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입자, 힘, 운동, 량.
구조론의 다섯 봉우리에 다섯 깃발이 휘날리고 있소.
저 봉우리를 쳐다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오?
가슴은 벅차는데..암 생각이 없다구?
그럴 것이오..그렁께 생각하지 말고 가슴을 믿어라..이 말이오.
무슨 말이냐..하면 관점 자체를 바꾸라는 것이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단어를 <입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안된다는 것이오.
사실은 이 단어들은 봉우리가 아니라..그 <사이>라는 말이오.
즉, 봉우리가 아니라 계곡이요..봉우리와 봉우리 사이..그 사이의 종류가 다섯이란 말이요.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깃발이 아니라 바람이요. 바람의 종류요.
한마디로 <관계>..밑줄 쫙~
입자원소설이 아니라 인(因)자 관계설이라고 지난 시간에 이야기 했소.
원소가 아니라 관계!
량은 탁구공이고 운동은 골프공이고 힘은 당구공이고 입자는 볼링공이고 질은 축구공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 입자적 생각을 깨부수란 거요.
구조론에서 <점>이란 좁쌀같이 작은 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두 공이 만닜을 때의 접점을 말하는 것이오.
그래서 구조론의 <점>은 <존재하지만 그 크기가 제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오.
물리적(입자적)으로는 안되오..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크기는 있기 마련이오.
구조론의 <점>과 우리가 생각하는 <점>이 완전히 다른 <점>이 여기에 있소.
면도 마찬가지..점,선,면,입체,밀도..전부..이런 차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오..
차원이 다르오.
면이란 너의 얼굴이나 나의 얼굴이 아니라
너의 얼굴과 나의 얼굴을 부볐을 때..부빈 그 사이..그것이 구존론의 면이오.
기존의 면과 구조론의 면은 그 관점이 다르오.
이것만 알면 구조론 기초는 된거요.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다섯은 외우두고..
그 개념은 어떤 사이라는 것..이것만 알면 되오.
스케이트와 식칼을 예로 들었는데..
스케이트 입구에는 발이 들어가오.
식칼 입구는 손하고 짝하고 있소.
이게 질인데..질은 어떤 위치와 크기가 아니라 그 관계란 이야기요.
스케이트에 있어 질은 어디인가?
정답..스케이트 윗부분...이래 말해버리면 맞지만 틀린 것이오.왜?
부분이 아니란 것이오..윗부분..이 아니라
발과 만나는 스케이트..에서 <만남> 그것이 질이지 어떤 위치가 아니란 거죠.
어떻게 만나는가..질적으로 만난다..이거요..
어떻게 만나는가..입체적으로 만난다..이거요..
그 만남은 어떤 차원인가..힘적인 차원이다..이거요..
그것은 어떤 상태인가..운동의 상태다..이거요..
그래서? ...양으로 남았다..이거요.
이게 질 입자 힘 운동 양의 정의요.
그것은 <관계>를 규정하고 있소..관계의 성질..
그러므로..
구조론의 다섯 봉우리를 쳐다보기 전에..
먼저 그대 관점을 바꾸시오.
어허~ 봉우리가 아니라니깐..계곡이라니깐..
곡신(谷神)..
여기까지..
para..paraajee...
그래서 구조론이 대단하다는 것이오.
아제님이 한번 더 구조론을 가닥을 잡아주니...좋은데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구조론을 이해하여 사고의 혁명을 이뤄낼 수 있다면...
지금보다 세상이 덜 혼란스러울거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것을 얘기해도 다른 것을 얘기하게 되는 세상이고 보면...^^;()
무릎과 무릎사이..
제목과 본문 내용이 무슨 상관이?
이보희 팬이신지..
영화는 참으로 유치했다는 기억뿐 없는데.
영화제목만 가히 최상급임. 무릎과 무릎사이..
이보희..
무릎과 무릎..
사이의 이보희
무릎보지 말고 사이의 이보희 보란말..
고쳐보았소..
아제도 구조론 공부 중이오.
여러 각도에서 후레쉬를 비춰보는 것이오.
참고로 쓰이면 다행이겠소.
아제님 글 보면
구조론이 정말 확실한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주는 기계인것 같다는 생각이 드오.
사고의 자궁을 몸에 달게 되는 격이오.
간질거리는 부분을 긁어주는 글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