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길라운드를 앞두고
이겨도 진보하고 져도 진보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자칭 진보주의자 얼뜨기가 있다. 분명히 말한다. 이기면 진보하고 지면 퇴보한다. 참된 진보주의자의 지상명령은 첫 번째도 승리하는 것이고 두 번째도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패배해 왔다. 지자체 선거에 패배하였고 지난 총선에서도 패배하였다. 97년 대선은 산술적 승리를 얻어내긴 했으나 사실상 비긴 것이다. 자민련과의 야합, 이인제의 도우미 역할, 40퍼센트 대통령, 이건 우리의 승리가 아니라 적들의 실패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우리는 단군이래 단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박정희 20년간 우리는 줄곧 패배해 왔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20년간 우리는 줄창 패배해 왔다. 우리가 진보하지 못한 진짜 이유는 늘 패배해왔기 때문이다.
단 한번이라도 승리를 해야 역사의 물꼬를 바꿀 수 있다. 진보는 오로지 투쟁과 그 투쟁에서의 승리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투쟁하지 않고 승리하지 않고 진보는 없다. 결단코 없다.
늘 그렇듯이 진보는 분열해서 망한다. 권영길의 출마는 그 자체로서 진보의 분열을 의미한다. 분열한 만큼 우리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 이번 선거도 반은 지고 들어가는 선거다. 권영길과 분열하였고 정몽준에게 삥을 뜯겼으며 동교동 혹을 떼지도 못했다.
노무현이 승리한다 해도 우리의 완전한 승리는 아니다. 다만 작은 하나의 기세를 얻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패배해 왔기 때문에 그 기세 하나가 소중한 것이다. 노무현이 승리한다고 우리의 세상이 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큰소리 치고 살 수는 있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에 이기는 것이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며, 조선일보에 이기지 못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승리가 아니다. 조선일보에 이긴다는 것은 조선일보가 낙점한 사람이 당선되지 못하게 하므로서, 조선일보의 정치적 영향력을 무력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무현의 당선은 조선일보의 무력화를 의미하며 그것이 곧 우리의 승리다. 무슨 당파성이 어떻고 하는 논의는 한가한 자의 문자유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조선일보의 손아귀에 숨통을 틀어쥐인 우리가 기어이 조선일보의 영향력을 깨부시고, 우리의 목에 감긴 올가미를 풀어내는데 성공하느냐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20년 전 선우휘의 독화살에 심장을 맞고]
조선일보 깨뜨리기를 내 일생의 큰 과업으로 여기게 된 것은 20년전 어느날 아침에 그 빌어먹을 선우휘칼럼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간략히 옮기자면, 전두환 찬양이 위주인 선우휘의 수요칼럼을 읽고 오장육부가 뒤틀려서 아침밥을 못 삼키겠다는 사람은 제발 부탁이니 신문사로 항의전화 좀 하지말고 조선일보를 구독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이건 독자에 대한 노골적인 선전포고다. 나는 그 시점까지 조선일보 독자였다. 조선일보를 입고 커다란 내상을 입었다. 그러므로 나는 조선일보에 항의할 권리가 있다. 조선일보가 우리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는 한 우리에게 육체의 자유는 있어도 정신의 자유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할 말이 있어도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주눅들어서 눈치를 살펴야 했다. 우리는 기어이 노예의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 조선일보가 만들어 놓은 무형의 감옥 안에 우리는 갇혀 버렸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난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 모인 1만개의 촛불은 도무지 무엇이란 말인가? 내나라 내 땅에서 주눅들어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니 그 쌓인 것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도 쉬지 못할 지경이 되었기로, 아무도 조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광화문네거리에 그 많은 인파가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모인 것이 아닌가?
다른거 아니다. 내 나라 내 땅에서 숨이나 크게 쉬고 말이나 마음대로 하며 살자는 것이다. 정신의 자유를 얻자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고작 그 정도가 이다지도 어려워야 한다는 말인가?
[권영길의 먹을 수 있는 감]
"鄭대표의 측근은 "盧후보가 자체 여론조사에서 이회창(李會昌)후보를 10%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자 자력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중앙일보 기사 인용)"
중앙일보가 노무현이 10프로 이상 앞서있다는 사실을 간접 보도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지지자의 결집을 방해하고 정몽준을 절망하게 해서 우회적으로 노무현진영에 타격을 가하려는 고도의 술책일 수도 있다.
항상 그렇듯이 진보는 분열해서 망한다. 자만은 분열과 해이의 원인이 된다. 노무현은 절대로 앞서 있지 않다. 오늘은 권영길의 라운드가 될듯하다. 권영길은 신중해야 하고 노무현지지자들은 긴장해야 한다.
권영길 지지자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안된다. 먹을 수 있는 감이므로 조심스레 협력해야한다.
권영길이 완주 한다면 역사 앞에서 큰 죄를 짓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권영길의 출마를 방해할 이유는 없다. 권영길과 단일화를 해서 득이 된다는 근거도 없다. 노무현은 자력으로 승리해야 한다. 권영길은 출마할 권리가 있고 그 지지자는 지지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역사 앞에서는 유죄이다. 권영길의 출마할 권리는 이회창의 출마할 권리와 같은 것이며, 권영길 지지자의 지지할 권리는 이회창 지지자의 지지할 권리와 같은 것의 의미이다.
물론 이회창도 출마할 권리가 있고 그 지지자는 지지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이는 정치논리에 불과하다. 역사의 이름으로 말하면 이회창은 출마 자체가 유죄이다. 이회창지지자는 역사 앞에서 죄인이다.
전두환에게 투표한 사람은 유죄이다. 87년 노태우가 출마한 대선에 투표한 김대중, 김영삼 지지자도 유죄이다. 92년 김영삼에 투표한 사람도 유죄이며 92년에 김대중에게 투표한 사람도 유죄이다. 그 때는 선거자체를 거부했어야 했다.
역사의 의미로 논하자면 그러하다. 물론 역사로 보는 관점이 유일한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다. 역사 앞에서 그들은 명백히 유죄이다. 그 순간 그들은 역사의 편에 서지 않았고 진리의 편에 서지 않았다.
이겨도 진보하고 져도 진보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자칭 진보주의자 얼뜨기가 있다. 분명히 말한다. 이기면 진보하고 지면 퇴보한다. 참된 진보주의자의 지상명령은 첫 번째도 승리하는 것이고 두 번째도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패배해 왔다. 지자체 선거에 패배하였고 지난 총선에서도 패배하였다. 97년 대선은 산술적 승리를 얻어내긴 했으나 사실상 비긴 것이다. 자민련과의 야합, 이인제의 도우미 역할, 40퍼센트 대통령, 이건 우리의 승리가 아니라 적들의 실패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우리는 단군이래 단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박정희 20년간 우리는 줄곧 패배해 왔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20년간 우리는 줄창 패배해 왔다. 우리가 진보하지 못한 진짜 이유는 늘 패배해왔기 때문이다.
단 한번이라도 승리를 해야 역사의 물꼬를 바꿀 수 있다. 진보는 오로지 투쟁과 그 투쟁에서의 승리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투쟁하지 않고 승리하지 않고 진보는 없다. 결단코 없다.
늘 그렇듯이 진보는 분열해서 망한다. 권영길의 출마는 그 자체로서 진보의 분열을 의미한다. 분열한 만큼 우리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 이번 선거도 반은 지고 들어가는 선거다. 권영길과 분열하였고 정몽준에게 삥을 뜯겼으며 동교동 혹을 떼지도 못했다.
노무현이 승리한다 해도 우리의 완전한 승리는 아니다. 다만 작은 하나의 기세를 얻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패배해 왔기 때문에 그 기세 하나가 소중한 것이다. 노무현이 승리한다고 우리의 세상이 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큰소리 치고 살 수는 있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에 이기는 것이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며, 조선일보에 이기지 못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승리가 아니다. 조선일보에 이긴다는 것은 조선일보가 낙점한 사람이 당선되지 못하게 하므로서, 조선일보의 정치적 영향력을 무력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무현의 당선은 조선일보의 무력화를 의미하며 그것이 곧 우리의 승리다. 무슨 당파성이 어떻고 하는 논의는 한가한 자의 문자유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조선일보의 손아귀에 숨통을 틀어쥐인 우리가 기어이 조선일보의 영향력을 깨부시고, 우리의 목에 감긴 올가미를 풀어내는데 성공하느냐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20년 전 선우휘의 독화살에 심장을 맞고]
조선일보 깨뜨리기를 내 일생의 큰 과업으로 여기게 된 것은 20년전 어느날 아침에 그 빌어먹을 선우휘칼럼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간략히 옮기자면, 전두환 찬양이 위주인 선우휘의 수요칼럼을 읽고 오장육부가 뒤틀려서 아침밥을 못 삼키겠다는 사람은 제발 부탁이니 신문사로 항의전화 좀 하지말고 조선일보를 구독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이건 독자에 대한 노골적인 선전포고다. 나는 그 시점까지 조선일보 독자였다. 조선일보를 입고 커다란 내상을 입었다. 그러므로 나는 조선일보에 항의할 권리가 있다. 조선일보가 우리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는 한 우리에게 육체의 자유는 있어도 정신의 자유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할 말이 있어도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주눅들어서 눈치를 살펴야 했다. 우리는 기어이 노예의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 조선일보가 만들어 놓은 무형의 감옥 안에 우리는 갇혀 버렸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난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 모인 1만개의 촛불은 도무지 무엇이란 말인가? 내나라 내 땅에서 주눅들어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니 그 쌓인 것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도 쉬지 못할 지경이 되었기로, 아무도 조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광화문네거리에 그 많은 인파가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모인 것이 아닌가?
다른거 아니다. 내 나라 내 땅에서 숨이나 크게 쉬고 말이나 마음대로 하며 살자는 것이다. 정신의 자유를 얻자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고작 그 정도가 이다지도 어려워야 한다는 말인가?
[권영길의 먹을 수 있는 감]
"鄭대표의 측근은 "盧후보가 자체 여론조사에서 이회창(李會昌)후보를 10%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자 자력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중앙일보 기사 인용)"
중앙일보가 노무현이 10프로 이상 앞서있다는 사실을 간접 보도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지지자의 결집을 방해하고 정몽준을 절망하게 해서 우회적으로 노무현진영에 타격을 가하려는 고도의 술책일 수도 있다.
항상 그렇듯이 진보는 분열해서 망한다. 자만은 분열과 해이의 원인이 된다. 노무현은 절대로 앞서 있지 않다. 오늘은 권영길의 라운드가 될듯하다. 권영길은 신중해야 하고 노무현지지자들은 긴장해야 한다.
권영길 지지자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안된다. 먹을 수 있는 감이므로 조심스레 협력해야한다.
권영길이 완주 한다면 역사 앞에서 큰 죄를 짓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권영길의 출마를 방해할 이유는 없다. 권영길과 단일화를 해서 득이 된다는 근거도 없다. 노무현은 자력으로 승리해야 한다. 권영길은 출마할 권리가 있고 그 지지자는 지지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역사 앞에서는 유죄이다. 권영길의 출마할 권리는 이회창의 출마할 권리와 같은 것이며, 권영길 지지자의 지지할 권리는 이회창 지지자의 지지할 권리와 같은 것의 의미이다.
물론 이회창도 출마할 권리가 있고 그 지지자는 지지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이는 정치논리에 불과하다. 역사의 이름으로 말하면 이회창은 출마 자체가 유죄이다. 이회창지지자는 역사 앞에서 죄인이다.
전두환에게 투표한 사람은 유죄이다. 87년 노태우가 출마한 대선에 투표한 김대중, 김영삼 지지자도 유죄이다. 92년 김영삼에 투표한 사람도 유죄이며 92년에 김대중에게 투표한 사람도 유죄이다. 그 때는 선거자체를 거부했어야 했다.
역사의 의미로 논하자면 그러하다. 물론 역사로 보는 관점이 유일한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다. 역사 앞에서 그들은 명백히 유죄이다. 그 순간 그들은 역사의 편에 서지 않았고 진리의 편에 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