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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247 vote 0 2015.04.16 (18:54:10)

       

    의도가 있다


    종이는 앞뒤가 있다. 앞면을 휴지통에 버리면 뒷면은 묻어간다. 앞면 하나를 버렸을 뿐인데 뒷면까지 둘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것이 구조론이다. 그런데 종이를 한 장으로 안 보고, 굳이 앞면과 뒷면으로 각각 나누어 별도로 바라보겠다는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의도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앞면과 뒷면을 각각 봐야할 때도 있다. 뒤집으면 앞면이 뒷면되고 뒷면이 앞면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돈다. 그러나 그것은 구조론적 상황이 아니다. 문제는 감추어진 의도다. 구조론적인 상황은 안 보려고 하고 비구조론적인 상황만 골라서 보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확실히 문제가 있는 거다.


    모든 그림에 원근법과 소실점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원근법이 필요없는 그림만 골라서 그리려고 한다면 미술의 발전은 없는 거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피해가겠다는 의도다. 왜 숨으려고 하고 피하려고 하지? 왜 전체를 보려고 하지 않고 숨어서 부분만 보려고 하지? 그 의도가 비겁한 거다.


    세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으며, 본질이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현상이 본질로 되돌아가기도 한다는 식의 순환론적인 태도라면 저의를 감추고 있다. 진심을 은폐하고 있다. 그런데 본인도 모른다. 자신이 자꾸만 회피하려는 의도를. 영화 ‘굿윌헌팅’에서 ‘맷 데이먼’의 연기가 잘 표현한다.


    갈림길에서 왼쪽 아니면 오른쪽이다. 자신이 오른쪽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왼쪽을 선택한다. 맷 데이먼은 어린시절의 버려진 트라우마 때문에 버림받을까 두려워서 먼저 버리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머리로는 그 반대쪽을 선택하지만 이미 호르몬이 나와버렸기 때문에 몸이 반대로 가고 만다.


    인간은 호르몬에 약한 존재다. 자신의 행동이 이성적 판단인지 호르몬의 유인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종이는 양면이 있지만 한 장이다. 한 장을 통째로 보지 않고 양면으로 나누어 보겠다는 사람의 의도는? 그 사람은 일하기 싫은 거다. 일하려면 개입해야 한다. 개입하면 1이 된다.


    개입하지 않고 밖에서 보면 2다. 개입하면? 외부에서 에너지가 투입된다. 그 대상은 1로 반응한다. 그게 구조론이다. 그런데 일하기 싫은 사람이라면? 개입하기 싫은 사람이라면? 자동차의 엔진이 바퀴를 굴리든, 바퀴가 엔진을 굴리든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그 차는 내가 운전할 차가 아닌데 말이다.


    그 사람은 운전할 생각이 없는 거다. 각각 나누어 보는게 편하다. 자연은 하나의 통짜덩어리로 존재한다. 인간은 하나의 인류로 통합되어 있다. 이 말은 통합되어 있을 때 그 자연이라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류가 통합되어 있을 때 그 인류라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은 1인데 경상도와 전라도 둘로 나누어 보려는 사람은? 대통령 될 생각이 없는 거다. 대통령이 되면?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누어져 있는게 지도자를 힘들게 하는 거다. 결국 지도자가 될 마음이 있는 사람만 전체를 보려고 한다.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전라도와 경상도를 나누려 하는 사람은?


    일할 생각이 없는 거다. 대한민국을 전진시킬 생각이 없다. 대통령 일을 태업하는 거다. 인류호라는 자동차를 운전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구조론이 먹히지 않는다. 왜? 필요없기 때문이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에게 휠체어는 필요없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필요없을지 모르나 인류에게 필요하다. 


    왜 자기소개 하느냐고? 왜 현재의 자기입장을 들이대느냐고. 누가 당신 사정 물어봤냐고. 중요한건 당신의 형편이 아니라 인류하고도 미래의 사정이다. 그런 사람은 늙어서 휠체어를 타야 할 때 후회하는 거다. 현재의 자기는 빼고 인류를 보라. 미래를 보라.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라. 구조를 보라. 


    엄마곰과 아기곰이 있다면 엄마곰을 쏘아야 한다. 아기곰을 쏘면 숲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엄마곰이 덥치기 때문이다. 분명 엄마곰은 어딘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 아기곰과 엄마곰을 하나의 곰가족으로 보지 않고 각각 나누어 보는 사냥꾼은 죽는다. 그러나 어차피 사냥할 생각이 없는 사람은 상관없다.


    진리를 볼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는 상관없다. 인간이 그 대상을 통제하려고 하므로 사건으로 보고, 일로 보고, 에너지로 보고 통짜덩어리로 보아야 한다. 팔짱끼고 멀리서 지켜보겠다는 사람은 구조론을 이해할 수 없다. 애초에 태도가 틀려먹은 것이다. 세상을 구조로 보지 않아도 된다. 보는건 되는데 실패한다.


    나무의 뿌리와 줄기와 잎을 각각 나누어 보는 사람은 그 나무를 옮겨심을 수 없다. 일을 하려니까 문제가 된다. 동물과 식물을 각각 나누어 보고 하나의 생태계로 보지 않으면 동물이 굶어죽는다. 그러나 동물원 관리자가 아닌 다음에야 상관없는 것이다. ‘나는 관심없걸랑요.’ <- 이런 자기소개는 필요없다.


    통합적인 관점은 현장에서 일할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다. 애초에 일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에게 구조론은 필요가 없다. 최근 천안함과 관련한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의도가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생각해보면 되는데 생각하지 않는다. 대세가 기울면 흐름을 따라가는 거다.


    이명박근혜를 찍은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판단을 한 것인가? 지능이 떨어지는가? 의도가 영향을 미친 거다. 호르몬이 판단한다.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 사정의 100퍼센트는 알 수 없다. 모르는건 공란으로 놔두고 아는 부분만 판단하면 되는데 그렇게 못한다. 그러면서 점장이 점괘는 잘 믿는다.


    순수하게 이성으로 판단하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대개 이성은 잠들고 호르몬이 결정한다. 몸이 가는대로 마음이 따라간다. 몸은 과거에 갔던 길로 간다. 물론 어린이는 예외다. 어린이는 호기심이 왕성해서 낯선 길로도 곧잘 간다. 그러나 어른은 늘 가던 길이 아니면 못 간다. 호르몬 때문이다. 극복해야 한다. 


[레벨:2]법화

2015.04.16 (23:24:44)

질문이 불쾌했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양쪽을 보지 않고 한쪽만 본다는 질책 달게 받습니다

세상을 보는 제 수준입니다

세상을 통짜로 봐야 한다는 말씀 새깁니다 머리로만 말입니다

머리밖에 안 되는 것은 개인사정이고 하면 할 말 없습니다

세상을 통짜로 이해하는 것과 세상을 통짜로 보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생각듭니다

통짜로 봤다는 것은 생의 구속에 자유롭다는 것 두려움에서 벗어났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런 제 소견에는 욕망과 갈등이 전제 합니다

욕망과 갈등이 세상을 부분으로 보고 통짜로 보지 못하게 하는 원인자라 생각합니다

말씀 중에 이성으로 판단하지 않고 몸이 가는 대로 결정한다. 호르몬이다. 극복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극복해야 합니다 몸의 중독을 극복하라는 말씀이죠.

 

제가 드린 질문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통짜로 보는 사람이 반쪽으로 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소통을 거부한다면

통짜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세상과 고립되어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왜 세상은 통짜보다 반쪽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

진리는 살아가는 장소에서 구현되어야 진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반쪽 운운 한 것은 표현에 오해가 있습니다 제 수준은 반쪽이 맞습니다만

 

생명은 하나가 아닙니까 하나의 생명이면 생명의 빛깔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지구에 70억의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만 70억개의 생명의 빛깔이 각자의 색깔로

몸짓하며 삽니다 생명 본연의 빛깔은 하나이겠지만 각각의 생명의 빛깔은 다르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맑고 어떤 사람은 흐리고 어떤 사람은 높고 어떤 사람은 낮습니다

70억의 생명의 몸짓간의 소통과 관계 속에서 구조론의 세상을 보는 시선의 방향이

전달되려면 어떤 노력의 필요한지 단지 구조론의 지식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으로는

한 개인의 만족은 있겠지만

이것이 구조론을 읽으면서 궁금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실로 알고싶습니다 이것이 쓸데없는 궁금인지 한 말씀 기다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5.04.17 (00:27:01)

쓸데없는 질문 맞고 사실 대답할 가치도 없습니다.

늘 있는 질문인데, 질문을 표방하지만 질문으로 보기 어려운 거죠. 


이런 질문은 공자에게도 퍼부어졌고 

그때 그시절 많은 사람이 공자의 건방진 태도를 보고 냉소했죠.


그래서 공자의 문하가 썰렁했는데 공자의 추종자 다수는 당시에 명성이 있었던 자로가

공자에게 굽히는 것을 보고 자로를 따라 넘어온 거죠.


요즘 잘 나가는 자로가 촌뜨기 공자에게 굽히는걸 보니 뭔가 있나보다 한 거.

공자가 자로를 만나지 못했다면 쓸쓸하게 되었을 수도 있는 거죠.


석가도 비슷한 이유로 한 때는 500명의 제자가 두 명 남겨놓고 다 도망친 적이 있었죠.

예수에게 퍼부어진 질문도 이와 같은 것이며, 소크라테스를 비난한 아리스토파네스도 같죠.


만약 플라톤이 없었다면 소크라테스는 그냥 역사에서 조용히 지워졌겠죠.

아리스토텔레스가 없었다면 그 플라톤도 소리소문없이 지워졌겠죠.


만약 알렉산더가 없었다면 그 아리스토텔레스도 역시 지워졌겠죠.

반대로 아랍이나 이집트 등지에 더 많은 소크라테스가 있었지만 지워져서 우리가 모르는 거죠.


알렉산더가 모든걸 이루었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살린 것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을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살린 것이며 이런 족보가 만들어질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공자의 유교도 한 때는 망해서 유교경전 자체가 사라져버린 적이 있습니다.

유교가 망했다가 새로 일어났는데 불태워진 공자의 책을 암기했다는 파와


창고에서 원본을 찾아냈다는 파가 고문파니 금문파니 하며 서로 상대방이 가짜라며 많이 싸웠죠.

많은 사람들은 예수가 왕 잡으면 한 자리 하려고 따라갔는데 이게 뭐야 하고 벙찐 거죠. 


구조론은 저절로 된다는 이론입니다. 때가 되면 저절로 되고 때가 아니면 절대로 안 됩니다.

세상이 구조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거고 필요로 하면 저절로 됩니다. 


구조론이 하는 일은 말 안 듣는 꼴통들을 제압하고 하나씩 차례로 이겨가는 것입니다.

구조론이 이기면 사람들이 따르고 지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습니다. 


파퀴아오가 이기면 파퀴아오를 따르고 지면 파퀴아오를 따르지 않습니다.

김성근 감독이 이기면 사람들이 따르고 지면 김성근 감독을 따르지 않습니다.


구조론이 각자의 위치에서 계속 이겨가는 것이 중요한 거죠.

그것은 세상의 일이며 세상이 하는 거고 그 세상의 일 가운데 구조론이 있는 거죠. 


[레벨:2]법화

2015.04.17 (07:07:35)

지적 감사하게 받습니다 지도였으면 하고 기대했는데...

답변의 시작이 지나치게 단정적이라 왜 그럴까 생각해 봅니다

 

"쓸데없는 질문 맞고 사실 대답할 가치도 없습니다.

늘 있는 질문인데, 질문을 표방하지만 질문으로 보기 어려운 거죠."

 

이 말씀은  제가 드린 질문은 산 질문이 아니라 죽은 질문이다

그런 뜻의 전제가 들립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결과지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트에서 강조하신 말씀을 상기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에 연연하면 답이 없다 무시해라 이런 말씀으로 들립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이겨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세상의 일이고 세상이 하는 것이다

  

이겨가는 각자의 위치가 세상의 하는 일이다

이겨가는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서 처해진 위치에서 할 일을 하면 된다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세상이 구조론을 필요로 하면 되고 필요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항상 느끼는 제 갈등이지만  진리는 폭력에 무기력하다 

폭력이 진리를 압도할 때 진리가 대적할 무기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위의 말씀이 진리가 폭력 당할 때는 대응할 방법은 없다

세상이 진리를 필요로 하여야 만 진리가 숨쉰다는 말씀이신지...

 

[레벨:15]lpet

2015.04.17 (09:21:58)

통짜로 보는 사람이 반쪽으로 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소통을 거부한다면

통짜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세상과 고립되어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왜 세상은 통짜보다 반쪽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

진리는 살아가는 장소에서 구현되어야 진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구조론과 충돌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자 떼쓰기라고 봅니다.

떼쓰기를 하는 이유는 자신을 반쪽짜리라고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이쪽에서는 온쪽을 이야기하는데 자꾸 반쪽의 사정이 궁금하고 걱정을하면 뜬금없죠.


저도 구조론이 머리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어서 법화님의 입장이 이해됩니다.

그런데.. 반쪽의식을 버리지 못하면 이곳에서 무자비하게 배제됩니다. ㅋㅋ

살아남은 분들 중에서 강퇴 혹은 자퇴했다가 다시 오신 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소통을 거부하는 쪽은 통짜 온쪽이 아니라 반쪽임을 아셔야 합니다.

온쪽이 반쪽을 끌어올리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나, 그것은 별개의 사건이죠.

저도 오랫동안 반쪽으로 살아온지라, 반쪽 갱생에 무진장 관심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그런건 각자가 알아서 해야할 몫일 뿐입니다.


통짜 덩어리 온쪽이 되려면 먼저 반쪽의 포지션을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벗어나기가 참 어렵죠. 왜냐하면 법화님의 말씀처럼 반쪽이 훨씬 숫자가 많으니까요.

사실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다 반쪽, 반의 반쪽이죠. 차라리 세상은 반쪽이라고 하는게 맞아요.

구조론자들은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 이곳에서 전략과 전술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법화님도 아마 반쪽들과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으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게 아닐까 예상해봅니다.

차라리 그 어려움을 게시판에 올려 공유하면서 함께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지않을까요?

[레벨:2]법화

2015.04.17 (10:21:29)

관심 가져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답변내용 공부 많이 됩니다

1. 소통을 거부하는 쪽은 통짜 온쪽이 아니라 반쪽임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압니다 그래서 질문드린 겁니다 왜 그럴까 통짜로 보는 것이

   머리 둔한 나도 보이는데 왜 안될까 진정 없는가 생각해 봤습니다

2. 찾다보니 이 문제의 근본원인은 세끼밥 먹는 몸의 갈증이 원인이구나 생각되었습니다

   구조론에서는 몸의 갈증은 죽은 껍데기에 묻은 얼룩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3. 내 몸의 몸짓이 단지 꿈틀대는 얼룩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가능하기 어려운 말씀이 아니신지.. 

4. 현실가능한 방법은 진정 없는가 하는 생각을 오래전에 가져봤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몸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5. 적다보니 구하고자 하는 질문이 분명해 졌습니다

   욕망과 갈증에 대한 것이 집중이 아니라 집착임을 그리고 허망하다는 것을

   비유한 글들은 없을까 찾고 있습니다  

6. 그런 글이 있으면 도움받고 싶습니다





[레벨:6]홍가레

2015.04.17 (03:05:43)

제 주변에 구조론을 알려주면 늘 법화님같은 질문을 하더군요.  속내는 이겁니다.  하기싫다. 

내가 왜 구조론을 따라야하느냐. 세상엔 다양한것들이 있지. 내 꼴린대로 할거야!.

구조론은 이기는법칙입니다.  이기려면  구조론적으로 사고해야합니다. 

세상모든것엔 구조가 있기때문이죠.   오합지졸끼리 붙으면 컨디션좋은놈이 이기지만

프로팀이나 국가단위로 올라가면 그런게 안통하죠.  님에겐 구조론이 별로 필요해보이지 않습니다.

강신주의 철학강의나 법륜스님의 즉문즉답이 더 필요해보여요.

 

만약 내가 어떤 이성에게 몇마디 던졌는데 이성이 나한테 호감을 보이더라. 근데 알고보니 어떤 구조적인 이유가

있더라.  이런 말만 하면 이성이 반응을 보이더라 하는 마법같은 법칙이 있다면 믿겠습니까?

 

타율낮은 타자가 어떤방법으로 타율이 올라갔다면 믿겠어요?

 

진리는 진리죠 무슨 살아가는 장소에서 구현되어야 진리입니까?  누구좋으라고?

님께서 진리의 왕국으로 들어오셔야죠.  왜 진리가 님이 사는 세상으로 가야하죠?

진리는 친절하지 않습니다.      밝기조절은 있어도 어둡기 조절은 없습니다.

주는것은 있지만 받는것은 없습니다. 주지 않으면 받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게 진리입니다.  빛이 없으면 어둠도 없습니다.    

빛도 있고 어둠도 있는게 아니고 원래는 빛만 있는겁니다.

이걸 이해 못하면 구조론의 기초가 없다는 뜻이니 칼럼같은거 읽지 마시고 구조론 기초부터 공부해보시는게

좋을듯.

 

구조론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중에 타자성이란게 있죠. 남이 하는거 보고 내 행동을 결정하는겁니다.

님에게 구조론이 어려운이유는 타자성이 몸에 베여있기때문입니다.

타자성을 극복하고 주체적으로 무슨일을 하려면 구조론이 꼭 필요합니다. 

이미 주체적으로 뭔가 하는 사람들은 구조론을 몰라도 구조론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 모인 사람들이 그렇죠. 어디선가 자기분야에서 주체적으로 일하고 있다가 우연히 구조론을

접하게 되서 의견도 나누고 구조에 대해서 더 공부를 하는거죠.

 

항상 남에게 의존하는 새누리들은 망하게 되있습니다.  이번에 성완종사태 보세요. 결국엔 이렇게 됩니다.

제2의 세월호는 또 나옵니다.    민주당이라고 다를거 없죠. 안철수가 의사결정을 남에게 미루다 결국 증발해버렸잖아요.

ㅎㅎ

프로필 이미지 [레벨:3]뭐가뭐

2015.04.17 (09:42:34)

자기독해의 문제죠.


말귀 안 열린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해놓고도 무슨 말했는지 모릅니다.

법화 님의 말씀은 요약하면 '다 좋은 공자 말씀인데 그래서 어디 써먹을 데는 있냐'는 거고

그렇게 묻는 저의를 본인이 알아차리는 게 우선 필요하다는 겁니다.


구조론 갖다 써먹을 수준이 되는 사람이 그런 걸 묻겠습니까?

익히고, 적용해보고, 도저히 안 되는 부분 물어보고, 수렴하고, 반영하는 주기를 반복할 뿐이죠.


구조론으로 일을 하고 있지 않고

자꾸 '이게 뭔 실용성이 있냐'는 고민이 들면

공부 시작도 안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수학책 앞에 놓고 펼치지도 않은 거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5.04.17 (10:42:00)

어디든 원론적인 질문은 하면 안 됩니다.

그건 예의에서 벗어난 무례한 행동이라는 말이지요. 


수학사이트에 와서 수학이 뭐냐? 그거 어디 써먹는 거냐? 

왜 수학만 중요하냐? 이런 초딩수준 찌질한 소리 하면 안 됩니다. 


왜? 어차피 인간의 99.99퍼센트는 자기 판단대로 안 합니다.

아예 판단을 안 해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눈치보다가 대세를 따라갑니다.


그건 구조론 사이트에 와서 당신이 권위가 있으면 하버드 강단에서 떠들지

왜 여기서 이러느냐는 식이거든요. 물론 아프리카에서 누가 구조론을 알았다 해도


그 아프리카 구조론 창시자는 그냥 죽는 거에요. 왜? 거기는 아프리카니까.

그런 99.999퍼센트와는 대화가 불능입니다. 어차피 답을 말해줘도 안 변합니다.


길바닥에 금이 있어도 챙기지 않습니다. 사람이 100만명 있는데

금이 하필 왜 내 앞에 있겠느냐 이런 식이거든요.


이곳은 하루 3000명 가까이 방문하는 사이트입니다.

나는 그 3천여명을 보고 말하지 개인 누구를 보고 말하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더까지 4대가 걸려서 이룬 겁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말했지만 실제 사람을 움직인 것은 알렉산더의 폭력입니다.


알렉산더 졸라 세네. 왜지? 스승을 봐? 스승 누구? 이러다보니 윗대 소크라테스가 보인 거.

인간의 한계가 그런거.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우리가 이겨보이는게 중요합니다. 


법화님은 어차피 정답을 말해줘도 안 변합니다. 아직 알렉산더까지 진도 안 나갔으니까.

어차피 인간의 99.999퍼센트는 힘이 있는 권위자가 움직여야 따라가고


대세가 움직여야 힘 센 알렉산더 따라가고 법화님도 그 99.999에 속하니까요. 

법화님이 독립적인 판단을 하는 0.001퍼센트인지는 아직 증명이 안됐습니다.


원론에서 맴도는 진도 안 나가는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시간 아까워요.

원론적인 문제는 몸이 반응하는 문제고, 몸이 반응하는 사람은 1초만에 되고


몸이 반응 안 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가야 맨 뒤에 따라갑니다.



[레벨:2]법화

2015.04.17 (11:35:15)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제 공부가 안된 것이 느껴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질문드리면서 내가 알고 싶은게 이거구나 하는 시간도 되었습니다

김동렬선생님의 결기있는 답변 덕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질문이라 사이트를 어지럽혔다면  미안합니다



[레벨:8]상동

2015.04.18 (20:50:13)

/법화

욕망과 갈등이 세상을 부분으로 보고 통짜로 보지 못하게 하는 원인자라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이 수정되어야 합니다. 원인과 결과가 뒤집혀져서 거짓을 이루고 있지요

욕망과 갈등이 원인이 되서 통짜로 못보는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고

통짜로 못보는 시선이 원인이 되서 욕망과 갈등의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통짜로 보는 사람이 반쪽으로 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소통을 거부한다면

통짜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세상과 고립되어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왜 세상은 통짜보다 반쪽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

반쪽만 보는 사람이 수두룩 빡빡하죠. 그런데 그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나요?

다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자기소개하느라 바쁘지 않나요?

자기소개에 실패할때마다 힘들어 하고 괴로워하지 않나요? 허무하지 않나요?

새누리들을 보세요 언제나 인생이 만인대만인의 투쟁상태에 있잖아요

진정한 연결은 통짜로 보는 자들의 팀플레이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통짜로 보는 팀에 속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아니면 사막에 모래알처럼 군중속에 고독할 뿐이죠.


생명은 하나가 아닙니까 하나의 생명이면 생명의 빛깔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지구에 70억의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만 70억개의 생명의 빛깔이 각자의 색깔로

몸짓하며 삽니다 생명 본연의 빛깔은 하나이겠지만 각각의 생명의 빛깔은 다르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맑고 어떤 사람은 흐리고 어떤 사람은 높고 어떤 사람은 낮습니다

70억의 생명의 몸짓간의 소통과 관계 속에서 구조론의 세상을 보는 시선의 방향이

전달되려면 어떤 노력의 필요한지 단지 구조론의 지식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으로는

한 개인의 만족은 있겠지만

이것이 구조론을 읽으면서 궁금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결과에 집착하고 계십니다. 원리(소실점)가 같다고 해서 결과까지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물리법칙은 몇가지 안되지만 우주에는 다양한 현상이 일어나고 기본입자는 몇개 안되지만 원소는 그 몇배가 되고 화합물은 또 그 몇배가 됩니다. 여기는 복잡하고 다양한 결과를 다루는 곳이 아니고 기본이 되는 원리를 다루는 곳이죠. 여기에서 다양성을 찾으시면 안됩니다. 원리(소실점)를 배우시고 다양성은 본인이 직접 펼치시면 됩니다.


항상 느끼는 제 갈등이지만  진리는 폭력에 무기력하다 

폭력이 진리를 압도할 때 진리가 대적할 무기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위의 말씀이 진리가 폭력 당할 때는 대응할 방법은 없다

세상이 진리를 필요로 하여야 만 진리가 숨쉰다는 말씀이신지...

님은 진리라고 쓰고 윤리도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폭력이 윤리를 압도할때 윤리가 대적할 무기는 없는가? 당근 없습니다. 윤리도덕은 폭력앞에 무력합니다. 매뉴얼을 따른 사무장(윤리도덕)은 부사장의 자기소개(폭력)앞에 속수무책입니다. 폭력을 이기는 것은 세력이지 윤리도덕이 아닙니다. 세력의 부재가 폭력을 부른것이지 윤리도덕이 없어서 폭력을 부른것이 아닙니다. 진리란 빛(세력)이 줄어들면 어둠(폭력)이 깃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는 폭력에 압도된 적이 한번도 없고 여전히 작동중입니다.


[레벨:2]법화

2015.04.20 (06:40:21)

늦게 읽었는 데 귀한 답변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미안하지만 말씀하신 소실점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소실점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 지.....

 

[레벨:8]상동

2015.04.20 (08:12:06)

이곳에 올라와져 있는 동렬님의 모든 글들을 읽으세요.

죄다 원리(소실점)에 대한 글들 입니다.


되도록 글의 결론을 보지 마시고 메커니즘을 찾아보세요.

a면 b다.. 라는 형식을 찾으시고 a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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