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가 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워하니 도리어 아름답지 않다. 모두가 선을 선하게 여기니 도리어 선하지 않다. 미는 추의 강물 위에 배처럼 자연스럽게 떠 있어야 하고, 선은 악의 강물에서 물고기처럼 자연스럽게 헤엄쳐야 한다. 그러나 배를 육지로 끌어내면 추해진다. 인간이 개입한 미와 선은 물 밖으로 끌려나온 물고기와 같으니 이미 죽어 있다. 세상은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칭은 둘이 짝을 짓고 서로를 의지한다. 그 중에 하나를 빼앗으면 나머지도 죽는다. 그러므로 있고 없음은 서로를 살리고, 어렵고 쉬움은 서로를 이루며, 길고 짧음은 서로를 드러내고, 높고 낮음은 서로를 기대며, 노래와 소리는 서로 어울리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자연의 대칭성에 따른 상대성을 설명하고 있다. 공자와 다른 점은 엔트로피 개념의 부재다. 앞과 뒤는 서로 따르지 않는다. 언제나 뒤가 앞을 따른다. 노자는 여기서부터 잘못되었다. 존재는 일이다. 일은 의사결정한다. 대칭은 의사결정을 위한 잠정적 장치다. 의사결정한 다음에 버려진다. 대칭은 해소된다. 신혼초에는 서로에게 의지하지만 자식이 크면 신경도 안 쓰게 된다. 대칭은 유통기한이 있다. 사건의 초반부에는 높고 낮음이 서로 기대지만, 의사결정이 일어나면 그 중에서 하나가 선택되고 하나는 버려진다. 부분적으로는 그 반대가 되지만 전체적으로는 확률에 의해 언제나 한 방향으로 진행한다. 돌을 던지면 앞으로 날아간다. 벽에 맞아서 뒤로 튕겨가는 것도 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선거처럼 막판에 한 쪽으로 몰아줘버린다. 1표라도 승리한 정당이 그 주의 선거인단을 독식한다. 대칭을 이룬 두 방향이 일정시점까지 공존하다가 의사결정의 지점에서 갑자가 하나가 퇴장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아무것도 하지않으며 그 안에 머물고 말없이 가르친다. 모든 것을 만들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생겨나도 가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위하면서도 자랑하지 않는다. 모든것을 이루지만 머물지 않는다. 머무르지 않으므로, 떠나지도 않는다. ‘성인’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게 아니라 신과 같은 추상개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제법 있어보이지만 알맹이가 없는 동어반복이다. 노자가 공자와 다른 점은 열거할 뿐 분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자는 일의 순서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여 분류한다. 인이 앞에 오고 의가 다음이며 예가 따른다. 공자의 직업은 국가행사의 사회자였으므로 식순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류의 스승은 공자 뿐입니다. 공자는 큰 일을 벌인 사람이고 노자는 말린 사람이고 석가는 자기 고민을 해결한 사람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문제제기를 한 사람이고 플라톤은 생각을 많이 해 본 사람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공자고, 노자는 공자에게 부족한 형이상학을 만들어 덧씌워보려 했으나, 문제제기에 그쳤으며 정작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노자의 그러한 허술함이 매력으로 보여질 수 있으나, 병원은 무섭고 돌팔이 약장수는 왠지 친근감이 느껴지는 것과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