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는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문제적 영화다. 필자가 이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필자가 이전부터 무수히 지적해온 한국영화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통쾌하게 해결해 버렸기 때문이다.
타짜는 어두운 도박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결코 어두운 영화가 아니다. 도리어 그 화투판의 칙칙한 어둠을 걷어내고.. 마침내 한 줄기 밝은 햇살을 비쳐내는데 성공한다. 왜?
영웅본색류 90년대 홍콩느와르를 연상시키는듯한.. 어두컴컴한 선실에서 아귀와의 한판 승부는 끝이 나지만.. 한국은 홍콩과는 다르다. 홍콩은 미래가 없다. 중국에 흡수될 수 밖에 없는 운명.. 벽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
타짜에는 미래가 있다. 왜? 화투 다음에 포커가 있으니까. 그래서 영화는 포커를 주제로 진행될(?) 속편을 암시하는 듯.. 조승우가 외국 카지노에서 블랙잭을 하는 신으로 끝난다. 그 화면은 밝다.
필자가 무수히 지적해온 한국영화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의식과잉의 80년대.. 최루탄과 분신자살.. 그리고 광주의 비극.. 민주화 과정을 거쳐오면서 그 상처를, 그 한(恨)을 결국 넘어서지 못했다는 거다.
그렇다. 1980년 이래 한국영화는 줄곧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흥행이 안됐다. 왜? 해피엔딩이 아니니까. 그것이 아물어가는 옛 상처를 건드리는 고통스런 추억이었다는 거.
타짜는 한국의 근-현대를 짓눌러온.. 어떤 슬픔을, 어떤 한(恨)을, 어떤 상처를.. 마침내 극복한듯한 통쾌함을 선사한다. 영화에서 아귀는 70년대의 독재자 박아무개를 연상시킨다. 그 검은 선글라스 하며.. 지리산 작두 고니에게 박살이 난다.
어쨌든 강풀의 26년은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겨버린다는 설정.. 아귀를 단숨에 박살내 버린다는 설정은 90년대 한국영화가 극복하지 못했던 어떤 거대한 벽이다. 그런게 있다.
하여간 80년대, 90년대 한국영화라면 주인공은 질질 짜다가 자살하거나 살해된다. 파이란의 강재는 맞아 죽는다. 사실 8, 90년대의 강재에게는 출구가 없었다. (2000년대의 곤이에게는 출구가 있었다. 외국으로 튀었다.)
타짜에는 최민식의 찌질함과 송강호의 어벙함이 없다. 최민식과 송강호가 나오는 모든 영화는.. 과거를 회고하면서 그야말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그 한(恨)과 눈물의 정서를 노래한다. 그렇지 않은가?
최민식은 보통 죽는 걸로 처리된다. 지옥 같았던 80년대.. 그 시절에 생각이 있는 한국인들은 보통 죽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정신을 표상하는 한국영화의 주인공들은 죽어야만 했다.(영화는 21세기에 만들어졌어도 그 정서는 20세기다)
파이란의 강재처럼 불쌍하게 죽어야 했다. 송강호는 살아남지만 어벙하다. 어벙하지 않고는 그 아귀같고 야차같았던 80년대를 살아낼 배짱이 없다. 죽거나 아니면 어벙하거나.. 그때 그시절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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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에는 많은 고수들이 등장한다. 고수 중에서 지존은 아귀다. 아귀의 카리스마야말로 이 영화를 끌어가는 거대한 힘이다. 만약 김윤석이 아귀를 제대로 연기하지 못했다면.. 이 영화는 실패다.
현역으로 뛰는 실전파 최고수 아귀에 이어 그 다음 고수는 한물간 낭만파 고수 평경장.. 이 양반의 로맨티시즘은.. 바둑에서 미학의 오다케를 연상하게 하는.. 실력의 승부 이외의 딴짓거리.. 흠.. 이런건 안쳐주는 거고.
그 다음 고수는 현실파 정마담이다. 이 양반은 실리바둑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나름대로 카리스마가 있다. 그 외에 더티플레이어로 반칙왕 곽철용이 있고 서민형 타짜 고광렬은 하수다.
주인공 고니는 고수도 아니고.. 그냥 순진한 시골총각이 멋모르고 깝치다가.. 어문 판에 잘못 끼어들어 조용한 타짜세계를 휘저어 놓는다. 그는 이방인이다.
고수는 수로 이겨야 한다. 고니가 수싸움에서 승리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이는 주인공 프리미엄 덕분이다. 순전히 원작의 허영만, 김세영이 밀어준 덕분에 어줍잖게 고수대열에 끼게 되었지만 본질에서 하수다.
현실을 빗대어 캐릭터를 논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곤이는 거친 도박판에 끼어들지 말았어야 할 순진하고 착한 인간이다. 영화니까 살았지 현실이라면 맨 먼저 죽는 인간유형.
고수라면 판을 깨지 말아야 한다. 지리산 작두 고니는 초반부터 작두를 휘두르며 폭력을 행사한다. 도박은 반드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도덕적 훈화를 늘어놓는 역할을 맡는다.(웬 바른생활 사나이?) 곤이는 신성한(?) 도박판을 어지럽히는 악당이다. 이건 물론 역설적인 표현. 오해는 사절.
● 도박은 예술이라는 관점.. 낭만파 평경장. 사기를 예술 수준으로 끌어올린 정마담, 타짜사냥꾼이자 승부 자체를 즐기는 승부사 아귀. 손기술 자체를 즐기는 은둔형 고수 짝귀. 이들은 정파((正派)로 분류할 수 있다.
● 도박은 폭력이라는 관점.. 타짜를 고용해 도박판을 개판으로 만드는 조폭두목 곽철용(극중 이 캐릭터는 정형근을 닮았다), 개인적인 한풀이를 내세운 고니. 이들은 도박계의 사파(邪派)로 분류될 수 있다.
영화에서는 도박은 폭력이라는 관점이 우세해졌다. 왜? 권선징악 때문이다. 빌어먹을 권선징악의 논리. 도박은 예술이라는 관점을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면 도박권장 영화로 찍혀서 심의가 어려워진다.
가뜩 바다이야기로 세상이 뒤숭숭한 판에.. 도박을 권장하는듯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므로 깡패 곽철용이나 작두신공 고니를 등장시켜 도박판은 인간이 가까이할 것이 못된다는 깨우침을 던져주려고 애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영화나 만화의 한계이고.. 하여간 돈 따는 일보다 타짜사냥을 취미로 하는 섯다판의 지존 아귀나.. 도박에 인생이 있다고 믿는 낭만파 평경장이나.. 손기술 그 자체를 즐기는 짝귀 캐릭터에 주목해야 한다.
얼떨리우스 고니의 깽판 때문에 판대기라는 판대기는 다 깨지고.. 관객들은 고니가 선한 인물이고 아귀가 나쁜 인물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아귀가 무슨 잘못을 했지? 속임수 쓰는 타짜를 혼내준게 뭐가 나빠?
관객들이 아귀를 악당으로 믿는 이유는 주인공의 반대편 자리에 앉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얼굴의 칼자국 때문이고.. 웃옷 단추 하나를 끌러놓은 복장의 불량기 때문이고.. 선글라스를 썼기 때문이고 말투가 싸가지 없기 때문이다.
정마담도 악질인데.. 얼굴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의상이 멋있다는 이유 때문에.. 주인공과 살을 섞었다는 이유 때문에.. 혹은 막판에 눈물을 보였다는 이유 때문에 용서가 되는 아이러니.
어쨌든 도박을 권장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신성한 도박판을 교란시키는 이단아 곤이가 주인공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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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이 예술인지 아닌지는 그렇다치고 하여간 그래도 영화는 예술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완전’의 경지를 보여주기다. 고수가 정상에서 본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마찬가지. ‘정상에는 또다른 세계가 있다. 그러므로 정상을 향한 열망을 포기하지 말라.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기를 주저하지 말라.’ 이건 나의 평소 주장.
완전한 인격이란 어떤 것인가? 완전한 고수란 어떤 것인가? 완벽한 실력이란? 완전한 솜씨는? 완벽한 설계는? 완전한 악당? 완전 완전 완전 완벽 완벽 완벽.. 하여간 완전성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다. 그런 점에서 타짜의 성취는 크다.
● 완전한 인격 - 평경장
● 완벽한 고수 - 아귀
● 완벽한 솜씨 - 짝귀
● 완벽한 사기 - 정마담
● 완전한 깡패 - 곽철용
● 불완전한 순진남 - 곤이.. 곤이는 너무나 불완전하지만 오히려 불완전하기에 조금씩 성장하면서 이 모든 완전한 세계를 하나씩 섭렵해 간다. 작가가 밀어주는 주인공이라는 엄청난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도박판에 무슨 얼어죽을 놈의 완전한 인격이 있느냐고 반문하지는 마시라. 이건 어디까지나 현실사회를 도박판에 빗대어 풀어낸 비유니까. 그러니까 만화고 그러니까 영화지.
하여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수들의 찌질거림이 넘쳐나는 한국 영화판에.. 간만에 고수가 등장했다는 거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말이다.
울고넘는 박달재 최민식, 미워도 다시한번 최민식, 한(恨)의 최민식, 눈물의 최민식, 슬픔의 최민식.. 얼굴 생긴 것부터 억울하게 생겼어요. 맡는 배역마다 두들겨 맞고 죽는 역할이래요. 주먹이 운다 조낸 두들겨 맞고.. 올드보이 15년간 갇히고.. 파이란 맞아죽고..
어벙한 송강호.. 생긴 것도 어벙한게 맡는 배역마다 어벙한 역할이래요. 최근작 괴물에서도 어벙함의 진수를 보여줬고.
송강호와 최민식.. 어벙이와 찌질이.. 이 둘을 합쳐놓은 인간은 마빡이.. 우리의 슬픈 삐에로 마빡이, 이들은 천상 한국인이다. 아마추어의 느낌이 물씬. 그래서 더 인간미가 있더래요.
● 최민식+송강호=마빡이=≫한국인의 원형.. 일본에 속고 소련에 밀리고 중국에 후달리고 미국에 눌리는 한국인은 천상 아마추어(?) 과연 그런가?
그러나 조승우.. 탈이 좋다. 귀공자 타입의 세련된 얼굴, 양복이 잘 어울린다. 백윤식도 마찬가지.. 정마담 김혜수도. 타짜에서 조승우, 백윤식, 김혜수의 얼굴은 구질구질한(?) 한국인의 얼굴이 아니다. 최민식이 아니고 송강호가 아니다.
“나랑 일하면 BMW 탄다.” <- 이건 한국인들에게서 늘 보던 그것과 다른 것이다. 한국인이 늘 듣는 대사는.. 금욕을 강조하는..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식의.. 그런데 노골적으로 욕망을 충동질 하는 멘트를 날리다니. 컥! 사실 나는 이런 대사를 기다려왔다.(BMW 탄다는 그 말도 정마담의 설계입니다. 속지 마세요.)
이 영화를 조승우와 유해진의 버디무비로 본다면 유해진은 한국의 과거를 상징하고 조승우는 한국의 미래를 상징한다. 유해진=최민식+송강호+마빡이. 그래서 조승우와 유해진은 떼려야 떼질 수 없는 운명.
하여간 영화는 산업이다. 그러면서도 예술이다. 영화가 예술이면 예술은 미학이고 미학은 완전함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을 하필 도박에 빗대어 보여주는 이유가 뭔가? 꼭 어두운 도박판 이야기를 해야하나?
그렇다. 어두운 도박판에 빗대지 않으면 관객이 들지 않는다. 왜 그런가? 첫째는 영화제작자의 기술이 아직은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 우리 관객의 수준이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타짜는 고수의 세계를 잘 보여줬다. 도박이 아닌 다른 것을 소재로.. 조금 더 긍정적인 어떤 것을 소재로 해서 고수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랬다면 진짜 예술이 되겠지만.(예컨대 임권택은 화가 장승업의 예술세계를 소재로 진정한 고수의 세계란 이런 것이다 하고 뭔가 한 초식을 보여줬지만 내겐 고수보다는 하수로 느껴졌다.)
어쨌든 지금 한국에는 도박이나 범죄가 아닌 무엇으로 그것을 소화해낼 수 있는 역량있는 작가가 없다. 소재가 불량스럽기는 하지만.. 필자가 늘 말해온 것.. 정상에서는 또다른 승부가 펼쳐진다는 것.. 하수는 고수를 뛰어넘으려 하지만 고수는 승부를 뛰어넘어 멋진 한 판의 무대를 완성시키려 한다는 것..
'승부는 작고 멋은 크다'는 정상을 밟아본 고수들만 아는 세계.. 이 영화가 정상의 느낌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맛뵈기로 약간 보여주는데는 성공했다.
도박꾼 평경장의 완전한 인격(?)을 보고 사회에서 완전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처세하더라 하는 식의 암시를 받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암시다. 이 영화에서 배우려 하지 말고 암시만 받아야 할 것.
결론..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는 곤이라는 한 인간의 성장영화 형식이지만.. 어쩔수 없이 한국이라는 한 나라의 성장사를 담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한국이 그동안 많이 성장했다는 것.
괴물이 80~90년대 한국의 솔직한 모습을 담고 있는 한국인의 슬픈 자화상이라면.. 타짜는 자신감을 가지고 2000년대의 밝은 미래를 열어젖히자는.. 강자의 자부심이 넘쳐나는 느낌.
타짜들은 늘 우리를 속이려 하지만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이 우리를 조여오지만 겁낼거 없다는 암시.
아! 사람이 체면이 있지.. 유엔 사무총장을 낸다는 나라에서.. 독재자의 딸이 다 뭐냐고요. 이게 뭡니까? 아귀같이 물고 늘어지는 독재자의 추억일랑 오함마로 찍어서 날려버리자고. 겁날게 뭐야.
본질은 세대차.. 80년대의 그늘을 떨쳐내는데 성공한 사람과 아직 떨쳐내지 못한 사람.. 두 종류의 인간형이 있다. 그리고.. 갈 사람 가고 올 사람 온다.
지난 80년대 우리의 슬픈 자화상을 상징하는 유해진은 가고.. 21세기 우리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조승우는 온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른 형태의 인간이다. 조승우는 유신독재의 그늘이 없는 신세대 캐릭터다.
누구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지. 온다! 강풀의 26년이 그러하듯이 최민식처럼 고민하지 않고.. 송강호처럼 어벙하지 않고..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겨버리는 신세대가 온다. 무더기로 온다. 파도처럼 온다. 태산처럼 온다. 나는 그들의 발자국소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