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YHY님의 댓글과 관련해서 쓰는 글입니다. 사람들이 왜 교회에 갈까요? 성경에 뭐라고 써놨는지 궁금해서? 이건 처음 한 두 번 이야기죠. 처음엔 교회가 뭐하는 집단인가 궁금해서 호기심으로라도 가 보는 겁니다. 지옥가는게 무서워서? 이건 초딩 이야기죠. 초딩들은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거 때문에 교회 가는게 맞습니다. 교회에 왜 갑니까? 안 가죠. 서양사람들은 교회에 안 잘 갑니다. 프랑스라면 아마 교회가 텅텅 비어 있겠지요. 바닷가에 피서가지 뭣하러 교회 갑니까? 교회에 가는 이유는 사람이 좋아서 가는 겁니다. 중딩들은 교회누나 때문에 가는 거고 고딩들은 교회오빠 때문에 가는 겁니다. 교회에 좋은 사람이 있고, 거기서는 존중받을 수 있으니까 가는 거죠. 교회에 갔는데 깡패들이 잔뜩 죽치고 있다면? 안 가죠. 할배들만 있다면? 그래서 서양 젊은이는 교회에 안 가죠. 젊은 미녀가 잔뜩 있다면? 당연히 가야죠. 교회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는 겁니다. 내게 유익한 좋은 사람들은 강남의 부자교회에 많고 시골 개척교회에 없죠. 왜냐하면 입시정보나 해외유학정보라도 얻을라면, 부동산 투자정보라도 얻을라면 그걸 알려주는 좋은 사람이 있는 강남 대형교회에 가지 뭣하러 시골 개척교회에 가겠습니까? 가봤자 할배들 밖에 없을텐데. 이런건 기본적 상식입니다. 이 상식을 굳이 제가 말해야 합니까? 사람이 좋아서 교회 가는 거에요. 그런데 사람이 싫다면? 안 가겠죠. 교회에 어버이 연합이 죽치고 있다면? 교회는 텅텅 비는 거죠. 구조론의 존엄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근데 누가 좋은 사람일까요? 만화오타쿠들에게는 만화를 잘 아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영화매니아들은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만화도 싫고, 영화도 싫고, 소설도 싫고, 요즘 뜨는 연예인 이름도 모르고, 유행하는 노래가 어떤 건지도 모르겠고 세상의 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면? 제가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나가 죽어라. 이 화상아!’ 그러겠죠. YHY님 말씀은 가만이 듣자하면 이런 느낌입니다. 나는 음악도 싫고, 영화도 싫고, 드라마도 싫고, 다 싫은데 니가 나를 설득시켜봐. <- 그런 사람은 확 내쫓아버리죠. 사람을 좋아해야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주식이야기로 가 보면, 명량이 떴다.-> 대성창투, 허니버터칩이 떴다.-> 크라운 제과, 기름값 폭락한다.-> 아시아나 항공. 다음이 카카오와 합병. ->다음카카오. 중국바람이 분다. -> 아모레화장품, 모바일게임 뜬다. -> 컴투스. 이런건 굳이 말 안해줘도 알아야 하는 겁니다. 근데 ‘명량이 떴다’고 하면 ‘어쩌라고?’ 허니버터칩이 인기래. ‘어쩌라고?’ 기름값 폭락이래. ‘어쩌라고?’ 명동에 중국관광객 천지여. ‘어쩌라고?’ 젊은애들 사이에 모바일 게임이 난리래. ‘어쩌라고?’ 이런 넘과 대화하고 싶겠어요? 이런 넘이라면 그냥 죽빵을 날려야죠. 센 걸로. 기본적으로 대화가 되느냐입니다. 이것저것 다 싫은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대화가 안 될까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건 제가 설명하기 위해 단적인 예를 들은 거죠. ‘기름값 폭락 -> 아시아나구만.’ 이렇게 안 해도 됩니다. 과연 대화가 되느냐를 저는 묻고 있는 것이며, 기본적인 대화가 안 되는건 그 사람 책임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가 안 되는 것이며 그건 그 사람 잘못입니다. 그래서 저는 묻는 것입니다. 과연 대화가 잘 되고 있습니까? 화기애애하게? 저는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제가 진리의 편, 역사의 편, 문명의 편, 자연의 편, 진보의 편에 서라고 하는 것은 진리와 역사와 문명과 자연과 진보에 대해 대화가 될 정도로는 공부를 하고 와야 한다고 말하는 거죠. 진리가 뭔지를 모르고, 역사가 무언지도 모른다? 자연이 뭔지 모르고, 진보가 뭔지 모르면? 내쫓아야죠. 사람을 사랑할 자세가 안 되어 있다면 이곳에 오면 안 됩니다. 제가 요구하는 것은 반응해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닭이나 쥐벼룩붙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넘들이 도무지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존엄은 없죠. 난생 처음으로 교회에 갔는데 변희재와 어버이연합이 죽치고 있더라면 두번 다시 가겠어요? 안 가죠. YHY님의 말씀을 인용하면.. ‘모든 인류가 깨닫음을 통해 삽시간에 연결될 수 있는 진리체계의 가능성’ 까지 거창하게 말할 이유는 없고, 반응하느냐죠. 제 물음은.. 반응합니까? ‘기름값 폭락했대.’ ‘그럼 아시아나군.’ 이건 물론 주식투자자에게 기대하는 반응입니다. 다른 분야라도 그런게 있을 거 아니겠습니까? 영화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음식이든, 패션이든, 건축이든, 자동차든 이렇게 제게제게 반응이 나와주면 대화가 되는 거고 그게 존엄인 것입니다. 존엄을 얻으면 짜릿하고 행복은 따라오는 거죠. 잡스형님이 좋은 아이폰을 만들었는데 그걸 돼지에게 이야기하면 돼지가 뭐라겠어요? 꿀꿀? 이 새뀌는 반응이 없는 거야. 반응하지 않으면 삼겹살 구이로 갈 밖에. 꽤 영리한 돼지라서 아이폰으로 내게 전화를 건다면? 존엄이죠. 대화가 전혀 안 되면? 꺼져! 적어도 대화가 되는 수준까지는 자기 힘으로 와야 합니다. 마음이 괴로운 이유는 사람이 싫기 때문이고, 사람이 싫은 이유는 사람을 해치는 변희재 때문입니다. IS가 동성애자를 옥상에서 집어던진다는데 사람이 좋겠어요? 한국의 기독교도는 다릅니까? 개고기를 먹는다는데 애견가 입장에서 그 사람이 좋겠어요? 여자를 팬다는데 여자 입장에서 그 남자가 좋겠어요? 승무원에게 ‘너 내려!’ 그러는데 조현아가 좋겠어요? 예수 형님이 간단히 정답을 말해줬죠. 불행해? 넌 사람이 싫은거야. 사람을 사랑하라구. 왜 사람이 싫을까요? 대화가 안 되니까 싫은 거죠. 대화가 되려면? 맞장구 쳐서 반응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자신의 레벨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레벨은 충분히 높습니까? 행복하려고 하면 행복하지 못합니다. 왜? 사람이 싫으니까 그렇죠. 사람들이 괴롭히는데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멋진 음악을 들으면서 차 한잔의 행복을 누리려는 찰나 옆집에서 공사중, 발파 우당탕퉁탕. 이런 판인데 행복이 깨지는건 당연하잖아요. 존엄을 얻어야 한다는 거죠. 옆집에서 어떤 공사를 하고, 어떤 장비를 쓰고, 어떤 공법을 쓰는지 알고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옆집의 공사가 오히려 내게 행복이 되는 겁니다. 그게 싫다면? 죽어야죠. 지구 상의 어디에도 나를 괴롭히는 불편은 집요하게 따라다닙니다. 존엄은 자기와 다른 타자와 만나는 것이며 만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난 싫은뎅? <- 강력한 어퍼컷 한 방이 필요합니다. P.S. 존엄 다음에 자유, 사랑, 성취, 행복입니다. 일단 반응을 해야 대화가 되는게 존엄이고, 대화하다보면 각자의 포지션이 나누어지는게 자유, 그러다 보면 공동목표가 생기는게 사랑, 목표달성은 성취고 그 결과는 행복입니다. 남녀라도 처음 만났을 때 반응해야 합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이 자가 날 무시하는 거야? 이렇게 됩니다. 존엄하지 않은 거죠. 반응하면 대화하고 대화하다보면, 아 테니스를 좋아하시는군요. 제가 좀 치는데 가르쳐 드리죠. 이렇게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로 역할을 나누면 자유, 테니스 모임에 참가하자고 목표가 생기면 사랑,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성취와 행복이 따라옵니다.
YHY님은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끌고가려고 하는데 어떻든 제게 도움은 되었습니다. 사실 정답은 2500년 전에 석가형님이 다 말했고, 2000년 전에 예수형님도 맞는 말을 했어요. 불행한 이유는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이고, 사람을 사랑하면 행복해지는 겁니다. 근데 난 사람이 싫은뎅? <- 이런 분들을 위해 제가 존엄을 가르치는 겁니다. 존엄을 얻었는데도 여전히 사람이 싫은뎅? <- 거짓말입니다. 대화가 안 통하니까 사람이 싫은 것이며 대화가 안 통하는 것은 자기 책임입니다. 대화가 안 통하는 것은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고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 내면의 칼날을 예리하게 벼러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날을 세워야 반응합니다. 반응해야 존엄합니다. 돼지나 닭이나 쥐는 전혀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잡아먹는 거에요. 개는? 개는 그래도 꼬리라도 치니까 조금 반응을 하는 거죠. 그래서 그나마 대접을 받죠. |
말미에 조금 추가했소.
사람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왕년에 석가와 예수와 공자가 다 했고
막연히 사랑하는게 아니라
자신을 세상의 모든 지점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으로 날을 벼러 놓아야
잘 만들어진 바이올린처럼 예리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이며
무반응은 자기 책임이며
깨달음을 얻어서 반응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응하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되어 있고
남이 나를 좋아하면 나도 남을 좋아하는 것이고
서로 좋아하면 행복해지는 거죠.
반응하지 않으면서 억지 행복을 추구하므로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너무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지점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
이 부분은 도올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에 대한 정의와도 무척이나 닮아있습니다.
제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중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낄때.. 그래서 민감한 반응을 얻지 못할때 그때도 저의 책임인 것이죠?
그렇다면 일단 제 수준을 높여놓고 활동범위를 넓혀서 높은수준, 매력적인 사람들이 모여있는 강팀에 드는것이 답인가요?
행복에 대해...인간의 존엄에 대해...자유에 대해....
이렇게 알아가는군요....구조론연구소....참 좋은 지혜가 있는 곳....
스승이 있는 곳....
'반응성과 행복'의 의미도 반추해봐야겠습니다...
반응성 지수와 아이큐가 거의 같이 갈 것이라고 생각듭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아봐야 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에 그 이면을 담고 있고
그 내용엔 엄청난 사실들을 내포하고 있슴인데...
그저 안보이니(내 반응이 안나오니) 답답하겠지요.
통찰을 통해서 꿰뚫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역부족...
구조론을 통해서 받는 감동은 '통찰이 이런것인가?' 라고나 할까요...
좋은 질문, 좋은답변에 감사하고 싶군요.
친절+시원+좋은글 입니다^^
오늘은 모두 감동의 도가니 네요~~
소승적인 이유로 사람,인류라는 종을 증오했던적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대승적인 관점을 많이 얻고있습니다
반응성은 아무리 봐도 남자가 여자를 못 따라 갑니다.
남성분들 훈련합시다.
행복의 비밀
존엄의 의미
사람을 사랑하는게 정답
너무나 좋습니다. 100% 올듯 말듯 하지만 가슴이 따듯합니다
매일 눈팅만 하다가 적습니다.
딸내미가 고1인데 프린트 해서 읽어보라고 해야겠습니다
논술에도 도움이 많이 될것같습니다. -아빠의 마음입니다. 용서해주삼
고등학생이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요
이번에 대학에 입학한 조카 놈에게 이 사이트 눈팅하라고 신신당부 했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 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대 얻어맞은 느낌입니다.
솔직히 아래 글 '행복의 비밀' 에서 질문한 yhy님과 똑같진 않지만 뭔가 비슷한 의문을 가졌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현재 상태를 상세히 말씀드릴수는 없지만 제가 지금 느끼는 불안, 고립감, 강박증..
그 원인에 대해 저 스스로에게 여러가지 변명과 합리화를 할수도 있겠지만
저는 결국 그동안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저의 모든 원인은 여기에 있었던것 같습니다.
사춘기 소년도 아닌데 이런 말 하기가 좀 쑥스럽지만 사람에게 상처받는게 두려워서 그런것인지 사람과의 친화력이 없는 성격탓일까 혹은 원래 혼자 노는걸 좋아해서 그런것일까도 생각해 봤지만 결국 다 핑계였던거 같습니다.
저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사실 저 스스로도 해결책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누군가 저에게 이런말을 해준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모든게 분명해 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속에 되새기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존엄,,,,자유,사랑,행복,,,,,반응이 없다면 본인 사랑부족,,,,,수준이 안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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