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세상과의 게임이다. 게임에 이겨서 기쁘고 져서 슬프다. 게임에 이기면 또다른 게임이 기다리고 있고, 게임에 지면 다른 사람의 게임을 관전하는 벌을 받는다. 게임 바깥으로 나가면 허무 뿐이다. 게임에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인생의 답은 아니며, 오직 나의 게임을 설계하는 것만이 진실하다. 남의 게임에 끼어들었을 때 거기에 진정한 승리는 없다. 패배도 없다. 기쁨도 없다. 슬픔도 없다. 그것들은 나의 게임으로 갈아타기 앞둔 예행연습에 불과하다. [생각의 정석 103회] 많은 경우 사람들은 남의 잘못을 두고 분해한다. 어떤 사람이 나를 속여서 100만원을 해먹었다면 그 사람 잘못이다. 그런데 왜 내가 화를 내지? 화는 당연히 잘못한 사람이 내야 한다. 내가 일하다가 잘못해서 실패하면 화가 나듯이, 그 사람이 인생을 살다가 잘못 살면 그 사람이 화가 나야 한다. 그런데 살펴보면 정작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멀쩡하게 있는데, 엉뚱한 사람이 화를 낸다. 어떤 사람이 시험을 쳐서 0점을 맞았다면 그 사람이 화를 내야 한다. 그런데 그 시험을 채점해준 사람이 화를 내고 고통을 느낀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그 사람의 범죄현장을 목격한 증인에 불과하다. 그 범죄자를 비웃어주면 된다. 내 주머니에서 현금 100만원이 빠져나갔지만 그것은 평소 쌓아둔 신용으로 해결하거나, 혹은 평소 넣어둔 저축으로 해결하거나, 혹은 평소에 해둔 욕심 줄이기 훈련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 100만원의 이탈은 내게 주어진 일에 불과하다. 일거리 받으면 즐겁다. 일하면 된다. 늘 하는 일이 그런 돌발사태에 대한 대비가 아닌가? 만약 내 자식이 갑자기 백만원을 달라고 하면 화가 날까? 아니다. 부모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자식에게 백만원을 준다. 그 돌발사태는 자신의 계산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범죄자의 해꼬지 역시 계산하고 대비하는게 할 일이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주도한 나의 게임만이 진실하다. 그 게임이 사회가 가는 방향과 합치되면 우리는 그것을 선善이라고 한다. 내가 사회에 선을 행하면 성공이고, 내가 사회에 악을 행하면 실패다. 선이 반드시 남을 돕는 불우이웃돕기식 선행인 것만은 아니다. 세상의 부름에 호응하면 선이다. 나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더라도, 혹은 일각의 반대에 부딪히더라도 큰 틀에서 사회의 발전방향과 맞으면 곧 선善이다. 인간이 하는 일은 의사결정이며, 그 의사결정은 대칭된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며, 그 선택이 세상과 호응하면 일은 다음 단계로 진도를 나가게 되고 그것이 곧 선이다. 그것이 과연 선인지 헷갈리므로 게임이다. 많은 경우 세월이 흐르고서야 뒤늦게 그것이 선이었음이 밝혀진다. 다음 단계로 진도를 나가봐야 답을 아는 것이다. 독립투사들의 항쟁도 일제강점기에는 동아일보 지면에 살인강도로 보도가 되었다. 현재의 평가, 이웃들의 평가에는 신경쓸 이유가 없다. 인생의 게임은 바로 그 주변의 비뚤어진 시선들을 꺾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 시선들을 꺾어서 보기좋게 이겨보여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속여먹었다면 그 사람의 게임이다. 그 속임수에 성공하건 실패하건 잘못을 저지른 사실 자체로 실패다. 사회의 진보방향과 일치하지 않으면 실패다.
남의 게임에 관전자가 되지는 맙시다. 혹은 관전하는 중에 내 호주머니에서 현금이 빠져나갔더라도 신경쓰지 말자구요. 어차피 한 사람의 일생동안 적게는 5억에서 많게는 20억 정도가 내 계좌를 지나갑니다. 20억이 내 통장을 거쳐갔다 해도 실제 내 몸을 짜릿하게 통과하는 돈은 1/10도 안 됩니다. 도둑이 가져간 100만원은 그 20억이라는 숫자 안에 확률로 존재합니다. 어차피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씀. 그것을 고민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거기에 맞는 보험상품을 설계해야할 수학자들입니다. 수학자의 고민은 수학자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남의 고민을 훔쳐가지 마세요. |
[생각의 정석 103회] 스타워즈, 시스의 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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