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하나의 사건을 판단하는게 아니라 두 개의 사건을 연결시켜 맥락을 보는 것이다. 별도로 일어난 두 개의 사건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것은 에너지다. 옳고 그름이라는 판단기준으로 보는 것은 지식인의 방법이고, 에너지로 보는 것은 깨달음의 방법이다. 차이는 부분을 보느냐 전체를 보느냐다. ◎ 무지는 판단기준이 없다. ◎ 지식은 판단기준으로 본다. ◎ 깨달음은 에너지로 본다. 지식인은 부분을 보고 깨달음은 전체를 본다. 민주주의를 하면 좋아진다는 것은 지식인의 단편적인 생각이다. 좋은 의도로 좋은 제도를 만들었는데 결과가 나빠서 극심한 반동이 일어나는 것은 역사의 흔한 패턴이다. 이는 맹자와 양혜왕이 문답한 바 유명한 ‘오십보백보론’부터 시작된 오래된 고민이다. 양나라 혜왕은 나름 백성을 잘 보살폈는데 인구가 늘지 않았다. 맹자는 ‘조금 해놓고 무슨 큰소리냐.’고 면박을 줬지만 사실 이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원래 구조적으로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그 배경에는 지리적인 격리가 있는게 보통이다. 국토의 격리 뿐 아니라 정신의 격리도 있다. 존엄의 훼손이다. 임금이 열심히 하면 백성이 따를 거라는 믿음은 환상이다. 부지런한 임금이 ‘바쁜 벌꿀’처럼 의사결정을 독점해서 백성이 의사결정할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중앙과 격리되어 있으면 황폐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먼저 민중의 기를 살려야 한다. 의사결정권을 넘겨줘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사의 황당함은 금주법 시대에 있다. 까마득한 옛날도 아니고 불과 백년 전이다. 여성과 기독교가 주동했다는 점이 각별하다.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자 여성표를 얻기 위해 각 주에서 금주법을 시행한 것이다. 미국사 최악의 머저리 대통령으로 유명한 공화당의 워런 하딩이 전면적으로 실시해 버렸다. 금주법을 헌법에 박아버린 거다. 민주주의가 되자 더 나빠진 것이다. 라이트 형제의 일화도 인용할 법 하다. 비행기 발명은 미국의 큰 업적이다. 그러나 라이트 형제는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를 환영한 것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이었고 그의 첫 번째 비행기 플라이어 1호는 영국이 가져갔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그리고 네덜란드, 벨기에... 유럽 각지에서 나와 세상에 없는 윌버 형에게 훈장과 표창장, 명예 시민, 명예 교수, 명예 학자로 인정했지만, 조국 미국은 그래본 적이 없다.“(오빌 라이트) 왜 미국은 라이트 형제를 버렸을까? 열등감 때문이다. 의사결정의 측면에서 심리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시골 촌구석이었다. 지리적으로도 격리되어 있다. 촌놈이 촌놈을 알아줄 리가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 번 떠보려는 촌놈의 발목을 잡는 것은 바로 이웃한 촌놈 조경태다. 미국과 같은 후진국은 자전거가게나 하는 촌놈이 비행기를 만들면 안 된다. 스미소니언학회장 랭글리 박사와 같은 위대한 박사가 발명해야 한다. 그러다가 이차대전에 승리하자 태도가 바뀌었다. 자기네가 촌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열등감을 버리자 대번에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미국은 1955년에 라이트형제 위인전을 출판했다. 죽고 난 다음에야 조국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실력있는 피아니스트라도 러시아나 동유럽 어디에서 방금 이민왔다고 출신지를 속여야 했다. 미국에서 피아노를 배웠다고 말하면 비웃는다. 미국같은 후진국에서 무슨 예술가야. 전쟁에 이기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무엇인가? 열등감은 인간을 황폐화 시킨다. 그리고 퇴행적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지리적인 격리만큼이나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심리적인 격리도 큰 문제가 된다. 둘은 겸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도 중앙인 서구와 격리되어 있고 심리적으로도 격리되어 있다. 미국여성은 투표권이 없었다. 의사결정에 있어서 격리되어 있다. 존엄의 훼손이다. 그 열등감, 자존감 상실이 기독교 몰입, 금주법 몰입으로 나타난 것이다. 여성들이 더 교회를 많이 찾는게 이유가 있다. 지금 아랍에서 IS의 난동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궁지로 몰면 그럴수록 퇴행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10세기 무렵은 아랍이 가장 자유스러웠다. 서구는 기독교에 의해 황폐해졌다. 동양은 당나라 때 아랍문물을 받아들여 비로소 문명 근처에 들어섰다. 고선지 장군이 아니었다면 동양은 더 오랫동안 낙후했을 것이다. 송나라 때 처음 중국에 문명다운 문명이 일어났고 그것은 발달된 아랍의 기술 덕이었다. 비행기는 라이트 형제 이전에도 많이 만들어졌다. 열기구나 글라이더는 이전부터 있었고 증기엔진을 사용한 비행기도 하늘에 떴다. 그들은 새 날개를 모방했다. 유체역학을 이용하려 한 사람이 바로 미국의 랭글리 박사다. 랭글리 박사의 강연에 참가한 라이트 형제가 귀동냥을 했다. 날개 모양이 중요하다. 랭글리 박사는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1호 날개모양이 자신의 것과 닮았음을 들어 아이디어를 훔쳤다며 라이트 형제를 씹었고, 역시 촌놈인 다수의 미국인들은 비행기와 같은 대단한 것은 당연히 박사나 되는 사람이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촌놈이 감히 비행기를 만들다니 용서할 수 없다. 괘씸하다. 왜 라이트 형제는 성공했고 랭글리는 실패했는가? 구조론이 답을 제시한다. 라이트 형제의 엔진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여러 번 말했지만 수영은 물에 뜬 다음에 헤엄치는게 아니라 헤엄쳐야 뜬다. 자전거는 균형잡고 가는게 아니라 가야 균형을 잡는다. 공중에 날아오른 다음에 전진하려고 하면 실패한다. 랭글리 박사는 양력을 연구하여 발사기로 글라이더를 공중에 띄우고 엔진을 돌려서 전진하려 한 것이다. 순서가 바뀌면 망한다. 구조론은 곧 죽어도 전체가 먼저다. 부분을 먼저 하면 일이 망한다. 불완전해도 일단 전체를 해야 한다. 못 날아도 무조건 날아야 한다. 팽이와 같다. 못 돌아도 돌려야 돈다. 팽이를 바로 세운 다음에 돌리려 하면 실패한다. 반면 누운 팽이도 세게 돌리면 벌떡 일어선다. 그러나 보통은 부분에 집착한다. 학자들 역시 부분에 몰입할 뿐 전체를 보는 시야가 없다. 과학철학에 전체를 보는 사유의 전개가 없다. 지식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지식인들은 아웃사이더 콤플렉스가 심하다. 변방에서 중앙을 치는게 역사의 본령이다. 변방에 터 잡고 나름 역할하려 하는게 한국 진보가 망하는 공식이다. 아웃사이더라는 사실에 대단히 만족하여 절대 중앙을 향하지 않는다. 부분의 점유만으로 흡족해 한다. 그러다가 중앙을 차지한 보수에 이용당한다. 보수가 진보의 아이디어를 빼먹기 때문이다. 진보는 아이디어를 도둑질 당해도 나름 기여했다며 해벌쭉 하고 있다. 한쪽 구석에 딴살림 차리고 유유상종으로 놀며 만족하는 정의당 행태가 전형적인 아웃사이더 콤플렉스다. 진중권병, 노회찬병, 유시민병, 김어준병은 한 마디로 심리적인 격리로 인한 퇴행행동이다. 유사 정신질환인데 치료를 받아야 한다. 금주법 시대 알 카포네의 미국이 그러다 망가졌다. 유럽 한 귀퉁이에 있었다면 경쟁의식이 발동하여 ‘노르웨이가 진보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해.’ ‘아냐 덴마크놈들 설치기 전에 우리 스웨덴이 먼저 찜하자구.’ 이렇게 된다. 미국 촌놈들은 ‘라이트 형제놈들 까불어봤자 이 바닥에서 어쩌겠어. 밟아버려.’ 이런 퇴행적 사고가 금주법과 같은 극단적인 퇴행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은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주었을 뿐 자부심을 주지 않았다. 여성차별은 인종차별과 함께 여전히 남있었다. 역주행이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농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지 않은 채 혁명을 시도하면 농민은 왕당파에 가담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에게 자부심을 주지 않은채 투표권을 주면 새누리당을 찍는다. 여성들은 약자다. 그 위에 진보 지식인들이 옥상옥을 만들면 서열 2위에서 서열 3위로 밀린다. 여성들의 권력의지가 금주법운동으로 나타난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성경책 어디에도 술을 금지하는 내용은 없다. 예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그들은 성경을 내세워 술을 금지하려고 했다. 시골권력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중앙을 포기하고 변방에서 별도로 작은 권력을 만들고 거기서 왕잡으려는 행동이 퇴행행동이 전형적인 정의당 행태다. ‘여성이 참정권을 얻는다고 여성우위시대가 열려서 여성대통령이 나오겠어?’ 이런 주장이 먹히는 것이다. 작은 것에 만족하는 현실주의로 간다. 그리고 망한다. 부분에 몰입하면 부분도 얻지 못하고 망한다. 이게 구조론이다. 곧 죽어도 전체를 노려야 오히려 부분에서 비빌언덕을 가진다. 유비는 턱없이 중원을 노렸기에 변방을 얻었다. 유비가 처음부터 시골맹주가 되려 했다면 밟혔다. 중앙을 쳐야 귀퉁이를 얻는다. 중앙으로 쳐들어 가려는 유비의 야심을 보고 천하의 실력자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과학과 엔지니어의 대결에서 엔지니어가 이겼다. 과학은 일종의 분업이다. 그들은 각자 한 부분씩 맡아서 연구한다. 엔지니어는 혼자 한다. 처음부터 전체를 설계하는 것이 엔지니어의 방법이다. 랭글리가 지고 라이트 형제가 이겼다. 부분을 보는 과학이 지고 전체를 보는 엔지니어가 이겼다. 엔지니어의 눈을 얻으면 깨달음이다. 당신은 세상의 엔지니어라야 한다. 세상이라는 엔진에 발동을 걸어야 한다. 곧 죽어도 전체를 노려야 한다.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라이트 형제보다 먼저 증기기관 비행기를 만들었지만 날개가 영 아니다. 추락하기 딱 좋다. 그러나 조금 날기는 했다. 확실하게 비행기를 장악하고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다. 난 것이 아니라 날린 거다.
먼저 공중에 뜬 다음에 날고자 하면 이렇게 된다. 바람에 몸을 맡기면 안 된다. 바람을 끌고가야 한다. 바람을 이겨야 한다. 엔진으로 바람을 생산해야 한다. 남의 바람에 편승하려는 퇴행적 자세를 버려야 한다. 자기 바람으로 가야 한다.
랭글리 박사의 비행기다. 곧장 추락했다. 바람에 졌기 때문이다. 바람을 이용하려고 하면 안 된다. 바람을 만들어내야 한다. 적의 힘을 이용하려는 아웃사이더 콤플렉스다. 한국의 진보가 이 수준에 있다. 바람은 비행기가 물리쳐야 할 적이다. 적에게 몸을 맡기면 당연히 패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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