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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474 vote 0 2002.11.04 (16:49:44)

[유감없는 패배와 아슬아슬한 승리]
어떤 급박한 승부의 순간에 양단간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마음 약한 사람은 승부의 긴장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슬아슬한 승리보다는 유감없는 패배를 택하게 된다.

왜 기아 김성한감독은 경험없는 김진우선수를 투입했을까? '공이 좋은 김진우로 안되면 안되는 것'이라는 결정을 사전에 내려놓고 '유감없는 패배'를 택한 것이다. '최선을 다했는데 해봐도 안되더라'는 핑계를 원한 것이다.

승부사는 따로 있다. 평범한 인물은 승부의 긴장을 이기지 못한다. 그 때문에 최선을 다해봤는데도 안되더라는 확인사살, 확인패배를 택하는 것이다. 지고나서 '그때 김진우를 투입했더라면 이겼을지도 모르는데'하는 아쉬움을 견디기 어려워서이다.

'김진우가 잘하면 이기고 김진우가 못하면 진다'는 공식을 미리 정해놓는다. 그 공식에 책임을 미루고 자신은 뒤로 빠진다. 최선을 다하기 보다는 패배의 이유를 자기 자신과 관객들에게 납득시키기 바쁘다.

과거 빙그레 김영덕감독도 코리언시리즈만 가면 최악의 선택을 했다. '송진우가 잘하면 이기고 못하면 진다'는 공식을 정해놓고 송진우 한 선수에게 모든 것을 건다. 결론은 송진우가 8회에 무너져서 진다. 과연 공식대로일까? 천만에!

어떤 경우에도 승부를 결정하는 것은 의외의 변수 플러스 알파이다. 큰 경기에는 항상 미치는(?) 의외의 선수가 있다. 그 숨은 플러스 알파에 대비해야 한다. 배짱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배짱처럼 보이지만 오기다. 그 오기라는 것이 실은 승부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어려워서 부리는 고집이다.

선수도 마찬가지다. 경험없는 신인은 위기에 몰리면 무조건 강속구를 던진다. 한가운데 넣어주며 칠테면 쳐봐라는 식이다. 당연히 친다. 홈런이다. 진다.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강속구를 던졌는데도 타자가 잘해서 홈런을 맞았다. 내 잘못은 없다.

과연 최선을 다한 것일까? 지나치게 긴장한 결과 스트레스를 받아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니까 서둘러 끝내려고 직구를 넣은 것이 아닐까? 타자가 파울볼을 걷어내며 약을 살살 올리니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치기 좋은 공을 줘버린 것은 아닐까?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승부사는 있다. 요는 많은 네티즌들이 극적인 반전으로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길 보다는 정면승부를 걸어서 확실하게 지는 길을 택하려는 심리에 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판사판이다. 갈때까지 가보자. 에라이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안된다.

이런 점은 특히 도박이나 증권, 경마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수와 고수의 차이가 드러난다.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 광범위한 정보를 취합하고 적절하게 배팅하면 승률을 높일수 있다. 왜 안되는가? 한방에 이기려 하므로 안되는 것이다.

고수는 이기기 보다는 지지 않기에 주력한다. 보통은 작게 여러 번 이기고 크게 한방을 져서 거덜난다. 작게 여러번 이겨서는 긴장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내할 수 없다. 결국 크게 이기려 하다가 크게 진다.

증권이든 경마든 처음에는 배우는 재미가 있다. 그러므로 승부의 스트레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처음 한 두번은 운으로 이긴다. 그러나 일정 시기를 지나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큰 승부를 하고 싶어진다. 이 때부터는 자기와의 싸움이 된다.


[뚝섬의 교훈]
필자는 작년까지 과천에서 2년을 살았다. 경마장이 가까워서 몇번 방문했는데 작년 전적이 4전4승이다. 네 번을 가서 4번 다 흑자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만원 이상 배팅한 적은 없다. 고작 몇천원을 딴 것이다. 필자는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 적게 배팅하는 것이다.

실은 80년대 뚝섬시절부터 가끔 경마장을 들락거렸다. 첫날 첫 번째 배팅이다. 500원을 배팅해서 15,000원을 땄다. 대박이다. 막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시절 하루 일당이 1만 2천원이었다. 이런 횡재가 있나? 그 다음다음주에는 천원을 배팅해서 4만 3천원을 땄다.

"이야 이거 막노동보다 수입이 낫네."

어느날은 일주일 노동하여 벌은 수입 10만원을 배팅해서 몽땅 잃고 경마를 끊었다. 그 이후로도 가끔 경마장을 찾긴 했는데 배팅은 거의 하지 않았다.

경마장 안쪽 잔디공원에서 보면 경마장 관람대는 거대한 굴뚝이다. 10만명의 경마팬들이 일제히 담배를 피운다. 담배연기가 핵구름처럼 거대한 띠를 형성하고 관람대 6층에 걸려있다. 아수라지옥을 연상시킨다. 그 모습이 너무 끔찍해서 경마장을 찾지 않게 되었다.

경마에도 필승의 법칙이 있다. 처음은 말에 관심을 갖는다. 멋도 모르면서 예시장에서 말을 유심히 본다. 그게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예상지의 법칙에 주목한다. 3복조니 대끼리니 해서 어떤 복승식조합이 확률을 높이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조금 알게 되면 기수에 주목한다. 기수 팬클럽을 찾아가서 뒷구멍으로 나오는 정보가 있는지 쫓아다닌다. 그래도 안되면 조교사를 연구하고 새벽조교에도 관심을 가진다. 물론 그래도 안된다. 정녕 답은 없는가?

최후에는 방대한 데이터에 주목하게 된다. 모든 기록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여기서 최종결론.. 길은 있다. 단지 너무 많은 노동이 소모될 뿐이다. 막말로 24시간 경마장에 살면서 꼼꼼히 분석하면 승률을 약간 올릴 수는 있다는 말이다.

어디서 무너지는가? 심리전에서 무너진다. 한번 확신이 왔을 때 몰빵하고 거덜나는 것이다. 잘게 열번 이겨서는 차비 밖에 안된다. 크게 이기려다 크게 지고 결국은 밑천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

15년전 일주일 노동해서 벌은 10만원을 배팅하고 거덜났을 때의 분석결과는 정답을 알고도 그 정답에 배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날 막판 12경주였다. 최고승률의 김명국기수에 배팅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도 막판 이상심리에 빠져서 배당이 낮은 대끼리에 몰빵하고 말았다. 왜그랬을까? 지면 확실하게 알고지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날 김명국기수가 일을 낸다는 정보는 나의 노력으로 얻은 불확실한 첩보이고 낮은 배당의 대끼리는 10만 관중이 선택한 것이다. 나는 노력하여 얻은 내 판단을 버리고 타인의 판단을 선택했다. 왜?

어쩌면 그 순간 나는 지고 싶었던 것이다. 심리적으로 무너졌다. 이겼다고 치자 나는 다음주에도 그 불확실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한다. 과연 이 정보가 맞을까? 불안하고 초조하다. 스트레스다.

반면 10만 경마팬이 선택한 타인의 정보가 맞다면? 동분서주할 이유가 없다. 불안초조할 이유가 없다. 그냥 무조건 배당이 낮은 말에 기계적으로 배팅하면 된다. 무엇인가? 결국 내가 내 욕심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정보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대신, 가만 있어도 저절로 돈을 따는 안전한 시스템에 의존한 것이다. 나(김성한감독)는 작전을 내지 않고 가만 있는데, 김진우선수가 괴력을 발휘하여 잘 던져주기를 원한 것이다. 심리전이다. 자기와의 싸움이다.

작년에는 4번 가서 4번 다 이겼다. 3000원 미만을 배팅했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면 예상이 맞는다. 실은 경마를 하러 간 것이 아니라 그 거대한 굴뚝의 아수라지옥을 구경하러 간 것이다. 주로 검은 파카를 입은 초췌한 몰골의 사나이들이 초조해하며 일제히 담배연기를 뿜어댄다. 그들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다. 눈빛은 죽었다. 지옥이 따로 없다.


[노무현은 반집승부로 이기는 길을 선택했다]
이창호는 화려한 행마로 이기지 않는다. 단지 지지않을 뿐이다. 아슬아슬한 순간에도 큰 실수를 하지 않을 뿐이다. 실수를 해도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수습해낼 뿐이다. 보통은 상대방이 스스로 무너진다.

이 시점에서 유권자 여러분께도 승부의 긴장을 이겨내기를 권하고 싶다. 아슬아슬한 반집승부라도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이기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장렬한 전사를 선택해서 안된다. 현재까지 노무현은 이기기 보다는 지지 않는 쪽을 택하고 있다.

노무현은 중요한 두가지를 지탱하고 있다. 언제든지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핵(골수지지자와 바람을 일으킬 명분)을 보존하고 있다. 당을 추스리고 있다.

흔들어대는 사람들의 유혹에 넘어가다가는 핵이 붕괴된다. 핵이 붕괴되면 결국은 진다. 히딩크호가 막판에도 체력을 보존하는 것과 같다.

정치는 자살골넣기 시합이다. 노무현은 결정골을 넣지도 못했지만 자살골도 넣지 않았다. 정몽준이 장세동을 만나며 연이어 자살골을 넣는 것과 대비가 된다. 배짱있는 사람이 이긴다. 그 다만 그 배짱이 초보감독의 오기와는 구분되는 것이어야 한다.

승부의 날자는 점점 가까워온다. 이제는 당도 추스려야 하고, 나갈사람은 내보내야 한다. 잘 구슬러서 몽도 영입해야 하고 동교동계도 무마해야 한다. 그러면서 서민 대 귀족의 구도로 가는 판은 지켜야 한다. 화려한 행보는 아니나 최적의 수를 두고 있다.

대 이탈리아전 연장전을 관전하는 기분이다. 몽을 꺾으므로서 이제 동점이 되었다. 체력이 든든하므로 어떤 경우에도 지지는 않을 거 같은 느낌이다.


덧글..
최근 며칠간의 흐름은 몽의 낙마가 확정된 상태에서 어떤 모양새로 몽을 민주당에 합류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서로 버팅기고 있는 중입니다. 몽은 이원집정부식 개헌공약을 전제로 창당후 당대당 통합을 원하는 듯 하고 노후보는 몽의 조건없는 백기투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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