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과 양.. 구조값을 판단하라 구조의 포지션을 가리키는 용어를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정한 것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질을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더라. 질이 좋다거나 혹은 질이 나쁘다거나 하는 말은 흔히 쓰인다. 어떤 제품이 질이 좋은지는 누구나 안다. 잘 깨지거나 쉽게 찢어지면 질이 좋지 않다. 튼튼한 제품이 질 좋은 제품이다.
질은 결합되어 있고 양은 흩어져 있다. 부피는 같아도 구조값이 다르다. 질은 에너지에 의해 강하게 결합되어 있으므로, 외부에서의 작용으로 쉽게 통제할 수 있고, 양은 에너지가 빠져나갔으므로 외부에서 통제할 수 없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상대팀을 선택할 때는 당연히 약한 팀이 좋은 팀이다. 이 때문에 질과 양을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 양 + 질서, 에너지 = 질 질은 양에 없는 에너지가 있다. 질서가 있다. 같은 무게의 다이아몬드라도 큰 덩어리는 가격이 비싸고 작은 알갱이는 싸다. 100캐럿짜리 한 개와 1캐럿짜리 100개의 가격은 다르다. 그런데 금이나 화폐라면 가치가 같다. 만원짜리 한 장과 천원짜리 열장은 같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정치인들은 비타 500상자에 든 5만원짜리 화폐를 선호한다. 질은 결합이다. 잘 결합되지 않은 진흙으로 그릇을 구우면 깨진다. 정신이 잘 결합되지 않으면 그게 미친 거다. crazy는 뇌에 금이 갔다. 뇌가 갈라졌다는 뜻이다. 문제는 관측자의 포지션이다. 나의 팀은 강할수록 좋고 나와 겨루는 상대팀은 약할수록 좋다. 부자는 질 좋은 음식을 좋아하고 빈자는 양 많은 음식을 좋아한다. 이거 헷갈리지 말자. ◎ 엔트로피 증가에 따라 질은 양보다 의사결정비용이 낮다. 구조값이 높다. 구조론은 에너지를 다루므로 강자 포지션에서 봐야 한다. 관측대상을 타자로 보고 남으로 여기며 맞서려고 하면 곤란하다. 구조론에 대한 혼선은 대부분 이걸 헷갈리는 거다. 막연하게 타자로 여기는 분별망상을 걷어치워야 한다. 의사결정으로 보면 쉽다. 의사결정비용이 덜 드는게 좋은 거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2천만원짜리 차 한 대와 1천만원짜리 차 두 대가 같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양은 질에서 질서가 빠져나간 거다. 무질서도가 증가했으므로 가치가 없다. 무질서하다는 것은 다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통제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든다. 메이저리거 한 명과 마이너리거 두 명을 안 바꾼다. 두 명을 관리하려면 코치 한 명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 구조값 – 의사결정에 드는 비용. 집단의 관리비용. 구조값이 높을수록 내가 쓰기는 쉽고, 상대방이 깨뜨리기는 어렵다. 부하가 내 말을 잘 듣는 상태. 인자들이 잘 결합된 질서있는 상태. 의사결정비용의 증가를 고려해야 한다. 구조값이다. 질은 구조값이 높고 양은 구조값이 낮다. 엔트로피 증가라고 하니 잘 알아듣지 못해서 ‘구조값’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다. ‘무질서도의 증가’라는 표현은 사실 헷갈리는 표현이다. 이런 식이면 누가 알아듣겠는가? 과학자들의 괴팍한 성미가 발동한 거다. 질서감소로 구조값이 낮아지는 거다. 사건은 계에서 일어나고 구조값을 소비하므로 무조건 질서를 감소시킨다. 즉 깨진다. 붙이려면 둘을 결정해야 하고 깨뜨리는건 하나를 결정하므로 자연에서는 자연히 깨지는 거다. 유리조각을 붙이기보다 유리를 깨기가 쉽다. 붙이는건 2를 1로 만들므로 2에 작용한다. 즉 구조값 2를 소비하는 거다. 의사결정비용이 증가한다. 변호사비 나간다.
◎ 플러스 – ( 1+1 )은 1 둘에 작용하므로 구조값 2를 소비한다. 자연에서는 플러스가 마이너스보다 더 많은 비용을 청구하므로 자연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은 전부 마이너스다. 집을 짓는 비용이 부수는 비용보다 더 많다. 1억 들여 지은 집도 1천만원 들여 부술 수 있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사건이 진행되면 구조값이 소비되므로 외부에서 자원을 더 투입하지 않고는 결국 거덜나고 만다는 거다.
입자는 가운데 연필심처럼 심心이 되는 핵核이 있다. 심心은 마음이 아니라 핵이다. 물론 정신의 핵은 마음이다. 마음은 속에 머금은 것이다. 뭐든 속에 뭔가 머금고 있다. 우리가 입자는 쉽게 이해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대칭을 통해서만 사물을 이해하는데 입자는 보통 대칭되어 쌍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입자는 비교해서 판단하기가 쉽다.
사람이라도 남녀가 쌍을 이루고 손발이라도 오른손과 왼손이 쌍을 이룬다. 입자들은 대칭되어 있으므로 비교판단이 쉽다. 수레바퀴도 보통 둘씩 붙어 있다. 외바퀴 자전거라도 페달과 바퀴의 쌍, 자전거와 올라탄 사람의 쌍으로 항상 쌍이 있다. 입자는 쌍으로 있으므로 저것이 입자다 하고 지목하기가 쉽다. 건드려봐서 반응하면 그게 입자다. 질은 결합하므로 결합하기 쉽도록 진흙처럼 물렁한게 많아서 반응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헷갈리지만 입자는 반응하므로 알아챌 수 있다. 문제는 그 반응이 어디서 시작되는가이다. 핵에서 시작된다. 핵이 없어도 타격하면 내부에서 핵을 만들어낸다. 핵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깨진다. 건드려 봤을 때 소리가 나거나 반응이 있으면 입자다.
힘은 외부로부터의 작용에 반작용한다. 입자가 반작용 여부를 결정하고 힘은 그 반작용의 구체적인 방향을 결정한다. 힘은 전축의 바늘처럼 뾰족하게 돌출되어 있다. 허리처럼 잘록한 경우도 있지만 반대편을 보면 역시 뾰족하다. 힘은 외부와 예리하게 접촉한다. 컵이나 주전자의 주둥이와 같고 숟가락이나 칼의 날과 같다. 볼펜이면 촉과 같다. 수레바퀴는 사방이 날이므로 뭉툭해 보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역시 예리한 날이다. 날이 예리해야만 힘을 조절할 수 있다. 힘은 새의 부리처럼 뾰족하고 맹수의 이빨처럼 날카롭다. 사람의 손가락처럼 예리하고 주먹처럼 단단하다. 질이든 입자든 힘이든 조절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질이 좋다는 것은 그 상태를 조절하기가 좋다는 것이다.
운동은 코끼리의 코처럼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시간을 조절한다. 키가 큰 사람은 잘 넘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돌부리에 걸려도 중심을 뺏기는데는 일정한 시간이 걸리므로 씨름선수 최홍만처럼 넘어지지 않고 버틴다.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사가 긴 막대기를 들고 있는 것과 같다. 거리가 시간을 만들어 넘어지기 전에 바로잡는 시간을 번다.
양은 직접적인 조절이다. 질, 입자, 힘, 운동은 비용을 덜 들이는 조절방법이다. 우리는 컴퓨터의 파워를 켜는 방법으로 컴퓨터 안의 모든 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메신저 등 사용하지 않는 소프트웨어도 다수 구동되어 있다. 이는 질의 방법이다. 입자, 힘, 운동, 량으로 갈수록 많은 것을 수동으로 조작해야 한다. 량은 최대한의 조작이다. 자동차의 시동을 거는 것이 질, 주차 브레이크를 푸는 것이 입자, 기어조작이 힘, 엑셀레이트와 브레이크 조작이 운동이라면 핸들은 량이다. 핸들은 계속 잡고 있어야 한다. 물론 자동차는 여러 가지 일을 하므로 일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질, 입자, 힘, 운동의 방법으로 일을 절약할 수 있으나 어떻든 마지막에 양으로 일을 끝내야 한다. 컵에 물을 따르더라도 한 방울을 흘릴 수 있다. 질, 입자, 힘, 운동으로는 눈금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청소를 해도 큰 덩어리는 질, 입자, 힘, 운동으로 하고 마지막 걸레질은 양으로 해야 한다. 어떻든 양을 결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나의 일은 반드시 이 다섯을 한 번 씩은 결정해야 한다. 다만 질 위주로 가면 일이 편하다. 수학은 의사결정 비용을 빼놓고 있다. 벤츠 한 대와 마티즈 두 대가 같다는 식이다. 돈은 그렇게 셈이 되지만 실제로는 10원짜리 동전 13만개를 지불하여 퇴직한 직원을 골탕먹이는 업주도 있다. 통장으로 이체하는게 질이다. 구조값이 있다. 의사결정비용이 있다. 유권자는 의사결정비용을 줄이려 하므로 권위적인 새누리당에 투표한다. 질이 우수한 것은 내가 통제하기에 편하고 대신 남이 방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모든 것을 남으로 보고, 타자로 보고, 적으로 보고, 말대꾸 하려는 자는 거꾸로 생각한다. 방해하기 쉬운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한다. 진보정당이 범하는 오류다. 새누리당은 당대표를 방해하기 어렵고 민주당은 당대표를 방해하기 좋다. 그게 과연 좋은 것인가? 내것으로 여겨야 한다. 내 다이아몬드는 남이 깨뜨리기 어렵다. 대신 내가 보관하기에 좋다. 그게 좋은 거다. 천하를 내것으로 보면 답이 보인다. 자연에서 구조값은 계속 낮아진다. 세상은 점차 말랑말랑해져서 결국 사라진다. 일할수록 구조값이 소비되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불변이다. 일은 하는데 에너지는 그대로이므로 구조가 소비된다.
질은 에너지로 조절하고, 입자는 상대로 조절하고, 힘은 공간으로 조절하고, 운동은 시간으로 조절하고, 양은 수고하여 조절합니다. 질은 스위치를 켜주면 되고, 입자는 상대를 붙여주면 되고, 힘은 방향을 틀어주면 되고, 운동은 순서를 바꿔주면 되고, 양은 그게 잘 안 됩니다. 그냥 열심히 해야 합니다. 머리쓰지 않고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많지요. 몸으로 때우겠다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럴수록 일이 늘어납니다. 의사결정을 두려워 하는 의사결정장애라면 치료받아야 합니다. |
마지막 멘트(파란글)를 보고 생각나서 몇 자 적습니다.
제가 어렸을때 부터 게으르다는 말을 엄청 많이 듣고 자랐어요.
저 놈은 커서 뭐가 될라고 저렇게 게으르냐고 부모님들은 항상
걱정이 태산같으셨죠.
하긴 시골사람들은 대부분 다들 부지런하더군요.
어린 나이에도 오히려 제가 볼 때는 땡볕에 어떻에 저렇게 뼈빠지게
일을 해야만 인간이 살 수 있을까 할 정도였죠.
개들은 너무너무 부럽고 소들은 너무너무 불쌍하고...ㅎㅎ
그러나 우리형은 저와는 달리 일을 잘해서 항상 칭찬받고 저는
게을러서 뭉기적거리면서 이걸 어떻게 힘 안 들이고 쉽게 처리할까?
이런 궁리만 하는데 이런 모습이 무지 뵈기 싫었나 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호르몬 장난이래나.. 뭐래나..
갑상선 저하증이면 움직이는걸 싫어하고 반대로 갑상선 항진증이면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라네요.
울 마누라가 잠시도 가만히 못있고 하루종일 왔다갔다 부산떨죠.
자기는 가만 있으면 소화가 안 되고 속이 불편하데요.
그래서 제가 대굴박만 굴리고 게으른건 호르몬탓이얌. 이러고 위안삼죠.ㅋ
지금 자전거로 신안 섬지방을 돌며 촬영하는데 마지막 기착지인
만재도서 풍랑주의보 때문에
3일째 발이 묶여 있으면서 그 동안 밀렸던 구조론글 보면서 심심찮케
보내고 있는중...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할 때, 항상 비용을 계산해야지요.
둘 다 취하는 것이 좋은데, 구조론은 다섯차원을 두 다 먹으려는거.
버릴 때의 우선순위를 취할 것인가
취할 때의 차선을 버릴 것인가
역시 의사결정은 볼 수 있는 자의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