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궁금증은 사라졌소.
궁금한바 질문이 있다면, 질문과 답의 관계를 추적해 보기오. 질문과 답은 엮여있소. 어떤 형태로 엮어있나 보면 대칭 아니면 호응이오. 질문과 답은 밧줄로 묶여있소. 밧줄 따라가다 답은 주우면 되오.
첫번째 관건은 관점이오. 모든 것이 엮여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소실점이
보이오. 화가가 아니면 그림에 소실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소. 모태솔로는
긴장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소. 구경꾼은 시장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소.
젠장할 엉덩이가 가려워야 하오. 당연히 엮여 있어야 하지 않소? 두번째 관건은 언어요. 소실점은 관계요, 당연히 추상언어요. 그것을 나타내는 언어가 부족하니 뭔가 있는
것은 알겠는데 표현할수 없소. 누군가는 암묵지라고 부르기도하오. 데이트에는
분위기가 있고, 시장에는 신용이 있소. 소실점이 있고 소실점의
강약이 있소.
대칭은 일의성에서 나오고, 일의성은 에너지의 효율따라 가오. 결따라 가오.
인식의 단위를 넓히기오. 눈으로 보는 바 사물이 있소. 왜 사물의 생성과 소멸은 보지 않소?
컵이 있소. 컵의 생성과 소멸을 보기오. 시간이 흐르고, 컵이 바람에 닳아 사라지고 나서야 컵이
외력에 대항해서 자기존재를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닫소. 존재는
일을 하고 일은 시작과 끝이 있소. 컵의 재질을 무엇으로 만드냐에 따라서 컵은 백년도 일하고 천년도
일하오. 일은 기가 가장 중요하오. 컵의 생에서 사의 한싸이클을
인식의 단위로 삼기오. 전체를 조망하기오.
존재는 저울이오. 외력의 작용에 반작용해야 하오. 작용이 너무 작아 반작용할수 없다면? x선과 같소 뚫고 들어가버리오. 작용이 너무커서 깨져 버린다면? 컵을 천톤 망치로 때리는 것과 같소. 부서져버리오. 그렇다면 존재가 지금 성립한다는 것은? 존재는 외력에 적절하게 반작용하고 있고 그 외력을 재고 있소. 판정하고
있소. 그래서 존재는 저울이오.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오. 사건을 인식의 단위로 삼기오. 사물은 사건의 단면만을 본것이오.
차가 있으면 도로가 있고, 국가가 있으면 국민이 있고, 남편이 있으면 아내가 있소.
사건을 일으켜야 하오. 포지션과 호르몬과 언어는 같이가야 하오. ceo라면 팀원을 비전으로 엮고, 커플은 사랑으로 엮고, 데이트는 분위기로 엮고, 현재는 미래로 엮고, 엮이지 말고 엮으시오.
엮으려면? 무조건 2여야
하오. 남녀를 묶고, 국민을 묶고, 고용자와 노동자를 엮소. 사건을 일으키는 자는 2를 보지만 사건을 구경하는 자는 1을 보오. 커플을 보고, 국가를 보고, 회사를
보오.
세상은 마이너스요. 포지션이 있으면 포텐셜이 있소. 에너지의 준위가 다르오. 포텐셜의 에너지를 잃은 바 포지션이 되오. 확률의 세계에서 실체의 세계로 이행이오. 완전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오. 가장 단단한 것, 가장 빠른 것, 가장 비싼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이오.
사물은 낳을 수 없고, 사건은 낳을 수 있소. 통제할 수 있소. 통제해서 가치를 생성할 수 있소.
에너지는 효율을 따라가오. 그것은 일의성이오. 그것은 엮임이오. 따라서 대칭이오.
구조가 가는 길이요. 의사결정비용이 최소화 되는 길. 에너지가 가장 적게드는 길. 그길로 수렴되오.
깨달음이오.
궁금증이 풀렸다니 다행이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자연은 떨어져나온 알갱이지만
자연의 본래로 보면 99퍼센트 플라즈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