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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681 vote 1 2016.04.19 (14: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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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라는 60년대 흑백영화를 뒤늦게 봤다. 저작권이 풀려서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이런 영화는 진작 봤어야 했는데 싸구려 좀비영화라고 무시한게 후회된다. 사실이지 영화이야기를 하는건 구조론을 이해시키기 위한 수단이고 내가 영화광은 아니다.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못 본다.


    이 영화 구조론적인 영화다. 이후 모든 좀비영화의 원형이 되었다. 바깥은 좀비천지가 되어 있고, 일군의 사람들이 오두막집에 모여 있다. 지하실로 숨자는 보수파와 탈출하자는 진보파가 대결한다. 의사결정을 해야하는 구조론적인 상황이다.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나가서 살 길을 모색할 것인가?


    세월호만 해도 그렇다. 탈출파가 옳았다. ‘본사’라 불리는 국정원인지 청와대인지 무엇인지가 과감한 의사결정을 못한 것이다.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 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시간을 끌다가 망했다. ‘포세이돈 어드벤쳐’를 비롯한 재난영화의 공식이다. 지도자의 말을 따르고 행동하면 살고, 겁먹고 호남고립하면 죽는다.


    안전한 호남으로 후퇴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한 서울에서 곡예를 해볼 것인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지역주의로 후퇴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외부환경이 변한다는 점이 문제로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도 역시 외부적 환경변화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라디오로 외부와 연결되는가 하면 텔레비전을 찾아내기도 한다. 숨어 있으면 외부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찬스를 놓친다. 문제는 과연 환경이 변할 것인가다.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어쩌지? 기울어진 축구장이 계속 기울어진 채로 있으면 어쩌지? 투표 안 하는 20대가 계속 투표를 안 하면 어쩌지?


    나는 환경이 변한다고 주장해 왔다. 20대가 투표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불경기 때문에 부산경남이 돌아서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런데 왜 보수세력은 환경변화를 부정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환경이 변해도 그 변화를 주도하지 못한다. 인터넷이 등장해도 자판익히기가 피곤하다. 스마트폰 사용법 물어보기 쪽팔린다.


    에너지가 빠져 있는 것이다. 나이 50 넘어가면 대한민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멋진 미래 어쩌구 해도 씨가 안 먹힌다. 이미 살만큼 살았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데 평균수명이 늘었다. 기대수명이 따블이 되었다. 옛날에는 70이면 끝인데 이제는 80도 정정하다. 70은 청춘이니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진보로 방향을 잡고 장기전을 선택하여 환경변화를 능동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변화가 안 와도 끈덕지게 버티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난다. 입증할 수 없지만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지금 기대대는 변화는 무인운전과 전기차시대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다. 드론이나 3D프린터, VR은 신통치 않다.


    사실 단기전이면 호남고립이 맞다. 을지문덕도 뒤로 물러나서 이겼고, 모택동도 연안으로 도망가서 흥했다. 이순신장군도 여수에서 명량까지 후퇴를 거듭했다. 전선을 좁히고 이길 수 있는 지형에서 싸우는 것이 맞다. 그러나 선거는 1년 6개월 남았고 지금은 전선을 넓혀야 한다. 변화의 확률을 높여두어야 한다.


    왜? 1년 6개월동안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깐. 그 변화들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하려면 넓은 중앙으로 나와서 애매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김종인 독재는 확률을 떨어뜨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게 한다. 김종인도 할만큼 했지만 단기전에 쓰는 1회성 이벤트다. 계속 그러고 있으면 안 된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지극히 구조론적인 영화다. 질의 세팅이 중요한데 확산방향을 수렴방향으로 트는 것이다. 즉 하나의 좁은 공간에 모이게 하는 장치다. 영화는 대충 넘어갔지만 좀비들이 쳐들어오니 밀집하게 된다. 그것이 ‘질은 결합한다’는 거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마치 한 가족처럼 되어가는 구조다.


    ‘입자는 독립한다’는 것은 외부의 좀비가 못 들어오게 담을 쌓고 문을 닫아걸어 안에서 의사결정하는 것이다. 외부의 변화가 내부의 의사결정을 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외부가 안정되면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의사결정한다. 일행이 오두막집에 모이는 원인은 외부에서 주여졌지만 집안에서는 자체가 원인이다.


    더민주로 말하면 외부에서 종편이 때리고, 조중동이 여론조사로 때리는 것은 질의 결합단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김종인을 대표로 뽑고 그때부터는 외부영향에 휘둘리지 않고 내부에서 의사결정하는 것이 입자의 독립이다. 영화에서는 흑인 청년이 보스역할을 한다. 자체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의사결정을 한다.


    ‘힘은 교섭한다’는 것은 그래도 좀비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의사결정이다. 보통 등장인물의 숫자가 늘어난다. 갑자기 외부에서 사람이 방문하는데 받아들일까 말까를 결정해야 한다. 이때 대립이 일어난다. 안전한 지하로 피하자는 안철수파와 밖에서 일전불사로 버텨보자는 문재인파로 대립한다. 의사결정이다.


    질은 의사결정할 계를 만들고 입자는 의사결정권을 획득하고, 힘은 의사결정한다. 영화에서는 싸우고 탈출하기로 결정한다. 이런 점은 대부분의 재난영화에 공통된다. 이 영화를 리바이벌한 ‘새벽의 저주’에서도 탈출파와 옥쇄파가 대립한다. 대부분 쇄국의 안철수보다 개혁의 문재인을 선택한다. 단 장기전 만이다.


    단기전에서는 쇄국파가 이긴다. 흥선대원군도 쇄국으로 재미를 봤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도 쇄국을 주장하곤 했다. 먼로 독트린이다. 그런데 외부 환경변화로 어쩔수 없이 개방을 선택하게 된다. 루즈벨트도 미국고립을 고수하다가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개방을 선택했다. 보수 트럼프도 쇄국을 주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쇄국파가 이기지만 외부에서 변화가 계속 일어나면 뻘쭘해진다. 남들은 신나게 노는데 혼자 쓸쓸하다. 결국 개방으로 돌아서지만 이미 주도권을 놓쳤다. 보수가 역사적으로 깨지는 것은 이유가 있다. EU도 그렇다. 보수 영국은 당연히 쇄국주의다. 그런데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가 손잡고 즐겁게 놀면?


    ‘운동은 변화한다’는 것은 그 공간을 탈출한다는 것이다. 새벽의 저주에서는 좀비카가 등장한다. 이것도 재미가 있다. ‘양은 침투한다.’는 것은 안전한 공간에 들어간다는 거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의사결정을 보여준다. ‘질≫입자≫힘≫운동≫량’ 순서로 다섯차례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출애굽기와도 같다.


    이집트의 압박이 질이다. 이집트가 결정한다. 모세의 등장이 입자다. 유태인이 결정한다. 홍해를 건너면 힘이다. 운명적 선택의 기로에 선다. 광야를 떠돌면 운동이다.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량이다. 끝난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해서 그 외부의 힘을 역이용하는 능동적 의사결정이 진보다.


    인터넷도 어떻게 보면 외부위협이다. 종이책시장 다 죽는다. 종이신문은 죽어가고 있다. 그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다. 변화를 거부하는가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는 장기전의 진보적 선택과 단기전의 보수적 결정을 겸해야 한다. 진보먹물의 특징이 장기적으로 보면 말이 맞는데 단기적으로 깨진다는 거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융통성을 발휘하여 단기전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단 장기적인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전제 하에서. 박근혜 심판을 외치는 공중전도 하고, 밑바닥 민심을 훑는 진지전도 해야 한다. 보수도 쓰되 진보의 통제 안에서 제한적으로 써야 한다. 김종인도 쓸 때 쓰되 쓴 다음 놔주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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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큰바위

2016.04.20 (07:28:49)

예수 이야기로 하자면 

갈릴리에서 평생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로마를 치는 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구석기

2016.08.18 (23:05:19)

Night of the Living Dead (1968) 
유튜브 HD https://youtu.be/yJlaNLJjwrc 

다운로드 https://archive.org/details/Night_Of_The_Living_Dead_raw_HD_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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