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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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8816 vote 0 2010.02.25 (21:23:05)

 

“김연아 단상”

‘우리도 이제 수준 좀 높이자’

 

얼마전 이창호가 고등학교 2학년인 한국기원 연구생과 대국하다가 96수 만에 돌을 던진 일이 있다. 왜 그렇게 빨리 돌을 던졌을까? 던지지 않고 끝까지 두었으면 몇 점 차이가 났을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각설하고, 노컷뉴스 장정구 챔피언 인터뷰를 인용한다. ▶ 양병삼 PD.. ‘당시에 어떤 선수가 가장 어려웠었나요?’

 

▶ 장정구 전 세계챔피언.. ‘선수가 힘들다기보다는 연습 과정이 힘든 거죠. 연습 과정을 베스트로 마쳤다면 올라가면 걱정이 없습니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근데 운동을 못하고 올라간다고 하면 링 위에 올라간다는 자체가 부담스럽죠. 어떤 선수를 지목하기보다는 과정이 힘들죠.’

 

챔피언 다운 대답이다. 경험해 본 사람만 아는 거! 느껴지는 것이 있다. 요 며칠 언론에 보도되기를 김연아의 가장 큰 적은 ‘부담감’이라고 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부담감 느낀다면 연습부족이다.

 

연습이 부족하면 별게 다 신경쓰인다. 충분히 연습했다면 언론도, 관중도, 심판도, 라이벌도 신경 끊다. 고수들이나 아는 경지가 있다. 장정구 선수는 김연아 마음 알거다. 고수니까. 그래서 통한다.  

 

어제 있었던 쇼트 프로그램은 다들 큰 실수 없이 잘했다. 대체로 높은 점수가 나왔다. 다들 동계올림픽에 집중해 온 것이다. 심판들이 점수를 잘 준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기량이 상승한 걸로 본다.

 

몬트리올 올림픽 때 체조요정 코마네치가 처음으로 10점 만점을 받았다. 이후 세계대회에서 점수인플레가 일어났다. 너도나도 10점 만점을 받아 변별력이 떨어져버린 것이다. 주최측이 곤란해졌다.

 

심판들의 오심일까? 코마네치에게 10점 만점을 주다보니 비슷하게 연기한 모든 선수에게 만점을 줄 수 밖에 없게 된 걸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코마네치의 완벽한 연기가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코마네치에 의해 완벽한 정답이 나왔고, 정확한 교범이 나왔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들 알게 되어서 전체적으로 기량이 상승한 것이다. 심판이 특별히 점수를 후하게 준 것이 아니다.

 

물론 약간은 후하게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본질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기량이 상승하는 수가 있다. 이 경우는 아예 채점기준을 바꾸는 수 밖에 없다. 이와 유사한 예는 흔히 있다.

 

한 두 사람이 잘 하면 서로 영향을 받아서 전반적으로 상승한다. 김연아가 ‘피겨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고 완벽한 모범을 보이니 교범 역할이 되어 다들 기량이 고르게 상승했을 수도 있다.

 

###

 

이창호가 아마추어에게 패한 것은 시합의 질이 낮았기 때문이다. 이창호가 적을 가볍게 보고 실수를 범한 것이다. 이는 한 두 사람이 잘 하면 전반적으로 잘하는 효과와 정반대로 된 경우다.

 

하수와 두다 보니 헛짓을 하게 된 것이다. 축구도 그렇다. 허정무호가 일본과 시합을 계속하면 실력이 퇴보한다. 일본 스타일에 맞추어진다. 지더라도 유럽 강팀과 붙어야 수준이 올라간다.

 

박지성, 박주영, 이청룡이 잘하는 것도 그렇다. 구조론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늘 그렇듯이 특정 포지션에서 막힌다. 뛰어난 누군가가 앞에서 길을 뚫어주면 뒤에 오는 사람은 쉽게 올라간다.

 

전쟁도 그렇다. 초반에는 한 명의 장수가 전장을 휘젓지만 뒤로 갈수록 대군이 지루하게 대치한다. 처음에는 하수와 고수가 뒤섞여 승부가 우연에 지배된다. 날이 갈수록 우연성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든다.

 

점차 제갈량과 사마의 같은 고수끼리의 두뇌싸움으로 변한다. 이때는 하수도 고수처럼 변한다. 한니발도 처음에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나중에는 스키피오를 만나서 고전했다.

 

스키피오가 타고난 명장은 아니다. 천재가 아니다. 다 한니발에게서 배운 것이다. 전쟁의 양상 자체가 변해간다. 대치상태가 길어지면서 상대방의 장단점이 두루 파악된 거다. 판이 미세하게 변한다.

 

권율 장군도 초반에는 용인에서 일본군에게 대패한 오합지졸을 맡아서 방어전 위주의 신중한 싸움을 했다. 이순신 장군은 다르다. 제갈량, 한니발,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타고난 천재다.

 

적진에 뛰어들어 이기는 싸움을 한다. 권율 장군은 학습능력이 있어서 사마의, 스키피오, 웰링턴과 마찬가지로 지지않는 싸움을 한 것이다. 이 경우 조급해진 적이 무리한 공격을 하다가 자멸한다.

 

● 공격형의 타고난 천재 - 한니발, 이순신, 나폴레옹, 제갈량.

● 수비형의 학습된 고수 - 스키피오, 권율, 웰링턴, 사마의.

 

이렇게 양상이 변하면 작은 차이가 큰 차이로 벌어진다. 반집승부로 가는데 그 반집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점수차가 반집이면 그 반집차는 줄어들지 않는다.(5점이면 큰 점수차지만 이를테면.)

 

게임의 양상이 고수바둑으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변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소문난 잔치가 되어버려서 ‘행운의 주워먹기’는 기대할 수 없다. 권투시합이라도 초반 1, 2라운드에는 슬립다운이 잘 나온다.

 

그러나 10라운드 넘어가면 어지간히 맞아도 다운이 안 된다. 초반에는 우연에 의한 승부결정이 흔히 있지만, 10라운드 넘어가면 오지게 걸린 럭키펀치 한 방은 그만 포기해야 한다.

 

홍수환이 2회에 네 번이나 다운된 것도 초반에 몸이 덜 풀렸기 때문이다. 3회에 카라스키야를 KO 시켰다. 정치도 그렇다. ‘한 방에 보낸다’고 폭로전을 하는데 초반에는 먹히지만 막판에는 역풍 분다.

 

물론 시합은 해봐야 아는 거지만 구조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러한 점이 포착된다. 내일 있을 프리 스케이팅은 전반적으로 고수대 고수의 미세한 대결로 가는 흐름이다. 판이 무르익어서 그렇게 되었다.

 

소문난 잔치가 되어서 반집차라도 절대 좁혀지지 않는 탄탄한 반집차가 된다. 언론이 ‘부담감이 김연아의 적’ 운운하는건 전형적으로 ‘하수의 보는 눈’이라 여겨진다. 전혀 그렇지 않다.

 

큰 시합, 충분한 연습, 무르익은 분위기, 다들 최선을 다하는 경기가 되면 ‘포지션 경쟁’에서 승부가 나버린다. 이 경우 우연이나 기적, 행운은 바랄 수 없다. 이미 소문난 잔치가 되었다.

 

포지션은 이미 김연아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김연아는 모험할 필요없고 안전한 운영만 해도 이긴다. 부담감 따위 하수들의 번뇌는 초월하고 있다. 고수의 세계를 몰라봐도 유분수지.

 

###

 

신해철이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이 낮다’고 말해서 화제가 되었나보다. 함께 대담한 김구라는 그 말을 듣고 ‘120만 악플’을 예상했는데 그럴거 같지는 않다. 찌라시 언론이 ‘폭탄발언’ 운운하며 분위기 띄우려 안간힘을 쓰지만 실패다.

 

한국의 음악팬들이 갑자기 신해철에게 관대해졌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발언에 발끈한다면 열등감 표출이다. 김연아가 우리에게 준 커다란 자부심이 그런 유치한 열등감을 날려버렸다.

 

사실 ‘수준이 낮다’는 식의 발언은 수준이 높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신해철 너는 수준이 높냐’고 반박할 만 하다.

 

무엇인가? 필자의 말하려는 요지는.. 사람들이 그런 시큰둥하게 흘려넘길 말에 발끈해서 화를 낸다면 수준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답이 없기 때문이다. 답이 없는 문제를 내주면 화를 내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한국사람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 국민은 받아들인다. 왜?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길을 열어놓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중요한건 비판했느냐가 아니라 길이 있느냐다.

 

각설하고.. 수준을 높인다는 무엇일까? 김연아만 해도 그렇다. 승부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최고레벨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보면 다들 승부에 집착해 있다.

 

그런 것이 그 사람들의 눈에 보인 것이다. 왜 그게 보이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아는게 없으니 엉뚱한게 보인다. 최고의 경기를 감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완전성에 대한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영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승부 따위를 생각했다면 실패다. 거기서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나? 눈을 감고 보나? 눈을 뜨고 보자는 거다.

 

승부에나 집착하는 사람은 열등감의 보상을 원한다. 그래서 열등감이 치유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한국인은 식민지, 분단으로 상처입었으니까. 일본 욕하는 악플러들도 내가 보기엔 귀엽다.

 

2ch에서 떠드는 일본 네티즌도 귀엽다. 섬나라에 갇혀서 길이 보이지 않으니 그렇게라도 울분을 터뜨리는 거다. 니들은 그렇게 살어라. 그래서 상처가 치료 된다면! 그러나 계속 그러고 있다면 답답한 거다.

 

진도 나가주자. PGA라면 타이거 우즈 혼자 먹여살린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사람들이 승부에 대한 관심보다, 최고레벨의 경기를 보는 쪽으로 관심이 옮겨간다. 이기고 지는게 문제는 아니다.

 

올림픽 메달에 열광하는건 한국인이고, 서구인들은 월드컵을 윗길로 친다. 월드컵 결승에 열광하는건 한국인이고, 아는 사람들은 EPL 시합에 더 관심을 가진다. 최고레벨의 경기가 과연 월드컵 결승전일까?

 

미국이라면 뉴욕 양키즈, 일본이라면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 팀으로 팬들의 쏠림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그렇다. 승부관점을 버리고 최고선수의 최고시합을 감상하는 쪽으로 관심이 변하기 때문이다.

 

이기고 지는건 저급한 흥미다. 챔피언의 기량, 그 자체로 예술이다. 챔피언 보디. 몸매만 봐도 감이 느껴진다. 이치로가 팀동료 중에서 체지방이 가장 낮다던데 국적을 떠나서 그 인간은 눈매만 봐도 뭔가 느껴진다.

 

장미란은 가만이 서 있어도 그 살아온 인생역정이 파노라마처럼 상영된다. 그게 후광이다. 유식한 말로 '아우라'다. 챔피언 보디의 아우라. 김연아에게도 그런게 있다. 젖살이 덜 빠진 아사다 마오와 다르다.

 

‘최고의 경지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알아챘을 때 우리는 영감을 얻는다. 아이디어를 얻는다. 영혼의 자산이 축적된다. 사람 알아보는 안목을 얻는다. 그 눈을 얻었을 때 쥐와 사람을 분간할 수 있게 된다.

 

그 좋은걸 놔두고 시시하게 승부 따위, 메달 숫자 따위에 집착한다면 바보 아닌가? 물론 메달은 많을수록 좋고 승부는 이길수록 좋다. 그것도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 안주에 막걸리 잘도 넘어간다.

 

그러나 고수가 보여주는 최고의 경지가 3시간 대화거리면 한일간의 성적경쟁은 3분대화거리다. 좋은 연기 보고 에밀레종의 맥놀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여운을 즐기는데 시시한 잡음 넣지 말자.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10.02.25 (22:29:33)

낮엔 지나다 서서 보았소.
밤에 집에서 쪼그리고 보았소.
온몸에 소름이 돋아 앉을 수 없었소.

끝 없이 이어지는 울림.
참 좋았소.

[레벨:2]육각수

2010.02.25 (23:10:53)

잘 봤습니다.
고수는 즐긴다.고수가 하는것도 즐기자.
요렇게 정리 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상우

2010.02.27 (05:45:13)

완전성.
답 나왔네...

[레벨:1]꼬고랑

2010.02.27 (13:05:11)

잔인한 박진영이 결국 한사람을 사회에서 죽이더군요..

사악한 박진영이...

프로필 이미지 [레벨:24]꼬치가리

2010.02.28 (21:21:50)

연아의 연기에 넉을 놓고 신간센 역에 운집한 일본인들이 탄성을 지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소.
연신 와~ 와~ 하는 탄성과 감탄의 숨소리.....

김연아 연기를 어떻게 생각하냐니까,
예술이랍디다.
아사다마오도 좋아하지만 일본인들이 김연아를 더 좋아한답디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린지는 몰라도, 그 대답에 뭔가 진정성이 느껴집디다.
아마도,
그동안 동계올림픽을 좌지우지 해왔던 특정집단들에 대한 저항감 내지는
엇비슷한 생김새와 지역적인 연대감의 발로가 아닌가도 싶고....

마지막 대화를 했던 젊은 친구는,
뭔가 한참 덕담을 늘어놓은 것이 어색했던지,
마지막 한마디 한다는 말이,

일본과 한국이 사이가 좋지않은 것은 미국때문이라나....

아마, 토요타 사장이 눈물을 쏟으며 티비에 비친 모습에서
일본 젊은이들이 느끼는 반미 감정의 또 다른 양상같기도 하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3.04 (19:23:19)


김연아이되 이미 예전의 김연아가 아니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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