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와 남자가 결혼할 확률은 0에 가깝다. 아니 정확히 0이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신뢰할 수 없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사회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차단되고 마는 것이다. 아니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날 가능성 자체가 없다. 만나려면 일단 멈추어야 하는데 둘 다 멈추어 있으면 당연히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길거리는 움직이는 공간이다. 우연히 만나려면 부지런히 움직이던 두 사람이 길거리의 한 지점에서 우연히 동시에 발걸음을 멈추어야 한다.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사람은 멈추어 있고 한 사람은 움직이다가 만난다. 그것이 사회의 규칙이다. 보통은 여자가 멈추어 있고 남자가 배회하다가 만나는 걸로 되어 있다. 전통적인 사회라면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확률로 이해해야 하지만 확률은 매우 낮다. 아니 아주 없다. 확률은 0이다. 존재는 사건이다. 그런데 사건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은 일치와 연동을 필요로 한다. 일치되지도 연동되지도 않으므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이 작동하는 것은 하나의 성공한 패턴을 복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연 아닌 필연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순전히 우연이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억 마리의 움직이는 정자가 움직이지 않는 난자 하나와 만난다.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아니다. 수억마리의 정자가 가진 유전자는 똑같다. 그것은 하나다. 그러므로 너와 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기지국에서 전파를 사방에 뿌린다. 무한히 많은 전파가 뿌려지면 한반도 전체에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 많은 전파 중에 단 하나의 작은 파동이 당신의 스마트폰과 반응한다. 일치해야 반응한다. 지금 이 순간도 동시에 수백만명이 어딘가의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그 많은 전파들도 당신의 스마트폰을 거쳐갔지만 당신의 스마트폰은 생까고 반응하지 않았다. 무한히 많은 전파 중에 단 하나다. 그러나 그것은 복제된 것이므로 같다. 무한이 아니다. 1이다. 당신이 소리를 지르면 무한히 많은 음파가 사방에 뿌려져도 그것은 하나다. 한 송이 붉은 꽃이 피었다면 무한히 많은 빛 입자가 그 꽃의 붉은 파장을 태우고 사방으로 뿌려지지만 그것은 복제되었으므로 하나다. 결론을 내리자. 우리는 필연을 원한다. 우연을 싫어한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답은 우연이다. 우리는 우연 속에 희미한 확률로 살아간다. 아니다. 필연이다. 복제되었기 때문이다. 백만 명이 한 송이 꽃을 본다면 이백만 개의 눈동자에 한 송이 꽃이 그려진다. TV로 중계한다면 수십억개의 눈동자에 한 송이 꽃이 새겨진다. 하나다. 그러므로 우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복제된 것이다. 애초에 의도된 거다. 우연을 가장하고 길거리에서 서성거렸다. 그대를 만나려고 만난 것이다. 세상은 결코 우연에 의해 작동하지 않는다. 우주 안에 골디락스존은 절대로 없다. 세상은 너무 춥거나 아니면 너무 덥다. 딱 맞는 지점이 있다면 그곳에서 환경변화가 일어나서 역시 틀어지게 된다. 골디락스존은 멈추어 있는 지점이다. 그러므로 만날 수 없다. 멈추어 있으므로 만날 수 없다. 어떤 완벽한 것은 완벽하지 않은 것이다. 완벽한 보석, 완벽한 생명은 없다. 완벽한 것은 죽는다. 완벽한 마음은 평정심이 아니다. 멈추어선 마음이라면 만날 수 없는 마음이다. 0을 기준으로 조금이라도 플러스면 점점 더워지고 조금이라도 마이너스면 점점 추워진다. 한사코 극한으로 달려간다. 그렇다. 우리는 언제나 극한에 존재한다. 모든 자영업자는 폐업직전에 몰린다. 연봉이 천만원이든 일억원이든 주머니는 항상 비어 있다. 그게 정상이다. 상호작용이라는 극한의 지점이 골디락스존이며 우리는 거기에 있고 그 극한은 움직이는 극한이다. 골디락스존은 단진동이 발산하지 않고 수렴하는 지점이며 그 지점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움직인다. 이 원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 다 적용된다. 국민의 기대와 정치인의 태도가 일치하는 지점은 절대로 없다. 그것은 원리적으로 없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시절에 한 번 일치했다면 그것을 복제하는 것은 가능하다. 노무현 시절에 우리는 일치하지 않았다. 국민은 더 많은 것을 원했고 노무현은 너무 앞서가 있었다. 노무현과 국민이 일치했을 때 그는 이곳에 없다. 연인과 헤어진 다음에 일치한다. 보통 그렇다. 우리는 노무현과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스쳐지나갔다. 첫 만남을 잊지 못하고 두 번째 사람에게 첫 번째 사람과의 아쉬운 추억을 복제하려고 시도하는 슬픈 자화상이다.
새누리당이 망한 것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입니다. 한중일이 일어나고 서구가 몰락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모든 값은 한사코 극단으로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거나 아니면 너무 적으며 딱 좋은 중간값은 절대로 없으며 만약 있다면 그것은 부단히 변화하는 값입니다. 부단히 변화하므로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 지점은 상호작용의 극단입니다. 극단이므로 필연입니다. 하나의 정상에 이른 자가 그 정상에서 또다른 정상과 만나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
그런데 공간에 들어서도 멈추지 않는 이들...혹은 그 무엇들은, 그런 연유로 결정체를 남기기가 어려운듯...혜성처럼....
그리 따져보면, 움직이다가 멈춤의 에너지를 내는 쪽이 더 큰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듯. 가는거 보다 멈춤에서 에너지가 더 크게 사용되는 것. 멈춘다 하여
움직임이 없는 것이 아니고...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기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자동차가 가는 것과 멈춰서 공회전 할때와...양상은 같은 것.
아란도 2017.01.05 수정 삭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