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read 5604 vote 0 2002.09.14 (16:08:11)

페미니스트들이 이 영화를 공격하는 이유는 첫째 남자가 여자의 계급을 여대생에서 창녀로 추락시켰다는 점, 둘째 피해자인 선화가 가해자인 한기를 사랑하고 용서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한 반론은 첫째 우리는 계급차별을 반대해야 하므로, 한기가 선화의 계급을 여대생에서 창녀로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서 안된다는 점이다.

선화의 계급이 추락했다고 말한다면, 창녀를 하층계급으로 몰아붙여 차별하는 행위이며 이는 인종차별적이고 폭력적, 범죄적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한기는 선화의 계급을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은 것이다.

둘째 피해자인 선화가 가해자인 한기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설정이 문제인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내가 볼때에는 선화는 한기를 용서하지 않았고 사랑하지도 않았다. 한기를 수용하고 지배했을 뿐이다.

왜 결말부분이 선화가 한기를 지배함인지는 '씨네21'에서 정과리선생과의 대담이 잘 설명하고 있다. 감독은 그것을 '운명'으로 설명한다. 즉 한기와 선화의 공생은 동물적인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한기와 선화는 동물적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공생하고 있다. 숙주와 기생충처럼 말이다. 결말의 이동매춘 신에서 한기와 선화는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 공생하는 관계이다.(그걸 사랑으로 믿는 순진빵들은 사랑에 환상을 가진 철부지임)


왜 운명인가? 선화가 창녀였다는 사실을 관객이 당신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목격자이며 증언할 것이다.

"저 여대생 말이야! 창녀였어! 내가 미아리에서 매춘하는 거 봤어"

고로 가해자는 한기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 바로 이 점이 감독이 노리는 부분이다. 문제는 다수 관객들이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 영화는 어렵다.

박상륭선생의 소설 칠조어론을 영화화 한 것이 '유리'인데 '유리'는 불교도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닥쳤다. 유리는 불교를 찬양한 영화인데, 관객들은 불교를 모독한 영화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점은 지금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예수의 마지막 유혹'과 비슷하다.

분명히 '나쁜남자'는 페미니즘영화인데 관객들은 거꾸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리'는 불교를 찬양하고 있는데 신도들은 불교모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분명 '예수의 마지막 유혹'은 예수찬양인데 예수모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임제스님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고 말했는데 이를 박상륭의 칠조어론은 제자가 스승을 죽이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영화 '유리'에서 이 장면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스승을 죽여서 스승의 해골을 탁발에 쓰는 바리때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조사를 죽인다는 표현은 '내 마음의 에고를 죽인다', 즉 '자신의 이기심을 죽인다'는 뜻인데 무식한 관객들이 "워매! 저 중놈이 큰스님을 돌로 쳐죽여버리는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무식한 관객을 어찌하리? 굴밤을 하나씩 먹여주었으면 좋겠건만! 이게 문제다. 나쁜남자의 문제는 결국 우리나라 관객의 수준문제인 것이다. 제발 생각 좀 하고 삽시다.

김기덕의 모든 영화는 일관된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파란대문'을 보면 잘 이해가 되겠지만 이건 조세희선생의 난쏘공에 나오는 이야기다.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탈무드를 인용하고 있다. 지혜로운 랍비가 이런 문제를 낸다.

"큰 굴뚝이 하나 있는데 굴뚝을 청소하러 두 사람이 들어갔다. 청소를 마치고 나왔는데 얼굴을 보니 한사람은 얼굴이 하얗고, 다른 한 사람은 검댕이가 묻어 얼굴이 시커멓다. 자 과연 누가 먼저 세수하러 냇가로 달려갔을까?"

당신은 이렇게 대답한다.

"얼굴이 꺼먼 사람이다. 왜? 얼굴에 검댕이가 시커멓게 묻었으니까."

랍비가 말한다.

"천만에!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게 마련이다. 얼굴이 흰 사람은 얼굴이 검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자기 얼굴에 검댕이 묻었을 걸로 생각한다. 반면 얼굴이 검은 사람은 얼굴이 흰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자기얼굴이 깨끗한줄로만 안다. 고로 얼굴이 흰 사람이 먼저 시냇가로 달려간다."

당신은 이렇게 대답한다.

"과연 그렇겠군요. 역시 랍비님은 지혜가 있습니다"

랍비가 말한다.

"다시 문제를 내겠다. 문제는 아까와 같다. 굴뚝이 있는데 두 사람이 굴뚝청소를 하고 나왔다. 누가 먼저 세수를 하러갔을까?"

당신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얼굴이 흰 사람이 먼저죠"

랍비가 말한다.

"천만에! 하나의 굴뚝에 두 사람이 들어갔는데 어찌 누구 얼굴은 희고 누구 얼굴은 검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한 굴뚝의 형제들이다. 그 굴뚝 안에서 얼굴이 희다는 것은 불능이다"

이건 일종의 선문답이다. 선문답은 늘 그렇듯이 논리를 뛰어넘는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서 안된다. 왜 이런 말도 안되는 말을 했는지를 먼저 생각하라!

탈무드이야기는 원래 사리에 맞지 않는 궤변이다. 왜 궤변을 하는지를 생각하라! 굽은 것을 통해서 바른 것을 검증하는 것이다. 선문답치고 궤변 아닌 것은 없다. 그러나 거기엔 분명히 논리가 있다.

파란대문의 혜미는 여대생이고 진아는 창녀다. 이 둘의 신분은 다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새장여인숙이라는 하나의 굴뚝 안에 갖혀 있는 신세이다. 고로 이 둘 사이에 계급구분은 무의미하다.

새장을 탈출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장을 부숴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같은 새장 안에서 여대생과 창녀를 구분함은 의미없다. 새장안의 새를 날려보내라! 네 마음 안의 에고를 해방하라!

우리는 누구나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굴뚝 안에 서식하고 있는 신세이다. 누구는 얼굴이 희니 누구는 얼굴이 검으니 하는 논의는 가당치 않다. 창녀와 여대생의 신분차이를 인정해서 안된다. 인간은 평등하다. 인간 우에 인간없다. 추락함도 없고 상승함도 없다. 그냥 허허로운 나가 존재할 뿐이다.

탈무드=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칠조어론=파란대문=나쁜남자.. 같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수준낮은 관객에 의해 오해되고 있다.

왜 파란대문일까? 저만치 앞에 자유가 있다. 파란대문을 나서면 자유인데, 인간들은 어리석게도 대문을 열지 못하고 새장안에 갖혀서 타인을 구속하므로서 자신의 자유를 확인하려 든다.

상사는 부하를 구속하므로서 자유를 느끼고, 남편은 아내를 구속하는데서 자유를 느낀다. 이건 가짜다. 그건 자유처럼 보이지만 도리어 구속이다. 부수라! 파란 대문을 열어젖히라!

김기덕은 말한다.


"타인을 구속하고 차별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자유를 확인하려 들지 말라! 그냥 넘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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