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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853 vote 0 2016.01.18 (20:05:32)

     

    주말 양양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다. 게시판에서 논하던 ‘완전성’이 토론의 주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완전성이라면 신영복 선생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님은 김용옥의 도올학당에 초대된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그 분이 어떤 인격의 소유자였는지는 요며칠 쏟아지는 신문기사로 다들 알게되었을 터이다. 아무님에 의하면 말씀도 행동도 눈빛도 차분한 분인데, 이마가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격정을 토하는 도올의 열강과 대비가 되었다고.


    무엇인가? 구조론은 ‘돈오’다. 신영복 선생은 20년간 감옥에서 ‘점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그럴까? 평범하게 살았을 사람이 20년이나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명상을 할 충분한 시간여유를 얻어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을까?


    무엇이 완전성인가? 선생과 같은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를 말하기 쉽다. 구조론의 입장은 다르다. 환경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어느 면에서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활력이 있는 사람, 화통한 사람이 더 완전성에 가깝다.


    그렇다면 시끄러운 도올 김용옥이 차분한 신영복 선생보다 완전한가? 양보다 질이다.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돌아다녀야 하는건 아니다. 환경과 교감하는 능력이 우선이다. 에너지 낙차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분주한 사람보다 차분한 사람이 더 자연의 숨겨진 목소리를 잘 들어내는 법이다. 영화 레인맨의 소재로 쓰인 서번트증후군을 떠올려도 좋다. 조용한 사람이 집중해서 듣는다. 강아지똥의 권정생 선생 역시 차분한 분이다.


    신영복 선생이나 권정생 선생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예리한 감각기관을 가진 게다.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내면으로 치열한 사람에게 진정한 에너지가 있다. 그런 분들이 한 번 성질내면 무섭다.


    물론 아는게 없어서 그냥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차분한 사람으로 오인될 수도 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죽어서 산 윤동주의 살아서 죽은 서정주의 눈빛은 다르다. 잘 보이려는 눈과 잘 보려는 눈은 다르다.


   seojungjuphoto.jpg

    - 소인배의 얼굴은 자신을 전시하려는 의도를 들키기 마련이다. -


    구조론의 완전성은 의사결정의 완전성이다. 의사결정을 낳는 것은 운명의 만남이다. 유비와 제갈량처럼 만나야 한다.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만남도 같다. 유비 캐릭터라면 신영복 선생과 같은 차분한 이미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과연 그럴까? 혹시 유비가 도올 김용옥과 같은 떠벌이에 자뻑은 아닐까? 정사 삼국지로 보면 고우영 화백이 만들어낸 ‘쪼다 유비’와는 상반되는 ‘호걸 유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유비는 일단 말이 많고 자기자랑을 잘 하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언플의 대가다. 삼국지연의에 전하는 유비의 많은 일화는 유비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쓰기 전에 유비가 반을 지어놨다는 거다. 유비 스스로 천하를 돌아다니며 유세한 것이다.


    당시에는 신문사가 없었다. 방송국도 없었다. 지식인의 사랑방을 돌며 이야기를 퍼뜨리는 과객문화가 있었다. 과객들은 양반집을 방문하여 밥을 얻어먹으며 온갖 세상이야기를 전한다. 그 소스를 만들어서 잘 뿌리는 사람이 유비였다.


    한 고조 유방도 신중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격정적이고 코믹한 사람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면 5분만에 입장을 바꾸기도 할 정도로 변덕스럽다. 활력이 넘치고 일을 잘 벌이는 사람이었다. 신중하기로는 참모인 장량, 진평, 소하였다.


    공자는 어떤 사람일까? 사士는 임금의 비서 겸 경호원이다. 원래 사士는 당연히 무사였다. 당시의 임금은 요즘의 면장이나 군수 정도 되는 봉건영주가 대부분이다. 주군을 따라다니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게 사士의 소임이다.


    활쏘기와 마차몰기를 특기로 하고 악기도 연주해야 한다. 공자 역시 다방면에 걸쳐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공자라 불리는 골방샌님이 글줄이나 읽은 걸로 잘난척 한다는 소문을 듣고 단번에 박살내겠다며 쳐들어온 사람이 자로다.


    키가 190이나 되는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인 공자가 완력으로 자로를 제압하고 꾸짖어 제자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 당시는 그런 시대였다. 학문만 연구하는 지식인 신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공자와 실제의 공자는 다르다.


    자공의 지智, 안회의 인仁, 자로의 용勇이 드림팀을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자로가 공자를 지켰고, 안회가 공자를 완성했으며, 자공이 공자를 천하에 널리 알렸다. 세 사람이 합쳐져야 공자의 진짜 얼굴이 된다. 신영복 선생은 안회다.


    안회만으로는 안 된다. 힘 센 자로와 돈 많고 머리 좋은데다 장사도 잘했던 자공이 받쳐줘야 한다. 자공은 요즘으로 말하면 정치 9단에 벤처재벌인데 공자는 늘 자공의 지나친 재주를 꾸짖었다. 무슨 뜻인가? 안회는 과대평가 되었다.


    자공은 뛰어난 언변으로 노를 침공하려고 하는 제의 총사령관에게 가서 그를 설득해 강성한 오나라를 치는 것이 총사령관에게 얼마나 이득인지 설득하고, 오에 가서 오왕인 부차에게 노를 돕는 것이 패자가 되는 길이라고 설득하고, 뒤쪽의 월이 걱정된다고 하자 월로 가서 월왕인 구천에게 오를 돕는 척 하면서 오의 빈틈을 노리라고 조언한다. 다시 오로 가서 월의 과도한 지원을 막고, 노를 도우면서 진까지 치는 것을 건의 한 후, 진으로 가서 오의 침공이 걱정되니 방비를 단단히 하라고 조언한다. 자공이 국제 무대에 한 번 등장해서 노를 구하고, 제를 뒤흔들고, 오를 멸망시키고, 진을 강대하게 만들고, 월을 패자로 만들었다.(나무위키)


    논어를 편집한 사람은 자공이라고 추정된다. 그래서 자공에 대한 공자의 꾸짖음이 많이 기록되었다. 그것은 자공의 겸손이다. 자공이야말로 공자의 진짜 제자였던 것이다. 공자는 자공의 지나친 재주를 걱정하여 안회와 대비시켰다.


    그 덕분에 안회가 부각되었을 뿐이다. 원래 스승에게 제일 많이 깨지는 사람이 수제자다. 장인은 우수한 옥을 가장 열심히 다듬는 법이다. 우리는 안회에서 공자를 보려고 한다. 그것은 잘못이다. 자로 + 안회 + 자공이 진짜 공자다.


    신영복 선생은 공자의 1/3이다. 나머지 2/3은 이제부터 우리가 채워야 한다. 어떻게? 시대를 초월한 만남으로 가능하다. 기승전결로 사건을 연결하여 가는 것이다. 완전성은 어떤 개체에 없고 에너지가 왕성한 계의 확률 속에 있다. 


    한 순간의 만남을 위해 20년을 기다릴 수도 있다. 달마가 9년 동안 면벽하였다고 하지만 어쩌면 9년 동안 거기서 혜가를 기다렸을 수도 있는 것이다. 벽보고 100년을 가부좌로 앉아있어도 만날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이룰 수 없다. 


    사람을 만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진리를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천하를 만나야 한다. 역사를 만나고 진보를 만나야 한다. 예리하고 섬세하고 민감한 사람이 만날 수 있다. 만나서 큰 일을 벌여야 한다. 세상을 다 바꾸는 일 말이다. 


    끝끝내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5년이나 고시공부를 했는데도 이룬 것이 없어서 자괴감에 빠져 있더라는 말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무려 5년 동안 고시공부를 했다면 그것은 대단한 성공이 아닌가’ 하고 말해주었다. 


    석달 하고 때려치우는 사람도 많다. 5년을 공부했다면 그 사람은 무려 5년동안 공부하기에 성공한 것이다. 그런 작은 성공들이 모여 큰 확률을 이룬다. 그 쓰이지 못하고 잠복하여 있는 것이 낙차있는 에너지다. 쓰인 것은 사라져간다. 


    결과가 나오고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믿지만 그것은 남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고시에 합격하기 위해 고시공부하는건 아니다. 전공을 살리기 위해 대학가는 것은 아니다. 논문은 당연히 가라로 쓰고 전공은 걍 폼으로 하는게 맞다.


    대학에 가는건 대학생이 되려고 가는 거다. 대학에서 스승을 만나고, 동료를 만나고, 연인을 만나고, 천하와 만나고, 진리와 만나면 된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졸업장 따위 필요없다. 스펙도 필요없다. 세상과 만나는게 중요하다.


    카뮈와 샤르트르는 정치적 입장 차이로 갈라선 이후 서로 꺼려하여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만나 있다. 서로의 존재를 의식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이즈가 너무 커지면 국가적으로 만날 뿐 개인적으로는 만나지 않는다.


    소승불교는 직접 만나야 한다. 만나서 옷깃이라도 스쳐야 인연이 성립한다. 소승불교에 여승이 없는 이유는 그 연결의 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힌두교의 논리로 비쉬누의 9대 화신인 석가모니와 같이 까르마로 직접 연결된다는 거다.


    스승은 제자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전수하는 걸로 되어 있다. 모든 승려는 전생의 어떤 스승이 환생한 몸이어야 한다. 물질적으로 전달된다. 바통을 넘겨주듯이 전해진다. 석가모니는 떠나면서 제자들이 기다렸던 사권을 부정했다. 


    수제자에게만 보이지 않게 전하는 무언가는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자등명 법등명이 그 말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카르마를 상속한다는 상좌부불교의 논리를 석가는 부정했다. 사권의 상속에만 관심을 두었던 제자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무엇인가? 열반의 현장에 석가의 본질을 이해한 진짜 제자는 어쩌면 한 명도 없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황당하게도 동남아의 상좌부불교는 아직도 그것이 있다고 우긴다. 그래서 까르마의 상속이 끊어진 여승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정도면 무엇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대략 감이 올 것이다. 카뮈와 샤르트르는 만나지 않아도 만나져 있으며 상좌부불교는 만나도 만나지지 않는다. 완전성은 위대한 만남에 있고 운명적인 만남에 있다. 만났다고 만난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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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 무려 30년이나 피아노를 분석하고 연구했는데도 피아노를 조금도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피아노를 연주할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연주자만이 최고의 악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연주한다는 것은 곧 때린다는 것입니다. 공자를 때리지 않고 공자를 알 수는 없습니다. 때려서 소리를 내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공자로부터 가장 많은 소리를 끌어낸 사람은 자공과 자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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