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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6576 vote 0 2002.11.26 (15:15:17)

배문성 기자/msbae@munhwa.co.kr

12월 2일부터 문화일보 기자생활을 시작하는 도올 김용옥(54)씨를 지난 22일 문화일보 편집국에서 만났다. 이번이 생애 두번째 ‘취직’이라고 감회를 밝힌 도올은 문화일보 편집국 기자들과 수인사를 나누면서 “주관적인 가치판단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책임지는 기사를 쓰겠다”고 말했다. 도올은 특별한 취재분야를 정하지 않고 한국 사회 각분야를 자유롭게 취재하고 다양한 방식의 기사를 출고할 예정이다.

―평소 기자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는지.

“지금 언론은 지나치게 낡은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다.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로 나누어진 이념적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다 자유롭게 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세계는 너무도 빨리 탈이념화해가고 있는데 신문은 계속 낡은 이데올로기에 얽매여 있다.”

―기자로서 어떤 분야를 취재하고 싶은가.

“폭넓게 취재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지적이지 않은 사람도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밑바닥의 찌든 삶이 오히려 한국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시사할 때도 많다. 이들의 삶을 전하고 싶다. 나아가 세계 유명 지성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정보를 뽑아내고 충분히 소화해서 전달해주는 역할도 하고 싶다.”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는 기획거리가 있는지.

“나는 뭘 규정해놓고 연역적으로 파고드는 스타일이 아니다. 기자생활에 익숙해지려면 3개월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아직 경험도 없는데 이런저런 기자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신문기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사실 객관보도란 이름 아래 무미건조하게 쓰는 기사스타일에 대해 불만이 있다. 언어란 것이 얼마나 심미(審美)적인 그릇인가. 사람들이 글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고 감동을 받아야 되는데, 신문기사는 사실보도한다는 전제 아래 아름답고 재미있는 말의 즐거움을 빼앗아버린다.”

―이제 기자로서 데스크로부터 책망도 당하고 현장에서 말못할 수모를 겪기도 할 것이다. 이를 견뎌낼 자신이 있는가.

“아무리 해도 원광대학교에서 한의과 학생으로 다닌 6년(1990~1996년) 동안 당한 수모보다는 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기자 입장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평기자로 동료들과 배우면서 현장기자가 되고 싶다.”

―최근 기자를 하고 싶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많은 언론사로부터 제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문화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하는 이유가 있는지.

“솔직히 말하자면 기자직 제안을 한 문화일보측 사람의 인격과 인품이랄까 사회를 보는 시각에 대해 믿음과 존경이 있었다. 나는 매사를 시작할 때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편이다. 여타 신문에 들어가면 내가 극복해야할 문제에 도리어 치일 수 있겠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 동안 내가 읽은 문화일보는 특정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있다는 판단도 한 몫 했다. 문화일보 기자들의 삶 자체가 자유롭다고 느꼈다. 특히 최근 문화일보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으며 기사 내용이 차분하고 품위가 있었다. 또 평기자로 제안한 곳은 문화일보가 유일했던 것도 이유중 하나다. 나는 정말 평기자로 뛰고 싶다.”

―정말 왜 기자를 하고 싶은가.

“언론은 우리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막강한 문화적 힘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화가 없는 문화는 더 이상 문화가 아니다. 언론은 현실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 밖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안에 들어가 일하면서 변화를 모색하고 싶다.”

―말하자면 언론을 바꾸기 위해서 기자가 되려고 했다는 말인가.

“언론자체도 변화하려고 노력중이란 사실을 잘 안다. 그 변화를 선도하려니 밖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에 들어가서 변화에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사고없이는 불가능하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발상의 전환은 에너지의 낭비가 아니다. 삶을 새롭게 하는 동인이 된다. 이런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평소 기자들의 글쓰기에 대해서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면….

기사를 쓸 때, 상대방의 좋은 점을 드러내야 한다면 철저하게 좋은 점을 부각하면 되는데 꼭 뭘 섞는다. 그래가지고는 장사가 안된다고 본다. 정말 좋다고 쓸 때는 화끈하게 해야된다. 그래야 장사가 된다. 공정보도란 말이 있는데 이 말만큼 오해되고 있는 말도 없다. 이른바 공정보도란 이름 아래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같이 다루는 태도는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기사는 어떻게 쓰든 쓰는 인간의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가치판단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기사고 공정보도다. 그게 춘추필법(春秋筆法)이다.

그러자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것은 레토릭(rhetoric·修辭)인데, 이념이 더 중요하게 부각된다. 그런 시각에서 쓰니까 문장의 격이 낮아지는 것이다. 이념을 말하기 전에 충분히 문장연습을 하는 것이 옳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심미적인 안목이 있어야 빛이 난다. 심미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른바 심미적 질(aesthetic quality)을 가지고 있으면 뭘 다뤄도 그걸로 커버가 된다. ”

―그동안은 가르치는 입장에 있었는데 기자가 되면 듣고 파악하고 전달하는 입장이 되는데.

“나는 그간 줄곧 인터뷰대상자였다. 그러나 사태를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인터뷰하는 입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간 몇몇 매체와 일하면서 계속 ‘나를 인터뷰하는 사람으로 써라, 그래야 내 지성이 다양하게 발현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 주장은 관철되지 않았고 나는 계속 인터뷰 당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그동안 대학교수, 한의과 대학생, 한의원 원장, 방송진행자, 철학자로 살았다. 이번에는 기자로 삶을 시작한다. 본인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내 전공은 내 삶 그 자체다. 이것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굳이 말하자면 내 삶 속에서 생겨난 가치관을 어떻게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가가 관건이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내 전공이다. 무대가 됐든, 철학강좌가 됐든, 한의학을 통해서든, 기자를 통해서든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결론은 가치관의 공유다.”

/정리〓배문성기자 ms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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