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제위께! 선이 하나 그어져 있다. 누가 선을 그었는가? 구조론이 그었다. 내가 먼저 그 선을 넘었다. 몇몇 사람들이 더 선을 넘었다. 세계는 이미 선을 넘은 사람과 아직 선을 넘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졌다.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 전혀 다른 두 세계로 완전히 갈라졌다. 바야흐로 세력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이곳은 개인의 공간이 아니라 세력의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다른 공간이 되었다. 선을 넘은 사람에게는 성과에 따라 보상한다. 유형의 보상일 수도 있고 무형의 보상일 수도 있다. 주식회사 개념을 대입할 수 있다. 대주주로 참여할 수도 있고 소액주주로 참여할 수도 있다. 각자의 선택에 따라 공동구단주가 될 수 있고, 감독이 될 수도 있고, 선수가 될 수도 있고, 관중이 될 수도 있고, 지나가는 행인 1이 될 수도 있다. 이쯤 되면 무슨 뜻인지 대략 감잡았을 것이다. 강단학계는 라이선스를 발급하여 보상한다. 신성한 학문의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짓이다. 진리에는 단이 없다. 그렇다. 공자는 대학이라는 것을 졸업하지도 않았고 논문이라는 것을 쓰지도 않았다. 대신 세력을 기르고 시스템을 만들었다. 생명성을 얻어 자발적인 호흡을 유지하며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 성장하게 하였다. 황무지를 일구어 밭을 가꾸고 거기에 가능성의 씨앗 뿌렸다. 본받아 우리 다른 길을 개척해야 한다. 진리를 토막쳐서 등급을 나누고 라이선스를 발급하는 강단학계 시스템은 종이문명 시대의 것이다. 인터넷 신문명 시대에 마땅히 새로운 것이 나와야 한다. 강단학계는 라이선스를 통하여 권위를 얻고 권리를 누리며 밥도 해결한다.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도 권위와 권리와 명예와 밥이 얻어져야 한다. 불가능하지 않다. 분명히 구조론은 생산력이 있다. 구조는 시계와 같다. 태엽을 감아주면 입력과 출력 사이에서 효율성이라는 플러스 알파를 낳는다. 세력을 이루고 시스템을 꾸려서 자발적인 호흡을 얻을 때 다시 기세라는 플러스 알파가 추가된다. 연두에 이런 이야기 하는 뜻을 헤아려주기 바란다. 몇 십년이 걸릴지 모르나 참여하는 모든 분께 유무형의 보상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든다. 권위든 권리든 명예든 밥이든 구조론 세력 안에서 낳는다. 필자를 보지 말고 무심한 구조론 세력의 생명성을 보라는 뜻이다. 그 세력은 아이처럼 태평하게, 무심하게, 천연덕스럽게 자라난다. 이상을 먹어치우기 게걸스럽고 미학을 멋부리기가 능청스럽다. 동렬옹은 어떨지 모르나 구조론 세력은 아이처럼 뛰놀고 아이처럼 변덕스럽고 아이처럼 성장하고 아이처럼 새롭고 아이처럼 괄목상대한다. 넝쿨처럼 무성하게 자라나서 기어이 세상 모두를 덮는다. 선이 하나 그어져 있다. 한 사람이 선을 넘었고 이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선을 넘었다. 선을 넘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건설된 사회 안에서 우리가 주류다. 재야가 아니고 아마추어가 아니다. 제 1 사회는 끝나고 제 2사회가 시작된다. 제 1 사회 이야기는 이곳에서 먹히지 않는다. 주먹을 쓰는 자는 칼로 쳐내고 칼을 쓰는 자는 총으로 쳐낸다. 삿된 것은 단호히 쳐내고 이 사회를 지켜간다. ∑ |
공동 구단주까지는 못되더라도 감독 자리를 꿰차든지, 그도 아니면 최소한 선수로 뛰고 싶은 것이 꿈일진데...
새해 벽두부터 비상이 걸렸다.
제1라운드 이미 종쳤으니 그 어느 짜투리도 별볼일 없게 됐고,
제2라운드의 공이 울렸으니 머뭇거릴 틈도 없게 된 것.
돈으로도, 연공서열로도, 주먹질이나 빽줄로도 소용없는 세상.
내가 메니저고, 심판이고, 감독이고, 선수이니, 손을 비빌수도 약을 쓰 볼 수도 없는 비정한 세상.
발 아래 깔린 천길 낭떠르지 위에 선 천애고아 된 심정.
믿을 것이라고는 실력 뿐이라는데, 그 얇고 박약하기가 백지장 같으니 이 비참함을 어찌할꼬.
아뿔사 그렇다고 뒷걸음질 할 수도 없는 노릇.
읽은 것 읽고 또 읽고, 빨강 파랑 밑줄 쳐가며 용을 써 볼 밖에.
가다 보면, 식구도 되고, 친구도 생기고, 도반에 동지들도 있다니까,
속는 셈 치고 믿어볼 밖에.
참으로 먼 길, 부족한 심폐량에 부실한 무르팍이지만, 죽을판 살판 따르면,
설마, 같은 길에서 낙오자라 밀쳐내지는 안컷제.
스트라이크나 멋진 링카 노릇 못할터이면, 제2사회의 충직한 수문장이라도 될 밖에.
두 눈 부라려 뜨고, 두 발 터억 벌려 중심 잡고, 이정표 따라, 호시우행..^^.
<선언일 수 있고 다짐일 수 있고 보고일 수 있다.>
선을 넘어가는 것 역시
선언일 수 있고, 다짐일 수 있고, 보고일 수 있는 것이오.
하지만 선을 밟고 있지는 마오.
그건 반칙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