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명이 진행하는 모 팟캐스트 방송에서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찬양하며, 만약 회군하지 않았으면 당연히 패했을 거라고 떠들더라는 말을 전해들어서 사실을 논해주기로 한다. 역사 모르는 사람 많다. 이런 기본을 모르면서 아는척 하며 팟캐스트를 진행한다면 한국인 자격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당 멸망 후 북경과 그 일대의 연운 16주는 중국땅이 아니었다. 그런데 수나라, 당나라도 순수한 한족 왕조는 아니었다. 천자라는 명칭은 한족의 이름이고, 가한可汗은 북방 이민족의 이름인데, 뮬란의 원조격인 ‘목란사’에도 천자가 아니라 가한으로 나온다고. 북송 멸망후 230년간 북경은 당연히 중국 땅이 아니었다. 중국은 요동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요서나 산해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북경에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그 아래다. 몽골이 천하를 먹어치우고 북경을 수도로 하는 바람에 헷갈리는데 명나라 수도는 남경이었다. 세종대왕 훈민정음에도 ‘국지어음이 이호중국하야’ 라고 써놓고 중국을 ‘강남’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원래 중국은 남송이었으므로 한동안 중국을 강남이라고 부른 것이다. 원나라는 한족의 중국 아니다. 굳이 방위로 말하면 몽골의 원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북국이라고 해야할 판에. 당시 중국 북부는 페스트가 유행하여 수천만명이 죽어나갔다. 몽골은 페스트가 없는 초원으로 돌아가 버렸다. 북중국 일대는 그야말로 황폐화 된 것이다. 텅 비어서 임자없는 땅이었다. 주원장이 남경을 수도로 삼은 것도 당연하다. 명나라 건국초 중국인구 대략 5천만 안밖으로 본다. “13세기 후반 중국의 인구는 대략 1억 2천만명에서 6천만명으로 급감하였다. 14세기에는 중국에서도 흑사병이 번졌던 시기로 이로 인해 중국의 인구 중 약 30%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위키백과-특히 중국북부가 격심했다고)” 중국 북부 도시는 인구가 몰살되었다. 전염병은 당연히 기근으로 연결되고 몽골은 백성삼을 인간이 없어서 중국을 포기할 밖에. 한족이 싸워서 몽골족을 물리친 적은 없다. 약한 명나라의 변방을 이성계가 치지 못한다? 말이나 되나? 전쟁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는 무식의 극치다. 고려때 천하는 3분되어 남송과 금나라와 고려가 솥발처럼 버티니 삼국지와 같은 꼴이다. 페스트로 몽골이 물러갔으나 여전히 북원이 고려와 손잡았고 드라마 정도전에도 나왔지만 북원과 명나라, 고려는 팽팽한 외교전을 펼쳤다. 이인임이 북원과 결탁해서 한동안 고려가 조용했다. 정몽주가 이인임을 죽이려 할 때 우왕이 북원과 외교를 잘한 이인임도 공적이 있다고 떠들어서 최영이 이인임을 살려두고 북원세력을 명을 견제하는데 이용하려 한 것만 봐도 당시 정세를 알 수 있다. 즉 드라마 정도전은 무조건 명나라 찬양 이인임 죽일놈이지만 이는 결과론이고. 정치가 애들 장난이냐고. 수백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고려는 나름대로 북원과 명을 잘 이용했고 이는 남송때부터 고려가 늘 하던 방식이다. 여기서 모든 고려사람의 상식.. 수백년간 천하는 3분되어 있었고 북경과 그 일대 연운16주는 중국땅이 아니며 산해관 너머도 중국땅 아니다. 중국 바깥에 북경을 중심으로 한 연운16주가 있고, 다시 산해관 밖에 여진과 거란과 몽골이 있고 그들 역시 중국땅이 아니며 고려는 그 동쪽에 있는데 명나라가 뜬금없이 머나먼 요동을 건드려? 이건 상식 밖의 넌센스의 뚱딴지의 헛소리인 것이다. 그럼 명은 왜 그랬을까? 외교전이다. 몽골전술을 배워서 강력해진 고려의 강병 20만으로 요동을 먹어치우는 것은 누워떡먹기고 실제로 1차요동정벌에서 이겼고, 2차가 이성계 중심으로 계획된 것이며, 그 이후에 3차로 정도전이 다시 요동을 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전쟁을 할때는 당연히 주변 오랑캐와 외교를 한다. 관우가 죽은 이후 인구 100만 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 촉이 20만 대병을 일으켜 오를 치려 한 것은 알고보면 그 중에 10만은 보급부대고 다시 전투병 10만 중에 5만은 오랑캐와 손잡은 거고, 실제 동원 병력은 5만인 것이다. 원래 전쟁이 다 그렇다. 당나라의 100만 대군? 그럴 리 없다. 일본이 임진왜란 때 열도에서 동원한 병력이 100만이다. 15만이 상륙하고 다시 그 정도가 짐꾼으로 배를 젓고, 나머지 20만은 해안까지 이동하며 세과시를 하고, 50만은 그 15만이 위화도 회군을 못하게 오사카성을 지켰다. 이 틈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허를 찌를 수도 있으니깐. 숫자놀음에 속지 말아야 한다. 중국이 100만으로 한반도를 건드린 적은 없다. 병력이 10만 넘어가면 식량운반이 안 된다. 당나라가 평양을 함락시킨 것은 신라가 쌀배달을 했기 때문이다. 배달부 김유신 아니었으면 당나라 군대 평양성에서 다 굶어죽었다. 당고종은 꾀를 썼다. 당태종이 식량부족으로 고구려원정에 실패하니 요서에서 요동까지 요소요소에 식량을 쌓아 보급을 해결하고, 그래도 부족하니 신라에게 쌀배달을 요청하여 겨우 해결한 거다. 근데 명나라 수도 강남에서 인간이 멸종한 북경을 거쳐 개성까지 쌀배달을 누가 하는뎅? 말이 돼? 연왕에 봉해져서 북경에 관심을 가진 3대 영락제가 북경으로 천도한 것은 수십년 뒤다. 강남에서 중국 군대가 중국땅도 아닌, 흑사병으로 황폐해진, 연운 16주를 지나, 요서를 지나, 요동을 지나, 북원을 말아먹고, 여진족을 잡아먹고 고려를 건드린다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주원장이 명을 건국하기 전 장사성이 해양세력을 결집하고 고려와 연계하여 저항하려 했기 때문에 주원장은 매우 신경질적으로 되어 고려를 건드렸다. 근데 사실은 고려빠여서 고려에 졸라리 관심이 많았으며, 이방원이 사신으로 가면 환대해서 자기편으로 구워삶으려 별짓 다했다. 명의 속셈은 장사성 세력의 잔당이 고려와 연계되는 것을 막고 고려와 북원이 손잡고 남하하는 것을 막는 거다. 다시 말해서 심리전이요 외교전이었으며, 명은 이성계와 내통하여 최영을 죽이려 했다고 보는게 맞다. 이런 중국의 외교적 이간질은 그 이후에도 비열하게 계속된다. 중국은 손 안대고 코 풀려 한 것이며, 사신을 환대하거나 물먹이는 방법으로 조선건국 이후에도 계속 괴롭혔다. 원이 몰락하고 고려가 득세하자 이성계를 꼬셔 견제한 것이며 이성계가 건국하자 다시 트집잡아 조선의 건국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추잡한 이간질과 회유책. 군사력이 안 되는 바보들이 쓰는 저질수법. 이성계는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상승장군이다. 몽골출신으로 몽고식 전쟁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2천명 정도의 함경도 병사로 수만명의 적을 손쉽게 짓밟았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이긴 것은 싸울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뛰어난 장군은 500년에 한 명 정도 등장한다. 우리 역사에는 광개토대왕, 김유신, 척준경, 이성계, 이순신을 상승장군으로 볼 수 있다. 강감찬이나 을지문덕은 한 번 이긴 것이고, 이들은 언제나 이겼다. 싸울줄 아는 장군은 원래 안 진다. 다만 그런 장군은 드물게 등장한다는거. 그러므로 당연히 이기는 것. 당시 중국에 수십전 이상 전투경험 가진 상승장군이 없었으니 알렉산더와 페르시아의 대결처럼, 몽골군과 아랍군대의 대결처럼 승부는 싸우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이성계가 쓰는 몽골군 전술은 세계최강이었다. 무조건 이기는 전쟁방법이다. 당시 주원장은 농민반란군으로 오합지졸이며 전투해서 제대로 이긴 적도 없었다. 병사 숫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3만명만 있으면 백만명도 이길 수 있다. 단 전장을 어떻게 선택하느냐, 보급이 이어지느냐, 외교적으로 몰리지 않느냐가 중요한 거다. 사실 승부는 외교에서 났다. 그렇다면 이성계는 왜 회군했을까? 첫째 이런 전쟁은 젊은 지휘관이 앞장서야 하는데 최영이 출전하지 않았다는게 가장 큰 문제다. 즉 이성계에게 독점적인 지휘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경우 보급을 장담못한다. 1차 요동정벌 때도 보급이 안 되어 곤란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최영이 이성계를 숙청하기 위한 계략일지 모른다. 이성계가 전권을 가졌다면 20만 병력으로 충분히 요동정벌 아니라 북경까지 점령이 가능했다. 이성계 5만은 선발대이고 후속부대는 최영이 맡았는데, 늙은 최영이 왕의 만류를 핑계로 개성에 주저앉으려 하자 의심이 일어난 것. 둘째 요동정벌은 전쟁목표가 약했다. 이 전쟁은 반드시 북경까지 점령하고 북원을 끌여들여야만 승부가 나는 전쟁이다. 지리적인 조건으로 볼 때 50을 먹으려면 100까지 밀고가야 한다. 50을 먹기 위해 50을 친다는건 상식이하다. 북경까지 가려면 반드시 북원과 거래해야 한다. 북경까지 가서 연운16주를 차지하고 북원이나 주변 오랑캐와 나눠먹는다는 정도의 구상이 나와야지 그냥 고려군만으로 요동만 먹는다는건 압록강과 요동 사이에 산 밖에 없어서 이유가 없다. ‘이 전쟁 왜 하지?’ <- 이렇게 된 거. 게다가 북쪽은 대개 여진족과 거란족의 땅이다. 외교를 앞세워 오랑캐를 끌어들이고 전쟁의 규모를 더 키웠어야 했던 것이다. 왕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전쟁은 위태로운 거다. 당태종도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왔다. 중국사를 보면 전쟁에 이기고 목이 잘린 장수가 하나 둘이 아니다. 아니 거의 열에 아홉은 목숨이 위태롭다. 중국은 전쟁에 이기면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거나, 아니면 목이 잘리거나 둘중 하나였다. 이성계가 이기는건 당연한데, 이겨도 목이 잘린다면? 그 전쟁을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처음엔 최영이 총대를 매기로 했으니 상관없는 거다. 최영은 나이도 많고 야심이 없는 사람이다. 최영은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는 사람이니 최영이라면 믿을만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성계는 사병이 있다. 이성계만 따르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고려사람이 아니라 이성계사람이었다. 곤란하다. 만약 당신이 역사책을 조금만 읽었다면 이 상황에서의 위태로움을 알 것이다. 이성계는 이겨도 고려의 왕이 되어야만 사는 운명이다. 이성계 부하가 이성계만 따르는데 최영이 이성계를 믿고 보급을 해줘? 천만에. 역사가 장난이야? 그거 잘 안 된다. 하려고 해도 야심 가지고 이간질 하는 자 때문에 실패다. 당장 ‘이성계 쟤 몽골족인데?’ 하는 넘 꼭 나온다. 만약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았다면, 역시 고려를 치고 왕이 되었을 것이다. 혹은 최씨 무신정권과 같이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통치했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고려는 망했고 이성계의 건국은 필연이다. 원래 주변에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면 이웃도 영향을 받는다. 이성계의 선택은 당연한 거지만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안했다면 졌을 거라는 인식은 역사의 역자도 모르는, 전쟁의 전자도 모르는 초딩생각이다. 군대라는게 안 그렇다. 상승부대가 있다. 전쟁이란 본질을 아는 사람이 무조건 이기도록 되어 있다. 편전과 같은 신무기도 있고. 정리하자. 전쟁은 전투력보다 외교관계에서 결판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외교의 전면에 나설 사람은 왕이다. 왕이 어린데 신하가 나서면 외교가 망한다. 이때 신하는 이겨도 목이 위태롭다. 이간질 때문이다. 명은 교활한 이간질로 친명파를 키워 고려와 북원의 관계를 끊었다. 최영은 북원과 끊어지면 명이 발호할까봐 이인임을 죽이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몽주 등 친명 사대부들은 명이 입으로만 떠들뿐 실제로는 조선을 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즉 명의 외교에는 고려의 외교로 막을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근데 최영은 원래 무장이라서. 결국 교활한 명의 외교가, 외교를 모르는 늙은 최영을 이긴 것이며, 고려가 외교에 실패한 것은 왕이 어려서 실질적 대표자가 없기 때문이고, 지금 한국처럼 왕이 띨빵하면 아베같이 얕잡아보고 덤비는 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명이 이성계와 내통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성계의 선택은 이성계 자신을 위해서는 합리적이다. 실권자도 아니고 왕도 아니고, 외교도 안 되고 목표도 약한 전쟁이다. 판을 크게 벌여 오랑캐와 손잡고 북경을 쳤어야 했다. 그 목표는 병력 5만을 조민수와 나눠가져 수하는 2만5천 뿐인 이성계가 혼자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싸웠다면 당연히 이겼다. 그러나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지는 예는 많다. 문제는 그 전쟁이 내전이라는 거. 요동은 점령했어도 개성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가등청정과 소서행장도 풍신수길이 살아있을 때는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딱 그런 꼴이 나는 수가 있다. 그래서였다. 최영이 압록강을 막고 이성계가 굶어죽지 않을만큼만 보급한다면? 최영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며, 고려는 원래 무신정치 전통이 있어서 최씨 무신정권이 계속되는 거다. 알렉산더는 3천명으로 시작했고 누르하치는 2천명으로 일어났다. 징기스칸도 다르지 않았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고 계속 쳐들어가서 북경까지 점령했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이오. 이성계가 보급문제 때문에 회군한건데, 만약 그때 젊고 똑똑한 왕이 있었다면? 젊은 왕이 외교를 잘 해서 오랑캐를 끌어들여 유목민 방법으로 보급을 해결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엉터리로 배워서 그렇지, 천하를 정복할 실력은 갖고 있었습니다. 두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한 번은 페스트로 중국 황하 일대가 텅비었을 때고, 한 번은 조총과 편전과 홍이포로 세계최강의 신무기를 가졌을 때입니다. 단 화약원료인 유황이 부족했는데 일본과의 외교로 충분히 해결이 가능했습니다. 효종도 다 생각이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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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검색을 쭉 해보았는데요.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들은 전부 사짜취급을 하는 모양입니다.
삼국시대라...
역사에 문외한이라 그런지
이런 사실관계가 있다는 거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침략 당하기만한 나약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약자로 상정하는 것을 즐기죠. 근데 국가관이 성립되는 과정도 마찬가지인 것 같네요.
그리고 윗분 말씀처럼 글이 재밌어서, 영감을 막 불러일으킵니다.
삼부작 블록버스터 그리고 장편 드라마 다섯 시즌 정도는 나올 이야기인듯..
세 나라가 머리를 받고있는 저 그림 보면 볼 수록 섬뜩하네요.
우리가 그때 중국을 먹었더라면, 천하를 먹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말이죠. 그런 상상을 하고 있으니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느끼입니다.
영화감독들이 정말 역사공부를 해야할텐데...
이성계의 전투장면만 넣어줘도 2천만 돌파일텐데...
역사공부를 하고나서 다시 정독하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저도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역사공부에도 정도라는 것이 있을까요? 책은 어떤 책을 읽어야하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진지하게 말씀드리는건데 그냥 단군신화부터 읽으면 되나요?
와~진짜 재밌어요!!! 전에 님이 쓰신 임진왜란 후에 조선이 그 많은 조총을 갖고도 어떻게 중원을 도모할 생각을 못할 수 있느냐는 글을 보고 이런 관점도 있다고 친구놈들한테 얘기했는데 말도 안된다는 반응에 기운이 쭉 빠졌더랬습니다 ㅠㅠ 나선정벌 때 조선군의 사격 실력이 매우 뛰어나서 청나라도 꽤 놀랬다는 기록도 있다는데요. 그냥 뼛속 깊이 우리나라는 신라의 삼국통일 후에는 쭉 약소국이었다는 관념이 박혀있어서 말이죠... 학교에서 국사 시간에도 선생님들이 그런 식으로만 가르쳤고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역사학자 이덕일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식민사관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강의도 재미있는데 검색을 해보면 사이비라는 식의 글이 많아서요. 혹시 아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