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은 쉽다. 복제하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답을 미리 보여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구조론을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 구조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거다. 애초에 다른 지점을 보고 있다. 박그네와의 대화라면? 말이 통하느냐고. 말이 안 통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말이 통할 수 있다. 영화용어로 가보자. 스릴러 아니면 서스펜스다. 대칭이 스릴러면 호응은 서스펜스다. 스릴러는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구도다. 서스펜스는 감독과 관객이 짜고 치는 몰카다. 미스터리도 있다. 반전은 감독이 관객까지 속인다. 반전은 근래에 흥했고 영화의 기본은 히치코크의 서스펜스다. 관객도 알고 감독도 안다. 주인공만 모르고 있다. 연극으로 치면 방백과 비슷하다. 스릴러는 주인공과 악역의 능력치가 비슷해야 한다. 한 쪽이 압도적으로 세면 싱겁다.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와 악당은 능력치가 엇비슷하다. 팽팽한 대칭구도를 만들어 간다. 그런데 돈이 많이 든다. 돈을 아끼려면 서스펜스라는 양념을 쳐줘야 한다. 반전도 돈 아끼는 방법이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는 주인공을 속이고 관객을 낚는 떡밥의 투척이 중요하다. 미리 복선을 깔아놔야 한다. ‘아 그때 그 장면이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복기하는 맛이 있다. 그럴 때 전율한다. 그것이 호응이다. 서스펜스란 공중에 매달아놓은 것이다. 목에 가시 걸리듯 걸려있다. 주인공의 운명이 감독의 장난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감독은 주인공을 허공에 달아놓고 이 사람을 죽일까 말까 하고 관객에게 묻는다. 관객은 ‘제발 살려줘!’ 하는 심정이 된다. 극한까지 몰아붙인 다음 감독은 ‘그래 주인공 버프가 있으니깐.’ 하고 살려준다. 반전은 결말에 가서 아! 하고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서스펜스는 시종일관 쫄깃하다. 장면장면에 계속 힌트와 답이 나가기 때문이다. 히치코크는 누가 범인인지 미리 답을 보여준다. 주인공만 범인을 모른다. 여기서 시간차다. 서스펜스는 쫄깃을 투입하여 시간을 끈다. 일부러 엉뚱한 곳을 보여준다. 맥거핀이다. 심하면 시간끌기 전문이 나오는데 그게 발암캐릭터다. 발암짓을 세게하면 관객이 분노한다. 분노한 관객을 진정시키는 방법은 초반에 발암을 투척하고 죽어버리는 것이다. 재난영화의 공식이다. 깐죽대면 죽는다. 시계추는 서스펜스처럼 공중에 걸려 있다. 허공에서 왔다갔다 한다. 단진동과 같다. 시계추가 왕복하는 공간의 좌우가 대칭이면 시간적 회귀는 호응이다. 허공에 매달린 진자를 밀면 저쪽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니 호응이다. 떡밥을 투척하면 호응하여 그 떡밥은 회수되어야 하니 체호프의 총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만능떡밥 해결사로 신을 호출한다. 영화의 신은 누구인가? 관객이다. 관객이 영화를 감시한다. 히치코크의 이창은 주인공이 살인범을 감시한다. 보통은 해피엔딩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한다. 아이들은 엄마가 구원해줘야 하고, 신도는 신이 구원해줘야 하고, 영화는 관객이 구원해줘야 한다. 그럴 때 인간은 전율한다. 그것이 호응이다. 관객의 권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관객이 해피엔딩을 원하는 것은 영화감독을 심리적으로 굴복시키는 것이다. 평론가는 반대로 그러한 관객을 굴복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최종적으로는 신이 인간을 이긴다. 그것은 인간의 유쾌한 굴복이다. 관객은 감독에게 져야 한다. 지고도 웃을 수 있는 게임이라야 즐겁다. 평론가는 과연 누가 누구를 감시하는지를 질문한다. 주인공이 악당을 감시하는가? 관객이 감독을 감시하는가? 감독이 관객을 감시하는가? 주인공이 악당을 감시하면 스릴러다. 관객이 감독을 감시하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감독이 관객을 감시하면 예술이다. 누가 누구에게 호응하는가다. 감동을 주고 눈물을 주고 묵직한 주제를 전달하면 그것은 관객이 낸 문제를 감독이 푸는 것이다. 관객이 감독을 감시하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 안에는 반드시 대칭과 호응이 있다. 먼저 공간의 대칭을 조직하고 주인공은 그 대칭된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아직 선택하지 않은, 앞으로 선택하게 될 그것이 중첩이며 에너지다. 서스펜스는 그 긴장감을 감독이 시간적으로 풀어내며 양념을 친다. 즉 매달려 있는 것을 갖고 노는 것이다. 스릴러는 대칭을 이루고 백미터 달리기처럼 곧바로 달려간다. 주인공과 악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대결한다. 서스펜스는 주인공이 뽀뽀를 할것처럼 하지 않으며 애간장을 태운다. 구조론은 그것이 공간의 구조 그 자체에서 조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객은 자기 자신이 영화에 참여해 있음을 알아챈다. ### Suspens의 Sus-는 속이라는 뜻인데 목을 뜻합니다. pens는 pendant인데 pen은 저울의 접시 혹은 고리를 말합니다. 대저울의 고리에 매달다 혹은 천칭접시에 달았다는 뜻입니다. 저울질한다는 의미죠. 시계의 진자pendulum처럼 목매달려 흔들리는 것이 서스펜스입니다. ### 초반에 발암을 투척하고 죽은 캐릭터는 안철수, 사이다를 투척한 조연은 이재명, 막판에 줄 잘못 서서 죽는 캐릭터는 반기문. 어쨌든 주인공 버프가 있으니까 문재인.
대칭이 맞물려 있는 상태라면 호응은 그렇게 대칭된 채 매달려 있는 상태입니다. 매달려 있으므로 건드리면 흔들립니다. 운명은 결정되어 있고 인물은 그 운명으로 다가가거나 혹은 물러서거나 하면서 시간을 죽입니다. 매달려 있을 때 에너지는 극적으로 충전됩니다. 데이트 약속은 내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이 매달려 있는 상태입니다. 3개월이내 대선은 결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매달려 있는 상태 곧 서스펜스의 조직입니다. 공간은 대치하지만 시간은 매달립니다. 공간으로 대치시켜 시간에 매달면 에너지는 극대화 됩니다. 너무 쉽죠. 구조론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