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이상우
read 2072 vote 1 2016.07.12 (13:53:02)

남자 애들이 운동장에서 아침 축구를 한다.
근데 오프 사이드 인데도 아무도 뭐라고 안한다.
알고보니 그렇게 세 골을 넣었단다.
어이가 없다.
이유를 물으니 동네축구는 오프사이드가 없단다....


이 무슨 소린가?
내가 우리학교에 온 지난 5년간 오프사이드가 있었는데...
축구에서 오프사이드 반칙 규정이 없으면 플레이가
매우 단순해진다. 재미가 없어진다.
오프사이드 규칙은 축구경기의 밸런스다.
괜히 생긴 규칙이 아니란 말이다.


그뿐인가?
매번 골키퍼의 롱킥으로 축구를 시작한다.
롱킥은 말그대로 운빨 킥이다.
우리팀 선수가 잡으면 좋고 못잡으면 말고..
우리팀 선수가 잡아도 키핑능력이 잘 안되니까 그건 운일 뿐
실력이 아니다. 이러니 애들 실력이 늘지 않는다.


애들 사이에 오프사이드 반칙이 없어진 이유는
축구를 제일 잘하는 녀석이 제멋대로 규칙을 정해서이다.
근게 그게 먹힌다. 축구에서는 잘하는 녀석 입김이 가장 세다.
이 녀석이 축구 분위기를 좌지우지 해서 참여하는 애들도 줄었다.


애들 축구도 섬이 되고 말았다.
섬. 에너지도 얻지 못하고
있어야 할 규칙은 없고,없어야 할 규칙은 있는
이상한 집단이 되어 버린다.
아침 축구를 즐기고 싶어도 형들의 비난과 몰래 린치가 무서워서
안오는 애들이 많다. 아침 축구하는 애들이 열 두 명 밖에 안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현상은 학교 어느 곳에나 있다.
그런데 교사들은 그걸 모른다. 아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사회에서 하는 나쁜 경험을 그냥 여기서 미리 하는 거라고..


과연 그럴까?

교사 한 명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나는 매년 그렇게 해왔다. 그리고 나 혼자 하지 않는다.
동료교사와 함께 하고 학부모님들과 함께 한다.
그렇게 축구 분위기를 바꿔놨다.
그런데 올해 그냥 두니까 이렇게 도루묵이 되었다.
좋은 문화를 만드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후퇴하는 건 순식간이다. 참 허무하다.

축구하는 이유는 멋진 경기를 만들기 위해서,
맘껏 뛰면서 즐기기 위해서 하는 거다.
이기면 좋고, 지면 약간 아쉽지만 그래도 좋다.
이 부분을 끊임없이 강조해야
그나마 애들이 승부보다는 경기 자체를 즐긴다.


정유진 선생님 말씀대로 놀이의 하수, 중수, 고수가 있다.
우리학교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그 녀석은 놀이의 하수다.
규칙도 안지키고 제멋대로니까. 좋은 영향력은 주지 못할 망정,
축구를 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만 끼치니까,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알고 있지 못하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고 자기 마저도 망치고 있으니까.


독재도 나쁘지만, 제일 나쁜 것이 방임이다.
방임할 때 애들은 가장 악한 모습을 보인다.
애들속에서 벌어지는 독재가 가장 악날하니까.


내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최민식처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애들과 대화로 풀어나갈 것이다.
그 축구 엄석태와 따로 만나서 얘기할 거다.
굳이 혼낼 필요도 없다.
아이 얘기를 들어보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함께 찾아본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혁신부장님이 지역 리그전을 계획하고 교장선생님과 상의중이다.
고립되면 썪는다. 망한다.
썪은 물 계속 휘젓는다고 깨끗해지지 않는다.
깨끗한 물이 들어와야 깨끗해진다.
애들에게 지역 축구 리그전(비슷한 형편의 몇 개 학교들이 하는)이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다.
자부심을 심어주고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앞으로가 기대된다.


[레벨:8]열수

2016.07.12 (23:09:28)

훌륭하십니다. 이상우선생님.
[레벨:5]상무공단의아침

2016.07.13 (00:03:07)

오프사이드란게 선심이 있어야 지적할 수 있는데


초등학생 축구에 공 안 차고 선심볼려는 친구가 있을까요?


선심이 있다고해도 월드컵에서 경험많은 심판들조차 

엄청 오심이 많이 나오는게 오프사이드인데


걍 오프사이드 없는게 저는 좋을것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이상우

2016.07.13 (00:08:31)

그러면 항상 얌채같이 골대 근처에 있다가 골만 줏어먹는 플레이를 하지요. 그리고 문제는 없애고 안없애고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강요로 결정되었다는 거지요.
[레벨:4]MJEJ

2016.07.13 (05:20:46)

그런경우라도 경험상 옵사있는걸로하면 완전 어이없는 누가봐도 옵사이드인 플레이하는 경우는 없어집니다.. 애매한경우는 그냥 인플레이 하면되구요 애들노는거니까 빡빡하게 할필요는 없어도 축구에 옵사이드는 꼭필요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6.07.13 (07:42:40)

과속 단속 경찰이나 카메라가 없어도 도로에 최고속도 제한 표시판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운전자들의 자세가 차이나지 않을까요?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1232 독서메모 “거짓말의 진화” 엘리엇 애런슨, 캐럴 태브리스 공저 image 1 이기준 2011-10-11 2968
1231 잡스는 '국가'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 일반이론 2011-10-11 3241
1230 소수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요? image 1 카르마 2011-10-10 2775
1229 태양의 수소가 소모되는 걸 보면.. image 2 카르마 2011-10-07 4305
1228 박원순과 이 시대의 대중 image 아란도 2011-10-05 3033
1227 박원순은 무소속으로 남아야 3 일반이론 2011-10-04 2991
1226 식료찬연에서의 모임 모습 image 7 태곰 2011-10-03 3551
1225 낸시랭을 비난하는 자들 image 6 김동렬 2011-10-02 4515
1224 우리가 사는 세상위에 또다른 세상이 있을까요? image 3 카르마 2011-10-01 3059
1223 어쨌든 박원순 image 1 꼬레아 2011-10-01 2675
1222 아이돌 유감 눈내리는 마을 2011-09-30 2594
1221 독서메모 "영원한 어린아이, 인간" 클라이브 브롬홀 지음 image 2 이기준 2011-09-29 3396
1220 창경원은 창경궁으로, 장충단은 ? image 꼬레아 2011-09-29 3623
1219 공간이동 방법 워프..웜홀.. 4 카르마 2011-09-29 3885
1218 중국인의 내공(?) 다원이 2011-09-28 2661
1217 인생의 목표가 무엇일까요..? image 9 카르마 2011-09-27 3463
1216 독서메모 "실직자 프랭크, 사업을 시작하다" 데이비드 레스터 지음 image 2 이기준 2011-09-27 3080
1215 시력이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6 바다숲 2011-09-26 4142
1214 미학적 아름다움 1 : 1.618 image 2 카르마 2011-09-26 3515
1213 자동차보험료가 비싼이유 1 곱슬이 2011-09-25 3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