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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근본은 에너지다. 의도를 가지고 사건을 일으키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충분한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는 첫째 에너지가 없다는 것이며, 둘째 에너지를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 없다는 것이며, 셋째는 에너지를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 자연의 문제 – 충분한 에너지가 있는가? 구조론은 과학 이전의 과학이다. 순수과학이 응용과학에 앞서듯이, 그리고 수학이 과학에 앞서듯이, 구조론은 과학에 선행한다. 자연과 과학을 연결한다. 깨달음은 자연의 진리와 인간의 지식을 연결한다. 첫 번째 자연의 문제는 선천적이다. 석유라도 찾아보는 수 밖에 없다. 세 번째는 과학의 문제는 학계의 성과에 의해 해결되고 있다. 필자가 논하려는 것은 두 번째 구조의 문제다. 환경을 구조적으로 세팅하여 에너지를 원하는 곳에 보낼 수 있다. 어떻게 세팅해야 하는가? 동動의 동動으로 세팅해야 한다. 기업이든, 학습이든, 국가든 모두 선천적 문제, 구조의 문제, 과학의 문제가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되는 부분이 있고,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하는 부분이 있고, 또 밤잠 안 자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죽도록 노력하면 된다는 허상을 쫓다가, 외국인의 우월한 체력에 밀려 좌절하는 허무주의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노력지상주의는 선수 개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이 있다. LG감독 양상문이 시즌 중에 꼴찌팀을 맡아 단번에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듯이 뛰어난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노력지상주의는 국민 전체를 패배자로 만든다. 어차피 경쟁의 승자는 한 명 뿐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지도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대중은 편안하게 묻어가는 길을 열어야 숨통이 터인다. 선천적 요소가 있다. 100미터 단거리로는 우사인 볼트를 이길 수 없고, 마라톤으로는 케냐의 벽을 넘을 수 없다. 기업이면 주어진 자본이 선천적 요소다. 학습이면 타고난 머리가 선천적 요소다. 국가라면 지정학적 조건이 그러하다. 또 기업의 기술적 한계나 학습의 난이도나 국가의 국력처럼 시스템에 맡겨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반면 경영수완이나 학습요령이나 뛰어난 지도자의 역량처럼 환경을 잘 설정해서 놀라운 성과를 얻어내는 경우도 있다.
◎ 선천적 조건 – 어쩔 도리가 없다. 역사는 사선을 그리며 천천히 발전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뛰어난 지도자에 의해 간헐적으로 도약을 일으킨다. 우리 역사에는 다섯 사람의 상승장군이 있다. 광개토대왕, 김유신, 척준경, 이성계, 이순신이다. 이들은 한 번의 전투를 이긴 것이 아니라 수십차례의 싸움을 모두 이겼다. 실전을 이기는 전투력 뿐 아니라 보급문제와 외교력의 중요성까지 이해하는 점에서 총체적인 지휘역량을 갖춘 사람들이다. 그들은 에너지를 다룰 줄 안다. 히딩크가 단 번에 사강에 올렸듯이, 김성근 감독이 꼴찌팀을 우승팀으로 바꾸듯이 역사에는 답을 아는 사람이 있다. 보급과 외교가 되니 무조건 이기는 로마군이 있고, 알렉산더나 징기스칸처럼 스스로 카리스마를 만들어 외교력까지 구사하는 고수가 있다. 첫 번째 선천적 조건은 한계가 있고 세 번째 노력지상주의는 지옥이다. 두 번째 구조의 방법으로 숨구멍을 열어야 한다. 단 지도자가 양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혁명으로 대중의 신분이 바뀌자 나폴레옹과 같은 걸출한 지도자가 탄생하듯이, 87년의 민주화 운동이 노무현 캐릭터를 탄생시켰듯이 다수의 생각이 바뀌면 집단무의식에 의해 지도자는 저절로 떠오르는 법이다. 에너지는 유체와 같다 혁명 직후의 혼란기와 같은 무질서한 상태는 본래 힘이 없는 상태이지만 한 번 방향성이 생기면 태풍처럼 강력해진다. 한여름의 뙤약볕에 급조된 상승기류가 안정된 공기층을 헤집어 놓으면 곧 거대한 태풍으로 발전하는 것과 같다. 무질서는 때로 질서보다 강력하다. 황건적의 난으로 혼란해진 시대에 삼국지의 영웅들이 떼로 등장한 것과 같다. 고려-조선의 교체기처럼 우리가 가장 약했던 시기가 사실은 가장 강해질 수 있는 결정적 찬스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에너지는 유체와 같은 성질이 있다. 유체는 그릇에 담겨져 있지 않다는 점이 각별하다. 연탄을 배달한다면 연탄을 한 장씩 집어 배달한다. 연탄은 분말을 점토로 굳혀 형태를 부여한 것이며, 형태라는 용기에 가두어져 있다. 그런데 열을 운반한다면? 보모가 말썽장이 꼬마들을 맡는다면? 양치기 개가 양떼를 이끈다면? 훈련되지 않은 병사를 지휘한다면? 에너지를 원하는 곳으로 보내기 어렵다. 그럴 때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야 한다. 어떻게? 대칭을 쓴다. 자연은 어떤 상태로 있다. 그 상태는 정靜의 상태다. 에너지는 그 상태를 변화시킨다. 변화는 동動이다. 그 동을 보이지 않는 용기容器에 담으면 다시 정靜이 된다. 그 보이지 않는 용기를 움직이면 동動의 동動이다. 동의 동으로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다. 에너지를 다루는 마이스터가 될 수 있다. 난세에 몸을 일으킨 영웅들은 에너지를 다룰줄 아는 마이스터였다. 다른 방법은 가망없고 오직 이 하나의 방법을 써야 한다. 왜? 지도자는 NO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양치기 개는 양떼들에게 ‘이리로 오라’고 명령할 수 없다. 개가 말을 할 수도 없거니와 양떼가 알아들을 리도 없다. 알아듣는 양이 있다고 해도 양들 사이에서 합의하지 못한다. 누가 오른쪽으로 가면 본능적으로 왼쪽으로 가는 식으로 균형을 맞추는게 인간의 본성이라 절대 합의가 안 된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YES를 쓸 수 없다. 에너지의 성질은 유체와 같다. 물은 끌어당길수 없다. 단 차단할 수 있을 뿐이다. 지도자가 무질서한 집단을 다룰 때는 오직 NO만 가능하다. 하나의 명령으로 집단 전체를 통제해 보여야 한다. 그것이 방향성이다. 어떻게 가능한가? 대칭을 구사하여 보이지 않는 용기에 무리를 가두는 방법으로 가능하다. ◎ 동動의 동動 - 유체의 성질을 반영하는 에너지의 동적상태를 대칭이라는 보이지 않는 용기에 담아내고, 다시 그 대칭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집단에 방향성을 부여하여 에너지를 원하는 곳에 보낼 수 있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전개된다. 지도자는 기起에 선다. 지도자의 명령이 간부를 거치면 승承이 되고, 말단에 이르면 전轉으로 넘어가며, 의도하는 대상에 도착하면 결結로 끝난다. 구조론으로는 하나의 사건 안에 다섯 개의 중간마디가 있으며 그 마디들에서 옆길로 샐 가능성이 있다. 지도자의 명령은 목표까지 가기도 전에 왜곡되고 만다. 명령은 반드시 한 방향으로 전달되어야 하며 두 방향이면 이미 부하들 간에 손발이 맞지 않아서 자중지란이 일어난다. 애초에 왜곡가능성이 없는 명령이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그릇에 가두어야 한다. 어리석은 지도자는 중립에 서려고 한다. 차지철과 김재규를 경쟁시켰다가 협살당한 박정희 꼴 난다. 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에서 어중간한 포지션을 차지하려다가 망한 안철수 꼴 난다. 이는 대개 양손에 떡을 쥐고 편하게 가려는 탐욕 때문이다. 참된 지도자는 아깝지만 하나를 포기하고 한 방향을 가리킨다. 그래야 부하들이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눈치를 채고, 그 부하가 또다른 부하를 얻는 형태로 세력이 크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386세력을 얻은 것처럼 지도자가 한 방향을 가리킬 때, 부하들도 모두 자기 사람을 얻어서 제각기 명장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고, 당면한 자기 계 뿐 아니라, 그렇게 2세대 중심의 다음 단계의 계획을 얻을 때, 세력의 확장은 가속되는 것이다. 이랬다 저랬다 하며 변덕을 부리던 군중들도 일관된 행동을 하게 된다. 만약 지도자가 안철수처럼 두 방향을 가리키면 군중들 또한 양손에 떡을 쥐려는 욕심 때문에 진보와 보수를 오가며 끝없이 변덕을 일으켜, 기수를 떨어뜨리는 말처럼 지도자를 함정에 빠뜨리고 만다. 문제는 다수의 착각이다. 지도자도 착각하고 대중도 착각한다. 왜냐하면 평상시는 무질서한 유체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에너지는 잠복한다. 대신 멋도 모르는 삼류논객 중심의 종파주의, 형식논리가 기승을 부린다. 지식인 중심의 종파주의적 이념논쟁은 에너지를 용기에 담으려는 위험한 행동이다. 이는 석유를 연탄으로 바꾸는 바보짓이다. 에너지는 모호성에 의해 힘을 얻는다. 에너지가 힘을 쓰는 상황은 비상시다. 평시라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럴 때 회사라면 과장이나 부장이라는 용기에 갇힌다. 군대라면 중대나 소대라는 용기에 갇힌다. 국가라면 행정부나 지자체라는 그릇에 담긴다. 학습이라면 객관식 문제라는 그릇에 갇힌다. 그런데 실전이 되면 객관식 문제가 주관식으로 바뀌어서 수험생의 뒷통수를 친다. 객관식에 강한 안철수도 한 방에 갔다. 반면 이명박에게 워낙 당해서 야전경험을 얻은 박원순은 여전히 에너지의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거기서 급한 때의 역동성이 나온다. 그것이 진짜 힘이다. 지도자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은 비상한 상황이다. 안녕하지 못한 때다. 용기가 깨져 있다. 충성스런 간부들이 도망친 상태다. 현역의원들이 후단협을 결성하여 적과 내통한 상황이다. 이때는 대칭이라는 무형의 그릇에 담아야 한다. 지도자는 하나를 재빨리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한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 연탄처럼 다룰 수 있는 그릇이 있을때보다, 석유처럼 일정한 그릇이 없을 때 존재는 오히려 강력해진다. 회사라면 중간 간부가 없고, 국가라면 공무원이 없을 때 강력한 지도자가 탄생한다. 나폴레옹때 프랑스군이 강력해진 이유는 농노를 지배하던 귀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히틀러때 독일군이 강력해진 이유는 군부 상층부를 차지했던 프로이센 귀족들의 코가 납작해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폴레옹이 패배한 이유는 제 손으로 귀족을 뽑았기 때문이다. 히틀러도 귀족출신 부하들과 갈등을 빚어서 망했다. 무질서로 흥하고 질서로 망했다. 석유로 흥했다가 연탄으로 망했다. 에너지에 형태를 부여하면 죽는다. 지도자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지점은 동적상황이다. 정적상황이면 지도자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과장이나 대리가 전결로 처리해도 된다. 지도자가 나서는 상황은 달리는 말에 올라탄 상황이며, 그때 지도자는 오직 NO만 말할 수 있다. 하지 말 것을 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비상사태 속에서 제 할 것을 다 하다가는 조현아 꼴 나는 거다. NO는 현상을 변화시키는 명령이다. 현 상태는 YES다. 조현아는 NO를 걸어 대한항공의 현 상태를 변화시켜야 했다. 그런데 하던대로 하다가 망했다. YES는 현상유지이므로 필요없다. 압력이 가득찬 개스통을 열거나 닫거나 간에 현상을 변형시키는 NO다. 그리고 그 NO에 대한 NO가 가능하다. 자연에는 오직 NO와 NONO가 있을 뿐이며 어느 쪽이든 결국 NO다. 이 하나의 명령으로 조직 전체를 통제할 수 있을 때, 조직은 한 방향으로 질주한다.
답없는 노력지상주의가 세상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어차피 합격할 사람은 0명인데 힘들게 지원하는 위메프와 같습니다. 대중은 노력하여 성공하기보다 뛰어난 지도자에게 힘을 몰아주고 묻어가는 편한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에너지가 새나가는 요소요소에 NO를 구사하여 위메프 삽질과 같은 에너지 낭비를 막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살만해집니다. 물론 이는 선진국에만 통하는 방법입니다. 후진국 중국은 이런거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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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제조업은 중국에 다 넘어가고,
우리는 패션과 디자인과 교육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토피 유발하는 접착제로 만든 가짜가구 버리고
통짜원목으로 된 진짜가구를 사야 합니다.
그 진짜가구라는 것은 소비자의 안목과 평판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며,
열심히 땀흘리면 생산에 의해 가치가 창출되는게 아니고, 열심히 욕하고 씹어야
그 마이너스에 의해서 체계가 잡혀 가치가 창출됩니다.
가치는 제품이 주는 이익의 가치가 아니라
인류를 바른 쪽으로 이끄는 그 체계의 가치입니다.
미래사회는 생산자의 노동보다 평가자의 비난이 더 이롭습니다.
누군가 좋은 가구와 집과 옷을 디자인했을 때 의도적으로 점수를 줘야 합니다.
‘나한테는 겉보기만 좋은 집보다 실용적인 집이 필요해.’ 하면 나라가 망하는 거죠.
다중이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방향성을 제시하고 창의를 하는 지도자를 밀어줘야 합니다.
허접때기 가짜들을 솎아내는게 대중의 임무입니다.
내가 감동받고 재미있고 티켓값 본전 뽑으면 좋은 거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의도있는 것에 점수를 주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의도의 부재에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참된 지도자는 아깝지만 하나를 포기하고 한 방향을 가리킨다. 그래야 부하들이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눈치를 채고, 그 부하가 또다른 부하를 얻는 형태로 세력이 크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오직 NO와 NONO가 있을 뿐이며 어느 쪽이든 결국 NO다. 이 하나의 명령으로 조직 전체를 통제할 수 있을 때, 조직은 한 방향으로 질주한다."
한국은 선진국이니까 가능하고요.
근데 윗대가리란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가 그럴 여유가 있는 나라인가' 하며 후진국놀이를 하고 있는 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