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칭에 앞서 계가 있다 세상은 대칭이다. 대칭은 2다. 그런데 구조론은 연역논리다. 연역은 1에서 시작한다. 1은 계다. 계는 외력의 작용에 한 덩어리로 맞선다. 계는 내부 구성원의 숫자가 많아도 1로 행동한다. 그러려면 내부가 균일해야 한다. 불균일하면 외력의 작용에 2로 반응하게 된다. 계가 깨진다는 말이다.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구조를 쓸 수 없다.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 반대로 상대방에게 의사결정을 당한다. 씨름선수가 자신의 힘을 백퍼센트 몰아서 쓰지 못하고 50씩 두 번에 걸쳐 나누어 쓴다면 패배는 당연하다. 2로는 칼이 무를 자를 수 없고, 망치가 못을 박을 수 없고, 군대가 적군을 막을 수 없다. 곧 죽어도 1이라야 한다. 내부가 균일해야 1을 이룬다. 계의 내부를 균일하게 하는 것은 에너지다. 어떤 의사결정이든 먼저 내부를 균일하게 하는 사전단계를 거쳐야 한다. 유체는 잘 움직이므로 쉽게 내부가 균일해진다. 반면 강체는 시소나 저울과 같이 날개 2가 축 1을 공유하는 ┳자 모양이라야 겨우 계를 이루게 된다. 우리가 아는 구조는 강체다. 그러나 국가를 비롯하여 많은 조직과 집단의 의사결정은 유체의 성질을 가진다. 인간심리의 미묘한 특성은 유체의 성질을 따른다. 구조는 당연히 강체라고 여기므로 구조를 꿰뚫어보지 못한다. 지식인이 정치게임에서 지는 이유는 정치가 심리에 지배되는 유체임을 모르고 정당이라는 강체만 쳐다보기 때문이다. 대칭은 눈에 보이는 사물의 모습이고 본질인 에너지는 유체의 균일한 성질을 가진다. 구조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순서로 사건을 전개한다. 질에서 유체의 성질을 가지다가 입자에서 강체의 성질을 보인다. 그러나 이는 겉보기 등급이고 실제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지점에서는 모두 유체의 성질이다. 단 사건을 진행하여 량으로 갈수록 유체인 범위가 좁다.
망치가 단단해서 강체라지만 못과 충돌하여 에너지를 전달하는 순간의 접점은 유체다. 강체처럼 근육이 탄탄해 보이는 남자라도 실제로 일어나는 근육운동은 유체의 성질을 가진다. 유체의 에너지 전달현장은 균일해야 하며, 강체는 불균일하므로 의사결정을 못한다. 대신 에너지를 태운 강체는 축과 날개로 대칭을 이루어 그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접점만 유체가 된다.
사건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차례 대칭을 성립시킨다. 그러나 대칭은 강체로 보는 관점이고, 유체로 보면 다섯차례 균일이다. 질은 전체의 균일이며 입자, 힘, 운동을 거쳐 양으로 갈수록 균일한 범위가 좁다.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핵심부만 균일하다. 곧 대체로 균일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본질은 균일이다. 질은 안과 밖의 대칭이므로 밖을 제외하고 안은 모두 균일하다. 입자는 가장자리가 더 의사결정에 유리하므로 중앙을 보강하여 전체와 부분의 대칭에서 균일하다. 시소가 움직이는 축과 날개의 접점부분이 균일한 것이다. 힘은 축을 움직여 축의 공간적 진행방향으로만 균일하다. 운동은 축을 왕복시켜 시간적 선후가 균일하다. 량은 불균일을 해결할 방법이 없으므로 계가 깨진다. 깨져서 떨어져나가는 지점만 균일하다. 즉 량은 대체로 균일하지 않다. 뒤죽박죽이다.
◎ 질의 계 안팎대칭 - 밖을 제외하고 내부는 균일하다. 질을 제외한 나머지는 점차 유체의 규일한 성질을 잃는다. 질은 투표를 앞두고 모든 유권자가 한표씩 표의 등가원리로 균일한 것이고, 입자는 여야가 선거기간 동안 공정선거로 균일한 것이고, 힘은 집권자 직계라인을 이루는 청와대와 여당이 균일한 것이고, 운동은 같은 일을 반복할 때 지난번과 균일하고, 양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욕하고 가는 것과 같다. 욕하는 동안만 잠시 균일하다. 엄밀히 말하면 유권자의 한 표만 균일하며 나머지는 균일하지 않다. 질은 균일하고 입자부타 균일하지 않다. 그래도 살펴보면 작게 균일한 지점이 있다. 그 부분을 스위치로 삼아 조직을 통제할 수 있다. 유능한 백정이라면 불균일한 뼈와 근육 사이의 미세하게 균일한 결을 따라 칼날을 넣어 고기를 자를 수 있다. 아무리 개판조직이라도 잘 살펴보면 통제가능한 몇몇 지점이 있다. 질은 안과 밖의 경계선에서 에너지를 가두어 내부를 균일하게 한다. 곧 계를 이룬다. 입자는 지렛대의 원리에 따라 가장자리가 강하므로 중앙을 보강한다. 사람의 육체도 허벅지가 강하고 발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국가도 지방이 중앙을 흔들어대므로 중앙이 강해야 한다. 힘은 구조가 깨지려 할 때 약한 지점으로 중앙을 이동시켜 균일을 유지한다. 씨름이나 유도의 기술을 구사할 때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 대표적이다. 보통은 상체가 강하므로 무게중심이 높아 위태롭다. 상체를 숙여 무게중심을 낮추는 축의 이동이 방법이다. 운동은 축을 시계추처럼 왕복시킨다. 권투선수라면 빠른 발놀림으로 무게중심을 바꿔준다. 양은 최종적으로 계를 깨뜨려 균일을 이룬다. 안되면 깨져야 한다. 약한 부분을 떼내야 한다. 범죄자를 교도소로 보내서 배제하는 것이다. 옥을 갈듯이 나쁜 부분을 이탈시킨다. ◎ 질의 균일성.. 에너지는 밀도가 같은 쪽으로 진행하므로 안과 밖의 경계에서 굴절되어 내부적으로 계를 형성한다. 밀도차가 나는 외부는 분리된다. ◎ 입자의 대칭성.. 주변이 더 의사결정에 유리하므로, 외력을 받았을 때 중심과 주변이 균일해지도록 코어를 강화한다. 코어가 계 전체를 장악한다. ◎ 힘의 방향성.. 계에 외력이 가해지면 외력이 들어오는 쪽으로 축을 이동시켜 맞대응한다. 무게중심을 뒤에 두었다가 앞으로 이동시키면서 쳐낸다. ◎ 운동의 순서성.. 축의 이동은 관성의 법칙에 의해 여진을 남기므로 축의 이동을 반복하여 시간적인 전과 후가 균일해지게 하면 자빠지지 않는다. ◎ 량의 보존성.. 균일에 실패하면 계를 깨뜨려 일부를 계에서 이탈시키는 방법으로 균일에 이른다. 배가 침몰하려고 하면 짐을 바다에 집어던진다. 질, 입자, 힘으로 전개하면 특히 힘에서 힘을 쓰므로 기우뚱한다. 씨름선수는 상대를 자빠뜨리고 자신도 같이 넘어지곤 한다. 자빠지지 않으려면 움직여줘야 한다. 무게중심을 계속 바꿔줘야 한다. 권투선수의 발놀림과 같다. 량은 그래도 안 되면 뭔가를 몸에서 떼야 한다. 배가 침몰하려고 하면 짐을 바다에 버려야 한다. 자연의 모든 것은 균일을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일의 진행단계에 따라 특정지점만 균일에 이른다. 질의 균일은 집단을 이루고, 입자의 균일은 권력을 창출하고, 힘의 균일은 성장을 이루고, 운동의 균일은 성장해도 자빠지지 않게 균형을 유지하고, 양의 균일은 그래도 자빠지게 될 때 쓰는 최후의 분가방법이다. 자식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따로 살림을 내서 내보내는 것이다.
◎ 질의 전략 – 평등으로 조직을 안정시킨다. 조직이 커지면 필연적으로 불균일해진다. 그러므로 권력의 창출, 조직의 성장, 권력의 이동으로 조직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 정 안 되면 분가해야 한다. 질은 프랑스 혁명과 같고, 입자는 나폴레옹과 같고, 힘은 경제성장과 같고, 운동은 민주화와 같고, 량은 분권화와 같다. 대한민국 역시 거시적으로 보면 대략 이 순서로 발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625 직후는 토지개혁과 국민교육으로 평등을 추구했다. 질의 균일이다. 다음 박정희와 같은 독재권력이 등장하면 입자의 대칭이니 김대중이 막는다. 다음 김영삼이 경제타령을 하다가, DJ 때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노무현때 분권화로 가서 일의 한 사이클이 완결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평등으로 가야 하는 2라운드 시작점이 되었다. 금수저 논란은 필연이다. 자연의 모든 변화는 계가 균일을 이루는 방법이다. 식물은 성장함으로써 균일에 이르고, 동물은 활동함으로써 균일에 이른다. 회사는 성장함으로써 균일에 이르고, 역사는 진보함으로써 균일에 이른다. 우주의 빅뱅이든, 강물의 흐름이든, 용암의 분출이든 모두 계를 균일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균일을 위한 에너지 기동이 또다른 불균일을 만들기 때문에 사건은 단번에 끝나지 않고 입자, 힘, 운동, 량으로 맥락을 이어가는 것이다. 계는 평등할수록 지도자가 필요하고, 지도자가 뜰수록 조직성장이 필요하고, 조직이 성장할수록 세대교체가 필요하고, 정권교체를 할수록 분권화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지식인이 모르고 평등을 위해 지도자를 없애야 한다는 식의 무정부주의적 대응을 하는 경향은 매우 위험한 태도이다. 대단한 천재 지도자가 아니면 무정부적인 조직을 이끌지 못한다. 자연은 균일성, 대칭성, 방향성, 순서성, 보존성 다섯가지 성질을 가진다. 우리는 이 중에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엔트로피의 법칙을 알고 있을 뿐이다. 엔트로피의 법칙은 힘의 방향성이다. 내부적으로는 모두 균일에 의해 작동하며 겉보기로는 모두 대칭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인간이 관측하는 것은 에너지가 빠져나간 다음에 흔적으로 남은 패턴의 대칭이고 실제로는 그 반대쪽 에너지가 들어오는 입구에 대칭과 균일이 있다. 우리는 눈의 육각형 결정을 알지만 사실은 온도와 바람의 대칭이 만든 것이다.
눈의 결정은 원래 육각기둥인데 가장자리가 더 의사결정을 잘하므로 납작해진다. 여기서 숨은 온도와 과포화도의 대칭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진짜는 은폐되어 있다. 보이는 좌우대칭은 본질이 아니다. 정치인도 서울출신보다 지방출신이 더 잘 성장한다. 지방출신은 친위그룹을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서울은 주변에서 견제 들어가서 인물이 클 수 없다. 질의 균일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방은 입자의 대칭성이 작동하므로 호남과 영남이 서로 경쟁하다가 순식간에 커버린다. 옳고 그름의 논리나 도덕의 논리는 이런 자연의 본질 앞에서 무력하다. 은밀히 작동하는 계 내부의 메커니즘에서 전부 결정되어 있다. 그러나 알면 전략을 쓸 수 있다.
사건의 주인은 에너지입니다. 에너지는 균일을 따르므로 세상이 가는 길은 뻔히 정해져 있지만, 반대로 존재가 균일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불균일해지는 지점이 반드시 있으므로, 우리는 그러한 존재의 약점을 틀어쥐고 세상의 급소에 깊숙히 칼날을 찔러박아 전략을 쓸 수 있습니다. 음악은 언제라도 고저장단의 밸런스라는 균일을 따르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자유로운 변주가 가능합니다. 가는 길이 분명하므로 오히려 옆으로 샛길을 만들어서 세상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입학만 하면 졸업과 취직이 보장되어 있다면, 가는 길이 분명하므로 오히려 학창생활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옆길로 새도 돌아올 길이 있다면 즐겁게 뛰어놀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