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이 어려운 이유는 필자가 어려운 단어를 쓰기 때문이다. 복제니 중첩이니 상호작용이니 하는 말을 다른 데서는 들어본 적이 많지 않을 터이다. 설사 들어봤다 해도 구조론에서 쓰는 의미는 또 다르다. 필자가 말하는 복제가 그 복제가 아니다. 벌써 헷갈린다. 일전에 ‘답하지 말고 질문하는 자가 되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질문이 그 질문이 아니다.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포지션을 말하는 거다. 배우는 자가 아니라, 가르치는 자의 관점으로 보라는 말이다. 을이 아닌 갑의 포지션에서 철학을 하라는 말이다. 더 전에는 ‘질문하지 말고 반격하라.’고 말한 적도 있다. 이쯤 되면, ‘뭐야? 질문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고 버럭 하는 사람도 있을 법 하다. 자기소개 하지 말라고 했는데 모임에 나와서도 자기소개 안 하면 그것도 곤란하다. 자기소개가 그 자기소개 아니잖아. 말로 하면 헷갈린다. 이미지로 알고 현실의 경험에서 찾아야 한다. 필자의 글을 건성으로 읽지 말고 좀 헤아려 읽어주기 바란다. 문제는 구조론의 원본을 보지 않고 응용부터 하려는 태도다. 적용하여 써먹으려고 하면 좋지 않다. 원본의 모형을 깨달으려 해야 한다. 구조론을 몰라도 스포츠 선수는 스포츠를 잘 설명한다. 스포츠 선수는 구조론을 몰라도 되지만, 구조론 선수는 구조론을 알아야 한다. 본말을 헤아려 주기 바란다. 구조론을 설명하려고 스포츠를 언급하는 거지 내가 여기서 누구한테 스포츠를 가르치는게 아니다. 내가 음식을 비유로 설명을 하면 주방장 아저씨가 반격할 수 있다. ‘구조론 몰라도 요리는 내가 더 잘 하는데.’ 내가 자동차를 비유로 설명을 하면 운전기사 아저씨가 ‘구조론 몰라도 운전은 내가 더 잘하는데.’ 이럴 거다. 주방장이 요리를 하는데 구조론 필요없다. 운전기사가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구조론은 필요없다. 관점이 정립되지 않으니 헛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구조론이 설명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에너지의 방향성이다. 이거 하나를 알면 구조론을 다 아는 것이다. 이거 모르면 구조론을 하나도 모르는 것이다. 방향을 표시하려면 동쪽과 서쪽 둘이 있어야 한다. 우주에 동쪽은 있고 서쪽은 없다면 방향이 없는 것이다. 왼쪽은 있는데 오른쪽이 없다고 말하면 왼쪽도 없는 것이다. 앞은 있는데 뒤가 없다고 말하면 실상 앞도 없는 거다. 지방은 있는데 중앙이 없다고 말하면? 지방도 없는 것이다. 척력없이 인력만으로 논하는 것은 각자의 맘에 달려 있겠지만 그것이 구조론은 아니다. 수학자는 구조론을 몰라도 수학만 잘 한다. 수학자가 수학은 잘 하는데 구조론을 못한다. 구조론을 할 생각이 있다면 배울 것을 배워야 한다. 방향성이다. 인력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구조론 없이 하던대로 하는 것이다. 구조론을 배우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척력을 쓰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절대 에너지의 방향성을 포착할 수 없다. 이게 안 되면 다 안 된다. 인력 개념에는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다. 망한 거다. 방향을 만드는 절차가 생략되어 있다. 생략해도 된다. 숫자가 뭔지 정의하지 않고도 셈만 잘 한다. 동양산학이 그랬다. 원론이 없이 바로 본론 들어가준다. 그걸로 잘했다. 원근법 없이 바로 그려준다. 화음 배우지 않고 바로 연주해준다. 악보 없이 가야금 배웠다. 가능하다. 요리사가 밥만 잘 지으면 되지 농부가 쌀농사 짓는 일까지 알 필요가 있겠는가? 맞다. 농부가 아니라서 그 쌀에 농약을 쳤는지 안 쳤는지는 몰라도 밥은 맛있게 잘 짓더라. 동양의 산학자는 산통을 열고 산대를 놓아 계산하는데 서양 수학자보다 빠르다. 구한말에 서양인 선교사가 아는 척하다가 조선의 산학자에게 잡혔다. 방정식 문제를 출제하는데 선교사가 종이를 펴놓고 끙끙대는 판에 조선산학자는 산대를 놓아 금방 풀었다. ‘거 양코배기들이 자랑하는 서양 수학이라는게 조금도 쓸모가 없구만.’ 할말 없는 거다. 인력만 알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다. 그런데 쌀농사부터 요리까지 전체과정을 아는게 구조론이다. 전체과정을 알고싶지 않다? 이곳에 안 오면 된다. 알고 싶다? 그렇다면 척력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동서남북을 정해놓고 시작하지만 우주 공간에 동서남북 없다. 방향은 원래 없는 거다. 앞도 없고 뒤도 없다. 위도 없고 아래도 없다. 구조론은 백지상태에서 처음 방향을 만든다. 척력을 먼저 만든다. 그것이 에너지의 중첩이다. 지방을 먼저 만들고 중앙을 나중 만든다. 물체가 움직이면 앞이 먼저 생기고 뒤는 자연히 따라온다. 척력을 먼저 만들고 인력은 자연히 성립한다. 민주주의democracy 어원은 지방사람의 통치라는 의미다. demo는 지방사람이고 cracy는 통치다. 곧 중앙이다. 지방이 모여서 중앙을 결성한다. 제헌의회를 먼저 만들고 다음 행정부가 탄생한다. 중앙은 어디 있는가? 무게중심이다. 무게중심은 어디에 있나? 지구중심과의 상호작용이다. 물체와 지구 둘이 있어야 한다. 먼저 지구와 달이 있어야 둘의 중심이 생기며 지구와 달은 서로 중심을 공전한다. 달은 지구와 달 사이 중심점을 돌고 지구도 지구와 달 사이 무게중심을 돈다. 그 중심점은 지구 안에 있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도 무게중심은 있다. 백중사리 때는 태양과 지구와 달이 나란해져서 소래포구가 다 물에 잠긴다. 그런데 우리가 무언가 포착했을 때는 이미 그 무게중심이 생기고 난 다음의 일이다. 그전의 일에 대해서는 모른다. 척력이 국민의 분노라면 인력은 정권교체후에 만들어진 대통령 권력이다. 척력이 인력을 만든다. 이러한 사전절차를 모르면 대통령의 다음 행동이 예측되지 않는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의 높은 인기는 박근혜의 인력이다. 그 인력이 왜 갑자기 사라져버렸을까?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사라질 수 없다. 척력이 꼬여서 인력이 되는 것이므로 꼬임이 풀리면 인력은 사라진다. 이러한 방향성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방향성은 곧 에너지의 효율성이다. 에너지는 효율을 따라 간다. 인간은 왜 경제행동을 하는가?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서 경제행동을 한다? 이기심 어쩌구 하는 심리주의로 가면 망한다. 이타심 넘치는 인간은 어쩌구? 변희재 ATM만 봐도 알 수 있다. 불우이웃돕기 잘 한다. 이기심 운운은 인력관점이다. 자연법칙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과학이 된다. 척력이 발동해서 주변을 밀어내려고 한다. 넓은 평수의 집을 찾고 덩치 큰 차를 사려고 한다. 그래야 장가도 들고 그런다. 장가들면 인력이다. 인간이 경제하는 이유는 이기심 때문이 아니고 상호작용의 긴밀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을 뒤집힌다. 이중의 역설이다. 인력이면 잡아당겨야 하는데 박근혜는 국민을 밀어내고 소통을 불통하고 스스로 관저에 유폐된다. 선거운동 할 때는 인력을 발동시켜 국민을 잡아당기다가 선거 끝나자 180도로 태도를 바꾼다. 그러므로 인력의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은 집단으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압박을 받는다. 그 압박을 밀어내려고 한다. 압박이 덜한 곳으로 움직인다. 압박이 가장 약한 곳은 가운데다. 바둑을 두어도 천원에 두면 아무도 신경 안 쓴다. 그곳은 압박이 없는 곳이다. 중앙은 비어 있다. 그 중앙의 빈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압박이 두 배로 강해진다. 압박을 피해 중앙으로 왔는데 압박 두 배다. 장가 가라는 부모의 압박을 피해 장가왔는데 자녀가 태어나서 압박이 두 배다. 버스를 타도 변은 나뭇가지처럼 흔들린다. 바둑을 두어도 변에 먼저 두는 거다. 그러다가 갑자기 중앙으로 진출한다. 어느 순간부터 중앙의 압박이 강해진다. 그래서 노무현이 수도 옮기듯이 중앙을 옮긴다. 처음 변에 압박이 걸리는게 질, 중앙을 차지하면 입자, 중앙을 옮기면 힘이다. 또 옮겨야 한다. 반복하면 운동이다. 그렇게 에너지 잃는다. 척력으로 보면 모든게 설명되지만 인력을 끼워넣으면 헷갈린다. 역설 때문이다. 이중의 역설이 기다리고 있다. 반드시 두 번 뒤통수 맞는다. 척력으로 보면 방향성이 보이고 방향성을 보면 뒤통수 맞을 일 없다. 태연하게 제자리를 지킬 수 있다. 압박에서 시작된다. 축구를 하더라도 기성용이 뛰는 중원이 가장 압박이 덜하다. 여유있게 공 돌린다. 기성용 성공률 99퍼센트 백패스 나온다. 그러나 압박축구라 중원부터 압박한다. 중원이 가장 압박이 심하다. 모든 전술이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틀렸다. 변부터 압박해온다. 공격측과 수비측 두 변이 압박이 심하고 상대적으로 널널한 곳이 중원이다. 그러나 이는 예선전이다. 각 당의 후보가 선발되면 중원에서 충돌한다. 변에서 중앙으로 압박이 옮겨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중앙이 이사다니는 것이다. 그 방향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구조론은 방향성 하나로 집약됩니다. 그런데 과정에 이중의 역설이 작동하므로 인력포지션에서 보면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습니다. 총알이 빗발쳐서 안전한 곳으로 피했더니 바로 거기가 지뢰밭입니다. 모든 것은 압박에서 시작됩니다. 압박이 보이지 않으면 보일때까지 찾아보세요. 물적 압박이 없으면 심적 압박이 있습니다. 압박은 반드시 있습니다. 압박은 둘에서 시작됩니다. 처음에 둘이 만나서 대칭을 만드는 절차가 반드시 있습니다. |
척력이라는 말을 단순히 미는힘 정도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계의 중첩상태, 곧 최초 사건을 격발하는 조건을 갖추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력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야 합니다.
애국, 충성, 효도 등은 모두 인력중심 사고입니다.
국가에 잡혀 있다는게 애국
조직에 잡혀 있다는게 충성
부모에 잡혀 있다는게 효도
태어날때부터 혹은 원래 부터
집단이나 조직에 잡혀있다는 망상이
모든 실패의 원인입니다.
그런게 어딨어?
타자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제로베이스에서 사유를 시작해야지
처음부터 우리가 남이가 하고 시작하면 망하는 거죠.
너희가 남입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 밀어내려고 하는 존재이며
뭉치는 것은 외부에서 더 큰 적이 침략해 왔을 때
좁은 공간으로 몰려서 어쩔 수 없이 뭉치게 된 것입니다.
적군이 침략하거나 호랑이가 출몰하거나
살려고 도망치다 좁은 공간에 몰려서 인력이 발생한 겁니다.
애초에 집단이 만들어지는 최초지점을 사유하지 않고
국가나 가족이나 서열이나 전통이나 이런게 원래부터 있다는
숨은 전제를 깔고 들어가면 답이 없는 겁니다.
그 전제를 타파해야 합니다.
왜군이 쳐들어오니 국가가 만들어지고
도둑이 침투해오니 가정이 만들어지고
의사결정이 망하니 서열이 만들어지며
다 원래부터 있는게 아니고 일정한 조건에서 유도된 것입니다.
그런 유도절차를 생략하므로 박그네라는 괴물이 등장하는 겁니다.
국민은 나를 사랑해.
아주 좋아죽지.
내가 윙크만 해도 다들 뻑이 가버려.
오줌 싼다니깐.
이런 인력중심주의적 망상에 빠져 있는 거죠.
띠용~ 척력을 단순히 미는힘 정도로 생각한 것을 들켰네요.^^; 예전부터 상호작용을 이해할 때는, 인력과 척력은 동시에 일어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고등학교&대학교 다니는 동안 물리 공부를 할때마다 그렇게 이해하는게 자연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구조론을 접하고 마이너스 일방향을 깨닫게 되어 모든게 새롭습니다.
전에 구조 강론에서 온도는 있는데 냉도는 없다나 입은 있는데 항문은 없다가 척력은 있는데 인력은 없다랑 같은 의미인가요? 그러니깐 도둑이 생기니 경찰이 있고 둘은 짝으로 되어 있는데 선수친 넘이 척력이다 이거죠? 인력이 척력이고 척력이 인력인데 이중에 행님과 아우가 있으니 에너지의 방향성 보인다 이 말이죠? 그게 맞다면 전에 구조강론이랑 같은 이야기네요.
맞소.
구조 몰라도
밥 먹고 사는데 지장없습니다.
대충 하지 뭘 복잡하게 시시콜콜
인력 척력 따지냐 이러면 곤란합니다.
그걸 따지는게 구조론입니다.
척력 한 가지로 일원화 시켜야지
퇴계 이원론으로 가면 이미 망해 있습니다.
그런데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무슨 사상이든
반드시 일원론으로 출발해서 이원론으로 갑니다.
그게 빌어먹을 퇴행이라는 거지요.
왜냐하면 이원론이 더 쉽거든요.
그래서 망하는 거지요.
퇴계가 율곡보다 매력적이지만
그래서 일본이 망한 겁니다.
망하기로 작심하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척력이나 인력이나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관측자가 보는 방향이 다를 뿐 내용은 같은 것입니다.
척력이 인력이고 인력이 척력인데 인력을 받아들이는 즉 망합니다.
주는게 받는거고 받는게 주는 건데
받는즉 망합니다.
받는 사람은 을이고 주는 사람이 갑입니다.
주는건 어렵고 받는건 편하지요.
손만 벌리면 되니까.
주는 쪽을 보건 받는 쪽을 보건
관측자 시점 차이일 뿐 사건 내용은 같습니다.
구조라는건 주고 받는 둘을 에너지로 꿰어서
통짜덩어리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받는 쪽을 주목하는 순간 에너지는 간 곳이 없습니다.
에너지가 없어도 받을 수는 있지만
에너지 없이 줄 수는 없습니다.
주는 데는 반드시 비용이 듭니다.
불우이웃돕기를 하려고 해도 차비가 듭니다.
그 차비가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의 열쇠입니다.
주는 쪽이 척력이고 받는 쪽이 인력입니다.
주는 것이 마이너스 받는 쪽이 플러스입니다.
척력을 알면 즐겁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