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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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402 vote 0 2008.12.30 (12:09:14)

 

구조는 정보를 전달한다


신문지 위 아래의 자른 면은 요철(凹凸) 모양으로 울퉁불퉁하게 잘려져 있다. 그러나 양 옆면은 직선으로 곧게 잘려 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지? 왜 예쁘게 직선으로 자르지 않고 보기에 좋지 않은 톱니모양으로 잘랐지?


양 옆면의 직선은 원래 용지의 규격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거고 위 아래의 톱니모양은 신문을 인쇄하면서 자른 것이다. 신문은 종이를 한 장씩 펴놓고 찍는 것이 아니라 두루마리 모양으로 회전하면서 고속으로 인쇄된다.


인쇄되는 속도와 같은 속도로 용지를 잘라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자르다가는 금방 칼날이 닳아버린다. 칼날을 오래 쓰기 위해서 요철모양의 칼날을 사용하는 것이다. 


칼날이 닳아 날이 무뎌질 때 마다 매번 윤전기를 멈추고 날을 갈아줘야 한다면 생산성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요철 형태의 칼날은 날이 쉽게 닳지 않는다. 덕분에 하룻밤 사이에 수백만부의 신문을 인쇄할 수 있다.


이 정도로 이야기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아하 그렇구나’ 하고 잘도 이해한다. 그들은 마치 다 알아들었다 듯이 미소를 지으며 의기양양해 한다. 천만에! 아직 이야기 끝나지 않았다.


“왜 사과는 땅으로 떨어지는 거죠?”

“그것도 모르냐? 사과가 무겁기 때문에 떨어지는 거야.”


‘아하 그렇구나.’ 하고 잘도 이해해서는 결코 만유인력을 발견할 수 없다. 뉴튼이 그랬듯이 ‘왜 사과는 무겁지?’ 하고 한 번 더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왜 요철형태의 날은 더 오래 쓸 수 있지?


숟가락의 형태를 관찰해 보자. 숟가락의 주걱 부분은 사람의 입술모양을 닮아 있다. 둥근 타원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또 밥그릇의 밑바닥 모서리는 숟가락의 날과 같이 둥근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젓가락을 관찰해 보자. 젓가락의 형태는 사람의 손가락 모양을 닮아 있다. 그 젓가락으로 집는 반찬도 길쭉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숟가락이 입술의 연장이라면 젓가락은 손가락의 연장인 것이다.


물컵을 관찰해 보자. 컵에서 입술이 닿는 부위의 각도는 사람 입술의 둥근 각도와 닮아 있다. 컵 속의 깊은 부위는 또 사람의 입에서 목구멍으로 이어지는 관(管) 모양과도 같다.

이처럼 두 사물이 마주쳐서 운동을 전달하는 접점의 모양은 같은 형태일 수 밖에 없다. 사물이 일을 한다는 것은 A에서 B로 힘을 전달한다는 것이며 이때 전달의 송신자와 수신자는 동일한 형태의 힘의 방향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일은 막연히 힘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힘의 방향이라는 형태로 정보를 동시에 전달하는 것이다. 일이 단지 힘을 전달할 뿐이라고 믿는다면 착각이다. 일은 힘과 정보를 동시에 처리한다.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두 사물이 마주치는 접점은 반드시 동일한 형태를 공유해야만 한다. 주변의 사물을 관찰해 보라. 모든 것이 요(凹)와 철(凸)로 되어 있다. 이 근본되는 원리에서 어긋나는 경우는 없다. 


칼날은 종이를 자른다. 일을 한다. 일은 정보를 담고 있다. 칼날이 신문지를 절단하면서 날이 무디어진다는 것은 그 칼날이 가진 정보를 상실하게 된다는 의미다. 칼날을 요철모양으로 만드는 것은 이때 정보의 전달창구를 많은 숫자로 나누어 일을 배분한다는 것이다.


칼날이 일직선으로 되어 있으면 그 중 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문제가 증폭되어 칼날이 전체적으로 비뚤어지게 된다. 칼날의 한 부위가 다른 부위보다 더 많은 힘을 받는다면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닳아서 칼날은 완전히 못쓰게 된다.


칼날이 전달하는 정보가 왜곡되고 마는 것이다. 이래서는 바르게 일을 수행할 수가 없다. 칼날을 톱니모양으로 만들면 부분의 오류가 전체에 전파되지 않는다. 한 부위가 더 많은 힘을 받는다 해도 그 힘은 분산된다.


시스템은 한 부분에 결함이 있어도 전체 시스템이 망가져서 못쓰게 된다. 포드시스템의 한 공정에서 에러가 나면 그 라인 전체를 스톱해야 한다. 그러나 톱니모양은 부분의 오류가 중간에서 차단되므로 하여 시스템의 붕괴를 예방한다.


화장지의 경우도 그렇다. 엠보싱의 요철을 두면 화장지가 전달하는 힘의 방향이 접촉면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도 부분의 오류가 전체에 전달되지 않는다. 2중 면도날 혹은 3중 면도날도 그렇다. 부분의 오류가 단계적으로 시정된다.


만약 전 세계가 단 하나의 언어를 만국공용어로 쓴다면 어떨까? 부분의 오류가 전체의 오류로 증폭된다. 이 경우 인류는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왜 한글을 아껴야 하고 또 자국문화를 보호해야 하는가?


부분의 오류가 전체의 오류로 증폭되는 현상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왜 우리는 부시의 침략전쟁을 반대하는가? 세계가 하나의 이념, 하나의 질서로 획일화 된다면 부분의 오류가 전체의 오류로 증폭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가 미국이 주장하는 힘의 질서아래 굴종한다면 미국이 오류에 빠질 때 그 오류를 바로잡을 수단이 없다. 그러므로 일정부분 무질서가 상당하더라도 인류문명의 다양성이라는 더 큰 가치를 위해 부분의 오류를 감수해야 한다.


북한이나 쿠바, 이라크, 이란 등은 확실히 오류가 있다. 그러나 이는 부분의 오류에 불과하다. 미국의 오류는 전체의 오류이자 인류의 불행이다. 그러므로 부시의 잘못은 용서할 수 없다.

왜 서구는 크게 발전했는데 동양은 오랫동안 정체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는가? 서구가 수십개의 작은 국가들로 쪼개져 있어서 부분의 오류가 전체의 오류로 증폭되지 않게 중간에서 차단하는데 성공한 데 비해, 중국은 진시황이 춘추전국시대의 열국을 병합해서 천하를 통일한 결과 부분의 오류가 전체의 오류로 확대된 것이다.


오류는 일정한 확률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신문용지를 자르는 칼날은 결국 닳게 되어 있다. 오류가 없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필요한 것은 오류가 일어날 경우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의 오류를 지적하는가? 세계가 하나의 이념, 하나의 가치, 하나의 질서, 하나의 종교, 하나의 생산성으로 통일되면 인류문명이 총체적으로 시스템의 위기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언어를 가져야 한다. 또 우리는 다양한 이념을 가져야 한다. 또 우리는 다양한 문화를 가꾸고 다양한 질서를 창안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시스템의 위기를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양성이 물타기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뒤죽박죽 중도통합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각자의 수평적 공존으로 나아가야 한다.


혼합되지 않고 분리공존 하기다. 섞이지 말아야 한다. 각자의 개성과 입맛을 잃지 말아야 한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해서 안 된다. 그러면서도 등 돌리거나 고립되지 말아야 한다. 얼굴 마주보고 경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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