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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다원이
read 3039 vote 0 2016.04.24 (17:01:13)

우연히 골프를 시작한지 한 2 년이 되어간다. 난 골프를 스포츠라기 보다는 재미있는 '놀이'라 부르고 싶다.

이 골프란 게 희한하다. 조금 연습하면 누구나 쉽게 어떤 경지에 도달할 만큼 쉬운 것이었다면, 하다가 뭔가 알만한 때가 되어 싱겁다는 느낌이 들어 걍 그만뒀을 것이고, 그렇다고 뼈빠지게 노력해 봐야 기초적인 레벨에 도달하기도 벅찬 놀이였다면 언감생심 애초에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놀이가 아주 적당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어서(나만의 오해일 수도), 조금 더 하면 뭔가 할 수 있다는 미끼를 던진다.

그럭저럭 한 2 년 가까이 독학으로 애만 고생을 하다가 어느 날, 단 한번의 스윙을 제대로 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보았는데, 자그마치 20 여개.

스윙이란 게 불과 1.5 초 내외에 완결이 되는 것인데, 그 짧은 시간에 이 모든 걸 챙기면서 스윙을 한다는 건 인간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거의 빠짐없이 매일 조금씩이라도 연습을 했고, 매 번 연습 결과를 메모하고 분석을 했다. 그래도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소위 실력이 늘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구조론을 들락거리며 얻은 것 하나가 생각이 났다. "건조하게 뼈를 본다"는 것과 "중복은 안 쳐준다"는 것. 그것을 적용해 보았다. 나는 이 말을 간단히 "군더더기를 버리고 핵심을 본다"로 해석했다.

나는 그 20 여개 첵크포인트 하나하나에 계층을 매겨 분류를 해 보았다. 그랬더니, 그 많은 첵크 항목이 다섯 개 정도로 부류가 나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들을 원인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으로 분류를 해 보았는데, 상당수가 하나의 원인이 있고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파생된 '새끼들'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말하자면, 에미가 몇 마리 있고, 걔들이 새끼를 몇 마리씩 데리고 있는 것. 토끼가 서너 마리, 고양이도 서너 마리, 너구리 몇 마리... 에미들을 골라냈다.

그 다음, 구조론에서 말하는 또 하나의 명언 "머리를 쳐라"를 적용했다. "한 놈만 팬다" 도 상당히 유용한 팁이었다.

일단 새끼들을 모두 리스트에서 지우고 에미들만 남겼다. 그 에미들(머리들)은 종류가 다르면서 필수적인 요소라 빼버릴 수가 없는 것들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래도 혹시 그 머리들 중 원인과 결과로 묶인 셋트가 없나 잘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두 마리가 알고보니 같은 종류였고, 원인과 결과로 묶여 있었다. 따라서 한마리를 또 지웠다.

이제 네 마리가 남았다.

그 중 두 마리는 반복된 연습으로 몸에 스며들게 해서 의식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고, 한두 가지만 의식적으로 챙기면 되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챙기는 것들도 그나마 스윙 시작의 초기에나 잠깐 의식적인 컨트롤이 가능할 뿐, 일단 스윙을 시작해 버리면 의식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순식간에 끝나버려서, 어~? 하는 순간 이미 스윙은 끝나고 볼은 창공을 가르는 것이다.

이제야 '스윙'이 무엇인지 감이 잡혔다. 그러나 난 아직 '잘치는' 축에 끼지도 못하는 레벨이다. 하지만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와 뿌리를 파 헤치는 분석을 거쳐 얻은 귀한 에미들이라, 이넘에 대하여는 자다가 깨워도 신상명세를 줄줄 읊을 수 있게 되었다(초보자들에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됨). 지워버린 못된 에미들과 그 새끼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

구조론은 그야말로 만물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론이다. 심지어는 골프에까지.

요즘은 우리 회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구조론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 많이 고민한다. 우선은 구조론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회사에 하나도 없어서(일단 구조론 사이트를 아는 사람도 없다)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레벨:3]나는나여유

2016.04.24 (19:59:52)

다원이님!

골프스윙에서 마지막 네가지가 뭐여요?


iammejust@naver.com 으로 알려주세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6.04.25 (07:20:08)

구체적인 내용도 한번 풀어주세요. :)
[레벨:4]고볼매

2016.04.25 (09:42:19)

내용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레벨:7]아바미스

2016.04.25 (09:47:31)

요새, 사야인 리그에서 저조한데, 야구 타격도 구조론적 접근해봐야겠네요 ㅜ.ㅜ 

[레벨:10]다원이

2016.04.25 (11:16:14)

초보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시는 것 같아 겁이 나네요. 저는 우선 원리적인 면을 먼저 납득을 해야 실천을 하는 타입이라, 행동이 앞서는 분들이 저를 보면 매우 답답해 하죠.

저는 기초적인 내용들 - 우선 물리적인 측면 - 을 정리하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들 속에 공통점을 추출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물리적으로 모순이 없으면서 나의 체형과 성향에 맞는 아이템을 하나하나 컴퓨터 조립하듯이 선택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쌍절곤" 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분 -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 그 사람의 글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골프라는 게 순수하게 물리적인 측면이 있고 심리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쓴 글을 볼 때, 아무리 그럴듯 해 보이는 내용이라도 그것이 물리학적으로 성립이 안되면 일단은 꽝입니다. 볼과 클럽헤드가 마주치고 그 반발력으로 볼이 날아가는 것이 골프라는 놀이의 가장 원초적인 현상이니까요. 이 부분이 사람과 볼 사이에 유일한 접촉점이 되고, 거기서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접촉(약 2000 분의 1 초)이 그 이후의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가장 중요시 해야 할 곳은 바로 "임팩트"의 순간, 소위 말하는 "진실의 순간"이죠. 다른 모든 동작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요. 뭐,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얘깁니다만.

그래서 그 진실의 순간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모든 동작들을 시간상 거꾸로 조립을 하는 겁니다. 결과에서 원인측으로 추적을 해 보면 결국 셋업자세로 가게 되고, 안정된 셋업자세를 위하여는 어떤 근육을 강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기 위해 나의 하루하루 생활 패턴은 어떠해야 하는가 여기까지 가는 것이죠. 그것을 꾸준히 하기 위해 나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며, 더 나아가 무엇을 가치있게 여기느냐 하는 궁극적인 질문까지... 나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우선 저는 과거에, 골프란 사치스런 것이고 자연을 파괴하며... 등등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10 년 넘게 구조론을 접하면서, 작은것 보다는 큰것을, 좁은것보다는 넓은것을, 특수한 것 보다는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호불호 보다는 더 큰 범위의 호불호를 생각해야 되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뭐, 골프 얘기하면서 거창한 곳으로 빠졌습니다만, 그리고, 제가 뭐 싱글 골퍼도 아니고 아직 초보자이지만, 뭐든 하나라도 깊게 파고들어 이해하는 그 재미로 골프를 하는 것이죠.

일단은 정말정말 왕초보에게 들려주는 얘기다 정도로 봐 주십쇼.

기회가 되면 두어 번 글을 올리겠습니다. 제가 골프라는 놀이에 접근한 대략적인 얘깁니다.

[레벨:10]다원이

2016.04.25 (11:16:50)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6.04.26 (10:26:55)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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