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작용 세상은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한다. 너는 내게 보여지는 대상이고, 나는 그것을 보는 관측자다. 보이는 너를 볼줄 알아도, 보는 나를 볼줄 모르는데서 인간의 오류는 시작된다. 정치가가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은 보이는 너를 본 정도가 결정하고, 그것을 집행할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를 만드는 것은 보는 나를 본 정도가 결정한다. 대개 옳은 판단을 해놓고도 그것을 집행하는 구조를 못 만들어 대중의 신뢰를 상실한 결과로 선거에 패하게 되는 것이다. 보이는 대상과 보는 나의 복잡도는 같아야 한다. 복잡한 것은 복잡하게 보아야 한다. 대신 그 상호작용의 관계는 단순해야 한다. 복잡한 계산은 복잡한 컴퓨터로 풀어야 하지만 그 실행은 클릭 하나로 단순해야 한다. 아이폰처럼 다루기 쉬워야 한다. 그것은 동적균형에 의해 가능하다. 단순한 것은 정지한 것이요 복잡한 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이는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은 가속도다. 그 가속도가 만드는 것은 방향성이다. 그 방향성을 도출하는 것이 동적균형이다. 균형이되 정지한 균형이 아니라 움직이는 균형을 끌어내는 자가 천하를 해결한다. 정지한 것은 원래상태요 움직이는 것은 그 관측결과가 뒤집어지는 역설이며, 움직이는 상태에서의 움직임은 에너지의 주인이 바뀌는 이중의 역설이다. 이에 도달하였을 때 존재는 건축된다. 회화는 실내의 장식에서 야외의 건축으로 도약한다. 그것이 인상주의다. 문학 역시 화려한 수사법을 쓰는 실내장식에서 문체의 변화를 끌어내는 건축으로 도약한다. 이는 헤밍웨이의 견해다. 음악 역시 평면적 음악에서 입체적 음악으로 도약한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유행도 마찬가지다. 이중의 역설을 이해하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입니다. 주어 뒤에 동사가 붙는게 아니라 언어 위에 언어가 건축됩니다. 그것은 평면의 실내장식이 아니라 입체의 공간건축입니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영화든 깨달음이든 공간 위에 건축되지 않은 것은 가짜입니다. 언어 위에 올라가지 않은 언어는 언어가 아닙니다. 중첩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에너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에너지가 풀리는 방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
그보다 더 심오한 의미가 있읍니다. 단순히 상호작용으로만 헤밍웨이의 수준에 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언어 위의 언어... 그 수준은 또 다른 경지라고 생각됨
무득님의 질문은 맥락에서 벗어나 있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제 이야기는 상호작용이 하나의 존재자라는 것입니다. 판단의 1단위라는 거죠.
예컨대 독일군과 소련군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목격하고
'저기 왼쪽 언덕에 독일군이 있고 그 오른쪽 언덕에는 소련군이 있군' 하고 판단하는 것과
'저기에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군' 하고 판단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바른 판단입니까?
피아의 상호작용 전체를 하나의 인식단위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빛과 그림자를 별도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둘을 한 세트로 본다는 말입니다.
독일군과 소련군을 별도로 낱낱이 본 사람은 포탄이 어디에 떨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둘을 세트로 본 사람은 포탄이 어디로 날아갈지 알 수 있습니다.
악기와 연주자는 둘이 아니고 한 세트입니다. 그래야 다음 소리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독일군과 소련군은 움직이지 않는 정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전쟁행위는 움직이는 동이죠.
그 둘의 관계는 다시 움직이지 않는 정입니다. 그 관계의 변화는 다시 동입니다.
그 동을 본 사람만이 다음 포탄이 어디에 떨어질지 알 수 있는 것이며
포탄에 맞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 독일군 혹은 소련군.. 독일군이 소련군으로 둔갑할 리 없으므로 정이다.
*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쟁행위.. 독일군과 소련군이 전쟁하느라 이리저리 움직이므로 동이다.
*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체전력..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력은 정해져 있으므로 움직임 한계도 결정된 바 정이다.
*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쟁결과.. 소련군이 독일군 전력을 흡수해서 영국까지 밀고들어오면 어쩌나?
정에서 동을 보고 동에서 다시 정을 보고
정에서 다시 다시 동을 보면 방향성이 보이고 방향성이 보이면 다음 수순이 보입니다.
상호작용으로 볼때 확인되는 이러한 정과 동은 지극히 단순하다는 거죠. 이 외에 없어요. 이게 전부.
바둑을 두는대 백돌이 청돌이나 홍돌 녹돌로 변하지 않습니다.
백돌은 언제나 백돌이죠. 변하지 않으므로 정입니다. 그러나 바둑돌 둘을 놓으면 동이 됩니다.
둘은 형태를 만드는데 그 형태는 변하지 않으므로 정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 형태를 깨뜨리므로 다시 동입니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정과 동으로 보면 다음 수순은 뻔히 보인다는 거죠.
그러므로 피아니스트는 두어번 쳐보고 곡을 다 외울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몇 달을 쳐야 외우는데 고수가 되면 그냥 다 욉니다.
곡을 정과 동으로 받아들이면 그렇게 됩니다.
바둑 고수는 한 번 두어보고 그대로 복기합니다.
정과 동으로 보기 때문에 즉 피아를 한 세트로 보기 때문에 단순해져서 복기가 되는 거죠.
가수들은 노래를 천곡씩 외우고 다니는데 아침에 일어날때 새로 나온 음악을 틀어놓고 기상해서
흥얼거리며 출근하는데 회사에 도착하기 전에 다 외우고 출근합니다.
상호작용으로 보기 때문에 세트를 이루고
그 세트들을 모아 또다시 세트를 만들므로 그냥 단순해지는 거죠.
단순해서 잘 외어지는 거죠.
이 경지에 오르면 세상이 그냥 슬슬 보입니다.
인간들이 무슨 꿍꿍이로 무슨 행각을 하는지 다 보입니다.
시야가 팍 넓어진다는 거죠.
제가 글의 맥락을 잘못 이해 했습니다.
덕분에 좀더 자세한 설명을 들어 잘못 이해 한것이 잘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오류를 범하게 되어 있고,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편견을 확인하거나 좁히거나 조율하는 것이라 보면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