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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318 vote 0 2016.01.25 (21:28:29)

     

    깨달음은 쉽다


    눈앞에서 얼른대는 그림자를 보면 누구나 배후에 무언가 있음을 안다. 그림자의 배후에 전달체가 있고, 피사체가 있고, 매개체가 있고, 광원이 있다. 이렇게 다섯 층이 있어줘야 뭔가 있어보인다. 전체가 한 줄에 꿰어져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바닥에서부터 뻑적지근하게 차오르는 충일감이 있다.


    ◎ 그림자≫전달체≫피사체≫매개체≫광원


    어원으로 보면 Good의 본래 의미는 ‘가득’이다. 바구니에 수확이 가득하면 좋다. 밥그릇에 꽉꽉 눌러담아주면 좋다. 깨달음은 가득차는 느낌이다. 언어감각에서 유래한다. 틀리면 어색하고 맞으면 자연스럽다. 본래는 깨닫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느낌으로 그냥 아는 것이다. 그것을 표현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모르는게 더 이상하다. 궁금하지도 않나? 어색하지도 않나? 그 위화감을 어떻게 견디지? 어딘가 찝찝해져서 숨을 쉴 수가 없다. 마음이 불편해져서 마음이 편안해질때까지 생각을 해보는 거다. 그 편안한 쾌감에 중독성이 있다. 언어의 자연스러움을 따라가서 마음의 자연스러움에 이르면 그것이 깨달음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원인과 결과다. 결과는 그림자다. 그렇다면 원인은? 깃털이라고? 그게 다야? 달랑 이걸로 설명끝? 깃털 배후에 당연히 있어야 되는 몸통은? 깃털과 몸통을 매개하는 돈은? 언제나 그렇듯이 뒷전에서 뛰는 전주가 있고 앞전에서 뛰는 선수가 있다. 배후가 있고 배후의 배후가 있다.


    만화라도 그 정도 한다. 건달 뒤에 중간보스 있고, 그 뒤에 큰형님 있고, 배후에 전국구형님 있다. 거기에는 홍준표 비슷한 검찰출신 정치인과, 류근일 비슷한 언론인과, 김승연 비슷한 재벌이 엮어서 질의 균일성을 담보한다. 그래야 뭔가 그럴듯한 그림이 되어보이는 거다. 구조론을 몰라도 그 정도는 한다.


    국가나 회사라도 마찬가지다. 병사 뒤에 장교, 장교 뒤에 장군, 장군 뒤에 독재관, 독재관 뒤에 원로원 있다. 회사라면 말단 뒤에 간부, 간부 뒤에 이사, 이사 뒤에 CEO, CEO 뒤에 대주주다. 5층은 되어야 윤곽이 잡힌다. 언어에 다 있다. 동사 뒤에 명사, 명사 뒤에 주어, 주어 뒤에 명제, 명제 뒤에 담론이다.


    문제는 이름이 없다는 거다. 그냥 ‘거시기’나 ‘있잖아요.’라는 요상한 말로 얼버무려야 할 때가 너무 많다. 그림자 뒤의 전달체니 피사체니 매개체니 광원이니 하는건 필자가 방금 붙인 이름이고 사실 이름이 없다. 그냥 원인 아니면 원인의 원인, 아니면 궁극적 원인, 본질적 원인 이런 엉터리 말로 얼버무린다.


    말로 표현하여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다. 언어는 듣는 상대방 기준에 맞추기 때문이다. 깨달은 사람이 깨닫지 못한 사람의 기준에 맞추니 깨달음이 사라져 버린다. 다만 배후의, 배후의, 배후의, 배후까지 캤을 때의 전율할듯한 느낌을 누구나 한 번쯤은 느꼈을 거다. 그림으로는 1초만에 느낀다.


    만남의 느낌, 반가운 느낌, 그런 느낌이 있으니 이 글을 읽으러 오는 하루 3천여명의 방문자가 있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뇌 속 깊은 곳에 저장된 쾌감을 필자의 글이 불러낸 것이다. 그렇다. 여러분도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필자의 글은 재미없다. 읽어지지 않는다. 왜냐고?


    이명박 이후 결심했다. '이제부터 재미없는 글 쓰자. 딱딱한 구조론 글을 집중적으로 쓰자. 뻘소리 지껄이는 자는 확 쫓아버리자. 머리 나쁜 애들은 설득하지 말자. 비위 맞추는 글은 끝이다. 나가야 할 사람들이 나가도록 유도하자.' <- 이런 작정을 했기 때문이다. 재미없으라고 쓰는 글인데 읽어주니 고맙다.


    깃발의 펄럭임을 보고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펄럭임도 있고 깃발도 있고 바람도 있고 그 바람을 불게하는 기압차도 있다. 대기압이 에너지원이면 바람은 매개채, 깃발은 피사체, 펄럭임은 전달자, 내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은 최종적인 상像이다. 상像은 언제나 허상이고 실상은 배후에 숨어 있다.


    깨달음은 타고나는 것이고, 각성하는 것이고, 공명하는 것이다. 인간은 집단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집단의 하부구조로 종속된다. 모든 사람이 깨달았다며 폼 잡고 있으면 그것도 곤란하다. 다만 지도자는 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 지도자가 소식을 전파하면 구성원 모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수신은 가능하다.


    방송국이 송출하면 라디오는 수신한다. 송출하는 방송국의 깨달음은 쉽지 않으나 수신하는 라디오의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다. 여러분의 뇌 속에 수신장치가 있다. 구조론의 글들을 읽고 느낌이 찌르르 하고 온다면 안테나가 살아난 것이다. 진리와 공명하는 능력이 인류 모두에게 갖추어져 있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지도자 되기 힘들다. 2500년 전 석가모니가 깨달았을 때만 해도 무지한 민중과의 격차는 컸다. 누구든 쉽게 폼 잡을 수 있었다. 조금만 알아도 동네 분위기를 확 바꿔놓을 수 있었다. 지금은 70억 분의 1의 확률이다. 좀 안다고 해도 과학과 경쟁해야 한다. 과학을 이기는 깨달음은 어렵다.


    사람들이 종교로 달려가는 것은 뇌 속의 안테나가 반응하기 때문이다. 잡음이지만 무언가 들린다. 라디오 역할만 하면 실패다. 21세기는 스마트 시대다. 아프리카 TV만 해도 초딩이 먹방 정도는 해내는 세상이다. 방송국이 되려면 뇌 안의 잠들어 있는 기능을 깨워야 한다. 단 방송국 안테나는 높아야 한다.    


    q743-0.jpg


    이 그림이 좋다는건 말 안 해도 안다. 느낌 와준다. 그러나 설명하라고 하면 망치고 만다. 나는 아직 미술평론가 중에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사람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울 뿐 분명히 있다. 광원이 있고, 매개체가 있고, 피사체가 있고, 전달자가 있고, 그림자가 있다. 있을건 다 있다.

 

    여러분은 모네의 그림을 보지 않았지만, 여러분은 모네의 그림을 보았다. 여러분의 기억 속 어딘가에 저 그림이 숨어 있다. 그래서 뇌가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회피한다. 이발소 그림이나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명화는 설명할 수 있으니까 좋아한다. 설명하는 권력을 탐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설명하는 권력이라도 마찬가지다. 이미 그림의 본뜻에서 멀어져 있다. 여러분의 뇌로 들어간 그림은 그림자다. 액자에 걸린 그림은 전달체다. 모네의 그림은 피사체, 뇌 속의 반응장치는 매개체, 체험의 공유는 광원이다. 설명은 못해도 그것은 반드시 있다. 광원이 있다. 뇌가 반응할 수 밖에 없다. 


DSC9991.jpg



    이런 그림을 여러분이 본 적이 없다. 뇌가 즉각 반응하지 않으므로 설명해줘야 하는 이런 그림은 가짜다. 설명충들이야 신나서 떠들어대겠지만 설명이므로 아웃이다. 반예술적인 권력행사라는 말이다. 왜 깨달음인가? 뇌가 물리적으로 반응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반응하면 공명한다. 말 안 해도 통한다.



 aDSC01523.JPG


    설명할 수 없어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뇌가 반응하면 뭔가 있는 것입니다. 설명은 제가 할테니 여러분은 따라오면 됩니다. 전혀 반응하지 않는 사람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테니까요. 패션이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어느 분야든 설명하기 어려워도 내밀한 작동원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지 않습니까? 반응하면 깨달음입니다. 종교는 반응할 작정으로 작심하고 억지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하기 좋아하지만 정작 반응해야 할 새로운 버전이 나오면 침묵합니다. 눈치봅니다. 진짜라면 새로운 버전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레벨:10]하나로

2016.01.25 (23:34:32)

선생님 글은 항상 다음이 기다려지는 글이었습니다.
내일 소풍가는 초등학생의 마음처럼.....
[레벨:30]이산

2016.01.26 (00:21:08)

진짜라면 새로운 버전을 알아볼수 있어야 합니다!!!
[레벨:10]mensura

2016.01.26 (10:28:40)

동렬님의 예전 글,

"백남준의 유혹"이

떠오르는 글입니다.

저도 "독자 여러분"

중의 한 사람이네요.

"동감"을 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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