 알아들으면 된다. 장사꾼이 가게를 해도 그렇다. 사지도 않을 사람이 집적거리면 싫어한다. 구경은 해도 괜찮지만 멀찍이 떨어져서 눈팅만 하는게 맞다. 정치이야기나 잡담은 해도 되지만 구조론과 관련해서는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게 이해가 안 되는 분은 영화 위플래쉬를 보고 오면 된다. 절대 안 가르쳐 준다.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쳐 준다고? 천만의 말씀! 팬다. 스승은 광기를 숨기고 있는 자원을 발굴하려고 한다.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동한다. 그리고 걸러낸다. 대략 쫓아낸다. 최후까지 남아서 따라오는 자가 있는지를 본다. 문턱을 넘는건 제자가 스스로 해내야 한다. 조훈현이 이창호에게 뭘 가르쳤다고 믿는 사람은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다. 조훈현은 일본에서 배워온 모든 꼼수를 동원하여 치사하게도 이창호를 눌렀다. 그랬기 때문에 늘 반집을 이기다가 어느 순간부터 늘 반집을 지게 되었다. 조훈현의 수법이 죄다 간파된 것이다. 이곳은 구조론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단지 내면에 광기를 감추고 있는 사람이 출현할 확률을 높이고, 아닌 사람을 솎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구조론을 배울 생각이 없는 사람이 발언을 신청하면 분위기 어색해진다. 하긴 배우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잖은가? 그런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발언권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정치이야기를 하므로 또 오해하여 정치적으로 동지니까 구조론의 동지라고 착각하고 선을 넘어버리는 수가 있다. 미묘해지는 것이다. 눈치로 알아들을 일이다. 정치 이야기는 구조론에 감염될 확률을 담보하는 장치일 뿐 이곳은 절대적으로 구조론이 중요하다. 구조론에 감염되거나 그냥 지나쳐 가거나다. 감염되지 않은 분은 동지가 아니다. 노빠이기만 하면 여기서 발언권이 있는건 아니다. 하여간 여러 이유로 오해할 수 있다. 그걸 공지로 써붙이기도 이상하고 말이다. 관심없으면 오지말라고 하는 수 밖에 없다. 작품을 아끼는 입장에서는 작품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손대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없다. 직접 쪽지나 메일을 보내오는 분은 관심있는 사람이 맞다. 제 3자에게 묻는 사람은 관심없다. 내한테 물어야 할 것을 불특정 제 3자에게 물으면 아 저 사람은 피곤한 사람이구나 좀 가버렸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질문하면 제자포지션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왜 니 제자냐? 이런 생각을 가지는게 당연하다. 그래서 서로 어색하고 제발 오지 말라는 거다. 어차피 가르쳐주지 않는다.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 감염되면 동지고 감염되지 않으면 뜨내기다. 뜨내기는 나가는게 맞다. 동지면 칼 들어간다. 왜 칼이 들어가는 지는 영화 위플래쉬를 보면 된다. 심벌즈가 목을 향해 날아간다. 어쨌든 영화는 그럴듯한 해피엔딩이다.
플래처선생은 앤드류를 제자가 아니라 적으로 대접합니다. 그게 맞는 대접입니다. 조훈현은 이창호를 경쟁자로 생각합니다. 그게 대접해주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사가 그러면 당연히 안 되겠지만. 플래처 선생은 초딩이 아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