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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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547 vote 0 2008.12.30 (23:02:36)

 

창세기와 출애굽기

세상의 모습이 비록 다양하다고는 하나 이를 하나의 그릇에 담아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일’로 되어 있다. 세상을 한 줄에 꿰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기준으로 일관되게 설명하고자 한다면 그 하나는 일이어야 한다.

일은 질서로 풀어낼 수 있다. 질서는 일의 진행과정을 보여준다. 일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부단히 일하여 나아가므로 그 안에 순서와 방향의 질서가 있다. 자연은 질서가 있어서 자연스럽다.

인간은 자연을 관찰하여 일의 질서를 알아낸다. 학문은 자연의 질서를 본받아 개인의 삶에 질서를 부여한다. 나아가 지구촌 인류 공동체 전체에 질서를 부여한다. 자연에서 개인을 거쳐 사회로 전개하기다.

두 가지 모습이 있다. 하나는 힘이고 하나는 미(美)다. 곧 에너지와 정보다. 물리력과 매력이다. 자연의 완성된 질서에서 강한 힘이 유도된다. 그 완성을 찾아가는 인간의 가치에서 미가 실현된다.

● 질서-자연의 완성된 모습 ≫ 가치-완성을 찾는 인간의 판단.

힘은 완성된 질서를 풀어내고 미는 해체된 질서를 복원한다. 학문은 질서와 가치를 추구한다. 이에 학문을 역학(力學)과 미학(美學)으로 나눌 수 있다. 역학은 과학이고 미학은 양식학이다. 양식은 소통의 양식이다.

발상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연역과 귀납이다. 논리학과 수학은 고도의 추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연역추론에 가깝다. 반면 지리학이나 역사학은 경험을 위주로 하는바 관찰과 통계의 귀납추론에 가깝다.

서구의 근대과학이 발달한 배경에는 논리학과 수학이 자리하고 있다. 반면 동양이 낙후한 배경에는 논리학과 수학의 부재가 있다. 물론 동양에도 논리학과 수학이 맹아단계로는 있었지만 부각되지 못했다.

학문은 먼저 순수추상의 토대를 갖추고 난 다음에 실용적인 인간화의 응용과정을 거쳐 발달하게 되어 있다. 먼저 클래식한 고전형이 완성되어야 한다. 플라톤적인 이데아의 원형이 찾아져야 한다.

비전과 이상의 동그라미가 완성되었을 때 이를 현실에 접목하여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러 학문이 보다 대중화 되고 일반화 된다. 순수학문에서 응용학문으로 나아가기다.

이데아의 원형이 찾아졌을 때 학문은 폐쇄적인 소그룹 내에서의 질적인 깊이 경쟁에서 벗어나 대외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인간의 삶 속으로 침투한다. 이 과정에서 물량 위주의 대량복제 체제로 변환된다.

학문은 순수에서 응용으로, 추상에서 구상으로, 일원에서 다원으로, 원형에서 변형으로, 신(神)에서 인간으로, 도그마에서 삶으로, 고전에서 대중으로 나아간다. 이는 하늘의 진리가 지상의 인간에게로 옮아가는 과정이다.

학문은 필요에 의해 발명되지 않는다. 순수한 발견 다음에 필요를 찾아 응용된다. 순수하게 전기를 발견한 다음 전자제품의 편리를 발명하고 순수하게 전자계산의 원리를 발견한 다음에 컴퓨터와 인터넷의 편리함을 발명한다.

학문은 순수에서 응용으로 간다. 그런데 동양의 경우 지나치게 인간의 삶에 집중한 나머지 순수학문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공자가 괴력난신을 멀리했을 때 형이상학을 포기한 거다. 공자는 순수를 포기하고 통치술에 천착했다.

반면 서구는 플라톤과 뉴턴에 의해 질적인 도약이 가능했다. 필요에 의해 발명되지 않은 순수학문의 성과다. 그 결과로 순수와 응용, 추상과 구상이 비교적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었다. 동양은 처음부터 그 균형이 깨졌다.

고도의 추상을 필요로 하는 연역추론을 발달시키지 않으면 뉴턴의 고전역학이 연금술의 한계를 극복한 예와 같은 질의 비약을 기대할 수 없다. 이 경우 근대과학으로 나아갈 수 없다.

경험방을 위주로 하는 한의학에서 보듯이 동양적 전통은 이론이 없다. ‘어떻게든 환자를 치료하면 된다.’가 아니라 어떤 원인에 의해 환자가 치료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동양은 합리주의가 아니라 실용주의다.

이론이 없으면 대량복제체제를 구축하지 못한다. 스승이 이룩한 성과를 제자가 재현하지 못한다. 큰 나무가 가지를 치듯이 스승에서 제자로 대를 이어가며 성과가 축적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개를 가능케 하는 것은 이론이며 이론은 순수한 연역추론에 의해 가능하다. 관찰, 수집, 실험, 통계 따위는 보조적인 수단이다. 학문의 근본은 연역추론이며 논리학과 수학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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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이란 무엇인가? 데카르트의 제1원인과 같다. 최초의 출발점을 찍는 것이다. 누군가가 먼저 와서 깃발을 꽂고 중심을 세우기다. 서구는 그것이 있었다. 그러한 발상법이 처음부터 존재하였다.

창세기가 그러하다. 창세기는 연역적인 방법으로 기술되었다.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하듯이 누군가가 작심하고 천지창조를 설계한 것이다. 실험과 관찰에 의한 경험적 귀납이 아니라 인과율에 기초한 논리적 당위를 좇는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말씀에 의해 빛이 있었고 우주가 창조되었다. 이 순서는 논리적 인과의 순서다. 이 순서를 뒤집을 수는 없다. 아담과 이브를 먼저 창조한 다음 우주를 창조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세상은 일로 되어 있고 일은 그 일을 진행하여 나아가므로 질서를 가진다. 일의 진행에 있어서의 우선순위가 있다. 창세기는 어떤 사업에 착수함에 있어서 초기 단계에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지정해준다.

어떤 사업을 하든 최초에 ‘말씀’이라는 동기부여가 필요하고 ‘빛’이라는 핵심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 천지창조라는 공장을 짓고서야 비로소 아담과 이브라는 종업원이 고용되고 최종적으로 선악과의 임금이 지급된다.

● 동기부여≫ 핵심역량≫ 자본투자≫ 고용창출≫ 임금지급

이것이 지난 수천 년간 서구인에게 창발성의 영감을 불러일으킨 연역적 사고의 제1원인 역할을 했다. 물론 창세기의 뼈대가 이론적으로 완전한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창세기는 모순에 차 있다.

창세기의 전개가 사리에 맞느냐와 별개로 누군가가 그렇게 시범을 보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창세기에서 아이디어를 빌린다. 창세기가 대다수 서구인의 시야를 규정한다. 거기서 눈높이가 얻어진다.

이는 천자문이 ‘천지현황 우주홍황’으로 시작함과 유사하다. ‘일월영측 진숙열장 한래서왕 추수동장’으로 이어지는 천자문의 전개는 별자리와 사계절의 질서로 파악되는 하늘의 질서를 본받아 인간의 질서를 구축한다는 아이디어가 된다.

● 천지현황 우주홍황-우주의 진리≫일월영측 진숙열장-자연의 법칙≫한래서왕 추수동장-인간의 삶

추상적 원리를 제시하고 이를 구체적 사실에서 재발견하며 다시 인간의 삶으로 전이한다. 이러한 연쇄적인 구조가 연역적 구조이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놓은 곳에 천지현황을 놓은 것이다.

창세기가 초기 단계에서 눈높이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시야를 잡아주듯이 천자문 역시 우주적인 시야를 열어주고 있다. 다만, 천자문은 우주적인 질서의 존재를 강조할 뿐 구체적인 사업의 전개가 없다는 결함이 있다.

모세의 출애굽 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모세의 건국은 무에서 유를 창조함과 같다. 백지상태에서 국민과 영토와 법률을 얽어 신뢰를 창출하고 리더십을 발휘하여 국가건설의 시범을 보인다.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백성과 언어와 영토와 이념과 제도가 있어야 한다. 하느님이 창세기의 방법으로 초기조건을 예시하여 출발점을 찍어 보였다면 모세는 국가건설의 방법으로 이를 재현하여 보인 것이다.

창세기는 말씀, 빛, 천지창조, 에덴동산, 아담과 이브, 선악과, 낙원에서의 추방, 카인과 아벨의 스토리로 흥미롭게 전개된다. 여기에 어떤 일이 시작되고 전개하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1사이클 서사구조가 숨어 있다.

모세는 처음 백성을 얻었고, 다음 십계명의 언어를 얻었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는 방법으로 이념을 제시하여 공동체에 동기를 부여하였으며 최후에 시나이 산 아래에서 영토를 획득했다.

이러한 과정은 연역적인 전개다. 이는 기업가가 회사를 설립함에 있어서 처음 창업멤버와 투자자를 확보하고 다음 십계명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마침내 시나이 산 아래에서 공장과 사옥을 얻어 운영해 가는 절차와 비슷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웅이 출현하여 왕조를 전복하고 국가를 건국하는 이야기는 많지만 그 과정은 대개 귀납적 전개다. 이 경우 국가건설의 필수 구성요소는 미리 주어져 있다. 영웅은 단지 싸워서 그것을 얻으면 된다.

모세는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모세는 전쟁으로 정복하지 않고 스스로 창조한다. 암탉이 알을 낳듯이 낳아낸 것이다. 모세로 하여 우리는 어떤 사업에 착수할 때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서’의 개념이다. 먼저 질서가 주어지고 다음에 그 질서를 응용한다. 먼저 이상의 동그라미, 비전의 동그라미를 갖추어야 한다. 지평을 열고 꿈을 얻어야 한다. 공동체에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최초에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시작된다. 예언이야말로 모든 영웅담의 필수 요소이다. 곧 의사소통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경쟁은 그 시대에 맞게 최적화된 형태의 의사소통구조를 찾아내기 경쟁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십계명으로 시작함도 이와 같다. 십계명은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하나의 공동체가 출범함에 있어서 먼저 의사소통의 수단을 확보하고 다음 이념을 제시하며 이로써 동기부여 삼아 출범하기다.

이념이 없으면? 말씀이 없으면? 동기부여가 없다면? 비전의 공유가 없다면? 일의 우선순위 판단에 합의할 수 없다. 의사소통에 실패하고 의사결정에 실패한다. 사업은 파산하고 공동체는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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