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발상의 전환입니다. 최근 은행털이, 신용금고털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환영할만한 현상입니다. 저는 진작부터 은행털이나라들이 부러웠습니다. 은행을 턴다는 건 말하자면 신용사회가 정착되었다는 의미거든요.

사람들이 집에 현찰을 안갖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도둑들이 털어먹을 돈이 없어서 은행을 털지요. 식칼들고 민가에 침입하는 것보다는 개스총이라도 들고 은행을 터는 것이 깔끔하지 않습니까? 시민들도 안전하고. 돈 뜯기는건 보험회사고. 기뻐하시라! 우리나라도 드디어 은행털이국가 대열에 동참하는가 봅니다.

뭐 은행털이를 장려하자는건 아니고 다른 각도에서 보자는 겁니다. 모든 것을 선악의 논리로 본다면 그건 너무 지긋지긋해요. 꼬질꼬질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호쾌하게. 멋있게. 세련되게 발상을 한번 바꿔보자 이겁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화이트데이가 되자 지리멸렬주의의 선봉에 선 한국의 칼럼쟁이들이 이곳저곳에서 신문지면을 빌어 젊은이들의 생기발랄한 문화를 개탄하고 노땅들의 꾸질꾸질한 노파심을 보여주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화이트데이가 뭐 어때서? 이건 우리나라 문화라구. 젊은이들이 선물 주고받겠다는데 꼰대들이 웬 시비여! 빠지라고. 노친네들이 낄 자리가 아냐! 봄이 왔잖아. 놀겠다는데 웬 훼방이야?

선물에는 정성이 중요하고 어쩌고 저쩌고 궁시렁궁시렁 잔소리도 많아요..지긋지긋해! 그런 교훈소리, 가르침소리, 훈화소리 젊은이들 기죽이는 소리. 늣들은 잘노는 남들 갈구는게 인생의 취미냐?

환영하라! 이 싱그러운 봄을 예찬하라. 즐거운 것을 즐거워 하라! 새로움을 받아들여라! 더 이상 노땅들의 의식과잉, 한과잉, 설움과잉 구질구질한 지리멸렬주의는 낑기려들지 말라!

'오션스 일레븐' 봤습니다. 사실 좀 피곤했거던요. 보다가 잤습니다. 그려서 할 야그는 별로 없는디 본사람들 다들 재밌다고 쑥덕거리더군요. 뭐 별로다는 사람도 좀 있고.

'피도 눈물도 없이'와 '오션스 일레븐' 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근 '피도 눈물도 없이'를 선택하겠습니다만 젊은이들이 '오션스 일레븐'을 재밌어 하더군요. '오션스일레븐' 보다가 잤다면 쪽팔리게도 어느새 저 또한 경멸되어야 할 꼰대들의 대열에 들어선 증거가 아닌지 .. 마음만은 젊게 살아야 하는데 이거..클났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2프로 부족한 영화입니다. 뭐가 부족할까? '오션스 일레븐'에 답이 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 구수한 된장찌개같은 분위기
'오션스 일레븐' - 근사한 까페에서 와인 한 잔 하는 분위기

첫째는 전문성인데 이건 만화에서는 80년대부터 유행한 겁니다. 미스터 초밥왕 뭐 이런 류..일본만화가 유행시킨 뭐 맥주에도 전문가가 있고 완두콩요리에도 전문가가 있고..고양이에도 전문 뭐가 있고.. 근데 순 뻥입니다. 도둑놈이 무슨 전문가야~

둘째는 하수와 고수의 개념.. 피도눈물도-는 하수들의 합창입니다. 깡패도 하수, 주인공도 디지게 얻어맞는 하수, 전원이 다 하수..오션스는 고수들의 합창입니다. 도둑도 고수, 악당도 고수, 주인공은 초절정고수..도둑질이 9단..

이게 부족한 겁니다. 글타고 피도눈물도-오션스일레븐을 짬뽕해서는 안되겠지만 우리들이 가야할 방향은 그쪽이다 이거죠. 왜냐? 이쪽은 이미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어서 더 나올 국물이 없으니깐두루..

또 플러스 알파로 미남미녀 총출동(조지 클루니, 앤디 가르시아, 브래드 피트, 줄리아 로버츠) 이런게 있지만 안쳐주는 거고 하여간 뻔할 뻔자 시드니 셀던류 트릭인데 버무리긴 잘 버무려 놓았습니다.

하여간 한국영화는 너무 꾸질꾸질해요. 지리멸렬해요. 그게 어떤 면에서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힘이 있다는 거죠. 그러나 충격적으로 깨달아야 하는거 하나 있습니다. 뭐냐? 진보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헐리우드가 여전히 반걸음 앞서있다는 겁니다.

오션스일레븐에는 선과 악의 개념이 없습니다. 선과 악이라는게 이게 꾸질꾸질한 발상이거든요.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이란 말인가? 하수와 고수가 있을 뿐, 도둑질도 잘하면 고수라니깐.

근데 피도눈물도없이-는 여전히 선과 악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정의가 어떻고 원한이 어떻고, 한도 많고, 눈물도 많고, 인정도 많고...이런 구질구질한 청국장냄새..깔끔하지가 못해요. 세련되지가 못해요.

그니까 저의 주문은 최근 잇다라 보도되는 은행털이사건을 "나쁜넘들" 하는 관점에서 보지말고 "아하 울나라가 신용사회로 가다보니 집에 현찰이 없어져서 은행을 터는구나" 하는 관점에서 보아주시라 이겁니다.

민가에 식칼들고 침입하는거 보담은 낫잖아요. 도둑넘이 담넘어 들어오면 무섭잖아요. 그니 집에 현찰은 두지 맙시다. 신용카드 씁시다. 그러면 별수없이 도둑들도 은행으로 달려가겠지.

둘다 도둑넘들에 대한 것인데

오션스일레븐 - 미남 미녀들의 패션쇼(도둑넘들이 옷 하나는 잘 빼 입어요)
피도눈물도없이 - 배우 고생시키는 노가다영화(나는 노가다영화 싫어)

사회가 변하고 있다 말입니다. 주제넘게 감동 주려고 애쓰지 마세요. 눈물도, 한도, 증오도, 분노도 폭력도 과잉입니다. 그게 오바질이에요. 지금 이 시대에 뭐가 진보일까?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영화? 힘이 있으니 가능성이 있습니다. 2프로 부족한건 포장기술입니다. 포장만 잘하면 됩니다. 깔끔하게. 세련되게. 한입에 먹기좋게. 헐리우드? 깔끔은 떠는데 힘이 없어요. 이제 우리나라영화에서 아이디어 빌리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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