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구조주의

구조주의 철학

세상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물의 바탕은 없다. 고유한 본성 따위는 없다. 작고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원소 따위는 없다. 원자는 없다. 궁극의 소립자는 없다. 구조는 짝짓기다. 짝짓기의 포지션은 있다.

만유는 물(物) 자체의 속성에 따라 사전에 기능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관계, 포지셔닝에 의해 기능이 부여된다. 서로 어떻게 만나고 맞물리고 짝짓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수소와 산소의 성질은 수소나 산소의 내부에 있지 않다. 그 원소의 핵과 전자가 주변과 어떻게 관계맺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성질은 내부에 있으므로 성질이다. 그런데 외부에 있다. 그래서 관계다.

관계는 대체될 수 있다. 핵을 쪼개고 전자를 짝지어 산소나 수소의 성질을 끌어낼 수 있다. 여기서 존재가 관계맺는 방식은 다섯이다. 만나기≫맞물리기≫짝짓기≫하나되기≫낳아내기다.

이를 선(線) 위에 나열하는 열거형이 아니라 통합적, 입체적 모형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뇌 속에 모형을 세팅해 두면 연역할 수 있다. 전체를 한 줄에 꿰어 설명할 수 있다. 모듈화다. 깨달음이다.

구조론은 요소들이 관계맺기에 따라 포지션을 획득하고 작용-반작용의 일 단위를 이루는 과정을 해명한다. 심과 날의 포지션에 따라 우선순위의 질서를 얻으면 일할 수 있다. 세상이라는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다.

세상은 이렇듯 연출된 것이다. 어딘가에 광원이 있어서 우주라는 스크린에 영상을 뿌려준다. 우리는 낮은 그림자의 세계에 살지만 저 높은 빛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신의 창조에 가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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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차갑고 불은 뜨겁다는 식으로 원소의 성질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와 어떤 층위에서의 만남을 가지느냐에 따라 혹은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되듯이, 존재는 포지션에 따라 기능을 얻는다.

그것이 의미다. 삶은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자기 포지션을 찾는다는 것이다. 포지션은 짝을 가진다. 앞의 짝은 뒤다. 위의 짝은 아래다. 공격의 짝은 수비다. 밤의 짝은 낮이다.

짝이 없는 경우는 없다. 짝이 없으면 일할 수 없고 일할 수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 존재는 일이기 때문이다. 구조는 일하며 밸런스를 추구한다. 밸런스는 짝 2를 외적으로 대표하는 쌍 1이다.

짝 2는 내적 정합성에서 심을 얻어 쌍 1을 이룬다. 외부에 대해서는 1로 행세한다. 내부에서 통제하는 심 1이 평형이다. 밸런스다. 가치다. 가치 있다는 것은 내부에 심이 있어서 자기통제가 된다는 것이다.

● 의미는 연결한다. - 의미는 짝짓기 포지셔닝이다.

● 가치는 판정한다. - 가치는 짝지은 쌍의 밸런스다.

공은 투수와 타자, 공격과 수비 양쪽을 동시에 상대한다. 공 하나에 두 팀의 운명이 동시에 결정된다. 1이 2를 통제하면 나머지 1은 잉여다. 가치는 잉여를 발생시켜 세상을 꾸려가는 밑천을 삼는다.

의미의 포지셔닝에 의해 가치가, 가치의 판정에 의해 잉여가, 잉여의 축적에서 비롯된 새로운 낳음에 의해 세상이라는 드라마는 연출된다. 이러한 전개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전모를 볼 수 있다.

만유는 일에 의해 자기를 보존하고 외부에 대응한다. 일의 파트너가 있다. 파트너를 찾는 의미, 파트너와 짝짓는 가치, 잉여를 임신하는 개념, 잉여를 낳아서 일의 1 사이클을 완성하는 것이 원리다.

낳음은 또 다른 낳음을 낳는다. 점점 전파되고 확대된다. 어미인 원본이 낳은 복제본을 주변에 거느리고 소통하며 점점 커지는 것이 구조발전의 최종단계인 시스템이다. 그렇게 존재는 진보하고 발전한다.  

일은 사실의 세계에 뿌리박고 있다. 인간은 사실을 넘어 의미를 추구하지만 궁극적으로 가치를 찾아 낳음의 완성을 꿈꾼다. 완성되면 통한다. 그럴 때 전율한다. 오르가즘을 느낀다. 긴장은 풀리고 이완된다. 편안해진다.  

인간이 상황과 마주쳤을 때 긴장한다. 일을 통하여 상황을 극복한다. 그리고 쾌감이라는 보상을 받는다. 절정의 쾌감이 지나면 편안한 이완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고 독립과 완성을 지향한다.

완성되면 낳는다. 낳음이 없으면 가짜다. 플라스틱 조화는 열매를 낳지 못한다. 낳는 것이 진짜다. 원인은 결과를 낳고, 생명은 순환을 낳고, 문명은 진보를 낳고, 작가는 작품을 낳고, 노동자는 소득을 낳는다.

낳음으로써 완성된다. 완성될 때 통한다. 통할 때 긴장이 풀린다. 하루의 일은 끝나고 휴식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그 완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개념이다. 낳음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원리다.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 순으로 일은 고도화된다. 사실은 나타나고, 의미는 연결하고, 가치는 짝짓고, 개념은 완성하고, 원리는 낳는다. 구조론은 커다란 낳음의 자궁이다. 큰 어머니다.  

오류는 귀납에서 일어난다. 귀납은 눈, 귀, 코, 혀, 촉각이 수집한 단서를 토대로 추론한다. 연역이 높은 질서≫낮은 질서로 범위를 좁히는 데 비해, 귀납은 그 반대로 범위가 점차 넓어지므로 혼선이 있다.

무수히 많은 단서들 사이에서 교통정리에 실패하므로 귀납은 필연적으로 오류에 빠진다. 앞과 뒤, 위와 아래, 안과 밖, 중심부와 주변부의 짝지어진 대칭구조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미로에 빠져버린다.

양자를 동시에 제어하는 가치를 찾아 단순화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치는 항상 한 차원 더 높은 층위에 있기 때문이다. 점의 포지션을 찾으려면 선 위로 올라서야 한다.

선의 포지션을 찾으려면 각 위로, 각은 입체 위로, 입체는 밀도 위로 올라서야 보인다. 항상 높은 단계에서 낮은 단계가 보일 뿐이다. 점에서 점을 찾고, 선에서 선을 찾으므로 포지션을 찾지 못한다.

심과 날을 구분하지 못하므로 짝짓지 못한다. 짝짓지 못하면 잉여를 얻지 못한다. 잉여가 없으면 에너지가 조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낳음이 없다. 상황은 교착되고 난국은 타개하지 못한다. 결국 파산한다.

연역이어야 한다. 연역은 높은 단계에서 출발한다. 밀도에서 입체를 찾고, 입체에서 각을, 각에서 선을, 선에서 점을 찾는다. 낳음이 있다. 낙차가 있고 잉여가 있어서 에너지가 조달된다. 진도 나가준다.

영사기가 스크린에 영상을 뿌려주듯이, 존재의 빛과 그림자≫상대적 관계≫대칭과 평형≫의미와 가치≫잉여와 낳음이 집적된 입체적 모형의 연역구조를 세팅함으로써 세상이라는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다.

귀납적 사고의 오류들

● 수집형 사고.. 고정관념에 집착하여 차별의 편견에 빠진다.

태초에 인간의 조상은 자연에서 수집하는 방법으로 조달하였다. 그 과정에서 금은 원래 금이고 은은 원래 은이듯이 물(物) 자체에 고유한 속성이 있으며 모든 것은 원래 그러하다는 믿음을 얻는다.

여자는 원래 약하고 남자는 원래 강하며, 주인은 원래 높고 노예는 원래 낮으며, 백인은 원래 우월하고 흑인은 원래 열등하며, 그 바탕에는 고유한 속성이 있고, 속성은 불변하므로 차별이 정당하다는 식이다.

모든 상(相)은 관계다. 물 자체의 고유한 속성은 없다. 분별망상이다. 일체의 차별과 편견, 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한다. 모든 성질은 구조에 의해 이차적으로 유도된다. 구조의 성질은 고유하지 않고 보편된다.

● 열거형 사고.. 가치판단의 실패로 극도의 비효율에 빠진다.

자연에서 수집한 것을 집으로 가져와 열거한다. 선 위에 나열한다. 관계-포지션에 따른 입체적 모형으로 발전시키지 못한다. 계 전체를 하나의 기준으로 통제하지 못한다. 잉여를 얻지 못한다.

일에 우선순위가 없고, 접근경로가 없고, 판단에 경중이 없고, 설계도가 없으니 아는 것은 많은데 행하지는 못한다. 상황을 장악하지도, 통제하지도, 결정하지도 못한다. 이 경우 개입이 최대화된다.

덧셈은 하는데 곱셈을 못하니 비효율이다. 낮은 수준에서 해결하려 드니 개입할 때마다 문제가 덧나서 사태는 점점 심각해진다. 입체적 모형을 세팅하여 높은 포지션을 얻어야 개입이 최소화된다.

● 절대성 몰입형 사고.. 에너지 순환이 막혀 지속가능한 성장 실패.

수집하고 열거한 다음에 축적한다. 높이 쌓는다. 이때 상하개념이 생겨난다. 경중개념이 생긴다. 포지션의 존재를 처음 깨닫고 충격받는다. 문제는 빠져든다는 데 있다. 높은 포지션을 차지하려고 혈안이 된다.

임금과 신하, 귀족과 평민, 하늘과 땅의 이원론으로 차별한다. 높은 포지션을 차지해서 지배자가 되려 한다. 권력을 장악하고 대중을 통제한다. 시스템을 건설하지만 피드백이 없으니 지속가능하지 않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일시적 효율을 얻는다. 착취와 약탈, 신대륙 개척, 자원의 투입으로 반짝성공을 얻지만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다. 자원은 고갈되고 정권은 무너지고 회사는 파산하고 왕조는 붕괴한다.

● 상대성 몰입형 사고.. 방향성 잃고 허무주의로 퇴행한다.

수집, 열거, 축적 다음에 사용한다. 사용할 때 가치의 짝짓기에 의해 대체된다. 노력은 천재로, 노동은 발명으로, 물질적 부는 정신의 자부심으로 대체된다. 이때 가치전도 현상이 일어난다.

대체되므로 애초에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무해한다. 그러나 가치의 대체, 교환은 일정한 완성형의 질서 안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상대성은 절대성의 바운더리 안에서 작동한다.

차별과 지배를 반대하지만 대안제시는 못한다. 변절하여 수구가 되거나 종교에 귀의한다. 강단에 은거하며 현실도피에 빠진다. 물질의 소유는 정신의 자부심으로 대체되지만 그것으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 파편화된 사고.. 도중에 주저앉아 점방 열고 불안한 모색.

수집, 열거, 축적, 사용으로 외부와 소통하며 거기서 쾌감을 얻는다.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본능의 가치든,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의 성취든, 인간의 모든 가치는 외부와의 소통에서 얻어진다.

욕망은 개인이 세상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며 소통에 이르도록 유도하는 절차다.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소통이 진정한 목적이다. 욕망과 고통은 소통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채근하는 당근과 채찍이다.

끝단을 확인하지 않고 도중에 주저앉아 한탄하는 것이 파편화된 사고다. 인생은 안개 가득한 미로 속에서의 불투명한 모색이라 여기며 불안해한다. 가다가 도중에 좌판 깔고 집금하며 틈새시장 개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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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개인의 욕망에서 동기를 얻어 출발점에 선다. 나아가며 이웃과의 소통에서 의미를 얻고, 나아가 국가와 세계로 확대시키는 데서 가치를 얻으며, 거기서 얻어진 잉여를 동력으로 삼아 주도권을 잡는다.

점차 소통의 지평을 넓혀 간다. 최후에는 부분과 전체의 소통이다. 우주 전체와의 소통으로 완성시켜야 한다. 밀도 있는 소통이어야 한다. 정상에서의 초극이라야 한다. 계속 가야 한다. 끝단을 확인하기까지.

구조주의 세계관

새로운 학문의 지평을 열다

20세기를 전후로 새로운 학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생물학이 나왔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서 심리학이 나왔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경제학이 나왔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사회학이 나왔다.

현대성을 규정하는 네 가지 새로운 학문이다. 없던 것이 새롭게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구조론이 가세하고 있다. 진화론, 국부론, 자본론이 그러하듯이 구조론은 새로운 학문의 지평을 열어젖히는 문이다.

문을 열면 길이 나타난다. 길은 또 다른 길과 이어지며 무수한 새로움과 짝짓는다. 오늘날 인류의 지적 영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19세기 아메리카 신대륙 붐에 이어 21세기 인터넷 신대륙 붐이 있었다.

망원경을 발명하여 처음 별을 관찰했을 때 그곳에 거대한 신세계가 존재함을 알았다.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처음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했을 때도, 처음 핵실험을 했을 때도 그러하다.  

구조론은 ‘일’이라는 원자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일’이라는 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한다. 거기서 새로운 세계가 발견되었다. 잃어버린 대륙 하나를 되찾은 것이다. 지금 거대한 드라마의 출발점에 서 있다.

학문의 첫 단추

학문은 자연의 질서에 근거를 둔다. 자연을 관측하여 얻은 질서를 인간의 인식으로 옮겨오는 방법이 학문이다. 학문의 중핵은 논리다. 논리는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정신으로 운반하는 수레다.

수레가 다니면 길이 열리고, 사거리가 생기고, 신호등이 생기고, 도로체계가 생겨난다. 구조론은 수레다. 만유를 운반한다. 수레가 다니며 일하므로 구조체와 시스템에 관한 새로운 학문체계가 얻어진다.

국부론에서 경제학이 나오고, 진화론에서 생물학이 나오고, 자본론에서 사회학이 나오듯이, 하나의 논(論)에서 하나의 학문이 탄생한다. 구조론이 새로운 학문을 일구니 구조주의로 발전하여 인류의 새 길을 연다.

구조론은 크게 보아서 수학의 범주에 포함된다. 정확히 말하면 자연과 수학 사이를 매개한다. 자연의 패턴에서 질서를 얻는다. 질서는 심과 날의 질서다. 심은 덩어리져 몸통이고 날은 짝지어서 팔다리다.  

기하학은 질서의 덩어리인 심을 기본으로 대칭성을 탐구하고, 대수학은 이를 연산하여 짝지어진 날을 낱낱이 떼 놓는다. 구조론은 자연의 질서≫기하의 대칭≫대수의 원소로 전개되는 과정을 해명한다.

수학은 과학에 앞선다. 기하는 대수에 앞선다. 구조는 기하에 앞선다. 자연은 구조에 앞선다. 구조론은 기하학 이전의 학문이며 자연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자연에서 기하를 빼오는 과정을 해명한다.

기하는 추상이다. 추상의 추는 뺄 추(抽)다. 덩어리 자연에서 질서를 빼는 절차가 구조론이다. 빼온 기하와 대수는 불완전하다. 구조론은 본래의 완전했던 자연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각별하다.   

자궁이 없이 태어나는 아기는 없다. 학문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율에 따라 자연에서 유도되는 절차를 거친다. 과학의 자궁이 수학이면 수학의 자궁은 구조론이고 구조론의 자궁은 자연이다.

◎ 자연의 질서≫구조론의 집적≫기하의 대칭≫대수의 연산≫과학의 분류

과학의 근거는 수학이다. 수학의 근거는 구조론, 구조론의 근거는 자연이다. 자연에는 패턴이 있다. 입력≫저장≫제어≫연산≫출력의 1 사이클에 따른 내적 정합성과 자체 완결성을 성립시킨다.  

자연은 입력하고, 구조론은 저장하고, 기하학은 제어하고, 대수학은 연산하고, 과학은 출력한다. 구조론은 자연의 광산에서 과학의 금을 캐는 갱도다. 수학이라는 원석을 가공하면 과학이라는 금이 얻어진다.

수학이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수학은 개념의 정의에 기초하지만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 이를 ‘무정의요소’라 한다. 수학의 출발점은 1이다. 그런데 1이 왜 1인지는 해명하지 못한다.

점과 선과 각과 입체와 밀도가 어떤 원리로 자연에서 유도되는지 해명되지 않았다. 기하학은 점을 정의하지 못한다. 그것은 수학 이전의 단계에서 건너온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정의할 수 없다.

모든 존재는 그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유도되어 온 것이다. 유도절차에 따라 절대경로와 상대경로가 있다. 고유한 자신의 주소지가 있다. 구조론이 수학과 과학의 주소지를 해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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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는 지난 수천 년간 원근법이 없었다. 다들 눈 뜨고 당한 것이다. 원근법은 그냥 보면 보이는데 왜 못 봤을까? 눈을 감고 다녔는가? 그렇다. 눈 감고 다닌 거 맞다. 이제 눈을 떠야 한다.  

진화론, 심리학, 경제학, 사회학들은 근래에 나왔다. 지난 수 천년간 눈 뜨고 당하다가 20세기 들어 차차로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철학과 미학도 여전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 학문의 길은 아직도 멀다.

구조주의 세계관

세상 모든 것은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연동된다. 하나가 바뀌면 모두 바뀐다. 구조론은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학문의 지평을 연다.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며 구조주의 세계관으로 발전한다.

구조주의 세계관은 근대철학 및 과학적 방법론의 근간을 이루는 원자론과 이에 따른 뉴턴의 기계-결정론 그리고 데카르트 이후 과학의 방법론으로 자리 잡은 인과율 및 요소환원주의 세계관을 대체한다.  

근대 합리주의≫인과율≫요소환원주의≫원자론≫기계-결정론들이 하나의 사슬에 꿰어져 연동된다. 이 중 하나가 무너지면 모두 붕괴한다. 구조론이 이들 사이의 연쇄고리를 해체하고 재질서화한다.

기계-결정론의 반대편에 상대성-불확정성-양자론이 있다. 이들은 확실한 이론의 토대 없이 불안한 모색 가운데 있다. 구조론은 이들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를 제시한다. 이들을 얽어 입체적 모형을 완성한다.

이론과 사상은 고립된 채 존립하지 못한다. 다른 사상이나 이론들과 관계를 맺는다. 짝을 짓고 쌍을 이룬다. 결국 하나의 통합적 모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통합적 모형 안에 각자의 포지션이 있어야 한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구조론은 여러 현상을 바라보되 ‘개별 현상들의 열거’라는 시점이 아니라, 이들을 모듈화시켜 ‘요소들의 집적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하나의 체계’라는 통합적인 모형으로 본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합리론과 경험론, 결정론과 상대론의 짝지은 퍼즐조각을 선 위에 열거할 것인가, 아니면 이들 각자에게 뼈와 살을 주고 몸통과 손발의 역할을 주어 입체적으로 구성할 것인가다.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를 2차원 선 위의 대칭관계로 본다. 그 경우 교착되어 답이 없다. 구조론은 수준차로 본다. 좌와 우가 아니라 위와 아래다. 이 경우 답이 있다. 교착상황을 타개하는 돌파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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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는 이념이 다른 것이 아니라 수준이 다른 것이다. 포지션이 다르다. 사회에 머리 역할을 하는 지식그룹과 손발 역할의 하층민이 있다. 범 지구차원에서도 유럽이 머리라면 미국이 몸통이다.

질≫입자≫힘≫운동≫량의 전개에 따라 유럽의 머리가 힘을 쓰는 질의 단계가 있고, 미국의 몸이 먹어주는 입자 단계가 있다. 진보와 보수의 패권은 이러한 인류문명차원의 일의 1사이클 전개에 따라 결정된다.

세상을 내다보는 안목의 규정이 있다. 열거형과 통합형이 있다. 구조론은 통합형의 모형으로 본다. 통합의 단위가 되는 요소가 있다. 요소를 ┳로 나타낸다. ┳들이 집적하여 커다란 세계관의 tree를 이룬다.

나무처럼 점차 가지를 치며 뻗어간다. 무한정 전개하지는 않는다. 완성형이 있다. 입력에서 출력까지 1 사이클의 동그라미가 있다. 핵심인 제어의 ‘┳’에 자체완결성을 더하여 (┳)로 나타낼 수 있다.

● 제어 ┳ .. 안에서 기능하는 내적 정합성을 나타낸다.

● 입출력 (  ) .. 밖으로 대표하는 자체완결성을 나타낸다.

제어 ┳가 내적 정합성을 나타낸다면 입력과 출력 (  )는 1 사이클의 동그라미를 나타낸다. 완성과 낳음이다. 하나의 구조체는 tree의 내적정합 성질과 동그라미의 외적전개 성질을 동시에 가진다.

● 평형계 ┳ : 내부에서 짝지으며 제어하고 판정한다.  

● 구조체 (┳) : 일의 1단위로 완성형을 이루고 외부와 소통한다.

구조는 무수히 가지를 치며 사방으로 뻗어가지만 동시에 끝단이 있다. 완성형이 있다. 1반, 1학년, 1학교의 닫힌계가 있다. 동그라미가 있다. 그 안에 한걸음씩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성장성이 있다.  

평형계 ┳는 나무처럼 자란다. 구조체 (┳)는 꽃처럼 피고 진다. 씨앗에서 출발하여 싹과 잎과 꽃과 열매로 한살이를 완결시킨다. 역사도 그러하다. 문명은 큰 나무로 자라지만 왕조의 흥망성쇠는 사이클을 그린다.

삶도 그러하다. 아담과 이브로부터 비롯된 60억 인류의 전개를 족보로 그리면 커다란 하나의 나무가 된다. ┳와 같다. 그 안에서 개인은 생로병사의 1 사이클을 그린다.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 (┳)다.

네트워크도 그러하다. ‘┳’로 전개하여 사방으로 연결되고 성장하지만 동시에 한 대의 독립서버처럼 입력에서 출력까지 자체적으로 완결되어 하나의 단위 (┳)로 기능한다. 개방성과 독립성을 동시에 가진다.

사회도 그러하다. 상사와 부하가 ┳고 부모와 자녀가 ┳다. 한편으로 팀과 부서가 (┳)고 가족과 동아리가 (┳)다. 세상은 무수한 ┳와 (┳)들의 집합이다. 구조론은 만유의 기본요소 (┳)를 해명한다.  

원자론에서 구조론으로

종래의 원자론적 세계관을 구성하는 원자개념은 비유하면 큰 집을 구성하는 작은 벽돌 한 장과 같다. 집은 형태가 다양해도 벽돌은 같다. 하나의 벽돌이 온갖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구조론은 다르다. 구조론의 기본요소 (┳)는 완성된 집이라도 작은 벽돌 한 장과 구조가 같다. 하나의 기본형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복제된다. 부분과 전체는 닮았다.

● 원자론 - 원자 ●가 집적하여 다양한 형태로 변한다.

● 구조론 - 구조체 (┳)가 집적하여 이루어진 우주도 (┳)다.

구조론은 부분과 전체가 통한다. 부분이 (┳)면 전체도 (┳)다. 작은 가지와 큰 나무는 닮았다. 씨앗 속의 씨눈에 나무의 모습이 있다. 작은 지구도 (┳)고 큰 은하계도 (┳)고 더 큰 우주도 (┳)다.

구조체는 쪼개지지 않는 원자와 달리 완전히 쪼개진다. 쪼개면 해체되어 정보가 된다. 한편으로는 집적하여 무한히 커진다. 무한히 커져도 본래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한다. 근본은 같다.

원자는 성장하지 않는다. 입구도 없고 출구도 없다. 호흡하지 않는다. 에너지의 순환이 없다. 원자는 벽돌처럼 딱딱하게 죽어 있다. 우주라는 집의 건축재료로 사용될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반면 구조는 성장한다. 에너지가 드나드는 입구와 출구가 있다. 그 에너지로 호흡하고 순환한다. 구조는 우주라는 집의 하드웨어인 건축재료이면서 동시에 그 집의 소프트웨어인 설계도가 된다.

원자는 벽돌과 같아서 아무렇게나 쌓으면 되지만, 구조는 벽돌 한 장이 동시에 1바이트의 정보를 가진 설계도다. 구조는 설계도가 지시하는 일정한 순서와 방향으로만 쌓을 수 있다. 그래서 질서가 있다.

벽돌은 위나 옆이나 쌓으면 된다. 구조 ┳는 퍼즐조각과 같아서 다른 구조와 접속하는 위치가 결정되어 있다. 구조체를 쌓아 시스템으로 발전시키되 에너지의 입구와 출구가 막히지 않도록 잘 쌓아야 한다.

구조론에 따르면 전체는 부분의 합과 같지 않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라 증폭이다. 그러므로 전체와 부분은 같은 패턴을 공유한다. 구조는 증폭되므로 아무리 크게 쌓아도 여전히 (┳) 패턴을 유지한다.

작은 소립자가 (┳)면 큰 우주도 (┳)다. 작은 세포가 (┳)면 큰 사람도 (┳)다. 겉으로는 다르게 보이지만 심과 날의 연결구조를 들여다보면 패턴이 같음을 알 수 있다. 중력을 꿰뚫어보면 패턴이 보인다.

원자는 존재의 말단부에 위치하며 전체의 사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조는 부분과 전체가 통한다. 암세포 하나가 전체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피가 흐르고 신경이 통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전체와 부분 사이에 부단한 피드백이 있고 에너지 순환이 있다. 그렇게 숨을 쉰다. 맥박이 뛴다. 작은 소립자 알갱이에 큰 우주의 모습이 있고 작은 1바이트 정보에 큰 인터넷의 모습이 있다.  

작은 가족의 구조와 큰 국가의 구조가 닮았다. 가족은 부부가 있고 국가는 여야가 있다. 내부에 의사결정의 1단위가 있다. 의사소통≫의사결정의 1단위라는 패턴을 가족과 국가가 공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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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구조주의 양자론(추가) 김동렬 2009-01-02 4390
24 응용 5-5 구조주의 양자론 image 김동렬 2009-01-02 4660
23 구조론의 응용 6 - 교육론, 경제학, 미학, 진화론 김동렬 2009-01-02 4037
22 총괄 1-1 목차, 구조론을 말한다 image 김동렬 2008-12-29 6222
21 총괄 1-2 개념도, 총괄이론, 다섯가지 패턴 image 김동렬 2008-12-29 5691
20 총괄 1-3 상식의 오류들, 구조주의 역사 김동렬 2008-12-29 4157
19 총괄 1-4 구조론을 얻다, 깨달음과 구조론 image 김동렬 2008-12-29 5067
18 입론 2-1 비반복성의 이해, 일치와 연동의 법칙 image 김동렬 2008-12-29 4727
17 입론 2-2 구조란 무엇인가? image 김동렬 2008-12-29 3786
16 입론 2-3 구조론의 가치, 구조론의 세계관 김동렬 2008-12-29 3833
15 입론 2-4 개념정립, 존재론과 인식론 image 김동렬 2008-12-29 5681
14 정립 3-1 구조체의 얼개 image 김동렬 2008-12-29 5796
13 정립 3-2 평형계의 작동 image 김동렬 2008-12-29 5204
12 정립 3-3 다섯가지 세부이론 image 김동렬 2008-12-29 4767
11 정립 3-4 유도이론, 집적이론 image 김동렬 2008-12-29 4481
10 정립 3-5 보편이론, 일반이론, 분류이론 image 김동렬 2008-12-29 6729
9 발전 4-1 극한의 법칙, 자연의 구조 image 김동렬 2008-12-29 5421
8 발전 4-2 사물의 구조, 구조론 사전 image 김동렬 2008-12-29 5030
» 발전 4-3 구조주의 철학, 구조주의 세계관 image 김동렬 2008-12-29 5846
6 발전 4-4 (계속) image 김동렬 2008-12-29 4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