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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369 vote 0 2016.02.09 (22:51:40)

     

    34,


    큰 도는 보편되니, 좌우 어디로든 간다. 모든 것이 도에 의지하나 구태여 말하지 않는다. 일이 성사된 뒤에도 이름을 걸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입히고 먹이지만 주인이 되어 지배하지는 않는다. 원하는 것이 없으니 작다고 하겠다. 모든 것이 도로 돌아가지만 주인이 되지 않으니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끝내 크다고 말하지 않아므로 큰 것을 이룬다.


    풀이할만한 내용이 없다. 허무한 반복이다. 까불지 말라고 위협하는 건데 꼰대 특유의 잔소리다. 이런 말 하는 사람은 늙은 사람이다.


    35,


    도를 붙잡으면 천하가 운행한다. 운행해도 해롭지 않으니 편안하고 평화롭다. 음악과 음식이 있으면 나그네가 멈추지만, 도는 담담해서 맛도 없고, 보나 보이지도 않고, 들으나 들리지도 않고, 쓰나 닳지도 않는다.


    도가 추상적인 가치임을 설파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동시에 도가 구체적인 물질인 것처럼 사기치고 있다. 봉건 부족민들은 추상개념을 구체적인 물체로 오해하곤 한다. 인도네시아 부족민은 권력이라는 추상개념에 해당하는 물건이 마을마다 있다. 권력을 쥔 자가 실제로 그 물건을 쥐고 있다. 족장들은 그 마을의 권력 상징물인 그릇이나 깃발이나 막대기 따위를 손에 들고 있다. 추상개념과 구체적인 물질을 혼동시키려는 태도는 좋지 않다. 추상은 일이다. 일로 설명해야 한다.


    36,


    장차 줄이려고 하면 미리 늘려두어야 한다. 장차 약하게 하려면 미리 강하게 해두어야 한다. 장차 망하게 하려면 미리 흥하게 해줘야 한다. 장차 빼앗고자 한다면 미리 보태줘야 한다. 이를 숨겨진 작은 밝음이라 하는데, 유약柔弱한 것이 강강剛強한 것을 이긴다.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지 말아야 하므로, 나라의 이득을 걷는 수단은 백성들 모르게 비밀에 붙여야 한다.


    유약柔弱이 강강剛強을 이긴다.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임금이 이것을 비밀에 붙여 국민을 속여야 한다는 말은 소인배의 근성이다. 노자는 소인배다. 아주 고약하다. 줄이기 위해 미리 늘려주는 식의 비열한 수법은 춘추전국시대에 유행하던 정치기술이었다. 적국을 망하게 하기 위해 미녀를 보내거나, 혹은 적국에 굵은 재목을 보내서, 적국이 거대한 궁궐을 짓다가 경제난으로 망하게 하는 수법이 유행했다. 중국인의 비열함은 끝이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순서로 작동한다. 질은 비대칭을 대칭으로 바꾼다. 대칭되면 견고해진다. 유약이 강강을 이기는게 아니라, 유약을 강강으로 바꾼다. 에너지의 방향을 확산에서 수렴으로 바꾸면, 유약이 강강으로 변한다. 그것이 위치에너지다. 이는 상부구조이고 하부구조에서 힘, 운동, 량으로 전개하는 운동에너지는 강강이다. 강강이 다시 유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세상은 질을 입자로, 확산을 수렴으로, 유약을 강강으로 바꾸는 위치에너지의 작용에 의해 일방향적으로 운행된다.


    37,


    도는 항상 무위無為의 ‘하는거 없음’에 머무르니 못하는 것이 없다. 임금이 이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억지로 하는 자는, 내가 장차 이름없는 소박함으로 다스릴 것이다. 이름없는 소박함은 욕심을 없애는 것이다. 욕심이 없으면 고요하니 천하는 저절로 안정된다.


    태양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나 만물을 기른다. 아니다. 뒤에서 많은 것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게 할 뿐이다. 노자는 전편에서 도가 보이지 않게 은밀히 작동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한 바 있다. 끝단의 國之利器不可以示人이 그러하다. 이제는 한 술 더 떠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오버가 심하다. 무지한 자의 폭주다.


    38,


    높은 덕은 덕이 없어서 덕이 있다. 낮은 덕은 덕을 놓지 않아서 덕이 없다. 높은 덕은 하지 않으니까 하는 짓이 없다. 낮은 덕은 하니까 하는 짓이 있다. 높은 인은 하니까 하는 짓이 없다. 높은 의는 하니까 하는 짓이 있다. 높은 예는 하니까 응하지 않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억지로 시킨다.


    공연히 말을 꼬아서 헷갈리게 하는 것은 노자가 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하는 말 많은 자의 작위다. 무위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인위를 저지르면 곤란하다.


    따라서 도를 잃으면 덕이 나타나고, 덕을 잃으면 인이 나타나고, 인을 잃으면 의가 나타나고, 의를 잃으면 예가 나타난다. 예절은 충과 신이 없어져서 생기는 혼란의 시초다. 미리 알아채는 것은 도의 꽃장식이니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대장부는 후덕할 뿐 얄팍하지 않으며 열매에 머무르고 장식에 지나지 않는 꽃에 머물지 않는다. 저것을 피하고 이것을 취한다.


    ‘도≫덕≫인≫의≫예’로 연역하는 구조는 구조론과 맞다. 그러나 열매를 취하고 장식을 버린다는 말은 이익을 버리고 무위를 따른다 노자의 도와 맞지 않다. 열매는 소인배의 이익이고, 꽃은 군자의 깨달음이니, 마땅히 꽃을 취하고 열매를 버려야 한다. 열매를 소에게 줘버리면 쇠고기가 되어 내 식탁으로 돌아온다.
    유가의 논리를 모방한듯한 연역체계를 앞세우면서, 도리어 그 연역의 머리가 되는 추상성을 피하고, 열매를 취하는 실리주의로 퇴행하는 전개는 자가당착에 형용모순이다. 꽃이 추구해야 할 도道다. 열매는 버려야 할 탐욕이다.


    39,


    옛말에 ‘하나를 얻은 자’가 있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 안녕하고, 신은 하나를 얻어 신령스럽고,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 채워지고, 만물은 하나를 얻어 생겨나고, 제후와 왕은 하나를 얻어 천하를 정립한다. 그런 이야기다.


    ‘하나를 얻은 자’라는 개념은 일원론이다. 그런데 노자가 강조하는 상대주의는 이원론이다. 보름달은 이지러져서 그믐달이 되고, 초생달은 차올라서 보름달이 된다. 이는 이원론이자 상대주의다. 그러나 달을 보름달로도 만들고 그믐달로도 만드는 것은 태양이다. 달은 모습이 둘이지만 태양은 하나다. 태양은 원인이고 달은 결과다. 사건의 원인측을 보는게 일원론이다. 일원론을 아는 자가 하나를 얻은 자다.


    하늘이 맑지 않으면 갈라지고, 땅이 안녕하지 않으면 못쓰고, 신이 신령스럽지 않으면 사라지고, 계곡이 채워지지 않으면 마르고, 만물이 생기지 않으면 사라지고, 임금이 세우지 않으면 쓰러진다. 그러니 귀함은 천함을 근본으로 삼고, 높음은 낮음을 기초로 삼는다. 그래서 임금은 스스로를 고아, 과부, 자식없는 사람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는 천함을 근본으로 삼는게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자랑이 없는게 자랑이리라. 녹녹한 비취옥보다 자갈처럼 구르는 돌이 되자.


    옥이 되기보다는 돌이 되라고 했다. 옥은 임금이다. 임금이 되기보다는 거지가 되라는 말이다. 그래놓고는 임금이 이 도를 배워야 천하를 바로세울 수 있다고 가르치니 모순이다. 임금을 부정하면서 임금을 위한 통치술을 설파하는 모순이다. 이런 말 비틀기는 소인배의 태도다. 돌이 되기보다는 옥이 되어야 한다. 다만 옥은 돌 속에서 찾는 것이다. 일의 우선순위에 답이 있다.


    40,


    돌이키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고, 약한 것은 도의 쓰임이다. 천하만물은 있음에서 비롯되고, 있음은 없음에서 비롯된다.


    에너지는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로 모습을 바꾸며 순환한다. 이는 열역학 제 1법칙 곧 질량보존의 법칙이다. 에너지는 약한 것이 모여서 강한 것을 이룬다. 이는 열역학 제 2법칙 곧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반자反者는 열역학 1법칙이고, 약자弱者는 2법칙이다. 그러나 막연한 느낌을 가졌을 뿐 노자는 열역학 2법칙을 명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공자는 봤는데 노자는 못봤다.
    2법칙은 방향성의 법칙이다. 순환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2법칙은 1법칙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너지는 확산에서 수렴으로만 가며 그 반대는 없다. 약한 것이 모여서 강해지며 그 반대는 없다. 약한 물을 모아놓으면 수압이 세서 강해지지만, 강한 쇠를 모아놓아도 약해지지 않는다. 강한 쇠를 약하게 하려면 용광로를 돌려야 하므로 돈이 든다. 돈이 있으면 돌이킬 수 있는 것이 1법칙 곧 반자反者다. 있음이 없음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2법칙이 1법칙에 앞선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지구에 한 명 이상 있겠는가?


    41,


    높은 선비가 도를 들으면 행하고, 중간 선비가 도를 들으면 달아나고, 못난 선비가 도를 들으면 비웃는다. 세상이 비웃지 않으면 도가 되기에 부족하다. 굳이 말로 하자면 이렇다. 밝은 도는 어두운 듯하고, 나아가는 도는 물러서는 듯하며, 평평한 도는 어그러진 듯하고, 훌륭한 덕은 계곡과 같으며, 크게 깨끗한 것은 더러운 듯하고, 넓은 덕은 넉넉하지 못한 듯하며, 말로 설명한 덕은 구차한 듯하고, 성질이 참된 것은 변하는 듯하며, 크게 모난 것은 귀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천천히 만들어지며,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큰 모양은 형태가 없다. 도는 숨어서 이름도 없지만, 도는 잘 빌려주고 또 이룬다.


    대기만성 하나만 취할법 하다. 형태가 없는 큰 모양은 추상개념이다. 추상은 형태가 없는 대신 순서가 있다. 추상적 가치를 말할 때는 순서를 말하면 된다. 그 순서는 매우 엄격하다. 물이 부드럽지만 수학공식이 적용되면 어김이 없으니 유체역학이다. 부드러운데 절대 봐주는거 없다. 한 치의 어김도 없다.
    공자처럼 명확히 일의 순서를 정해서 말해야 하는데, 대략 얼버무리는 것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자도 깨달음을 멀리서 흘낏 보기는 했다.


    42,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모든 것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껴안으며, 중간의 기운으로 조화를 이룬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외로움, 부족함, 낳지 못함이라, 지배자는 스스로를 그렇게 낮춘다. 그래서 어떤 것은 덜어도 더해지고, 혹은 더해도 덜어진다.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을, 나 역시 가르치는데, 억센 자는 뒈지는 수가 있다. 나는 이 가르침을 신조로 삼는다.


    이 부분은 상당히 구조론적이다. 하나는 일원론이요, 둘은 대칭성이고, 셋은 밸런스다. 일원론은 에너지의 확산을 수렴으로 바꿔 계를 이룬다. 대칭은 계의 구심력과 원심력을 교차시켜 축을 이룬다. 셋은 축이 두 날개를 지배하여 대칭을 이룬다. 여기서 의사결정이 일어난다. 의사결정은 축을 이동시켜 날개를 움직인다. 곧 물질의 운동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운동은 량으로 바뀌어 대상에 침투하는데 자연에서는 주로 열이다. 에너지는 최종적으로 열이 되므로 열역학이 중요하다.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이라 했으니 셋이 만물을 이루는데 셋으로 일이 끝나지 않는다. 만물을 이루는 시공간적 절차가 있어야 하므로 구조론은 다섯으로 설명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니 도생일은 질, 일생이는 입자, 이생삼은 힘, 삼생사는 운동, 사생오는 량이다. 불교용어로 보면 공空과 색色 사이에 셋을 추가한 것이다. 구조론은 일로 설명한다. 일의 원인, 일의 주체, 일의 공간적 의사결정, 일의 시간적 집행과정, 일의 결과다.
    원문의 뒷부분은 보기 싫은 군더더기다. 왜 이런 흉측한 언어를 항상 뒤에 붙여놓는지 알 수 없다. 후대의 가필일지도 모른다. 도덕경은 대부분 앞부분에 좋은 아이디어를 던지고 뒷부분에 엉뚱한 소리를 덧붙이는 패턴이다.



   aDSC01523.JPG


    조조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유교를 억압하니 도교가 득세하였습니다. 중국인들은 노자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원수를 덕으로 갚으니 오랑캐가 침략할때마다 비단을 바쳤습니다. 비단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더욱 많은 오랑캐가 몰려오니 선비족, 저족, 강족, 갈족, 흉노족이 몰려들어 비단 뿐 아니라 국토까지 먹어치웠습니다. 그 틈에 고구려도 서쪽으로 진출했습니다. 오늘날 중국 화북지역 유전자는 징기스칸과 누르하치의 후손이 갈라먹고 있더라고 합니다. 조조이후 2천년간 한족의 역사는 500년 밖에 안 됩니다. 이 모든 재앙이 도덕경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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