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구조론은 언어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사실을 들여다보지 않으므로 양자역학 어쩌고 하는 물리학 지식은 필요없다. 필자가 양자역학을 언급하는 것은 구조론과 일치하더라는 확인일 뿐 양자역학에서 구조론이 나온게 아니다. 수학을 떠올리면 된다. 수학은 1이 이러면 2는 당연히 저러해야 한다는 당위의 논리다. 왜냐하면 1을 결정할 때 2도 결정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1을 정하고 난 다음에 2를 정하는게 아니다. 어떤 임금이 처음 야드의 길이를 자기 코 끝에서 손가락끝까지 길이로 정했다. 그 임금의 키는 182센티다. 보통 양팔간격이 신장과 비슷하다. 1야드가 정해졌을 때 2야드, 3야드 다 정해졌다. 원인이 정해졌을 때 결과도 이미 정해졌다. 우리가 원인과 결과의 선후를 논하는 것은 거기에 사건을 입혀놓은 것이다. 사건을 입히고 관측자가 등장하면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도출된다. 구조론은 질≫입자≫힘≫운동≫량으로 모두 설명한다. 질을 결정할 때 입자와 힘과 운동과 량도 미리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질 다음에 입자가 아니다. 질 다음에 입자인 것은 구조를 외부에서 때렸을 때 확인되는 순서일 뿐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모두 동시에 있다. 관측하면 질이 먼저지만 사실은 입자도 질에 포함된다. 힘도 운동도 량도 질에 포함되므로 순서가 없다. 태초에는 태초가 없다. 순서에는 순서가 없다. 처음에는 처음이 없다. 그러므로 처음에 뭐가 있었냐는 질문은 틀렸다. 우리는 시간의 순서대로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 보면 100억년이 모두 겹쳐보일 수 있다. 우리는 TV화면을 면으로 보지만 브라운관은 선으로 출력한다. 시간순서대로 뜨지만 동시에 보는 것이다. 시간의 등장은 질이 깨진 다음 즉 빛이 프리즘을 통과한 다음 어떤 둘이 중첩되어 등장했을 때다. 처음에는 1이므로 입자, 힘, 운동, 량이 관측되지 않는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개념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인과법칙이 성립되지 않는 단계다. 물질도 원소도 없다. 공간도 없고 시간도 없다. 세상은 무엇으로 되어 있다는 주장은 시간 빼고 공간의 집합으로 보는 관점이다. 숨은 전제가 다대하다. 이미 많은 거짓말로 판 짜놓고 하는 이야기다. 세상은 그 무엇으로도 될 수 없다. 무엇으로 되었다는 말은 요소의 집합이라는 전제를 깔고들어가는 거짓말인 것이다. 구조론에 플러스는 없으므로 집합될 수 없다. 즉 세상은 무언가의 집합이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세상은 에너지의 요동으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세상 안에 들어가서 보는 관점이며 바깥에서 보면 다른 풍경이 연출된다. 세상 안에 잡혀있는 사람에게만 시간이 해당되는 것이다. 세상 바깥에서 보는 관점을 얻어야 진실을 볼 수 있다.
우주 바깥의 우주는 두꺼비 등의 혹처럼 생겼다고 그림으로 그려서 설명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아는 시간은 그 두꺼비 등의 혹 하나에만 적용되고 그 바깥의 다른 혹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간다는건 착각입니다. 오락실에서 게임하는 동네 형들은 아바타가 점차 성장한다고 느끼지만 사실 프로그램에 다 깔려있는걸 조립한 것에 불과한 거죠. 꼬부기가 나이를 먹어 어니부기로 진화한게 아니고 원래 저장되어 있는 그림을 불러낸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