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깨달음의 지정학이라고 하는 이유는
아무리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사회의 토대가 성립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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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문학이 좋았다.
모든 일의 시작은 그렇게 사소하게 온다.
중학생이 된 아들과, 함께 동대문 헌책방에 가게 된 어머니,
동대문 헌책방에는 희귀한 포르노 테입도 많았지만,
한국 문학전집과 세계 문학전집을 한질 묵직하게 매게해준건
당신의 혜안이었다.
물론 문제의 시작이기도 했다.
마치, 80년대의 학도 호국단처럼, 고등학교를 마치고,
자유로운 재수기간을 거친다.
담배도 술도, 당신의 책임하에 자유다.
그게 좀 거슬리고, 무서웠지만,
책임질줄 아는 성인이기에, 할만했다.
할만했다는 말이 오만인줄 알지만, 그 때엔, 아무 소리도
내게는 들리지 않았다.
좀 늦게 대학에 갔지만,
고시생선배와, 운동권 선배뿐인 대학 생활.
이게, 과연 제대로된 생활인지 궁금했다.
이걸 위해 그렇게 오래 학도 호국단 ? 생활을 했는지도
의문스러웠고,
차제에 정했다.
아예 더 '얼간이'라고 불리우는 선배 따라가기로,
아예, 이공계로 전환하는게 낳지 않겠냐고,
글쟁이들에는 빛도 없고, 어디 가서 술이나 먹고
남자 여자나 만나기로 눈이 번쩍번쩍한데,
그꼴로는, 한번 뿐인 '일생'이 너무 절박했다.
미적분학은 기초라고 치자.
선형대수까지 척척 풀어대는 나의 몇안되는
이공계 친구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밥이라도 매일 사주며 벗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왕따. 얼간이라고
불리는 이들이었다.
'병신들... 좆도 모르는 놈들이 저런다'
면서 추켜세워주었다.
딴엔 진심이었지만, 그들도, 그렇게 받아들였는지는
의문이다.
선생은 그렇게 잡는거라고 생각하며,
투신하기로 맘먹었다.
유체역학까지는 발에 닿는듯했는데
전자기학에 가자,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전기쟁이 아저씨들이 이거갖고 회로 그린거구나'
키르히 호프와 우리 동네 전파사 아저씨의 만남은
그렇게 왔다.
하지만, 이공계가 이렇게 노가다를 위주로
돌아가는줄은 몰랐는데,
그건 선후를 구분못했기 때문이다.
산업이 되는 동시에, 우선순위는 주어지며,
데이터를 처리하고, 정리할 세력들이 필요하다
그쪽에서 필연적으로 착취가 이뤄지는 거였다
그런 악다구니들을
그 잘난 삼성과 현대들이 하고 있었다.
그것도 명색이 연구소라는 이름을 걸고 말이다.
그게 마음이 아팠다.
대기업의 공헌도를 무시하는게 아니라,
그렇게 착취를 물고 늘어지는
게임의 룰이 변하지 않고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깨달음도 지정학 그리고 문화의 풍토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