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출처: http://newspeppermint.com/2016/09/05/m-ball1/



[필립 볼] 기묘한 진화의 필연성(1/2)

2016년 9월 6일  |  By:   |  과학  |  댓글이 없습니다

자연은 창조적일까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화려한 깃털의 열대 새들, 온갖 다양한 무늬와 모양의 나뭇잎들, 교묘한 전략을 가진 미생물들, 산을 오르고 바닥을 기고 하늘을 나르며 물 솟을 헤엄치는 눈부실 정도로 많은 생물들 말입니다. 다윈은 이런 생명의 “위대함”을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경이로운 끝없는 형태”라고 묘사했습니다. 이정도면 자연이 창조적이라는데 동의하시나요?

하지만, 이 모든 놀라움이 그저 무작위 변이를 자연선택이라는 체로 거르는 맹목적인 진화에 의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다윈의 이론이 자연의 이런 불가사의할 정도로 끝없는 창조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당신이 미개한 창조론자가 되거나 신의 섭리를 믿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취리히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안드레아 와그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윈의 이론은 당대에 가장 지적으로 중요하고 업적입니다. 어쩌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업적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진화에 있어 가장 커다란 미스테리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사실 그는 그 문제를 풀 시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와그너가 말하는 것은 어떻게 진화에서 혁신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와그너는 이를 “어떻게 이 생명으로 가득찬 세상이 만들어졌는가”라고 표현합니다. 자연 선택은 다양한 변이가 이미 존재할 때 가지치기를 통해 환경에 가장 적합한 적응을 찾는 데에는 믿을 수 없을만큼 강력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생물학자 휴고 드 브리스는 1905년 이렇게 썼습니다. “자연 선택은 적자의 생존(survival)은 설명할지 모르지만, 적자의 탄생(arrival)은 설명하지 못한다.” 지난 수년 동안 와그너와 다른 몇몇 과학자들은 어떻게 진화에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지를 연구해왔습니다. 이들의 연구 덕분에 우리는 이제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만이 아니라, 진화가 왜 작동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지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에 대한 흔한 오해 중에는 진화 과정에서 새로운 특성이 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유전자에 일어나는 임의의 돌연변이 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전자 돌연변이는 그 유전자와 관련된 특성을 생존에 덜 효율적으로 만들며, 어떤 돌연변이는 치명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연히 그 특성을 강화하는 돌연변이가 만들어지면 이 돌연변이를 가진 행운의 개체는 살아남게 되고 자신의 유전자를 집단에 퍼뜨리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개체의 특성이 특정 유전자들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특성은 “유전자 회로(gene circuits)”라고도 불리는, 서로의 활동을 통제하는 수많은 유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네트웍에 의해 결정됩니다. 당신은 어쨌든 진화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 있으니 언젠가는 “효율적인” 유전자 회로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계산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진화발달생물학은 인간을 포함한 여러 복잡한 생명체들이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이유가, 이들이 다른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혹스 유전자 회로(Hox gene circuit)라는 공통의 기본회로를 바탕으로 한 서로 다른 유전자 상호작용과 표현형의 네트웍 때문임을 발견했습니다. 뱀을 인간으로 만들기위 해 필요한 것은 완전히 다른 유전자들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같은 종류의 혹스 유전자회로에 다른 패턴의 연결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 두 척추동물은 그 회로에 약 40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40개의 유전자가 서로를 통제하는 가짓수를 계산해보면(예를 들어 활성화 혹은 억제만을 고려할 때) 가능한 회로의 수는 10^700에 달합니다. 이 숫자는 관찰가능한 우주의 모든 입자의 수보다 훨씬 큰 수 입니다. 그렇다면 맹목적으로 일어나는 진화가 우연히 혹스 유전자회로에서 “뱀”이나 “인간”에게 가능한 특성(또는 표현형)을 찾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어떻게 진화는 캄브리아기 어류의 혹스 네트웍을 인간에게 맞는 네트웍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요?

진화에서 혁신이 일어나기 위해 진화가 탐색해야할 무지막지하게 많은 가능성을 가진 공간은 유전자 회로만이 아닙니다.예를 들어 대사 네트웍(metabolic network)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유기체는 어떤 다른 연료로부터 에너지를 얻어야 합니다. 미생물의 대사는 주로 포도당, 에탄올, 시트르산 등에 의존합니다. 이상적으로는 효소의 대사 기관이 하나 이상의 연료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이들의 생존 가능성은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연료에 맞게 진화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흔한 대사 연료들만 고려하더라도, 가능한 대사 방법의 수는 천문학적입니다.

결합방식의 수 때문에 탐색 공간이 폭발적으로 가짓수가 늘어나는 문제는 단백질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단백질 하나는 특정한 형태로 연결되어 있고 접힌 수 십개에서 수 백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연에는 20개의 서로 다른 아미노산이 있습니다. 이들 아미노 산을 100개를 연결해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의 수는 10^130입니다. 그러나 진화를 위한 40억년이라는 시간은 10^50 개의 단백질을 만들 시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잘 작동하고 있는 단백질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그리고 RNA 가 있습니다. 한 때 염기쌍이라 불리는 유전자의 화학적 구성요소를 생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로 바꾸어주는 전령으로만 여겨졌던 RNA 는 오늘날 그보다 훨씬 중요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RNA 는 정보를 보관하는 유전자를 흉내낼 수 있으며, 또한 특정한 형태로 접혀져 화학 반응의 촉매가 되는 단백질 역시 흉내낼 수 있기 때문에 초기 생명체에 필요했을 다기능 분자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우리는 RNA 분자가 유전자 활성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와 RNA 를 통해 상호작용하며 이는 다른 유전자의 표현형에 대한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RNA 역시 진화에 있어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경우에 대해, 질문은 동일합니다. 와그너는 이를 현대 진화론과 유전학의 “불편한 진실(dirty secret)”이라고 부릅니다. 진화는 어떻게 해서 전체 가능한 선택들 중 일부 조차도 탐색할 방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작동하는 해답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진화는 어떻게 해서 당장 존재하는 해답에서 더 나은 새로운 해답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즉, 진화는 어떻게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것일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단순합니다. 그것이 보기보다는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진화 과정에서 탐색해야할 공간이 그 자체로 놀라운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다윈도,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을 유전학과 결합시킨 그의 후계자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수십억개의 그물

어떻게 진화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한 최초의 학자들 중에는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피터 슈스터가 있습니다. (그는 물리학자나 화학자, 생물학자라고 불릴 수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과학자”라 불리는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생명체의 진화가 RNA 로 시작했을 – 소위 RNA 세상 – 가능성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RNA 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1970년대에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촉매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된 형태로 접혀야만 합니다. 단백질의 경우 이 형태는 기본 구성요소들의 연결 순서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는 일종의 유전형 – 표현형 (genotype – phenotype) 문제와 비슷합니다. 여기서 유전형은 RNA 의 순서가 되며 표현형은 접힌 형태가 됩니다. 표현형은 생명체의 환경에 대한 적응을 결정하게 되며, 곧 자연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자연선택의 근원은 유전형이지만 – 후손에게 전달되는 것은 유전자라는 측면에서 – 표현형과 유전형 사이의 관계에는 수많은 미스테리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문제는 수많은 표현형 특성들이 어떤 유전형에 기록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극히 어렵다는 점에서, 후기-유전학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오늘날 가장 커다란 미스테리일지 모릅니다.

1990년대 슈스터와 그의 동료는 RNA 의 순서로부터 이 RNA 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형태 (이는 염기의 쌍을 통해 각 부분이 다른 부분과 어떻게 붙는지를 말하며 2차구조라고 불립니다)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100개의 염기로 만들 수 있는 RNA의 경우 10^23 개의 형태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진정 놀라운 것은 이들의 형태와 염기 서열과의 관계였습니다.

간단히 생각하면, 비슷한 염기 서열들은 비슷한 형태로, 곧 비슷한 표현형을 가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서열 공간, 곧 다차원의 공간으로 점 하나가 서열 하나에 대응되는 그런 공간은 여러 종류의 “형태 왕국” (아래 그림 a를 보세요)로 나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슈스터가 발견한 것은 이와 달랐습니다. 곧, 매우 다른 종류의 RNA의 서열들이 같은 형태로 접혔습니다. 즉, 완전히 다른 염기 순서로도 같은 형태의, 곧 같은 촉매 역할을 하는 RNA 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형의 관점에서는 형제인 이들이 서열 공간에서는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또한, 같은 종류의 형태를 연결한 네트웍은 거의 모든 서열 공간을 덮고 있었습니다. 한편, 작은 염기 서열의 연속된 변화를 통해 같은 형태를 유지하면서 마치 기차역을 따라 가듯 염기 서열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런 돌연변이는 적응적으로 이익도 손해도 아니기 때문에 중립 돌연변이(neutral mutation)라 불립니다. (실은 어떤 돌연변이가 정확하게 중립이 아니라 미묘하게 적응도를 낮춘다 하더라도, 많은 돌연변이들이 그렇듯이, 이들은 마치 아-중립 돌연변이인 것처럼 집단 내에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합니다.)

위의 사실들은 10^23개의 형태에 대해 모두 성립했습니다. 곧, RNA 서열 공간은 다수의 서로 엮인 네트웍으로 서로 물려 있으면서도 교차하지는 않는 방식으로 전 공간을 덮었습니다. 이는 고차원 공간의 한 점인 어느 염기서열의 수많은 이웃 점 들, 곧 작은 변이에 의해 도달가능한 염기서열에 완전히 다른 종류의 형태들이 존재하는 동시에, 제대로 된 길을 따라 간다면 같은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또한 완전히 다른 염기서열에 도달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래 그림 b 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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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은 RNA 염기서열 공간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첫째, 같은 기능을 하는 수많은 염기 서열이 존재합니다. 만약 진화가 자연 선택을 통해 특정한 기능을 “찾는”다면, 그 기능을 하는 수많은 해답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광대한 서열의 다차원 공간은 탐색가능합니다. 이는 표현형의 변화 없이 유전형을 계속 중립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이 RNA 를 진화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진화가 수많은 종류의 변이를 모두 시도해 볼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 수많은 해답이 있고, 이들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화는 작동했습니다.

스패인 국립 생명기술연구소의 수잔나 만루비아는 RNA 의 이차구조에 대한 보다 정교한 계산기반 연구를 수행했으며 유전형-표현형 지도에 수많은 중복이 존재한다는 위의 가설을 확인했습니다. 그녀는 RNA 의 이러한 특성이 생명체가 발생하던 초기의 지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전형에 복수 정답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RNA의 작은 변이에도 화학적 기능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RNA 세상을 등장하게 만든 핵심 요소일 수 있습니다.”



[필립 볼] 기묘한 진화의 필연성(2/2)

2016년 9월 6일  |  By:   |  과학  |  댓글이 없습니다

단백질 역시 이런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백질중에는 같은 형태로 같은 효소 기능을 하면서도(표현형), 공통된 아미노산은 20% 이하인 단백질들이 있습니다. 매릴랜드에 위치한 국립보건연구원(NIH)의 데이비드 립맨과 W. 존 윌버는 1991년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보였습니다. 이들은 단백질의 단순한 모델이 서열 공간의 확장된 네트웍 상에서 중립 돌연변이를 통해 공간을 옮겨 다닐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2001년 하버드 대학의 앤터니 키피와 잭 쇼스택은 같은 표현형을 가진 무수히 많은 단백질 서열이 있음을 실험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임의로 아미노산을 연결한 단백질이 세포에서 에너지 저장애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ATP 분자와 결합할 수 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다른 분자를 이동시키거나 새로운 형태로의 변환을 촉매하는 것과 같은 모든 유용한 작업을 하는 단백질은 ATP를 에너지 원으로 사용합니다. 따라서 ATP 결합체는 세포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됩니다. 쇼스택과 키피는 화학적 방법으로 80개의 아미노산을 임의의 순서로 연결한 후, 이들의 모든 변이를 만들어 그 변이들이 우연히 ATP 와 결합할 수 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이들이 조사한 단백질의 수는 이 80개의 아미노산으로 만들 수 있는 전체 단백질 종류에 비하면 매우 작은 값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6조개의 단백질 중에 그들은 4개의 ATP 결합체를 발견했습니다. 이 수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전체 순서공간에서 극히 작은 이 부분 서열공간에 이미 4개의 해답이 있다는 것은, 10^93에 이르는 전체 서열 공간 안에는 무수히 많은 수의 해답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와그너와 그의 동료는 이런 “진화가능한(evolvable)” (그들은 견고한(robust)이라 불렀습니다) 구조가 생물학적 복잡성의 세상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특성임을 보였습니다. 2006년 그와 그의 동료 후안 로드리게즈는 박테리아 E. 콜리의 대사 네트웍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E. 콜리는 모든 박테리아 중 가장 잘 연구된 박테리아이며 E. 콜리의 생화학적 대사경로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E. 콜리는 포도당을 흡수해 이로부터 자신이 필요로 하는 60여개의 기본 분자들을 만듭니다. 그러나 대사 과정 중 하나가 바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E. 콜리의 “유전자 이웃”이 포도당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가능한 E. 콜리의 유전자 이웃의 수는 매우 많지만, 와그너와 로드리게스는 그 중 1,000 개 이상의 이웃을 조사했고 그 중 수백개가 포도당만으로 살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이는 E. 콜리의 대사 네트웍이 포도당에 맞도록 미세조정된 것이 아니며,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더라도 역시 잘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구진은 대사 공간을 확장해 이웃의 이웃들 역시 포도당을 소화할 수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그들은 포도당 소화가 가능한 대사 네트웍을 대사 공간을 따라 진행한 끝에 E. 콜리와는 단 20%의 반응만을 공유하는 가상의 미생물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도 해답의 수는 무수히 많았고, 그 해답들은 가능 공간에서 중립 돌연변이들을 통해 도달가능했습니다. 진화는 수많은 미생물을 이 복잡한 도서관으로 보내 좋은 해답을 찾는 것으로 생명의 문제를 풀었던 것입니다. 와그너는 “대사 공간”에서 이런 예상치 못한 공간구조를 발견했을 때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고 말합니다.

유전자 회로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와그너는 물리학자 올리비어 마틴과 가상의 유전자 회로 통제 네트웍을 조사했습니다. 그들은 구성요소의 활성화를 서로 통제하지만 표현형은 같은 패턴을 가지는 네트웍을 조사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전자 A, B, C 로 이루어진 네트웍이 있다면, 유전자 A 가 유전자 B 를 억제할 수도 있고, 유전자 C 가 유전자 B 를 억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열 개 정도의 유전자만을 고려해도 가능한 네트웍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연구자들은 오직 일부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유전자 회로는 일반적으로 같은 표현형을 가지는 수십에서 수백개의 이웃을 가졌으며, 또한 구성 요소가 90% 까지 다른 회로 중에도 같은 표현형을 가지는 회로가 존재했습니다.

이는 유전자 회로가 가진 묘한 특징인 ‘견고함’을 설명해 줍니다. 1990년대 후반, 스탠포드의 연구진은 맥주 효모의 유전자에서 서로 다른 유전자 하나를 제거해 6천여개의 변종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원래 효모처럼 잘 번성했습니다. 다른 유기체들도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유기체의 상당수 유전자는 제거해도 큰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는 다수의 유사한 유전자 회로가 원래의 유전자 회로와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알면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곧, 견고함은 혁신과 보완적인 관계라고 말입니다. 진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와 특징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같은 성능을 내는 다른 대안들이 많아야 하므로, 결국 작은 변이에 대해 그 시스템은 ‘견고’해야 합니다. 이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과도한 유전자 결정론을 피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의 표현형은 유전자 하나가 아니라 유전자들이 만드는 네트웍에 보다 의존합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유전학 통제 연구소의 요하네스 예거는 와그너의 작업이 “실로 혁신적이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초파리의 성장을 제어하는 유전자 네트웍의 진화 발달 생물학에 이들의 아이디어를 테스트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실험 결과와 그의 주장이 일치합니다.” 그들은 초파리 기관의 발달 순서를 바꾸는 유전자 네트웍을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곧, 전체 유전자를 바꿀 필요 없이 몇 가지 통제 기제를 조작하는 것만으로 그것은 가능했습니다. “이는 여러 초파리 종이 보이는 다양한 표현형을 설명합니다. 모든 종류의 패턴이 같은 종류의 유전자들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진화는 자연의 법칙?

와그너의 발견은 생명의 한 특성을 보여주며, 이는 생명체를 만드는 진화과정 보다 더욱 심오한 것입니다. 그들은 진화가 일어나는 공간의 특성을 밝혔으며, 진화가 가능한 이유가 그 공간이 매우 특별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임을 보였습니다. 그 구조란, 유전자, 대사, 단백질 혹은 염기의 서열이 기능적으로 유사한 조합으로 연결된 거대한 거미줄로 다차원 공간을 채우고 있으며 각각은 또한 수많은 이웃들과 함께 엮여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었던 원인을 아미노산이나 설탕, 등 생명체를 구성하는 화학적 재료의 탄생이라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화학적으로 적당한 재료가 만들어진 것은 행복한 우연 정도의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로 보입니다. 어려운 부분은 어떻게 이런 재료들로 가득찬 수프 상태에서 처음 진화가 시작되었나 하는 것입니다. 만루비아는 이 최초의 창조적 단계가 중립(혹은 아-중립) 네트웍의 풍부하고 밀접한 엮임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아직 생명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RNA 순서쌍들이라 하더라도 우연한 상황에서 어떤 유용한 기능을 하게 될 가능성이 충분히 크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표현형이 서열 공간에서 충분한 부피를 차지하기만 하면, 특별한 기능을 공짜로 얻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이를 만족하는 RNA 서열이 귀하지 않음을 보였습니다. “따라서 진화의 과정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화 과정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충분히 많은 수의 해답들이 준비된 것입니다.” 특히, 어떤 서열은 자신을 복제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진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자연 선택은 어중간한 해답을 충분히 효율적인 해답으로 빠르게 변화시킵니다.”

이런 생체분자의 조합이 만든 특별한 공간 구조는 자연을 기존의 안정된 상태에서 작은 변화만을 보는 정도로 국한시키는 대신 보다 대담하고 창조적인 혁신을 시도하게 만들었습니다. 유기체는 적합도의 손실 없이도 중립 돌연변이의 거미줄을 따라 무작위로 돌아다닐 수 있었고, 같은 표현형이면서도 전혀 다른 이웃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환경이 변했을 때 이에 맞는 혁신적인 해답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중립적인 돌연변이위의 표류는 유기체로 하여금 그들이 시작점에서 출발했다면 도달하지 못했을 적응적 변이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진화에 있어 이러한 무작위 표류의 역할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진화생물학자 존 타일러 보너는 이 무작위 표류가, 특히 다양한 형태와 구조를 가지는 작은 유기체 – 규조나 방산충과 같은 해양 미세 유기물 – 에 있어서는, 이들이 반드시 최적의 적응상태로 미세조절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더 중요한 것일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미생물들의 창조성과 예술성은 생물학자들을 놀라게 했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들이 보이는 다양성과 독창성의 원인을 이해하게 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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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해켈이 그린 다양한 방산충


특히 와그너와 다른 이들의 업적은 진화에 있어 오랜 논쟁의 주제였던 집단의 적응과 개체의 적응 사이의 충돌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어떤 박테리아들은 개체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과한 정도의 돌연변이를 겪습니다. 만약 대부분의 돌연변이가 적응성을 낮춘다면, 이는 개체의 입장에서는 전혀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말하면, 집단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는 것이므로 이러한 개체의 과한 돌연변이가 이로운 특성이 됩니다. 하지만 와그너가 보인 것처럼, 견고한 네트웍이 중립적인 돌연변이의 확률을 높인다면, 바이러스와 같은 과도한 돌연변이도 개체에는 그렇게 나쁘지 않으면서 집단에게는 유리한 성질이 됩니다.

아직도 질문은 남아 있습니다. ‘왜 진화의 선택공간은 이렇게 견고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유전형 네트웍이 그렇게 얽혀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와그너는 인정합니다. 단백질 진화에 대한 전문가인 시애틀 프레드 허친슨 암 연구소의 제시 블룸은 이 질문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진화가 이런 성질을 만족할 때에만 가능하다면, 진화가 이루어진 뒤에는 모두가 그런 성질을 가진 것으로 보이겠지요.” 그러나 그 역시 이를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임을 인정합니다.

어쩌면 이 문제는 생물학의 수준을 넘는 문제일지 모릅니다. 와그너의 연구실에 포닥으로 있었고 지금은 인도 마드라스 공대에 있는 카르틱 라만은 유전자가 아니라 이진 논리 기능을 가진 전기 회로의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진 회로에서 이와 같은 기능적 동등성이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16개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특정한 논리적 기능을 가진 이 회로에서도 라만은 유전자 회로와 같은 진화가능한 구조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이러한 특성은 회로가 충분히 복잡할 때에만 나타났습니다. 회로의 구성요소가 너무 작아지면, 작은 변화로도 기능은 파괴되었습니다. “더 복잡할 수록, 변화에 대해 더 강했습니다.” 이 발견은 전기회로 디자인에도 다윈의 진화론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을 뿐 아니라 진화가능성, 곧, 창조성과 혁신성이 생물학에서만이 아니라 복잡한 네트웍의 기본적인 특징일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만루비아 역시 복잡성이 핵심이라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효율적인 표류능력은 유전자 공간이 고차원일때만 가능하다는 것은 명백해 보입니다.” 이는 차원이 높을 수록 진행할 수 있는 방향이 많으며 따라서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서열에 있어 가능한 이웃의 수가 증가할수록 이웃 중 원래의 서열과 동일한 기능을 발휘할 이웃이 존재할 확률 역시 증가합니다.” 그녀는 이로써 내릴 수 있는 한 가지 결론으로, 적어도 변화하는 환경에서 거주하는 유기체는 적응적으로 더 큰 게놈을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더 많은 염색체를 유지하고 복사해야 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더 견고한 게놈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디어들은 진화가능성과 혁신가능성이 생명의 특성만이 아니라 정보 자체의 특성 일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이는 슈스터의 한 때 동료였던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만프레드 아이겐이 지지하는 생각입니다. 그는 다윈의 진화가 생물학에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며, “물리 법칙”으로 복잡한 시스템에서 정보가 구성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만약 그가 옳다면, 생명의 탄생은 환상적인 우연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필연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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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과학이 구조 일원론 으로 향하는 느낌 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9]id: 태현태현

2016.09.09 (16:42:20)

자세히 읽진 않았지만 제목만으로도 구조론적 느낌이 와주네요.

더 아느냐 덜 아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원본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


지식의 바벨탑을 쌓을 것인가. 

원본의 금광을 팔(중의) 것인가. 


혹은 원본이 뻗어 있는 금맥을 추적할 것인가.

결국은 일원론으로 수렴.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6.09.10 (02:54:20)

- 진화가능성과 혁신가능성이 생명의 특성만이 아니라 정보 자체의 특성일 가능성을 암시

- 다윈의 진화가 생물학에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며, “물리 법칙”으로 복잡한 시스템에서 정보가 구성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결과

- 생명의 탄생은 환상적인 우연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필연적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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