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북쪽 ‘북극점의 북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피곤한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호킹의 말이다. 북극점에서 보면 모두 남쪽이다. 북쪽은 없다. 과연 없을까 하고 불안해하지 말아야 한다. 과연 없다. 전혀 없다. 확실히 없다. 이건 확실하다. 절대절대절대절대절대 확실한 것으로부터 추론을 전개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세상에 절대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있다. 그것은 ‘북극점의 북쪽은 없다.’는 것이다. 불교의 금강경은 멋진 아이디어지만 무無, 허虛, 부不, 공空, 멸滅 등의 부정적 어휘들을 남발한다. 이는 부정적 세계관이라 하겠다. 부정적 세계관으로 가면 불가지론에 빠진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거다. 세상에는 확실한 것이 있고 그것을 알아낼 수도 있다는 긍정적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근대인의 세계관이 그것이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고, 있어도 알 수 없고, 알아도 말로 전달할 수 없다는 봉건인의 불가지론을 극복해야 한다. 세상에는 분명 확실한 것이 있다. 인간이 알아낼 수 있다. 말로 전달할 수도 있다. ◎ 불가지론 3원칙 –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고, 만약 있다 해도 인간이 알 수 없으며, 설사 안다 해도 그것을 말로 전달할 수는 없다. 단 말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인가? 불가지론 3원칙에 ‘있다 해도 알 수 없다’거나 혹은 ‘안다 해도 말로 전할 수 없다’는 말이 묘하다. 이거 뒷맛이 있다. 선종불교가 이 태도를 고수한다. 진리를 말로 전할 수 없으니 명상만 하라는 거다. 미련하다. 진리를 말로 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말이 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근대적 세계관은 아크나톤의 일신교와 사실주의, 이집트의 기하학, 인도의 대수학, 아랍의 화학과 기계제조술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또 무엇인가? 일원론+사실주의+대수학+기하학+화학+기계들이 진리를 말로 전하지 못하는 자로 하여금 말로 전할 수 있게 한다는 거다. 말이 대량생산되자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무엇보다 말을 얻어야 한다. 빅뱅 아이디어를 처음 착안한 ‘조르주 르메트르’는 물리학자이자 카톨릭신부였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창세기에 맞게 물리학을 때려맞춘 것이다. 곧 정상우주론을 주장하는 유물론자들의 비판에 직면했음은 물론이다. 요즘은 웃기게도 기독교도들이 되레 빅뱅이론을 부정하고 있지만 말이다. ‘빅뱅’도 하나의 말이다. 그런데 말이 먼저 나오고 이론이 뒤에 나왔다는 점이 각별하다. ‘빅뱅’이란 말도 정상우주론을 지지하던 물리학자 프레드 호일이 ‘종교에 편향된 어떤 과학자의 무개념 주장(?)’을 조롱하려고 라디오 토크쇼에서 우스개로 내뱉은 말이라는 설도 있다. 구조론은 ‘사건’으로 본다. 빅뱅도 사건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표현을 떠올려도 좋다. 구조론 역시 말로 시작한다. 언어가 먼저다. 필자가 아홉 살의 어린 나이로 구조론의 컨셉을 잡은 것도 인간들의 말이 이상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말을 바로잡으면 전달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할 수 있다. MS 도스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MS 윈도우로 전할수 있다. 북극의 북쪽이 어디인지 알기 위해서 북극을 방문조사할 필요는 없다. 안 봐도 비디오다. 북극의 북쪽은 없기 때문이다. 언어만으로도 완벽하게 답을 낼 수 있다. 필자는 30년 전부터 인력은 없다고 믿었다. 암흑에너지 발견으로 필자의 30년전 예견이 입증되었다. 북극의 북쪽이 없는 이치와 같다. 확실하다. 실험할 필요도 없다. 당기려고 하면 먼저 붙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력이 있으려면 그 전에 ‘붙잡력’이 있어야 한다. 물리학은 거의 대칭으로 되어 있다. 대칭은 모두 가짜다. 우주 안에 순수한 대칭은 없다. 대칭은 움직임이 만든다. 어떤 것이 움직이면 대칭이 만들어진다. 지구의 1/3은 철이다. 땅 속의 철이 움직여서 자기장을 만든다. 자석의 N극과 S극이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은하계는 납작한 모양으로 관측된다. 만유인력에 의해 물질들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흐름이 생기고 방향성이 생겨서 결국 원반형태가 될 수 밖에 없다. 자빠져 있는 팽이를 발로 세게 차면 어느 한 방향으로 돌고 있다. 팽이가 회전하는 모양은 반드시 토성의 귀를 닮은 모양이 된다. 축구공에 스핀이 걸려도 그렇다. 축구공을 아무렇게나 차도 한 방향으로 돌아서 결국 원반모양이 된다. 모든 움직이는 것에 대칭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이런건 실험할 필요도 없다. 언어감각이 있으면 가만이 앉아서 생각해봐도 알게 된다. 어느 방향으로도 돌지 않는 호날두의 무회전 킥을 당신이 구사할 리가 없잖은가? 메시나 된다면 몰라도 말이다. 움직이면 회전하고 회전하면 대칭이 생기고 대칭이 N극과 S극을 만들어 인력과 척력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붙잡력이다. 붙잡혀서 인력이 된다. 처음 축구공을 아무렇게나 차는 것은 척력이다. 발이 공을 밀어낸다. 공의 회전이 질서를 만든다. 내부를 정렬시킨다. 인력으로 나타난다. 언어만으로 답을 알아낼 수 있다. 세상은 쉽다. 세상이 물질로 되어 있다면 그 물질이 복잡할 리가 없지 않은가? 원자번호가 1번부터 118번까지 있다지만 우주를 채우고 있는 물질의 대부분은 1번 수소이고 나머지는 수소가 서로 충돌하여 떡진 것이다. 수소가 뭉쳐서 별이 되었다. 별이 커지니 핵이 밑에 낑겨서 찌그러진 나머지 다양한 원소가 생겨났다. 그 별이 터져서 철보다 무거운 물질이 만들어졌으니 곧 초신성 폭발이다. 결국 세상은 수소로 되어 있다. 간단하다. 아무리 복잡해도 근원을 추구해 들어가면 간단해질 수 밖에 없다. 강철이 압연과 프레스와 선반과 단조와 주물로 다양한 모습을 가져도 용광로에서 나올 때는 같다. 근원으로 가면 단순할 수 밖에 없다. 강물의 줄기가 갈라져도 바다로 가면 하나다. 수원지로 가도 하나다. 중간에서 얽혔을 뿐 입구와 출구는 하나다. 세상은 단순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움직이기 때문이다. 축구공을 어떻게 차든 결국 스핀이 걸려서 N극과 S극을 만들어낸다. 지극히 단순하다. 가만 놔두면 무질서하고 무질서하면 서로 충돌하게 된다. 충돌하면 결국 N극과 S극으로 대칭된다. 단순하다. 처음 1에서 2로 변하며 그 과정에 5를 거친다는게 구조론이다. N극과 S극으로 나눠지려면 밟아야할 중간절차가 있다. 공을 발로 차면 질이고, 무게중심으로 힘이 모이면 입자고, 스핀이 걸리면 힘이고, 스핀이 걸려 공이 회전하면 운동이고, 그 운동이 멈추면 양이다. 그런데 왜 복잡할까? 단순하면서도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는 바로 그것으로 세상은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동動이다. 개를 훈련시킬 때는 동사를 쓴다. 앉아, 엎드려, 기다려 셋을 기본으로 한다. 명사는 없다. 언어라고 하면 먼저 명사를 떠올리기 쉽지만 명사는 동사가 계속 반복되어 만들어진 2차적 개념이다. 원래 언어는 동사다. 근본이 있는 것이다. 축구공을 처음 발로 차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개를 훈련시킬 때 쓰는 기본 명령은 ‘앉아! 엎드려! 기다려!’ 셋이다. 이 세가지 명령에 익숙하게 되면 다음으로 ‘따라와! 이리와! 잘했어!’ 등으로 진도를 나가준다. 모든 것은 동動이며 동은 저절로 공간과 시간을 연출한다. 공간과 시간과 물질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의 동動 안에 시공간은 이미 포함되어 있다. 북극의 북쪽이 없듯이 빅뱅이전은 없다. 시공간이 없다. 시공간은 동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우주가 복잡해진 것은 시공간 때문이다. 원소번호가 많아진 것도 시공간 때문이다. 소립자가 다양한 것도 시공의 성질 때문이다. 동動 하나를 철저히 이해했다면 나머지는 절로 풀린다. 플랑크시간보다 작은 시공간에는 방향이 없다. 동서남북이 없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다. 물론 이는 구조론의 관점에서 언어로 연구된 것이므로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양자역학의 그 플랑크 시간과 같은지는 알수 없다. 구조론의 용어로는 의사결정단위 1이다. 어쨌든 그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동서남북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물질이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모두 사건으로 설명하므로 그 사건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현재 우주의 모습을 설명하려면 빅뱅이 있어야만 하듯이 물질을 태우고 다니는 시공간의 존재를 설명하려면 그것이 있어야 한다.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있다. 북극의 북쪽이 없는 이유는 그것이 없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없어야 하면 그것은 없다. 구조론은 일원론으로 설명한다. 이원론을 연출하려면 일원론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밝음과 어둠이 있으려면 빛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극과 북극이 있으려면 회전하는 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화살을 설명하려면 활이 있어야 한다. 여자를 설명하려면 남자가 있어야 한다. 똥을 설명하려면 밥이 있어야 한다. 거지를 설명하려면 부자가 있어야 한다. 파도가 출렁거리면 모래톱에 물결무늬가 나타난다. 그것이 없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물결이 출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람무늬다. 바람에 무늬가 있을까? 있다. 보이지 않아도 그것은 있다. 흔적을 보고 알 수 있다. 언어는 동사다. 그것은 바람무늬와 같다. 명사는 물결에 새겨진 파도무늬와 같다. 문장은 모래톱에 새겨진 파문과 같다. 서해안의 많은 지층에는 물결무늬가 나타나 있다. 우리는 서해안의 돌을 보고 1억년 전 바람무늬를 읽을 수 있다.
인간이 문법으로 언어를 조직하여 의미를 소통하는 원리나 자연이 시공간으로 물질을 조직하여 존재를 연출하는 원리나 같습니다. 언어는 의미를 쏘는 활입니다. 화살이 명중하면 의미가 통합니다. 물질은 존재를 쏘는 활입니다. 그것은 사건입니다. 화살 한 발이 날아가 과녁에 명중하는 사건입니다. 세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쏘는 활입니다. 화살이 되어 날아가 과녁에 명중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오발로 끝날 것인가는 당신의 선택입니다.
|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