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read 3328 vote 0 2002.09.14 (15:59:42)

가짜를 지적해왔는데 그럼 진짜는 뭐냐는 질문이 있을 법 하다. 드물지만 진짜도 있다. 류승완은 진짜다. 김기덕도 진짜다. 홍상수는 8할이 진짜이고 2할은 사기다.

진짜라는 것은 내부에서의 미학적 완전성과 일관성에 도달한 경우를 말한다. 물론 진짜라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가짜라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진짜는 진짜인데 먹어보니 비지떡도 있다. 인조다이아몬드는 가짜다. 가짜는 가짜인데 헐값은 아니다. 비싸다.

요즘 서점가에 '아멜리 노통'이 인기이던데 제법 인생이 뭔지를 아는 여자다. 이런 경우 진짜다. 이문열류 쓰레기가 판치는 이나라 문단이 구제불능인 것과 비교하자면 참말이지 서럽다.

왜 이것이 문제로 가짜부터 이야기해 보겠다.

지퍼를 아실 것이다. 이거 300년 전에 발명되었다. 망했다. 왜? 쓸모가 없으니까. 안팔리니까. 실용적이지 못하니까.

지퍼는 쓸모있다. 잘 팔린다. 의상혁명이다. 그런데 왜 지퍼가 쓸모가 없냐고? 세그웨이라고 있다. 인터넷만큼 중요한 발명이라고 호들갑을 떨고들 있는데 이것이 과연 진짜인지 사기인지 화제가 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 세그웨이는 혁명이다. 이건 진짜다. 천만에! 장난이 아닌 것이다. 호들갑 떨지 말자는 거다. 부디 진중해라. 한 두 번 속았니?

혁명도 그러하다. 진짜인 듯 가짜이고 가짜인 듯 진짜이다. 형제여! 부디 이르노니 진중하라.

하여간 지퍼는 한 사람이 발명한 것이 아니고 200년간 수백건의 특허를 획득하면서 수십명의 발명가와 후원자를 파산시켰다. 그때부터 예언되었다. 지퍼는 의상혁명이다. 과연? 천만에. 지퍼 발명한 사람 치고 안 망한 발명가 없다.

왜? 실용적이지 못하니까. 비단옷에 지퍼가 궁합이 맞아? 이거 안되는 거다. 무려 200년간 지퍼는 수없이 많은 특허를 획득하면서, 발명가 사이를 떠돌다가 선드바크라는 사람에 의해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그는 20여년간 전재산을 꼴아박아 "후크없는 자동여미개"의 특허를 획득했다. 이건 지퍼 뿐만이 아니라 지퍼를 만드는 기계까지 포함된다.

자! 여기서 놀래야 하는 것은 어떤 하나를 발명한다는 것은, 그 하나 뿐만 아니라 그 하나를 제작하는 기계까지 발명해야 하는 것이며, 더욱 치명적인 것은 그 발명품을 소비할 시장까지도 창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결과는? 또한 철푸덕이다! 알거지가 된 것은 아니지만 기대했던 대박은 아니었다. 왜? 지퍼는 발명했는데, 지퍼를 소비할 시장을 발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때 쉽지 않지? 이거 알아야 하는 것이다.

혁명? 지퍼를 발명한 것이 혁명이 아니라 지퍼만드는 기계를 발명하는 것이 더 혁명이다. 천만에! 지퍼 만드는 기계까지 발명해보았자 지퍼를 소비하는 시장을 발명하지 못하면 알쪼다.

왜 혁명이 안되는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좌파 철부지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늘 그렇듯이 끝인가 하면 시작이고, 파산인가 하면 확산이다. 희망을 버려서도 안되고 좌절해서도 안된다.

뒤집어 엎기는 쉽다. 발명은 쉽다. 그러나 하나를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를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알아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돈은 어문 넘이 벌었다.

지퍼 곧 '후크없는 자동여미개'를 발명한 선드바크는 "탤런"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발톱이라는 뜻이다. 그럼 '지퍼'는 뭐냐고? 지퍼는 가죽신발 이름이다. 돈은 지퍼를 신발에 달았던 신발장사가 다 벌어갔던 것이다. 이런 식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넘이 버는 것이 공식인 것이다. 왜? 선드바크는 탤런을 발명했지만 신발장사하던 지퍼회사는 그 탤런의 소비시장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지퍼를 발명하면 뭐해? 그 지퍼만드는 기계를 발명못했는데!

지퍼 만드는 기계? 쉽지 않다. 지퍼는 일본 YKK가 독점하고 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얼마전까지 우리나라 기술로 지퍼와 볼펜촉을 못만들었다. 물론 만들수는 있다. 단지 경쟁력이 없을 뿐이지. 지퍼만드는 기계.. 이거 쉬워보여도 쉽지 않은 것이다. 경쟁력을 갖추려면.

우리도 제트기 만들 수 있다. 만들 면 모해? 세계 최고의 제트기가 아니면 그 비행기 아무도 타지 않을 것이 뻔한데.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최고를 만드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지퍼는 실크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 어떤 의상디자이너도 지퍼를 비단옷에 달지 않는다. 어떤 소비자도 값비싼 드레스에 지퍼를 달지 않는다. 그럼 지퍼는 누가 살려내었느냐고? 전쟁이 살려내었다.

전쟁이 터지자 여성들은 비단드레스를 벗어던지고 전시바지를 입고 군수공장에 동원되었다. 의상혁명이 일어났다. 비로소 지퍼는 성공적으로 의류에 장착되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최초의 구상부터 300년, 선드바크의 성공으로부터 100년이 걸렸다.

혁명도 그렇다. 혁명 쉽다. 지퍼도 그렇다. 발명 쉽다. 300년 전에 발명했다. 그때부터 지퍼는 혁명이라고들 말해왔다. 근데 정작 그 지퍼를 장착할 소비시장이 없는 것이다. 비단에 지퍼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퍼는 가죽이나 군용물품, 질긴 청바지와 어울리는 것이다.

어떤 하나를 발명하는 것은 가짜다. 그 하나를 생산하는 시스템과 소비시장까지 1사이클을 동시에 발명되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내부에서의 1사이클이 완성되었는가이다. 내적인 자기완결성과 일관성을 획득하였는가이다.

왜 나는 고양이나, 나비나, 와이키키나, 라이방이나, 꽃섬이 가짜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혁명이지만 그 혁명의 완수는 300년 걸린다. 첫 걸음을 떼놓고, 천하를 다 얻었다고 뻥을 쳐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알아야 한다. 소비시장을 발명하지 않으면 아직 발명한 것이 아니다. 그대의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다.

내부에서의 완전함에 도달하였는가? 에너지의 1순환이 확인되었는가? 천만에! 물론 고양이나 꽃섬은 혁명적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그저 혁명적일 뿐이다. 그건 300년 전부터 수백명의 발명가와 후원자를 파산시킨, 늘 하던 그 혁명에 불과하다.

혁명을 하도 많이 해서 혁명이 관습이 되고, 혁명이 타성이 되고, 혁명이 직업이 되고, 혁명이 장사가 된다. 그러나 아직은 진짜가 아니다.

그들은 늘 혁명한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파산한다. 그러나 형제여! 꿈 마저 버리지는 말거라.

물론 우리는 혁명의 시도를 중단해서 안된다. 왜? 비록 300년전에 처음 지퍼를 발명한 천재는 망했지만, 결국 지금에 와서 지퍼는 의상혁명을 완수해내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도 그렇다. 300년을 기다릴 배짱이 없다면 혁명가를 꿈꾸지 말아야 한다. 애들 장난이 아닌 것이다. 터무니없이 망상을 품고 세상을 다바꾸겠다고 떠들다가, 겨우 지퍼나 발명해놓고, 그 소비시장을 발명하지 못한다면? 알쪼인 것이다.

'딘 카멘'이 발명한 세그웨이도 그렇다. 세그웨이만 발명해서는 답이 아니다. 그 세그웨이가 달려야 할 도로까지 발명해야만 한다. 그 세그웨이를 구동할 초강력 전지까지 발명해야 한다. 이건 장난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한다면 세그웨이는 혁명이다. 왜? 비록 300년이 걸렸지만 지퍼도 혁명임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예언은 맞아떨어졌다. 결과가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2000년 전에 온다는 그양반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믿으니까.

중요한건 세그웨이가 신통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어떤 도로를 달리는가이다. 세그웨이가 인도를 달릴 수 있고, 인도가 연결되는 인도턱을 다 없앨 수 있고, 백화점 내부를 돌아다닐 수 있고, 계단을 오를 수 있다면 그때가서 혁명이다.

모든 건물이 세그웨이를 위해 계단턱을 없애준다면 혁명이다. 분명 혁명은 혁명인데 시간이 걸리는 혁명이다. 그렇다면 믿고 기다릴 수 있는가가 문제로 된다.

진짜는 있다. 진짜는 영토를 개척하는 사람이다. 가짜도 있다. 있는 것을 거간하는 브로커가 가짜이다. 둘 다 상업작가이지만 '아멜리 노통'은 진짜이고 이문열은 가짜다. 이런 것은 미학적인 견지에서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만들 수도 있다.

거간하는 가짜는 재능을 필요로 하고, 개척하는 진짜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지퍼 만으로 안되고 그 지퍼를 장착할 가죽과 궁합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짜는 늘 이런 모험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독자의 창출이다.

있는 독자에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독자까지를 생산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김기덕은 작지만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사람이다. 비록 한 뼘이라도 바깥에서 무언가를 가져온 사람이다. 꽃섬은 안에서 자가발전한 거다. 거간이다. 내부적인 에너지의 1사이클에 이르려면 멀었다.

주제의식의 진정성.. 이런 식으로 가는건 100프로 가짜다. 주제는 애초부터 해당사항 없다.

문체를 바꾸는 것이 진짜다. 홍상수는 진짜다. 백남준이 진짜인 것은 그 작품의 주제가 진정해서가 아니라 그 영토가 바깥에서의 것이기 때문이다. 비디오라는 새로운 영토를 밖에서 얻어온 것이다. 까놓고 이야기하자. 백남준에게 무슨 얼어죽을 주제의식이 있나?

이렇듯 진짜와 가짜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김기덕은 작지만 내부에서의 에너지의 1사이클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미술을 알기 때문이다. 입으로 치는 구라가 아닌 것이다. 이는 임권택이 정일성촬영감독에 의존하는 것과 구분된다. 이명세는 진짜다. 미학을 아는 사람이다. 홍상수도 진짜다. 그러나 2할은 사기다.

내부에서 에너지의 1순환에 기초한 자기완결성의 획득 - 그것은 하나의 창조와 그 창조시스템의 창조와 그 소비시장의 창조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갖추느냐이다. 가짜는 여기서 하나가 빠진 것이다. 가짜들은 남이 창조한 것을 중간에서 거간하여 소비시장과 연결시킨다.

물론 가짜라고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내가 늘 가짜라고 구박하는 장선우이지만 이번에는 혹 진짜 깨달았는지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다. 장선우의 모든 영화에 별 한 개를 준다고 공언해놓고 있지만 100억 쳐박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기대할 만 하다. 가짜도 득도하면 진짜가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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