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s.gd/wdCUcV <- 필트다운인 사기사건 관련 웹페이지들이 대략 진화론을 까는 창조과학회 것이라서 나무위키를 인용할 밖에. 인간의 두뇌용적에 오랑우탄의 구강구조이면 첫째 직립할 수 없고 즉 달릴 수 없고 둘째 도구를 만들 수 없다. 도구는 이빨로 만드는 거다. 막대기는 영장류 의미에서의 도구가 아니다. 팔의 연장이다. 까마귀나 침팬지가 연장을 쓰지만 그건 도구가 아니다. 까마귀가 쓰는 막대기는 부리의 연장이고 침판지가 쓰는 도구는 손의 연장이다. 이빨로 깨물어서 날카롭게 만들거나 바위에 갈아서 예리하게 만드는게 도구다. 인간은 도구를 쓰는 동물인데 그냥 막대기를 쓰는 것은 도구를 쓰는게 아니다. 독수리가 돌로 새알을 깨뜨려 먹는건 도구를 쓰는게 아니다. 도구는 사냥을 하는데 필요한게 아니다. 물론 사전적 의미로는 도구가 맞지만 인류를 설명하는 의미에서의 도구는 아니다. 옷을 짓거나 가죽을 벗기거나 고기를 분배하거나 집을 짓는데 필요한 거다. 즉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지만 그 도구는 사냥목적이 아니며 기껏해야 낚시바늘 만드는 정도이다. 주로 줄을 자르는데 치아를 사용한다.
이런 치아구조로는 깨무는 힘이 약해서 치아로 무언가를 만들 수 없다. 치아로 만들 수 없는데 큰 뇌용적은 생존에 방해가 된다. 이런 엉거주춤한 자세로는 무게중심이 맞지 않아 달릴 수 없다. 에너지가 따따블로 든다. 인간의 직립자세는 연속적으로 미끄러지는 것이며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 하려면 턱이 짧고 목이 길어야 한다. 상체를 구부리면 안 된다. 인간의 뇌용적이 큰 것은 뇌에 기름이 가득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기름이 하는 역할은 전기의 절연체 기능이다. 뇌는 전기회로의 집합이므로 부도체가 있어야 하는데 기름을 부도체로 쓰는 것이며 부도체는 전두엽의 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은 감각적 판단과 이성적 판단 중에서 이성적 판단을 하는 동물인데 이는 두 가지를 동시에 yes라고 하는 모순 반응을 의미한다. 식물은 뇌가 없다. 태양이 에너지를 밀어넣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척력 밖에 없는데 모든 힘은 미는 힘이다. 식물은 태양이 밀어넣어준다. 동물은? 구조론의 딜레마는 밖에서 안은 있어도 안에서 밖은 없다는 것이다. 즉 동물은 외부의 것을 안으로 당겨올 수 없다. 그렇다면? 여러가지 방법을 쓴다. 대부분 안과 밖을 혼동시키는 수법이다. 원시동물은 히드라와 같은 강장동물인데 강장은 항아리와 같아서 인체의 안이면서 밖이다. 즉 항아리 안에 들어온 영양소는 아직 히드라의 밖에 있는 것이다. 어떻게 안으로 들여오지? 인간의 내장도 구조론적으로 바깥이다. 방법은 밀어넣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기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구조론에 인력은 없다. 문제는 남의 몸에 밀어넣을 수 없다는 거다. 왜냐하면 남이니까. 누군가가 무언가를 억지로 밀어넣으려고 하면 반사적으로 밀어내는게 정답이다. 그렇다면? 그림의 빨간선은 신경이다. 전기적으로 맞은편에 있는 두 세포가 연결되어 있다. 이때 A가 B로 밀어넣는다. B가 반발하면? 아니다. 전기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둘은 하나다. 반발하지 않는다. 문제는 하나는 밀고 하나는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적절히 타이밍을 잡아서 부도체로 절연시켜야 한다. 이때 회로망에 있는 다른 세포들은 방해하지 말고 대기타야 한다. 전기적으로 절연되어야 한다. 즉 여러 개의 세포가 마치 한 개의 세포처럼 하되 한편으로는 한 개의 세포가 되면 안 되는 거다. 역할분담을 하려면 두 세포가 하나처럼 행동하되 그래도 하나는 아니어야 한다는 복잡한 모순상황이 조직되는 것이며 이것이 뇌다. 뇌의 핵심적 역할은 부도체 기능이며 전기의 통행을 막는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전두엽의 발달은 많은 기름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뇌에 기름이 들어차서 인간의 뇌가 커졌다. 즉 인간의 뇌의 발달은 그냥 기름을 채운 것이다. 축구로 비유하자. 패스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다. 둘이 딴생각을 하면 패스가 안 된다. 내가 공을 넘겨줄 때 상대방도 그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패스를 했는데 동시에 상대방도 내게 패스를 하려고 하면 안 된다. 둘은 생각을 공유해야 하지만 동시에 공유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게 참 골때리는 상황인데 이 기능을 만들어내려면 복잡한 신경의 연결이 필요하면서 동시에 신경의 차단기능이 발달해야 한다. A와 B를 연결시켰다가 순간적으로 A와 B의 연결을 끊고 대신 C와 연결시키는 그런게 있어야 한다. 인간이 침팬지와 달리 이성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전두엽에 기름이 뻑뻑하게 들어차 있어서 회로단절이 잘 일어나기 때문이다. 신경들이 생각을 공유하다가 재빨리 하나를 막아버린다는 거다. 어쨌든 신경에 의해 세포들이 생각을 공유하므로 동물은 쉽게 복잡한 운동을 해낼 수 있다. 많은 섬모들 중 하나가 움직이면 일제히 움직이는 그런게 있다. 지네가 발이 400개라도 신발을 잘만 신는다.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 나는 화장실에 가기 싫다. 이 모순된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하다가 순간적으로 하나를 던져버려야 하는데 그건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동물은 두 생각을 동시에 하지 않는다. 화장실에 가고싶으면 가기 싫은 생각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은 이성이 없다. 이성의 괴상한 기능은 전두엽에만 있고 다른 뇌의 부분에는 없다. 다른 쪽은 전부 직렬회로라서 연속동작을 한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 다리, 허리, 어깨, 팔, 손목, 손가락 순으로 회로가 순식간에 연결되는 것이다. 끊는 기능은 없다.
이 소녀는 뇌의 절반인 670그램 넘는 낭종을 들어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 즉 사람은 뇌의 반을 없애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 것이다. 어차피 뇌는 기름통이니까.
인간의 이성이라는게 뭘까요? 그것은 서로 모순되는 두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동물은 그게 안 됩니다. 왜 인간은 모순된 생각을 할까요? 전두엽에 기름이 들어차서 절연되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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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모순을 동시에 품을 수 있고 처리할 수 있는 존재(뇌)일수록 더 지성적인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