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팟캐스트 녹음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구조론은 확대된 진화론이다. 진화론이 생물의 진화만을 좁게 다루는데 비해 구조론은 모든 것의 진화를 다룬다는 차이가 있다. 자연선택을 중심으로 하는 다윈의 진화론이 틀렸기 때문에, 구조론이 유의미한 것이다. 구조론의 정답은 자연선택이 아니라 유전자 모듈의 방향성이다.
◎ 진화는 구조론의 의사결정원리를 따른다. 구조론은 원래 방향이 있다. 자연계의 모든 현상은 단위 사건 안에서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한가지 형태로만 일어난다. 예외는 없다. 반대로 운동에너지를 위치에너지로 저장하지만 이는 연속된 변화이고, 단위 사건에서는 언제나 엔트로피의 법칙대로 일방향성을 가진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지극히 위험한 단어선택이다. 백인이 유색인종을 죽여놓고 ‘이것은 자연의 선택이다.’ 라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혹은 기독교도가 무슬림을 죽여놓고, 또는 반대로 무슬림이 기독교도를 죽여놓고 ‘이것은 신의 선택이다.’라고 말하는 장면과 무엇이 다를까? 근본적인 방향의 차이가 있다. 즉 다윈의 진화론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이해한다면 구조론을 상당부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핵심은 우연이냐 필연이냐다. 즉 진화의 방향성이 있느냐 없느냐다. 방향성이 없다면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방향성이 있다면 한 점에 모일 것이다.
그림으로 치면 소실점이 있는 서양화와 소실점이 없는 동양화의 차이다. 동양화는 한 폭의 그림 안에 여러 작은 그림이 들어 있다. 서원아집도는 북송시대 여러 유명한 인물의 에피소드를 한 곳에 모아놓은 것이다. 소설로 치면 옴니버스와 같다. 이건 이론적으로 덜 만들어진 것이다. 이발소 그림이라면 한 폭의 그림 안에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이 있는가 하면 낮과 밤이 동시에 있기도 하다. 여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다. 무엇인가? 그림을 사는 소장자가 봄여름가을겨울 다 원하는 것이다. 산도 필요하고 호수도 필요하고 폭포도 좋다. 작가는 소비자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준 것이다. 작가의 그림은 아닌 것이다. 이미 예술성은 사라지고 없다. 그것은 그림이 아니다. 똥이다. 예술에 대한 모독이다. 이는 거대한 세계관의 차이, 사고방식의 차이가 되므로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대상에 투영하면 안 된다. ◎ 다윈의 자연선택 – 진화의 방향성이 없다. 그림의 소실점이 없다. 이발소 그림에 4계절과 밤낮이 있는 것과 같고 동양화를 잘 살펴보면 여러개의 작은 그림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것과 같다. 결론 : 체계가 없다. ◎ 구조론의 상호작용 – 분명한 방향성이 있다. 그림의 소실점이 있다. 에피소드들이 주제가 되는 한 방향으로 모아진다. 결론 : 체계가 있다. 헤밍웨이가 말하길 진정한 문학은 평면의 장식이 아니라 입체의 건축이어야 한다고 했다. 음악을 건축한 사람은 바하, 회화를 건축한 사람은 세잔, 문학을 건축한 사람은 헤밍웨이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간결해야 한다. 음악이 건축되면 춤과 결합하므로 현대음악은 간결해야 한다. 지나치게 현학적인 마니아적인 음악은 살아남지 못한다. 다른 분야와의 결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문학이나 회화도 마찬가지다. 섬세한 그림보다는 단순한 그림이 외부와의 결합성을 좋게 한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회화든 모두 평면에서 입체로 간다는 방향성이 있다. 진화도 마찬가지다. 모든 진화는 평면에서 입체로 진화해 간다. 삼엽충이나 투구게처럼 납작한 생물에서 보다 입체적인 생물로 진화한다. 진화의 방향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밀도를 증가시키는 방향이다. 토대는 밸런스다. 밸런스는 의사결정 단위다. 밸런스는 간결함을 추구한다.
눈이 네 개인 복잡한 동물은 배척된다. 뒤통수에도 눈이 있다면 더 잘 살아남을 것인데 절대 그렇게는 안 되는 것이다. 이는 2차대전 초기에 포신이 여러개 있었던 전차가 멸종한 것과 같다. 의사결정의 난맥상을 연출하여 참패로 이끌었음은 물론이다. 부대에 소대장이 두 명이다. 망하는건 필연이다. 왜 자연에 머리가 둘인 동물은 없을까? 의사결정원리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혹은 샴쌍둥이와 같은 원리로 몸통 하나에 머리가 둘인 동물이 있지만 그것은 진화의 결과가 아니다. 자연의 의사결정원리는 대칭≫비대칭이다. 머리가 둘이면 비대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밸런스에는 대칭≫비대칭이 세트로 존재한다. 먼저 대칭을 이루어 위치에너지를 만들고 다시 비대칭을 이루어 운동에너지로 전환한다. 이 법칙은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우주의 공통된 코드다. 유전자는 모듈을 이루며 하나의 유전자 모듈은 하나의 대칭≫비대칭 구조를 가진다. ◎ 유전자는 의사결정모듈의 집합이다. 결론적으로 유전자는 그냥 정보를 싣고 있는게 아니라 의사결정모듈의 집합이며 각 모듈에는 대칭≫비대칭의 밸런스 단위가 있고 이것이 모여서 생명을 건축하므로 어떤 부분의 변이는 상부구조의 대칭을 깨뜨리므로 즉 유전체계 내부모순을 해소하는 방향으로만 진화하는 것이다. 건축을 해보면 알 수 있다. 건물은 건축자재들의 집합이다. 각 자재는 모두 하나의 밸런스 단위를 이룬다. 벽돌을 쌓을 때는 위 벽돌 한 장이 아래벽돌 두 장에 걸치게 쌓아야 한다. 그런데 귀퉁이에 해결되지 않는 모순이 있다. 접착제로 붙이거나 해야 하는 부분이 반드시 있는 것이다. 그 모순을 해소하려면 상부구조를 두어야 하는데 이는 모순을 상부구조로 떠넘긴 셈이어서 또다른 상부구조를 필요로 하고 이 과정을 되풀이하면 건축의 진화가 일어난다. 진화는 필연적으로 모순일 수 밖에 없으며 그러므로 생명은 진화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방향성이 있다. 갈라파고스의 핀치새는 부리가 여러 형태인데 왜 눈과 귀는 여러 형태가 아닐까? 부리를 여러 형태로 분화시키는 유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유전자로 설명되어야 하며 유전자 자체가 방향성을 가진다. 핀치새는 특별히 부리를 여러 형태로 분화시키는 진화의 방향성을 가졌다. 소년이 사춘기가 되면 여러 가지 안 하던 짓을 한다. 그 행태는 매우 다양하지만 결국 여자를 만나겠다는 하나의 소실점으로 집약된다. 물론 왜 그러는지는 본인도 모른다. 소실점이 있고 방향성이 있다. 자연선택이 아니라 방향선택이다. 그 방향은 절대로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따른다. 다양한 목을 가진 기린은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다. 화석증거도 없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다양한 목은 밸런스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건축을 해도 다양한 집은 지어지지 않고 몇 가지 정해진 양식이 있다. 필연적으로 구조적 안정성을 가진 건축양식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옥의 지붕모양은 몇 가지 밖에 없다. 팔작집, 맞배집, 우진각지붕이 있고 정자지붕 및 이를 응용한 몇가지 복합적 형태가 있다. 기본형은 구조론적으로 나올 수 있는게 빤해서 많이 나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대칭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구조는 복잡해질수록 더 단순화 된다. 구조가 복잡해지면 대칭이 깨질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즉 의사결정을 할 수 없고 따라서 생존할 수 없게 된다. 2인3각을 하면 빨리 달릴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빠르게 달리면서 즉각 방향을 틀 수 있는 다리형태는 사람의 두 다리나 치타의 네 다리 밖에 없다. 지네다리로는 안 된다. 다윈의 자연선택이 맞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진화의 정의를 비틀기 때문이다. 즉 진화는 구조가 복잡해지는 것인데 구조와 관계없는 변이도 유전만 되면 진화라고 우기므로 마치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과연 그게 진화인가? 실제로 구조가 변경되었는가? 지붕에 페인트칠을 해놓고 새로운 지붕형태가 나왔다고 주장하면 곤란하다. 남이 발명한 상품에 색깔만 바꿔 칠해놓고 발명특허를 내달라고 요구하면 곤란하다. 애플은 스마트폰을 발명했고 삼성은 베꼈다. 베낀 것을 발명이라고 우기면 곤란하다. 진화는 구조가 다른 신종의 발명이다. 런던의 매연에 검은나방이 흰나방보다 많아진 것은 진화가 아니다. 그건 그냥 나방일 뿐이다. 나방이 참새로 변해야 진화인 것이다. 환경이 변하면 멸종하는 종이 있지만 그것이 진화의 원인은 아니다. 방증일 뿐이다. 즉 진화를 설명하는 수단일 뿐 진화의 직접원인은 아닌 것이다. 도로가 파괴되면 SUV가 잘 팔린다. 러시아는 눈이 많이 와서 아스팔트가 잘 파괴되므로 세단보다 SUV가 인기가 있다. 그런데 이게 진화인가? 농담은 곤란하다. 그건 자동차의 진화가 아니다. 단지 이것으로 진화를 설명할 수는 있다. 레저수요가 증가하면 SUV가 살아남는 거다. 구조론의 각별함은 진화가 빠르고 쉽다는 점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너무 느리게 진화를 일으킨다는 점이 문제로 된다. 생명체의 역사가 35억년이라 하나 결정적인 진화는 5억년 안이며 그 중에서도 생물 종의 대분화기가 몇 차례 있었다. 실제로는 거의 순식간에 진화해버린 것이다. 생태계의 복잡함은 진화를 막는 안전장치로 기능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진화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진화의 폭주를 막았느냐다. 눈이 네 개인데다가 잠은 안 자고, 날 수도 있고 달릴 수도 있으며 절대 병에 걸리지 않는 완전체 동물이 나타나서 다른 종을 멸종시켰어야 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즉 진화의 절대강자는 없는 것이다. 있다면 인간이 후보다. 진화는 생태계의 재앙이다. 그러므로 속도조절이 필요한 것이며, 어떻게 진화했느냐보다 어떻게 진화가 조절되었느냐가 더 중요한 관심사여야 한다. 구조론으로 보면 한 순간에 진화해 버린다. 인간역사는 1만년이다. 인간이 주목하고 관찰한 종을 1만종으로 친다면 한 종을 기준으로 볼 때 1억만년 동안 진화가 일어나지 않은 셈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1만종을 눈여겨 보았는데 그걸 한 종이 진화할 확률로 치면 1억년인 것이다. 1억년간 진화는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왜 1억년 동안 진화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것은 진화를 가로막는 방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시계태엽이 다 풀려버리면 더 이상 풀리지 않는 것과 같다. 이는 반대로 방해자가 제거될 때 급격하게 진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포유류는 공룡류와 비슷한 시점에 등장했다. 우월한 포유류가 열등한 공룡류를 해치웠다는 통념과 다른 것이다. 생존경쟁도 자연선택도 아니고 운석의 충돌에 의해 공룡이 멸종한 것이다. 어룡까지 덩달아 멸종한 것은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 아래는 구조론게시판 글의 일부보완입니다. 다윈의 설은 확실한 진화의 논리가 없고 대략 얼버무린 것이며, 그것을 론이라고 부를 정도가 아니다. 물론 공란으로 비워둔 것을 후학들이 채우면 되는데, 그 첫번째 채움이 멘델의 유전법칙이고, 근래에 발달된 유전공학이며 그래도 일부 비어있는 칸들이 있다. 구조론이 채운다. 오해하면 곤란하다. 구조론은 진화론과 충돌하는게 아니라 완성한다. 방향성이 있다는 점이 다윈과 다르다. 방향성이 있다는 말은 마치 유전자가 길을 알고 가는 것처럼 방향을 정한다는 것이다. 상호작용 때문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갈 때 저쪽에서 이쪽으로 무언가 온다는 말이다. 빛은 언제나 지름길을 찾아가는데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 길을 선택한다. 가봐야 알지 안 가보고 어떻게 알았을까? 상호작용을 알면 풀린다. 이 부분이 다윈의 잃어버린 나사다.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진화론은 완전해진다. 그리고 보편성을 획득하여 타 분야에 두루 응용된다. 현재로는 보편성이 없기 때문에 진화론은 위험한 인종주의로 되었다. 외계인이 망원경으로 지구를 관찰하는데, 마른 사막에 비가 내리더니 강물이 형성되어 바다로 가는 것이었다. 외계인 왈 '지구의 빗물들은 바다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알고 갔을까?' 혹시 저 빗방울이 생물이 아닐가? 저 빗물넘들이 아이큐가 높아서 미리 소문으로 바다의 위치를 들어서 알고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엉뚱한 상상을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외계인은 지구에 중력이 있다는 것을 몰랐으므르. 그 외계인은 우리우주 말고 다른 차원의 우주에서 왔으므로. 중력의 존재도 모른다고. 빗물이 아무데로나 막 가다가 보니 우연히 바다를 만난 것일까? 왜 빗물들은 마치 사전에 약속이나 한 듯이 모여들어 강물을 형성한 것일까? 빗물은 바다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게 구조론이다. 빗물은 중력에 의해 바다의 존재를 알게 된다. 계가 있는 거다. 계 안에서 빗물은 중력이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일방향으로 진행하여 바다로 진화한다. 빗방울>개울물>소하천>강물>바다 순으로 빗물은 진화한다. 기린은 높은 곳에 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화가 몇 차례의 대분화기에 폭발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엄청난 진화가 순식간에 일어난다. 왜? 진화방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는 평형의 원리에 의해 안정되어 있고 그 안정상태를 깨는 진화는 억제된다. 진화는 철두철미하게 막혀 있으며 그 때문에 진화가 잘 관측되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시대 일만년인데 유의미한 진화는 없었다. 왜 진화를 못할까? 막혀서 못하는 것이다. 꽉 틀어막아놨다. 그런데 소행성충돌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서 그 빗장이 풀리면? 엄청난 진화가 순식간에 일어난다. 고장난 시계태엽 풀리듯 확 풀려버린다. 다윈식으로 진화하려면 진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나야 하는 거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진화는 아주 쉽게 일어난다. 캄머러의 주장이 맞다면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진화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진화는 쉽다. 사바나의 동물들이 이동하기에 편하려면 망루처럼 키가 큰 동물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생물학자는 진화의 중력을 발견못했다. 진화의 중력이 있고 진화는 유전자모듈 단위로 일어나므로 매우 쉽게 격발되기만 하면 와장창 진화한다. 그 증거는 필자가 40년 전 생각한, 영장류는 처음부터 직립했다는 가설이다. 800만년 전부터 직립했다는 사실이 화석증거에 의해 확인되었다. 잃어버린 고리는 없는게 맞다. 왜냐하면 직립이란 결국 골반의 각도인데 각도를 조절하는 유전자 염기서열 하나만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유전자 딱 한개만 바꾸면 직립인데 반직립, 반의반직립을 거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 다윈생각 - 골반의 각도는 여럿 있었다. 직립골반이 생존경쟁을 거쳐 반직립골반, 약간직립골반, 거의상당히직립골반 등 여러 골반을 때려죽이고 홀로 살아남았다. 여기에는 많은 세월동안의 처절한 투쟁이 있었다. * 구조생각 - 골반의 각도는 침팬지형과 인간형 둘 뿐이다. 다양한 골반은 없었다. 골반각도가 틀어지면 거기에 맞추어 다른 유전자 모듈도 함께 틀어지므로 굉장한 진화가 순식간에 일어났다. 골반이 틀어지는 순간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을 쏜살같이 달리며 사슴을 사냥하게 되었다. 다윈생각이 보수꼴통 일베충 마인드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당신이 지식인이고 진보주의자라면 보수꼴통일베충 다윈마인드는 던져버려야 한다. 그냥 골반의 각도만 살짝 틀어주면 바로 직립한다. 유전자 한 개가 바뀌면 다른 유전자집단과 충돌이 일어난다. 모순의 발견이다. 그 모순을 해소하는 프로그램이 유전자 집단 안에 이미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경쟁과 선택은 필요하지 않다. 왜 이게 중요하냐면 박그네 무리가 복지를 하지 않고 버티는게 바로 다윈과 같이 생존경쟁 중에 누군가는 때려죽여야 한다는 못된 심보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미친 생각이다. 내가 살려면 누가 죽어야 하는가? 정말 그런가? 누군가 하나만 선택되는가? 웃기고 있네. 지구에 생명이 출현한 후 그 생명은 죽은 적이 없다. 탄생은 있어도 죽음은 없다. 나무가 낙엽을 떨구면 죽은 것인가? 아니다. 뒤로 조금 물러난 것이다. 지구 안에 사망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지구는 공룡류에서 포유류와 조류로 옷을 바꿔입었을 뿐이다. 어디가나 중력이 있고 방향성이 있고 소실점이 있다. 직립의 소실점은 골반의 각도이며 이거 하나로 다 해결본다. 다른건 그냥 묻어가는 거다. 골반만 틀어지면 발꿈치며 종아리며 무릎이며 기타등등 자동해결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가 휴대폰의 각도를 살짝 틀어주자 미국 경기가 살아나고, 유권자가 자신감을 찾자 오바마가 집권하여 개혁을 하고 흑인도 묻어가고 히스패닉도 묻어간다. 깨진 유리창이론과 같다. 스티브 잡스가 깨진 유리창을 갈았더니 잠든 미국이 벌떡 일어났다.
전차에 포탑이 두 개 있으면 왜 안 되는지 그것만 이해해도 본전을 건지는 겁니다. 그거 절대로 안 되는 거에요. 남편은 하나인데 부인이 두 명이면 안 되는 것과 같고 고부갈등이 일어나는 이유와 같죠. 의사결정이 어려운 형태로 세팅하면 안 됩니다. 모든 의사결정은 대칭을 필요로 하고 대칭은 방향성을 뒤집어놓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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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게시판 글 보완 부분 중간에
"엄청난 진화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이 문장의 존대가 수정 안된 것 같습니다.
오늘도 감사히 읽고 갑니다.
^^ 고쳤습니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합니다.
모든건 필연이지요.
필연적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날만하니까 일났나는데
그 원인을 모를때 우연이란 말을 쓰는 겁니다.
어디서 누구와 우연히 만났다. 또는
어디서 우연히 멋진 장면을 보았다.라고 하지만
그럴 확율이 높을때 거기를 갔으니까 그런걸 만난것..
이케 말하면 또 "그럴 확율이 낮은데도 만나드라.. 모~"
이런 반문이 있겠죠?
그건 낮은거지 없는건 아니자뉴.
왜냐면 그 정확한 원인을 나도 모르니까...ㅎㅎ
이번 글에서도 좋으거 하나 배웠습니다.
"다른 분야와 결합성"이라는거...
이건 제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해결책이 될것 같네요.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노유진의 정치카페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초대 손님이 진화심리학자
였습니다.
그 교수의 얘기 중 기억나는 것이 포유류는 젖을 떼고 나면 젖을 먹을 경우 설사를 하게
되는데 인간만이 목축을 하면서 동물의 젖을 먹어도 설사를 안하는-물론 전부는 아니고-
종이라고 합니다.
즉 이유기를 지나면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져서 더 이상 젖을 못먹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인간이라는 종은 그 스위치가 계속 켜져있는 상태로 진화했다는 얘기이죠.
물론 저같은 경우는 그 스위치가 꺼져서 우유는 거의 못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