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지향의 세계관 근대주의가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얼개는 원자론과 인과율, 결정론, 요소환원주의 그리고 진화론이다. 이들 서로간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조론은 가치지향의 세계관을 제시한다. 능률이 아니라 가치다. 힘이 아니라 미다. 경쟁이 아니라 소통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방법이다. ● 능률지향적 세계관 - 원자론에 기반하며 힘과 경쟁을 추구한다. 구조론이 기존의 과학적 이론과 이에 기초한 세계관을 전면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변증법적으로 계승 발전 심화시킨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한다. 구조론은 원자론의 대척점에 서 있다. 원자론은 인과율에 기반한다. 구조론은 인과율을 구성하는 원인과 결과의 논리를 벼리와 갈피의 논리로 대체한다. 인과율의 원인은 단지 결과에 작용할 뿐이지만 구조론의 벼리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갈피를 통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갈피를 잡아간다. 구조론에는 인과-결정론적 세계관에 없는 우선순위와 접근경로와 피드백 개념이 있다. 시행착오에 따른 오류시정이 있다. 제어(制御)개념이 있는 것이다. ● 결정론 무오류주의 - 시계장치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밀하게 작동한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제어과정이 존재하므로 결과를 원인으로 되돌리는 요소환원주의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으로 증명된다. 요소환원주의가 부정됨에 따라 결정론적 세계관도 부정된다. 존재는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부분 오류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존재는 무오류가 아니다. 결정론과 연결된 무오류주의의 바탕에는 신(神)이 창조한 세계는 당연히 무오류여야 한다는 기독교적 관념이 자리하고 있다. 서구사상 중심의 강단학계는 기독교 영향에서 비롯한 무오류주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좌파 지식인들이 특히 그러하다. 세상에 무오류는 없다. 존재는 스스로 오류를 시정한다. 정치도 역사도 문명도 자연도 생태계도 인간도 그러하다. 존재의 자기치유능력을 믿어야 한다. 오류를 인정하는 정치, 오류를 인정하는 과학, 오류를 치유하는 생명, 오류를 치유하는 자연, 스스로 오류를 시정하며 진보하는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결정론적 세계관을 헤겔의 변증법적 세계관으로 대체해야 한다. 변증법적 세계관은 벼리와 갈피 사이에 피드백에 의한 단계적 오류시정의 가역과정이 있다. 헤겔의 변증법에는 맹아단계의 밸런스 개념이 있다. 진테제가 밸런스다. 밸런스가 오류를 시정한다.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식의 결정론과 다르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장구조이론으로 대체해야 한다. 생장구조는 벼리와 갈피 사이에서 지배종속관계로 인한 제어-밸런스의 구조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생장구조에는 포지션들의 결집에 의한 모듈과 모듈의 집적에 의한 패턴이 있다. 모듈과 패턴 사이에 방향성이 있다. 그 방향성 안에 가두는 것이 제어다. 생태계는 돌연변이와 생존경쟁에 의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생장구조의 밸런스에 의해 제어된 것이다. 진화한다는 것은 곧 제어된다는 것이다. 경쟁이 아니라 제어가 진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자연의 생태계가 진화하는 원리와 인간 사회의 문명이 진보하는 원리는 같다. 생장이 진행되면 닫힌계 안에서 밸런스가 무너진다. 그때마다 더 높은 수준의 제어장치가 격발되곤 한다. 그 결과로 종은 진화했다. 인간 사회의 정치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은 개인에서 가족, 부족, 민족, 세계로 확대됨에 따라 더 정밀한 제어장치를 가동한다는 것이다. 원자-결정론적 세계관에 지배되는 근대주의가 세상을 ‘질서’로 이해하고 있는데 비해 새로운 세계관은 질서와 가치의 변증법적 대결로 이해한다. 테제와 안티테제가 있다. 질서와 가치다. 질서는 힘(에너지)을 낳고 힘은 능률을 지향한다. 가치는 미(포지션)를 낳고 미는 완전성(포메이션)을 지향한다. 세계관의 차이가 있다. 힘과 질서를 추구하여 경쟁으로 피폐해질 것인가 아니면 미와 가치를 추구하여 미학적 완성으로 소통을 이룰 것인가? -근대의 능률지향적 세계관- ● 원자론 ≫ 인과율 ≫ 요소환원주의 ≫ 결정론 ≫ 진화론 -가치지향의 새로운 세계관- ● 구조론 ≫ 제어원리 ≫ 엔트로피 ≫ 변증법 ≫ 생장구조이론 세상을 질서와 힘, 능률, 경쟁 그리고 진화로 보는 능률지향의 근대주의 세계관과 가치와 미, 완성, 소통 그리고 창조로 보는 새로운 세계관이 있다. 두 세계관은 충돌하지 않는다. 변증법적으로 통합된다. 세상을 질서로 보는 근대의 관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반쪽을 이해해야 비로소 완전해진다. 질서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가치의 세계가 있다. 완전히 다른 관점이다.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떠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