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커니즘의 일의성 전제와 진술은 메커니즘의 일의성에 의해 연동되므로, 진술이 확고하면 전제를 몰라도 일단 가설을 세우고 흔들림없이 밀어붙여야 한다. 그것이 과학가의 태도다. 총에 맞았다면 누가 쏘았는지 범인을 몰라도 누군가 총을 쏜 것만은 확실하다. 발사와 명중은 일의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을 따로 떼서 볼 수 없다는 말이다. 발병되었다면 원인을 몰라도 감염된 것은 일단 확실하다. 감염과 발병은 메커니즘에 의해 하나로 통합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갔다면 그 이전에 언제 먹었는지 몰라도 먹은 것은 확실하다. 식사와 배설은 일의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조주의 진화론이 그러하다. 핀치새의 부리가 다양한 것은 다양한 서식환경과 상호작용하여 부리를 다양하게 분화시키는 유전자가 핀치새에게 있기 때문이다. 환경의 변화가 잠복해 있는 유전자의 방아쇠를 격발시킨다. 동굴물고기의 눈은 퇴화가 아니라 진화다. 동굴물고기는 특정한 환경을 인식하면 눈의 퇴화를 격발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뇌의 의사결정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 하는 원리다. 찾아야 할 숨은 전제는 그 유전자다. 그 유전자를 과학자가 아닌 필자가 찾아낼 수는 없다. 그런데 있다. 자연선택이나 돌연변이, 생존경쟁은 비과학적인 언어표현이다. 과학을 하는 사람이 말을 그따위로 하면 안 된다. 병의 원인을 몰라도 귀신타령 하면 안 된다.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해도 논리적으로 숨은 매개변수는 반드시 있다. 수학적 포지션이 있으면 그것은 있다. X축이 있으면 Y축도 있다. 알프레드 베게너의 대륙표이설은 일부 틀렸지만 틀린게 아니다. 넓은 범위에서 보면 가설이 맞았다. 다윈의 진화론도 넓은 범위에서 맞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도 마찬가지이며, 케인즈의 경제이론도 마찬가지다. 시장주의 관점이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된다는 발상이라면, 케인즈의 재정정책 관점은 큰 것이 쪼개져서 작은 것이 된다는 견해다. 큰 태풍이 움직여서 비가 내리는 거지 작은 빗방울이 모여서 큰 태풍이 되는게 아니다. 언제나 큰 것이 작은 것을 움직인다. 그러므로 큰 것을 먼저 손봐야 한다는게 구조론이다. 케인즈의 주장이 세부적으로는 안 맞을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천하를 바라보는 눈은 옳은 것이다.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될 때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수적인 후방효과일 뿐이다. 그것은 해안의 이안류와 같이 되돌아오는 힘이다. 부작용이나 반작용 같은 것이지 제 1원인은 아니다. 작은 개울물이 모여 큰 강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큰 적도강우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장마전선이 움직여 비를 뿌리는 거지 비가 모여서 장마되는게 아니다. 재벌은 작고 국가는 크다. 큰 국가를 움직여야 작은 재벌이 따른다. 작은 재벌들이 큰 국가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재벌의 이기적인 행동이 모여서 국가를 발전시킬 리가 없다. 무인도에 두 사람이 있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하나를 죽이는 것이다. 재벌은 이 수법을 쓰므로 재벌의 이기적인 행동이 국가에 이롭지 않다. 전쟁과 같다. 전쟁은 이익을 꾀하지만 국가에 해롭다. 큰 것을 먼저 움직여야 한다. 단 큰 것에만 너무 집착하면 안 된다. 큰 것 다음에는 작은 것이 따라야 한다. 부수적인 효과도 때로는 노려야 한다. 큰 전략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자질구레한 전술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케인즈 관점을 부정하는 조중동들은 기본적으로 '1+1=2'가 안 되는 똥들입니다. 2와 1 중에서 큰 것을 고르라고 하면 2를 골라야 합니다. 그런 조중동 똥들도 화장실에 가서는 큰 것을 먼저 보는 배신을 저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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