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4년 동안 지켜본 아이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 셋과 부모님 셋. 4년 전엔 우리반도 아닌데 인성부장 자격으로 잦은 다툼의 중재에 나섰다. 장애아동의 어머님은 피해의식이 강했다.애들끼리 다툼도 자기 아들의 피해라고 생각해서 학교에 항의하기를 수차례. 애들 싸움이 어머님 싸움되고, 나중엔 동생들까지 뒤섞여서 싸운다.

진술은 일관성이 없고, 서로 억울한 것은 많고 특수반 선생님도 피곤하고 담임선생님들도 피곤하고 서로 관계만 나빠지고... 나까지 스트레스받고 지치고 화나고 집어치우고 싶은 맘까지 들었다.

4년뒤 지금은?

" 처음엔 인성부장님이 해결되지도 않을 일에 매달려 왜 저리 고생하시나 싶었는데 '되네요' , '애가 달라지네요' 참 대단하세요"

남수원초 첫 해 인성부장을 맡으면서 함께 학폭문제로 수고했던 중년 여선생님이 한 학부모와 교사들간의 간담회를 끝내고 한말이다. 참 말씀드리기 어려운 내용을 나누었는데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학교올 때 부담이 컸다는 부모님이 웃으며 나갔다. 그날 저녁때는 담임교사와 내게 감사드린다는 전화까지 왔다. 그동안 선생님들이 우리애들을 위해 수고 해주셔서 애들 표정이 밝아지고 많이 좋아지고 이제는 전에 보지 못했던, 동생을 배려하는 행동까지 한단다.

나의 오지랖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평소 인간사, 역사, 문제분석, 공동체, 학교의 변화에 관심으로 아무도 맡지 않던 인성부장을 4년째 맡으니 기승전해결되는 열매들이 보인다.

이제는 면대면 지능검사, 학부모상담, 교내 시간제 상담사배치, 교사상담, 아이들간의 문제 중재, 학부모와 교사들 교내 복지사와 함께 하는 간담회, 학부모교육을 병행하니 해결의 열매들이 보인다. 대한민국의 어느 학교도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연구학교, 실험학교, 특성화 학교가 상담 관련일을 해도 우리 학교 만큼 하기 어렵다.
혼자서는 안되었을 일이었는데 전교조 선배 교사들의 격려와 조언, 동료교사들의 협력, 대학원 상담실습의 노하우, 학교 관리자의 지원과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이제 겨우 계절제 상담 대학원 6학기를 마쳤고 논문쓰기 계속 미뤄서 전문상담교사 1급 자격도 못땄다. 서른 다섯에 초등교사가 되어 늦깎이로 교사 경력이 8년 밖에 안된다. 그 쉽다는 초등 임용고시를 4수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올 수 있던 이유는 관심과 끈기였다. 기다림... 참 이게 어렵다. 때로는 설익은 판단과 설익은 기술로 설익은 열매를 까보다 낭패를 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과 프로그램이 좋아도 타이밍을 못맞추면 허사다. 교사는 직업상 기다리는 것을 어려워한다. 교육효과는 장기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을 표면적으로 접근하고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일관되게 오래하기는 참 힘들다.

잘 까먹고 말빠르고 더듬고 정리가 잘 안되는 핸디캡이 있음에도, 4년전에는 상상하지도 않았던 상담계에 입문한 것은 참 신기하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우리 학교현장에서 필요해서였다. 그놈의 오지랖. 누구를 만나도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마음. 그걸로 4년을 버텄다. 그러니 서로간 신뢰가 쌓이고 의사결정속도는 빨라지고 관계에 대한 이해는 깊어진다. 딱히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잘못하고 있는 오버를 줄이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썼을 뿐이다.

"난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난 당신 편이예요. 무엇때문에 그렇게 힘들죠? 당신 얘길 듣고 싶어요. 당신은 이 문제를 이겨낼 수 있어요. 당신에겐 그런 힘이 있어요. 한 번 노력해봐요. 몇 년 후면 편하게 서로 웃을 수 있는 날이 올거예요. 제가 계속 함께 할게요. 우리 그때까지 화이팅!"

결론은 관심갖고 오래하면 된다. 현장에서 부대끼고 연구하며 조금씩 자신이 달라지면 된다. 그러면 어느새 팀이 만들어지고 함께 할 수 있다. 외부 힘을 학교 안으로 끌어와서 조절하며 이용할 힘을 갖게 된다. 결국 애들 문제, 부모문제는 달라진다.

[레벨:11]큰바위

2016.01.02 (14:22:33)

이상우 선생님 화이팅. 

말은 쉬우나 그렇게 산다는 건 어렵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 판에, 

한 교실을 책임지기 위해 선생님이 기울이시는 노력은 그 어떤 공동체의 노력 못지 않게 수고롭습니다. 


2016년에도 힘내시고, 은근과 끈기와 인내와 선생님만의 특유한 Uniqueness로 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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