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read 3812 vote 0 2002.09.14 (16:06:08)

영화나 만화나 소설이나 예술분야는 주관적 판단이 개입하지만 주관 속에도 객관이 숨어있습니다. 신춘문예가 최고의 작품을 가려낸다고는 전혀 인정 못하지만, 그나마 보는 기준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인정합니다.

판단기준이 있다는 겁니다.

나쁜 남자는 이상의 날개를 연상하게 합니다. 아내는 창녀이고 자신은 포주이거나 기둥서방입니다. 나쁜 남자의 김기덕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이상을 비난하는 문학평론가는 아마 없을 거라고 봅니다.

문학인은 종종 자신을 창녀에 비유합니다. 창녀가 맘에 없는 남자와 거짓 사랑을 하듯이 문학인은 독자의 인기에 영합하여 가짜 글을 쓰곤 하지요.

거기에 의식의 분열이 있습니다. 두 개의 나가 있는 거지요. 문학은 그 두 개의 나의 투쟁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내 인생의 소설을 꼽으라면 이상의 '날개'와 스탕달의 '적과 흑' 그리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들겠습니다. 이 작품들이 뛰어나다는 건 아닙니다. 문학에 대한 시각의 교정이라고나 할까요.

사실이지 '적과 흑'은 재미없습니다. 그러나 '적과 흑'을 읽은 다음에 삼총사나 장발장을 못 읽겠더군요. 삼총사나 장발장은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그거 군담입니다. 문학 아닙니다.(군담소설도 잼있는건 재밌습니다)

한 번 문학에 대한 시각을 교정하고 보니, 읽어야 할 책과 읽지 말아야 할 책이 구분되더군요. 그 직후 이문열의 모든 소설이 쓰레기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소설이 헤르만 헷세의 작품들이었는데, 심지어 노태우도 헷세의 머시기를 읽었다는 겁니다. 웃겼죠! 헷세의 소설은 장선우의 영화를 연상시킵니다. 아니올시다. 헷세의 모든 소설은 미완성입니다. 장선우의 모든 영화가 미완성이듯이.

장선우가 나쁘다는건 아닙니다. 제 이야기는 미완성이라는 겁니다. 아! 장정일은 괜찮지요. 저는 그의 소설을 야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었기 때문에 더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척 보면 보이는게 있지요.

좀 아리송한 사람이 김훈입니다. 이 양반의 칼의 노래는 제법 1초식이 엿보이더군요. 그건 좋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전거여행은 가짜입니다. 자전거여행을 세 페이지 쯤 훑어보고, 특히 그 유명한 선운사 화장실 이야기를 엿보고 가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저의 평가는 틀릴 수도 있겠지요. 그가 여행을 하지 않고 썼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짜라는 뜻은 말을 꾸며내었다는 겁니다. 배를 그려놓고 승객을 태운 것이 아니라 승객을 그려놓고 발밑에 배를 심으려 하고 있다는 거지요. 가짜는 아무래도 표가 납니다.

물론 몇 페이지를 보고 그 사람의 전부를 판단할 수는 없지요. 돈주고 책 안사기로 유명한 제가 그의 자전거여행을 돈주고 샀다는거 아닙니까? 책을 안읽지만 그래도 한 번 손에 들었다 하면 다 읽기전에 안놓기로 유명한 제가 내돈주고 산 그책을 던져버리고는 아직도 마저읽지 못하고 있다는거 아닙니까. 뭐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가짜라는 느낌이 가슴 한켠을 콱 막아버리는 겁니다.

하여간 저는 영화평론가들의 아둔한 눈에 불만입니다. 와호장룡이 물론 훌륭하기는 하나 눈에 보이는 단점이 한두군데가 아닌데 어떻게 별 다섯을 주느냐 이거지요. 아니나 다를까 중국 본토에서는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떡되었다는거 아닙니까.

그 긴머리 서역인은 동양정신을 이해 못하는 서구문명을 상징하지요. 오리엔탈리즘입니다. 양자경의 엄지발가락이 하이힐 때문에 휘어져 기형이 된 걸 클로즈엎한건 옥의 티라고 해도 마지막의 독화살 신은 심형래가 연상되어서 우스워졌죠. 기형입니다. 기형. 영화가 통째로.

올해 처음 본 영화는 반지의 제왕인데 이 영화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1시간 반 이상을 잠들고 말았지요. 아침 일찍 조조를 보느라 피곤했나 봅니다. 하여간 한심한 장면 몇군데 지적하기로 하면

눈 쌓인 산으로 가다가 갑자기 "어 이산이 아닌게벼"하고 철수하는 황당 신. 말 탄 괴물기사가 나타나서 나무 뿌리 밑으로 숨었다가 흐지부지 된 신. 옥수수 밭에서 갑자기 일행 두명이 네명으로 복제되는 장면. 지하동굴 문앞에서 요정말로 문을 여는 장면, 괴물이 떼로 몰려오다가 갑자기 도망가는 장면(더 무서운 괴물이 나타냈대나 어쨌대나) 주인공이 죽었다가 갑옷 덕분에 살아난 장면(영구가 또 생각난다) 활잘쏘는 넘이 걸핏하면 화살 줏으러 사라지는 장면.(화살은 스무개 뿐인데 수천발을 쏘려니 그는 늘 화살을 줏기 위해 사라진다) 일행 중 한 명이 뿔나팔을 짠 하고 불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장면, 막판에 아무 설명도 없이 일행이 그냥 흩어져버리는 장면.

저는 썰렁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자장가를 열심히 들려줘도 안자고 보는 인간들이 있더군요. 하여간 반지의 제왕을 보고도 잠에 빠지지 않는 고수들을 저는 존경해주기로 했습니다. 새삼스레 깨달은건 심형래도 영화인이라는 겁니다. 용가리가 반지보다 못한게 모냐 이거죠.

하여간 각자의 보는 눈이 다르죠. 반지가 좋지 않다는건 아닙니다. 다만 너무 한심하다는 거죠. 작가나 감독이 옆에 있다면 굴밤을 한방 먹였으면 좋다 싶을 정도로.

어쨌거나 이상의 날개를 몇십번씩 읽고 좋아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겁니다. 저는 날개가 창녀에 대한 이야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두 개의 자아입니다. 사람과 만나서 맘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나가 창녀입니다.

예를 들면 손님이 왔을 때

"안녕하세요" - 창녀인 나
"저 새끼 왜 또 왔냐" - 기둥서방인 나

"안녕하세요"는 입으로 말하는 나이고 "저 새끼 왜 또왔나"는 속으로 생각하는 나입니다. 이렇게 두 개의 나가 대결하는 내용이 이상의 날개입니다.

김기덕의 나쁜 남자도 그러한 두 개의 나의 내면의 대결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문학에는 이상이 있고, 음악에는 서태지가 있고, 영화에는 김기덕이 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존재하지요. 가짜가 아니고 진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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