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몸 리플로 쓰려다가 길어져서 옮깁니다. 다른 게시판에서 발췌 인용한 원문의 맥락을 염두에 두고 읽지 않는다면 오해할 수가 있겠네요. 원문을 부분 보강인용하면 “인류의 먹고사는 문제는 이미 신석기 말에 해결되었어요.” “현상은 배고픔(물질), 본질은 배아픔(마음)이 될 수밖에요.” ### "구조론은 일원론이므로 몸이니 마음이니 하며 둘로 나누는건 다 허당으로 칩니다. 배가 아픈(마음) 이유는 내부가 허하기 때문이고, 내부가 허한 이유는 내부에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고. 내부에 에너지가 없는 이유는, 구조론적으로 모든 에너지는 외부에서 유도되도록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에너지(동기부여)를 유도하는 타자와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설정이 잘못되었고. 그것이 마음의 문제로 나타나는 법이며, 그게 해결이 안 되는 자들은 정신의 5단계 전개구조(정신≫의식≫의지≫의사≫감정) 중에서 가장 낮은 다섯째 단계를 충족하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가장 달성하기 쉬운 목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본능의 충족이며 본능을 총족하는 쉬운 방법은 돈을 버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몸의 방법은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방법들 중. 가장 낮은 방법이 되는 것이며. 그것은 몸따로 마음따로가 아니라, 마음의 말단부가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제가 남아있는 한 몸의 문제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몸의 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열등감, 피해의식 이런 이야기는 주로 논리가 궁한 사람들이 쓰는 단어에요.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술책. ### 몸과 마음의 관계 설정 문제를 이른바 '난제Hard Problem'이라 하여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골을 싸매왔소. ### 몸은 말을 잘 듣습니다. ‘팔아 움직여라’ 하면 팔이 살살 움직이고, ‘다리야 가거라’ 하면 뚜벅뚜벅 걸어가고, 참 고분고분 하지요. 그런데 마음은 마음대로 안되지요. 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데. 그 마음먹기가 쉽지 않으니 만사가 뜻대로 안되는 것이지요. 만약 ‘마음이 마음대로 된다’고 믿는다면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 했으니 일단 마음을 드세요. 마음을 한 사발 잡수시면 뜻대로 다 될 것 아니겠습니까? 아직 안드셨으면 지금 즉시 드세요.(이건 농담) 마음이 뜻대로 안 되는 이유는, 타인의 마음이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엄마는 위태로울 때 자기보다 아기를 먼저 구하는 법이며, 사랑하는 이들은 자기몫보다 연인의 몫을 먼저 챙깁니다. 즉 마음은 세상과의 관계,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 작동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우쭐하고, 불안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우울해 하는 것이 다 ‘밖에서 온 소식’에 의한 것입니다. 마음을 정의한다면, ‘인간이라는 독립적 인격의 행동을 결정하는 주체적 단위’입니다. 즉 어떤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가 마음이라는 거지요. 어원을 찾아보면 마음은 ‘머금다’는 뜻이 있는데, 인간이 마음에 머금는 것은 ‘의도’지요. 즉 마음은 계획된 행동을 이끌어가는 주체입니다. 계획과 의도에서 중요한 것은 처음과 끝을 통일시키는 일관성입니다. 즉 인간에게는 동물과 달리 미래를 예견하고, 대비하는 능력이 있으며, 그것이 의도이고, 그 ‘미래를 조직하기에’는 일관성이 중요한 거지요. 그래서 캐릭터가 나오고, 포지션이 나오고, 관습이 나오고, 타성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마음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몸도 의사결정을 합니다. 성욕을 느낀다든가, 배가 고프다든가, 춥다든가, 덥다든가 따위지요. 그런데 이러한 몸의 판단에는 의도가 없습니다. 미래를 예견하여, 미래에 대비하고 계획하여 행동을 조직해 나가는 것이 없습니다. 일관성이 없고 즉자적인 반응 위주이지요. 즉 여기서 논하는 몸과 마음은, 인간의 의사결정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며.
몸의 의사결정-육체적 신체감관의 신호 및 본능 즉 춥다, 덥다, 고프다, 아프다, ~고 싶다, 짜릿하다, 따위를 몸으로 하고, 그 상부구조를 마음이라 하는 것이며, 몸의 판단은 마음의 판단에 종속되는 하부구조인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여기서 ‘몸’이라는 표현의 맥락은 뇌≫육체의 신체작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 욕구충족 따위를 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음이냐 몸이냐는 타자와의 사회적인 관계설정 및 의사결정이며 장기적인, 의도적인, 계획적인 부분이 마음이고 즉자적인 반응을 몸이라 할 때, 장기적이고 의도적인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고 즉자적인 반응은 뜻대로 됩니다. 추우면 옷입으면 되고, 고프면 밥먹으면 되고, 아프면 치료하면 되고, 그러나 출세하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연애하고 싶다는 뜻대로 안 되지요. 그건 세상과의 관계니까 맘대로 뜯어고칠 수 없소. 구조론이 일원론이라 하면 몸의 대응과 마음의 대응으로 나누어 이분법적, 흑백논리적, 이항대립적, 단선적 사고를 전개하여 마음이 우위다, 혹은 몸이 우선이다 하고 논쟁함이 아니라.. 마음은 외부를 아우르는 장기계획(왜냐하면 타인의 마음이 이미 내 안으로 침투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사랑, 충성, 우정, 효도, 윤리, 도덕 따위) 몸은 외부를 아우르지 않는 단기대응으로 보는 겁니다. ● 마음(상부구조-동기부여) - 타자가 내 안으로 침투해 있다. ● 몸 (하부구조-상황대응) - 타자는 내 밖에 있다. 근래 심리학에서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강조하여 마음이 몸의 아래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는 바보같은 소리고, 마음은 상부구조 몸은 하부구조입니다. 잠재의식은 바보들이 과거의 의사결정을 재탕해 먹는 것인데. 이는 보통 긴장을 끌어올리지 않아서 일어나는 바보들의 바보짓이며. 무의식 역시 군중들의 포지셔닝 게임인데 이는 정준하가 꼴통캐릭터에 맞추느라고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변명에 다름 아니지요. 개인의 잠재의식이나 군중의 무의식은 정신의 5단계 중에서 낮은 단계만을 사용하는 것인데, 정신은 원래 높은 단계에서 낮은 단계로 가므로 높은 단계를 사용하지 않는게 아니라 과거의 결정을 재탕하는 것입니다. 긴장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무의식 역시 높은 단계를 사용하지 않는게 아니라 그것을 집단의 리더나 가부장, 혹은 독재자에게 위임하고 자신은 포지셔닝 게임에 빠져서 역할극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판단에 있어서 몸이 우위다, 곧 본능이나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이 의사를 결정한다는 생각은 버릇, 습관, 타성 따위 바보들의 '의도없는 행동'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하긴 바보들에게는 모든게 버릇이죠. 하긴 이명박이 언제 생각을 합디까. 뭐든 ‘그거 나도 해봤는데’, ‘테러협박 그거 나도 권총협박 당해봤는데’ 상대방이 무슨 말만 하면 ‘나도 해봤는데’ 그거 습관이지요. 생각없이 그냥 튀어나오는 말. 사랑은 장기적인 계획입니다. 첫눈에 반했다 해도 마음 속에서는 사춘기 때부터 수십년 동안 농익은 것이 어떤 계기를 맞아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입니다. 충성이나 의리나 우정도 수십년간 축적되어온 것입니다.
● 마음-전체, 장기계획
● 몸 - 부분, 단기대응
의사결정 측면에서 볼때 몸(본능, 욕구, 감각의 판단)은 마음의 말단부입니다. 마음은 중앙의 센터지요. 몸은 몸과 충돌합니다. 배는 먹고싶다 그러고 눈은 보고싶다 귀는 듣고싶다 그러고 마음이 중앙에서 조정하지요.
전체를 보느냐 부분을 보느냐, 중앙으로 보느냐 말단부로 보느냐, 장기로 보느냐 단기로 보느냐의 차이일 뿐 의사결정이라는 하나의 맥락 안에서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몸의 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 |
그 중에 몸은 대응 덩어리.
몸, 끝단(말단/첨단) 생각이 가지를 치오.
좋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