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인들은
발등의 불을 간신히 끄는 순간 다시 발등의 불이 떨어지는 상황에 최적화되있다.
발등의 불이 떨어지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우리는
급변하는 기후가 지르는 불을 끄다보니
장기적인 해결책을 궁리하거나 실험할 시간이 없어왔다.
그래서 남조선인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여러 크기의 문제들이 얽힌 큰 문제체계' 라는 모형이 아니라
'위기의 열거' 라는 모형으로 보게되었다.
그렇다 보니 하나의 문제에서 진전을 이루어냈을 때
그 것은 '이전보다 더 나은 상황에서 문제체계와 상호작용하는 때' 가 아니라
'위기와 위기 사이의 짧은 휴식이며 다음 위기가 오기 전까지 헉헉거리며 자빠져서
쉬어야만 하는 때'이다.
남조선에서 한번의 위기를 잘못 넘겼다면(예를들어 대학 입시)
잘못넘긴 직후 '잘못넘김으로 본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음의 위기가 올때가지는 '이전의 위기에서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없다.
다음의 위기까지는 이전의 위기를 잘 넘겼든 잘 넘기지 않았듯 자빠져서 휴식하는 일 뿐.
다음의 위기를 잘 넘기기 위해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아니라 자빠져서 휴식하는 일 뿐.
그대신 다음의 위기가 왔을 때는
이전의 위기에서 실패를 본 자들에게는 성공했던 자들에 비해 엄청 큰 난이도의 위기가 온다.
더 이상 위기가 오지 않는 노년시절에 접어들었을 때
그들은 발등의 불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극도로 불안해한다.
이 불안함과 장기적인 휴식은 그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노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각을 한다.
'한'으로 뭉쳐져있던 본능들이 뛰쳐나오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그 것이 뛰쳐나오는 순간 그 노인의 젊어서의 인생은 쓰레기로 전락한다.
그 노인은 '한에서 뛰쳐나온 본능'에 의해 자신 주위의 모든 노인들의 '젊어서의 인생'은 쓰레기이며
'젊은 사람들의 현재 인생'도 쓰레기로 평가되는 것을 본다.
'한'에서 뛰쳐나오려는 상위본능들을 그 자신속에서 뛰쳐나가 도망가버도록 한다.
그리고 최후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생 다 그렇지."-(뛰쳐나오는 상위본능을 무시하려한다.)
"그래도 아름다웠어."-(뛰쳐나오는 상위본능과 맞써 싸운다.)
그는 힘차게 외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모든 논리를 포기하는 순간이다.)
이 말을 외치고 나면
'그의 젊은 인생은 아름다웠다.'라는 명제를 얻게되고 그 대가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얻는다. (모순의 대가)
그 노인이 어린 아이였을 때
상위본능이 막 뛰쳐나오려는 어린 아이였을 때
죽음의 두려움에 대해 알게되고 사색과 행동을 통해 극복해나가려 시작할 때
위기가 계속 몰아치고
죽음의 두려움은 위기의 두려움 으로 탈바꿈하고
다시 노인이 되어서 위기의 두려움이 사라졌을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만난다.
이제 할일은 단하나. 남은인생동한 평생
위기가 끝났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해야한다.(돈이라도 벌어놨어야 파티를 하지.)
아싸 위기가 끝났다!=아싸 죽음은 끝났따! ????????
모순은 남조선인의 영원한 친구이고 무기이다.
'모순이 만들어준 가상의 낙원'을 평생 꿈꾼다.
남조선인에게 본질을 건들이는 말을 한다?
누구한테?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려는 남조선인에게?
다음 위기까지 자빠져 쉬고있는 남조선인에게?
위기를 잠시 잊고 축제를 벌이고 있는 남조선인에게?
도데체 누구한테 한단말인가.
불가능이다.
이제는 벼농사 체제가 아니니까 변하라고 하는게 가능한가?
사자한테 고기값 올랐으니 풀뜯어먹으라는 소리지....
발등의 불을 간신히 끄는 순간 다시 발등의 불이 떨어지는 상황에 최적화되있다.
발등의 불이 떨어지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우리는
급변하는 기후가 지르는 불을 끄다보니
장기적인 해결책을 궁리하거나 실험할 시간이 없어왔다.
그래서 남조선인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여러 크기의 문제들이 얽힌 큰 문제체계' 라는 모형이 아니라
'위기의 열거' 라는 모형으로 보게되었다.
그렇다 보니 하나의 문제에서 진전을 이루어냈을 때
그 것은 '이전보다 더 나은 상황에서 문제체계와 상호작용하는 때' 가 아니라
'위기와 위기 사이의 짧은 휴식이며 다음 위기가 오기 전까지 헉헉거리며 자빠져서
쉬어야만 하는 때'이다.
남조선에서 한번의 위기를 잘못 넘겼다면(예를들어 대학 입시)
잘못넘긴 직후 '잘못넘김으로 본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음의 위기가 올때가지는 '이전의 위기에서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없다.
다음의 위기까지는 이전의 위기를 잘 넘겼든 잘 넘기지 않았듯 자빠져서 휴식하는 일 뿐.
다음의 위기를 잘 넘기기 위해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아니라 자빠져서 휴식하는 일 뿐.
그대신 다음의 위기가 왔을 때는
이전의 위기에서 실패를 본 자들에게는 성공했던 자들에 비해 엄청 큰 난이도의 위기가 온다.
더 이상 위기가 오지 않는 노년시절에 접어들었을 때
그들은 발등의 불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극도로 불안해한다.
이 불안함과 장기적인 휴식은 그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노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각을 한다.
'한'으로 뭉쳐져있던 본능들이 뛰쳐나오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그 것이 뛰쳐나오는 순간 그 노인의 젊어서의 인생은 쓰레기로 전락한다.
그 노인은 '한에서 뛰쳐나온 본능'에 의해 자신 주위의 모든 노인들의 '젊어서의 인생'은 쓰레기이며
'젊은 사람들의 현재 인생'도 쓰레기로 평가되는 것을 본다.
'한'에서 뛰쳐나오려는 상위본능들을 그 자신속에서 뛰쳐나가 도망가버도록 한다.
그리고 최후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생 다 그렇지."-(뛰쳐나오는 상위본능을 무시하려한다.)
"그래도 아름다웠어."-(뛰쳐나오는 상위본능과 맞써 싸운다.)
그는 힘차게 외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모든 논리를 포기하는 순간이다.)
이 말을 외치고 나면
'그의 젊은 인생은 아름다웠다.'라는 명제를 얻게되고 그 대가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얻는다. (모순의 대가)
그 노인이 어린 아이였을 때
상위본능이 막 뛰쳐나오려는 어린 아이였을 때
죽음의 두려움에 대해 알게되고 사색과 행동을 통해 극복해나가려 시작할 때
위기가 계속 몰아치고
죽음의 두려움은 위기의 두려움 으로 탈바꿈하고
다시 노인이 되어서 위기의 두려움이 사라졌을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만난다.
이제 할일은 단하나. 남은인생동한 평생
위기가 끝났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해야한다.(돈이라도 벌어놨어야 파티를 하지.)
아싸 위기가 끝났다!=아싸 죽음은 끝났따! ????????
모순은 남조선인의 영원한 친구이고 무기이다.
'모순이 만들어준 가상의 낙원'을 평생 꿈꾼다.
남조선인에게 본질을 건들이는 말을 한다?
누구한테?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려는 남조선인에게?
다음 위기까지 자빠져 쉬고있는 남조선인에게?
위기를 잠시 잊고 축제를 벌이고 있는 남조선인에게?
도데체 누구한테 한단말인가.
불가능이다.
이제는 벼농사 체제가 아니니까 변하라고 하는게 가능한가?
사자한테 고기값 올랐으니 풀뜯어먹으라는 소리지....
기억했다가 써먹어도 좋을 구조적인 관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