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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153 vote 1 2016.07.09 (19:07:20)

     

    너는 턱도 없이 이 별에 초대되어 온 손님이라고 믿겠지만 그럴 리 없잖아. 그래서 위태롭다. 아기 입장에서 믿을 수 있는건 엄마 밖에 없다. 아니다. 엄마도 적일 수 있다. 사춘기 때나 되어야 느끼는 거지만. 나 자신도 적일 수 있다. 이건 대화가 통하는 사람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말한다. ‘오른 쪽 길로 가라!’ 그러면 당신은 ‘예!’ 하고 복종하겠는가? 노예라면 그럴 수 있다. 사람이라면 반발한다. ‘흥 제까짓게 뭔데 이래라 저래라 간섭이야. 재수없어!’


    당신은 사람이므로 반발하여 왼쪽 길로 간다. 순순히 따라오는 개와 다르다. 그래서 위태롭다. 어떤 사람이 말한다. ‘오른 쪽 길로 가라!’ 그러면 당신은 역시 화를 내고 반발하겠지만. ‘우리가 은행을 털기로 했거든. 네 몫은 1/3이다. 됐지?’ 그렇다면 호응한다. 단 ‘은행금고 문이 열리는 순간 저 새끼부터 쏴버려야지.’ 이건 은행털이의 계획에서 파생된 당신의 계획이다. 이런 정도의 계획 하나는 품고 있어야 한다. 그 의도를 들키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 예수의 계획을 들었는가?


    70억을 터는 계획을 세웠는데 어찌 네 몫이 없겠는가? 예수는 이렇게 말한 거다. 소크라테스도 같고, 석가도 같다. 인류를 통째로 털어먹을 계획을 들었다면 당신은 흥분해도 좋다. 신의 커다란 계획이야말로 나의 작은 야심이 둥지를 틀 기반이 된다. 우주의 계획, 진리의 계획 안에서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된다. 신과의 합일, 우주와의 합일이 거기에 있다. 하나의 계획이 또다른 계획을 복제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유도되기 때문이며 그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러므로 의심해야 한다. 내가 문득 지구에 내던져졌다면 엄마도 믿을 수 없고, 우주도 믿을 수 없고, 나도 믿을 수 없다. 신도 믿을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 그럴 때 그대 야심의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다. 당신이 사건의 주최측이 될 때라야 흥미를 가질 수 있다. 신의 거대한 계획에 빨대를 꽂고 거기서 에너지를 빼낼 때, 그 에너지가 내 안에 가득히 충전되면 만날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비로소 당신도 누군가를 털어먹을 수 있다.


    이런 이야기 하면 꼭 초딩수준으로 알아먹는 사람 나온다. 적이라고 하면 인민군으로만 아는 사람 있다. 의사결정의 방해자를 말하는 것이다. 고프면 먹는건 새끼곰이고 엄마곰은 고파도 먹지 않는다. 새끼를 먹일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그랜드 디자인을 내놓아야 한다. 어떤 것이 옳다고 해서 그것이 따를 이유는 되지 않는다. 엄마곰이 배고파도 생존본능을 극복하듯이 본능이라도 따르지 않는다. 사랑하므로 사랑하지 않는다. 좋으므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짜가 시작된다.


    자기 계획에 끌어들이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좋아서 사랑한다는 식의 홍상수 드립은 안쳐주는 것이다. 세상을 엿먹이려는 자신의 계획에 동참시켰다고 말해야 따봉을 받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이야기다. 어떤 일의 결과에 서는 것은 안 쳐주는 것이다. 원인에 서야 한다. 나와 타자의 경계에서 무너지는 것은 그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통째로 털어먹을 계획이 나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행복으로 움직여지는 존재가 아니라 에너지로 움직여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옳은 길로는 가지 않을 것이며 유리한 길로도 가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만남의 길로만 가는 것이니 그곳에 계획이 있고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계획에 의해 동지가 된 이후라야 어색하지 않을 수 있다. 억지웃음 필요없고 억지 위악도 필요없게 된다. 비로소 사랑할 자격을 얻는다. 무사는 칼을 얻은 후에야 폼을 잡을 수 있고 군자는 계획을 품은 후에야 말을 걸 수 있다. 화가는 그릴 수 있고 악사는 연주할 수 있다. 그대는 노래해도 좋다. 사랑해도 좋다. 자세 나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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